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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관점으로 보는 베를린_  창의적인 창작 분위기가 더해가는 베를린에 대한 단상
[공간] 이방인의 관점으로 보는 베를린_  창의적인 창작 분위기가 더해가는 베를린에 대한 단상
작성자 : 바니니 벨라미노 _ 벨라미르노&파트너 대표 2010.01.14 유럽 > 독일

글: 바니 B. 벨라르미노Vanini B. Belarmino
/Belarmino& Partners 대표, 다원예술기획자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팝 가수)가 1977년에 언급했듯이, 베를린이란 도시는 이중적인 매력이 있는 곳이다. 매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도시전체에 팽배해 있고 경제적 불안 과 이념적 혼란 때문에 베를린은 암울한 정서가 뚜렷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주류에 도전하는 저항정신이 여전히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베를린은 오직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만 기록하게 하는 묘한 능력이 있다. 다른 것은 그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게 된다.” 


그 이후 급격한 격변을 겪은 베를린에 대해서, 영국 팝 가수인 데이비드 보위가 주목한 베를린만이 지닌 특성은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만일 필자가 데이비드 보위가 말한 부분을 내가 외국인 제작자이나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겪었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다른 말로 비슷하게 다시 표현한다면, ‘베를린은 누구에게든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반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어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고 말하겠다.


필자가 2006년 겨울 처음으로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워낙 건축물들이 괴상해서 사람이 환영 받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처음부터 베를린의 모습은 회색 빛으로 가득하고 그저 휑하니 넓고 거친 분위기 였다. 그러나 2007에 이곳에 이주해 왔을 때 나를 그냥 눌러 앉게 한 것은 처음에 언급했던 바로 그런 이 도시의 특성들이었다. 베를린은 온통 회색 빛이어서 누구든 원하는 그 색깔을 채색할 수 있다. 그리고 휑하니 넓은 공간으로 가득 차서 스스로 원하는 공간만큼 차지하고, 생각도 자유로이 할 수 있고 누구든 주변 사람들과 아직 베를린을 방문하지 못한 사람들도 베를린의 드넓은 공간을 느낄 수 있다. 베를린은 또한 거칠기 때문에 누구나 원하는 대로 다시 재해석할 수 있다.     
이 도시는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순간을 맞볼 수 있다든지, 유일무이한 이곳만의 모습과 개성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번창한다. 드넓은 공간이 있어서 거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있다. 베를린이라는 곳은 대담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런 상상력을 용기 있게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을 준다. 경제적 상황이 어떤지에 관계 없이, 누구나 베를린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생활 방식을 누리고 경험 할 수 있다.     

필자가 일하고 생활했던 다른 곳들과는 달리, 베를린에서는 스스로 또는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재발견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자신도 혁신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필자가 가장 감동적으로 느꼈던 부분은 나의 일을 하면서도, 여기 저기 다닐 수도 있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베를린을 떠나 외국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집주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빌어 주었다. 아시아에서 상류층의 안락한 생활을 제도권에서 누리고 있기만 하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베를린 생활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개인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필자 에게는 이 도시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마련되었다.





