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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축제, 마켓 및 공간, 작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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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미츠 준코 _ 카이분샤 대표, 프로듀서
하나미츠 준코 _ 카이분샤 대표, 프로듀서
작성자 : 기무라 노리코 _ 한일연극교류협회 전문위원 2010.07.23 아시아 > 일본

하나미츠 준코 _ 카이분샤 대표, 프로듀서 

 

인터뷰: 기무라 노리꼬 (프리랜서 공연기획자)

한국 공연예술계를 잘 아는 프로듀서의 한 사람으로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카이분샤의 대표 하나미츠 준코. 한국뿐 아니라 해외를 오가며 작업하는 하나미츠 준코에게 한국과의 만남, 그리고 공연예술을 통한 교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Q. 먼저, 한국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극단 목화와 김매자 선생을 통해 한국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1989년에 극단 목화가 일본 파르코극장의 기획으로 <불의 나라>라는 작품을 공연했을 때 그 공연의 조명 담당이었습니다. 철야로 무대 셋업을 하고 있을 때, 오태석 선생이 과자를 들고 찾아와 아침까지 함께 셋업작업을 했던 일은 지금도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그 공연을 통해 오태석 선생의 인품에 반해 그 후에도 기회가 있으면 극단 목화의 공연을 봐왔고, 2006년에는 카이분샤 기획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쿄, 후지미시, 기타큐슈 등 일본 3개 도시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제가 프로듀서로 일을 시작할 무렵, 오태석 선생과 “언젠가 반드시 극단 목화의 일본 투어를 기획하겠다”하고 약속했었는데, 15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킨 공연이었으니, 굉장히 감격했었죠.

 

김매자 선생과도 비슷한 무렵에 만났는데, 무용수인 야마다 세츠코에 이끌려 창무회 연습실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한국 전통무용의 기본이라는 동작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용수들이 줄지어 서서 그 기본동작을 췄는데, 감동 받았습니다. 연습을 보고 감동한 것은 처음이었죠. 땅과 하늘의 에너지, 우주의 에너지라고 해야 할까, 무용의 본질을 본 것 같았습니다. 역시 2005년에 카이분샤에서 <심청>의 도쿄, 시가, 기타큐슈 3개 도시 투어를 기획했습니다.

 

오태석 선생과의 만남은 한국 사람들과의 신뢰관계나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김매자 선생과의 만남은 더더욱 큰 의미로 한국문화에 흥미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되어 일본의 무용수, 무용평론가와 함께 ‘한국전통무용연구회’를 만들어 한국전통무용을 공부했던 적도 있습니다.

 

Q. 두 분 외에도 한국 공연과 작업한 적이 있나요? 

 

1992년에 아시아 10개국에서 여성 연극인을 초청하여 ‘아시아여성연극회의’를 개최했는데, 사무국장으로서 회의를 기획했습니다. 그때 극단 무천의 작품 <숨은 물>과 김아라 연출을 초청했고 그 후 제가 후지사와시 쇼난다이 시민씨어터의 프로듀서 일을 할 때에도 김아라 연출의 <오이디푸스와의 여행> 공연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카이분샤 기획으로 <이매방과 지성자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이매방 선생이 일본에서 공연한 적도 있습니다.

 