베를린에서는 은행 계좌에 돈이 얼마나 많은지,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지, 또는 큰 기관에 소속되어 일하는 잘나가는 사람이건, 현재 자영업을 하고 있든, 완전히 무일푼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베를린에서는 누구든 스스로 자유롭게 경험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고 중요한 것은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동네인, 프렌즐라우어버그(Prenzlauerberg)는 베를린에서도 세련된 취향을 지닌 상류층 밀집지역으로서, 서독인들과 다른 외국인들이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처음으로 정착했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최신 베를린의 유행 흐름을 잘 보여주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작은 바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다양한 카페, 바, 클럽, 식당, 노천에서 즐기는 맥주 바, 공원, 값싼 호텔, 대안적 공연 예술공간, 벼룩시장, 주말에만 여는 시장 등 매우 다양하다. 항상 무언가가 펼쳐지는 것이다. 복스부에네 프레이터(Volksbuehne’s Prater), 덕 11(Dock 11), 발하우스 오스트(Ballhaus Ost) 혹은 할 탄즈 부에네 (Halle Tanz Buehne) 등 프렌즐라우버그(Prenzlauerberg) 지역의 대표적인 연극 공연이나 무용 공연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연들이 있다. 모두 200 미터 이내의 거리에 있어서 카페, 바, 식당에서 혹은 공연장 뒷마당이나 앞마당에서 공연, 파티, 예술가들의 모임, 여러 종류의 정기적 모임 등이 열린다. 그러나 이 곳이 다른 사람들이 많이 찾는 다른 도시의 관광명소와 달라서 차별화되는 점은 주류 예술가들의 작품활동과 공간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서로 융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어느 곳에서 중국인 클래식 피아니스트인 윤디 리(Yundi Li)가 엘로우 라운지(Yellow Lounge)라고 불리는 음악인들을 한데 끌어 모은 프로젝트가 펼쳐지는 클럽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겠는가? 그 어느 곳에서 줄잡아 600 여명이나 되는 첨단 유행을 따르는 젊은이들이 클럽에 잔뜩 모여 클래식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광경을 보겠는가? 콘서트 홀에서 볼 수 있는 고상한 행동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단돈 5 유로의 입장료에 맥주를 마신다.    
베를린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이 곳은 조용한 정적이 흐르지만 약간 투박한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다문화적인 배경을 지닌 지역주민들이 자신들의 지역사회 내에서도 수많은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그와 더불어 고요한 정적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베를린은 상대적인 개념이 지만 러시 아워가 따로 없다.  
누구나 안락하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큰 도시에 마을이 하나 있는 것 같다. 카페마다 20대 혹은 40대 남자, 여자들로 가득하다. 모두들 라테 마키아토(latte macchiato)를 마시며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하여 자유시간을 즐긴다. 이곳은 무엇이든 서두르는 법이 없다.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우리는 커다란 압박 없이 마음껏 자유를 만끽 할 수 있다.

베를린을 구성하는 10개의 모든 지역에서 벌어지는 행사들을 모두 볼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각기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예술공연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주류, 비주류와 대안이 되는 공연예술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창의적인 모습이 된다. 마찬가지로 베를린 헌법 제12 조가 분명히 명시하듯이 “검열은 결코 없을 것이다.”라는 문구를 주목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베를린 상원의 ‘비 베를린’(be Berlin) 라는 캠페인에서 주목하는 사실은 베를린에는 150개의 극장, 170개의 박물관, 3개의 오페라 하우스, 639개의 갤러리, 285개의 영화관, 1000개 이상의 공립 도서관, 약 200개의 바와 댄스 클럽들이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만남의 장소로서 800명의 디자이너, 5,500명의 예술인들, 10개의 오케스트라, 15개의 실내 오케스트라, 850개의 코러스 단 등이 모인다. (게다가 수도 없이 많은 영화감독, 문인들, 무용수들, 인터넷을 이용한 예술인들, 음악인들, 배우들, 큐레이터, 건축가, 그리고 모든 종류의 창조적인 사람들도 함께 모인다.) 베를린에 사는 많은 예술인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모두 고려 해볼 때, 매일 열리는 500개의 공연들은 모두 어찌 보면 예술 표현에 있어서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패션 위크 Fashion Week', '베를린 국제 영화제 the Berlinal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박물관의 긴밤 the Long Night of the Museums/Lange Nacht der Museen', '연극과의 만남 Theater Meeting/Theatertreffen', '트랜스메디얼 Transmediale', '탄츠 임 어거스트 Tanz Im August', '디엠와이 DMY', '베를린 페스티벌 주간 the Berlin Festival Weeks/Berliner Festwochen', '재즈 레스트 the JazzFest', '문화 축제(Karneval der Kulturen' 등이 모두 해외 예술인들 뿐 아니라 관광객들 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는 국제적인 행사로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쿤스트 매거진(Kunst Magazine)을 만든 제니퍼 벡커(Jennifer Becker)에 따르면, 매달 약 11,000개의 미술 작품들이 베를린의 유명 예술상(dealer)이 기획하거나 예술인들의 갤러리와 협력하여는 전시뿐 아니라 뉴욕이나 취리히의 유명갤러리의 베를린 지점 화랑에서 전시되고 있다.

독일이 통일 된지 거의 20여 년이나 지난 지금, 베를린의 겉모습은 새롭게 변모되었지만, 거기에 담긴 혼은 예전 그대로이다. 끊임없이 변화를 맞이하면서, 베를린은 너무나도 생동감 넘치는 도시가 됐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베를린은 그만큼 다양성을 지니게 됐다. 이 곳에서는 무엇이든 즐길 수 있다. (3류 공연부터 유행을 쫓는 공연물, 비주류 예술공연부터 고 품격 문화가 가미된 공연 등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베를린 체류 외국인 집단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베를린 전체 인구 3백 4십만 명중에서 14.7%이나 된다. 적어도 180여 개의 국적을 가진 470,051명의 외국인들이 있다. 그렇게 사람들과 문화가 뒤섞이고, 임대료와 생활비가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에 베를린에 전세계에서 예술가들과 창의적인 예술인들이 몰려들어 편안하게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안식처라는 명성을 얻은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일어나 이런 현상 덕분에 많은 사람들, 특히 베를린 재건에 힘쓰고 참여하고자 하는 예술인들이 다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마르코 윌름스(Marco Wilms) 가 만든 ‘베를린의 소용 돌이’(Mittendrin)라는 영화의 첫 장면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가장 멋진 시대는 진부한 세력이 물러 가고 새로운 세력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때이다.” 이는 베를린에서 현재 멈출 수 없는 변화가 일고 창의성을 지닌 사람들이 도시로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다는 의미이다. 무정부상태가 도래하면 결국 창조성이 드러난다.


부동산 재개발 업체인 WBM(Wohnungsbaugesellschaft Berlin-Mitte)가 1990년 비어있는 가옥과 아파트를 위탁 받아서 관리했을 때, 2,000 개의 주택과 4,000여 개의 아파트가 시장에 나왔다. 주타 바이츠(Jutta Weitz:  예술인들에게 저렴한 임대 가옥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전설적인 여성)가 특히 이 지역을 전반적으로 재개발 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10년 만에 미테(Mitte) 는 최첨단 유행을 선도하는 지역이 됐고 오늘날 까지도 현대 예술 협회(Kuenst Werk), 타셀레(Tacheles: 유명한 예술가 친모 도모 모임), 소피엔날레(Sophiensale: 공연예술 공간으로서 한때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무용 안무가인 사샤 발츠(Sasha Waltz)의 예술 창조 공간이었다)등 상업적인 성격을 띤 수많은 갤러리들이 남아있다. 다양한 예술인들이 작품활동에 몰두 할 뿐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바, 클럽과 카페 등을 경영하면서 더욱더 많은 도시 개발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발전적인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이는 새로운 아파트를 많이 건설하여, 상업적으로 흑자를 추구하고, 높은 임대료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변화에 따라서, 베를린 문화기금(Haupstadkulturfonds)이라는 기금 프로그램이 1999년에 시작되었다. 일종의 도시국가인 베를린의 문화부문을 담당하는 상원의 부서가 관리하는 이 문화기금은 독일 연방 공화국의 수도 역할인 베를린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띠는 프로젝트와 행사라면 무엇이든지 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재단이 지니고 있는 예산은 연간 1천2십만 유로(약 164억 원)이고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모든 문화, 예술활동을 지원한다. 즉, 건축, 디자인, 전시회, 시각 예술, 영화, 문학, 음악, 음악 극, 공연예술, 무용, 연극 그리고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각종 서로 장르가 융합된 프로젝트 등이 지원대상에 포함된다. 2009년에만 하더라도, 베를린 문화기금은 129 개의 문화 활동을 지원했다.


베를린 지방 정부로부터 직접 받는 지원 이외에, 연방 정부 재단(Bundeskultur Stiftung)이 연방정부 재량권 하에서 3천 5백만 유로를 따로 할당하여 문화, 예술을 증진하는 데에 힘쓴다. 또한 외교부(Institute of Foreign Affairs), 복권기금(Lottery Foundation), 독일문화원(Goethe Institute) 등의 정부와 관련된 기관들과 이보다 광범위하게는 유럽연합의 기금도 서로의 경계를 넘는 공동 프로젝트에 기금을 지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지속적으로, 기금이 있든 없든, 민중 예술가, 학생, 전문 예술인 등 모든 예술인 계층이 매우 적극적으로 제각각 나름대로 프로젝트, 전시회, 공연, 문화교류, 예술관련 회의, 모임 등을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에서 주어지는 기금은 주로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낯익은 (혹은 유명한)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데만 중점적으로 쓰여지므로, 독일 또는 베를린 예술공동체, 외국인 예술가들과 비주류(혹은 무명 예술가) 예술가들은 더욱더 창의적으로 자신들의 비전을 제시했다. 더욱이, 독일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예술인들은 다른 곳에서 일을 하거나 돈을 버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재단과 기구들, 또한 민간 기금 등이 예술가의 야심 찬 비전을 지원해 주고 있다. 이런 경우엔, 베를린이 창의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최초의 근원지가 된다. 베를린은 사람들(예술인들), 예술적 견해를 교류하는 곳이며, 오직 예술만을 위해서 싸울 수도 있는 저항정신이 결코 시들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항상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나고 또 그로 말미암아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드는 일이 너무도 흔하다.