Q. 무대조명가를 지망했었는데, 프로듀서로 전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부에서 활동했고 졸업 후에 도쿄로 올라와 조명스태프로 일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 조명스태프가 적었죠. 본격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1981년부터 영국에서 유학을 시작했습니다. 영국유학을 결정한 것은 “유학을 하려면 고전부터 배우자”는 아주 단순한 이유였습니다.(웃음) 국제무대기술자협회 영국지부(ABTT)의 도움으로 로열셰익스피어극장과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연수를 받았는데, 굉장히 충실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당시 일본의 극장은 관료적이어서, 작업이 남아있어도 밤 10시가 되면 무조건 극장을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작품중심, 혹은 창작중심이라고 할까요, 극장도 스태프도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일본에서 작업할 때보다도 같은 현장에서 함께 작업을 한다는 연대감을 훨씬 크게 느꼈습니다. 그 후 국제연극협회의 협력으로 일 년 간 유럽 극장을 시찰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일본에 귀국해서는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 영국이나 유럽에 보답을 하고 싶어서 에든버러인터내셔널페스티벌 등 유럽에 일본 작품을 내보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오거나이저’라고 불렀는데, 지금 말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이었죠. 그것을 기회로 해외와의 예술교류와 국내에서의 연극, 무용제작을 프리랜서로 시작했습니다. 프로듀서로 전향한 것은 작품을 만드는 처음 단계부터 작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조명은 연습 도중, 혹은 어느 정도 작품이 완성된 시점에서 결합하는데, 프로듀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죠. 그리고, 저에게 프로듀서나 조명이나 공연예술과 관련된 일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입니다.

 

Q. 카이분샤는 언제 설립했나요? 

 

1985년부터 프리랜서로 프로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타 쇼고가 후지사와 쇼난다이 시민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저 역시 그 공공극장의 프로듀서로 일하게 됐습니다. 공공극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법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1992년에 카이분샤를 설립했습니다.

 

카이분샤라는 이름은 할아버지가 경영하던 서점 이름이에요. 저는 홋카이도의 하코다테 출신인데, 하코다테는 지금이야 관광도시지만, 일본이 쇄국정책을 폐지했을 때 개항했던 개항도시로 외국인 이류지가 있어 외국 문물이 넘쳐흐르는 코스모폴리탄적인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에서 할아버지는 ‘문화의 신천지’라는 의미를 가진 홋카이도의 최초의 서점 ‘카이분샤’를 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뜻을 잇고 싶어 ‘카이분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Q. 카이분샤의 작업을 소개해 주세요? 

 

기본적으로는 무용과 연극 제작입니다. 회사를 설립했을 무렵은 연극 50%, 무용 50%의 비율이었는데, 최근에는 90% 이상이 무용입니다. 카이분샤는 하나미츠 준코라는 개인 프로듀서의 회사이므로 제가 매력을 느끼는 예술가가 아니면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오타 쇼고, 덤 타입의 후루하시 데이지가 죽은 후에 제에게 매력적인 연출가를 만나지 못하면서 연극 제작은 줄어들었습니다. 반대로 무용에서는 야마다 세츠코를 비롯해 가사이 아키라, 무로부시 고, 야마자키 고타 등 속속 매력적인 무용수나 컴퍼니를 만나 작업이 많아지고 있죠.

 

Q. 컴퍼니의 매니저로도 활동하시나요? 

 

아뇨. 작품을 중심으로 제작만 하고 있습니다. 홍보만, 마케팅만 하는 작업은 하지 않습니다. 이 소재라면 이 무용수와 작품을 하면 좋겠다, 이 무용수와 이런 테마의 작품을 하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 작품의 발상단계부터 예술가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들어진 작품은 예술가의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제 작품이기도 하죠. 프로듀서에게는 의지할 것이 자신의 눈밖에 없고, 자신의 눈을 믿고 작품을 만들 때 얻는 즐거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에는 일 년에 여섯 작품 정도 작업했는데, 요즘은 두세 작품정도 합니다. 나머지는 제작한 작품을 해외에 내보내거나 해외 작품을 초청하거나 하는 일을 하고 있죠.

 

Q. 현재 일본 무용계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폐쇄적이죠. 실험적이고 컨템퍼러리한 작품도, 젊은 무용수도 최근엔 나오지 않고 있어요. 희망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자극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극이 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한국의 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의 무용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작년에 서울아트마켓(PAMS)과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 참가했는데,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의 역량과 약진이 놀랍고,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이전에는 컨셉적인 부분이 약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해외경험을 쌓은 무용수가 늘어난 탓인지 컨셉적인 면도 충실해졌고, 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기초적인 몸도 가지고 있어 신체성도 뛰어나 세계에서 통할 수 있는 작품이 속속 만들어지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무용은 컨템퍼러리를 지향해도 학교에서 전통무용도 배우기 때문에 컨템퍼러리에서도 한국의 독자성을 느끼게 합니다. 전통이 현대에 충실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도 저희들에게는 부러운 점입니다.

 

Q. 해외 무용수가 일본에 진출하기 위한 창구를 소개해 주세요? 

 

일본에는 무용시장이 전혀 없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극의 경우는 상업연극이라는 장르가 있고 스타시스템을 잘 활용하면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연출가가 주목도도 수준도 높은 연극작품을 만들면서 작긴 하지만 시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용은 어렵겠죠.

 

페스티벌이나 경연대회에 참가할 기회는 있지만, 일본에서는 현재 문화정책과 지원금 시스템이 계속 변하고 있어 앞으로 이러한 축제적 성격의 사업에 대한 지원의 범위가 작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자국 문화예술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밖으로부터의 자극이 중요합니다. 카이분샤가 개인 예술가를 단독으로 초청하기는 무리겠지만, 페스티벌 등의 형태로 세계의 뛰어난 무용을 일본에 소개하는 노력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이건 틀림없이 일본 무용계에 보탬이 될 겁니다.

 

, 역시 작품이 중요합니다. 작품이 좋으면 언젠가 해외 프로듀서의 눈에 띌 시기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대답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Q. 카이분샤의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는 일본 댄스컴퍼니의 해외공연이 계속됩니다. 3월에도 콜럼비아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작업과 동시에 내년을 준비하고 있는데, 2011년은 카이분샤에게 ‘한국의 해’가 될 것 같습니다.

한 가지는 ‘BODY&SPACE'라는 타이틀의 댄스페스티벌을 엽니다. 이 페스티벌에는 독일, 인도네시아, 인도의 댄스컴퍼니도 초청되지만, 실제로는 한국댄스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형민,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재덕 등 젊은 무용수부터 김매자 선생까지 8개 남짓의 작품을 초청할 예정입니다. 일본 무용수와 관객에게 전통무용에서 컨템퍼러리까지 한국 댄스의 다양성과 신체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의 무용이 어떻게 이어져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검증하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는 오타 쇼고의 <땅의 정거장>이라는 무언극을 김아라 연출과 한일 배우로 공동제작합니다. 일본에서는 오타 쇼고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무언극이라는 세계를 함께 구축해온 배우들이 참가하고, 한국에서도 오타 쇼고와 작업한 적이 있는 배우를 캐스팅할 생각입니다.

 

그 외에 한국에서도 꼭 공연되었으면 합니다만, 제가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프랑스 무용수, 보리스 샤마츠(Boris Charmatz) <병든 무희>(La Danseuse malade)의 일본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부토의 창시자인 히지카타 타츠미의 저서 『병든 무희』를 텍스트로 한 작품으로 2008년 프랑스 앙제국립현대무용센터(CNDC)에서 제작, 초연 후 파리 가을축제에 소개되어 일약 화제를 모았고 현대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기파 여배우 잔느 발리바(Jeanne Balibar)도 출연합니다. 일본과 한국 무용계에 큰 자극을 될 작품이라고 생각해 한국공연을 성사시키고자 리서치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의 훌륭한 무용수들을 일본에 소개하는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한국 분들, 한국의 문화를 굉장히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과의 인연이 계속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미츠 준코 

연극, 무용, 현대음악 등의 현대예술부터 가구라 등의 전통예술까지 장르를 뛰어넘는 공연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공연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프리랜서 프로듀서, 아오야마 246CLUB의 디렉터를 거쳐 97년까지 후지사와시 쇼난다이시민씨어터의 기획제작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 카이분샤의 대표이자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수많은 해외교류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카이분샤 홈페이지 http://www.kaibunsha.net/index.html (영어 페이지 없음)

 

기무라 노리코 _ 한일연극교류협회 전문위원
기무라 노리코는 프리랜서로 연극 및 무용의 한일간 교류를 위한 코디네이터이자 번역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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