베를린은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예술사를 좌지우지 했던 세계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창의적인 예술인을 끌어 모으는 만남의 장소역할을 했다. 


요즘 우리의 생활은 인터넷이 중심이고, 가상현실도 존재하며, 비행기도 저렴하게 탈수 있고, 예술 보조금 지급도 법제화 되어 있어서 오늘날 경계를 허무는 문화 교류도 더 촉진되고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예술가들의 영향력도 커졌다. 그러나, 훨씬 이전부터   어거스트 스트린버그(August Strindberg), 에드바드 뭉크(Edvard Munch), 스타니슬로 프리지비제우스키(Stanisław Przybyszewski),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로버트 샤우만(Robert Schumann), E T A 호프만 (E. T. A. Hoffman)같은 부류의 예술인들이 이미 ‘검은 새끼돼지’(Zum schwarzen Ferkel: 베를린의 운텐 데어 린덴(Unten der Linden, 베를린의 MITTE 지역 중심부에 있는 유명한 가로수 길)과 빌렘름스트라세(Wilhelmstrasse, 옛 독일의 외무부가 있던 Berlin의 관청가에 있는 선술집)에서 서로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작가, 예술가, 음악인들 중에서 스칸디나비아 와 독일 출신이면 모두 함께 협력으로 공동작업을 하고 개인적 인맥에 바탕을 두고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들어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오늘날 까지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다.  


데이비드 보위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명성을 지닌 음악인 친구 이기 팝(Iggy Pop: 펑크 락, 하드락의 창시자 라고 불리고 ‘펑크의 대부’라고 칭해진다. )과 함께 1970년대 후반 분단의 역사를 지닌 베를린에서 조용하게 음악활동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안식처를 얻었다. 이런 경험으로 말미암아 결국 소위 “ 베를린 3부작” (Berlin Trilogy) 이라는 음반을 녹음 할 수 있었다. 이 음반에는 브라이언 에노(Brian Eno)가 ‘영웅’(Heroes) 이라는 곡으로 참여하여 기금 까지도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곡으로 꼽히고 있다.


21세기에도 베를린에서 거주 하며 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의 수가 워낙 많아서 창조적인 생각을 발전시켜서 전세계적으로 퍼트리는 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예술인들의 체류기간이 (베를린 출신이나 베를린 거주 외국인들)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베를린 지역사회에 결국 많은 예술적 에너지가 느껴 질것이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여, 이동통신 기술의 빨라지고,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교류 할 수 있게 되면서, 신선하게 창의적인 생각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게 될 것 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도 성공적으로 예술가들이 서로 협력하여 예술적, 개인적 감정을 널리 표현하여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다면, 오늘날에도 안될 이유가 없다.


만일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사람들 사이의 생각을 교류 할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이 되고, 이로 인해 예술인들이 각각의 문화적 성향, 예술적 배경, 신념 혹은 행동, 이 모든 것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사고하면서 서로 어울려 살수 있다면, 계속해서 기회는 앞으로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를 언급했다. 이제 관심 있는 누구라도 베를린이 지닌 창의적인 분위기를 진정으로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는 역사책들을 읽는 것보다도, 그저 데이터 자료와 통계를 읽어보는 것보다도 훨씬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 이다.


필자 소개:
바니니 벨라르미노(Vanini Belarmino) 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제작자이자 큐레이터로 현재 일하고 있다. 특히 각기 다른 분야를 접목시켜 교류하고 서로 다른 예술간의 공동작업 활동에 큰 관심이 있다. 그녀는 벨라르미노&파트너스(Belarmino&Partners: 라는 국제적 예술, 문화 프로젝트 관리 및 홍보 컨설팅 업체)를 설립하여 경영책임을 맡고 있다. <http://www.belarminopartners.com>




주석 :

  베를린의 데이비드 보위(Bowie in Berlin, A New Career in a New Town ), 토마스 제롬 시브룩 씀(Thomas Jerome Seabrook), 제뉴인 조본 북 출판사 (A Genuine Jawbone Book), 런던(London), 영국(United Kingdom, 2008,) page 83.

  프레터 보 보크브에네(Prater vor Volkbuehne)는 연극 공연장으로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비어 기든(Beer Garden) 에 있다. 최근 완전히 보수를 끝 마친 후 다시 재 개장했다. 정보를 더 얻으려면  http://www.volksbuehne-berlin.de 를 참조하라.

  닥11(Dock 11) 은 소규모 공연장으로서 평소에는 현대 무용 공연에 이용된다. 카스타니에날리(Kastanienallee.)에 위치해 있다.     http://www.dock11-berlin.de/
 을 참조하라.
  볼하우스 오스트(Ballhaus Ost) 는 일종의 예술 공간으로서 다양한 예술 분야의 작품들과 창조적으로 예술인들끼리 협력하여 만든 예술작품들을  공연한다. 
http://www.ballhausost.de/info.php?id_article=2&sub=40
를 참조하라.
  할레 탄즈 브에네(Halle Tanz Buehne) 는 비주류 공연예술 공간으로서 시에 툴라 리마노이스(the cie Toula Limanois)가 설립했다.  
http://www.halle-tanz-berlin.de 를 참조하라.

  스탐티쉬(Stammtisch ) 는 정기적으로 모이는 가벼운 모임을 뜻하는 독일어이다.

 엘로우 라운지( Yellow Lounge) 는 대중 음악 클럽에 클래식 음악인들을 초청하여 공연을 하게 하는  도이첸 그라모폰/유니버설 클래식(Deutschen Grammophon / Universal Classics)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http://www.yellowlounge.de/idee/ 를 참조하라.

  키에즈(Kiez) 는 베를린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서 ‘이웃동네’ 를 뜻한다.    is a term used for neighbourhood by Berliners.

   http://www.mercedes-benzfashionweek.com/ 를 참조하라

   http://www.berlinale.de/en/HomePage.html를 참조하라

   http://www.lange-nacht-der-museen.de/를 참조하라

   http://www.berlinerfestspiele.de/de/aktuell/festivals/03_theatertreffen/tt_start.php를 참조하라

   http://www.transmediale.de/를 참조하라

   http://www.tanzimaugust.de/를 참조하라

   http://dmy-berlin.com/를 참조하라

   http://www.festwochen.de/를 참조하라

   http://berlinerfestspiele.de/de/aktuell/festivals/07_jazzfest/jazz_start.php를 참조하라

   http://www.karneval-berlin.de/de/를 참조하라

  쿤스트 매거진(Kunst Magazine) 은 예술관련 월간지로서 독일어와 영어로 발간된다. 2006년에 처음으로 발간되었다.  http://www.be.berlin.de/en/stories/art/stories/jennifer-becker를 참조하라.

  변화를 위해서 존재하는 곳, 베를린 (The Place to be for Change, Be Berlin) – 베를린의 마케팅 캠페인 http://www.be.berlin.de/en/the-place-to-be/for-change/, 2009년 12월 27일부터 사이트 오픈

  사실과 통계수치(Facts and Figures, Berlin.De,) http://www.berlin.de/berlin-im-ueberblick/zahlenfakten/index.en.html, 2009년 12월26일 사이트 오픈

   http://www.mittendrin-derfilm.de  를 참조하라
   
http://www.wbm.de/wbm/cms/de/startseite.html를 참조하라

   http://www.lange-nacht-der-museen.de 를 참조하라

   http://www.kw-berlin.de를 참조하라

   http://super.tacheles.de/cms를 참조하라

   http://www.hauptstadtkulturfonds.de를 참조하라

   http://www.kulturstiftung-des-bundes.de/cms/en/stiftung를 참조하라

    에드바드 뭉크의 삶(The Life of Edvard Munch), 저자: 마리트 란데( Marit Lande), 먼치 무시트(Munch Museet) , http://www.munch.museum.no/content.aspx?id=13&mid=&lang=en
2009년 12월 27일 사이트 오픈


기고자프로필

바니니 벨라미노 _ 벨라미르노&파트너 대표

바니니 벨라미노는 독립프로듀서, 큐레이터이자 문화 저널리스트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2008년 설립한 문화 예술 분야 국제 프로젝트 경영 및 홍보 컨설팅 단체인 벨라르미노&파트너(Belarmino&Partners)의 창립자이자 대표이다. 2011년 4월에 벨라미르노&파트너의 싱가포르 사업장을 오픈하여 활동하고 있다. 자세한 정보는http://www.belarminopartner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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