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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법도 없이 아티스트의 배가본드 행각, 음향인 류한길
집도 법도 없이 아티스트의 배가본드 행각, 음향인 류한길
작성자 : 김남수_안무비평가 2012.10.02 아시아 > 한국

집도 법도 없이 아티스트의 배가본드 행각, 음향인 류한길
[Who&Work] 류한길_뮤지션


연주 중인 류한길, 2010, LIG 아트홀 

우리 속담에 “뱁새가 수리를 낳는다”라는 것이 있다. 생각지도 않은 그늘의 영역에서 새로운 창조의 씨앗이 싹튼다는 것이다. 그러나 체제는 영영 모르는 것이다. 수리의 날갯짓이 문득 하늘을 갈라야만 위계를 잠시 잊는다. 그것도 잠시뿐이고, 체제의 위계는 언제나 꼰대의 허세로써 건재를 과시한다. 백남준 작가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한 젊은 천재의 비범한 시도들이 일으키는 불길을 끌 것이 아니라 직접 천재의 길을 걸어볼 일이다. 비록 우리 국민들이 그런 일을 전혀 모르기는 하지만, 처음엔 트집을 잡다가 나중에는 이러한 것들을 찬양하는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사운드 아트는 위계와 궤변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독특할 정도로 ‘굳은 판’을 거부하고 유동적인 흐름 위에서 꿈틀거리는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의 팔할은 류한길 작가와 홍철기 작가의 공일 것이다. 특히 류한길 작가는 개인적인 삶의 심상치 않은 굴곡과 감각에 대한 사유 능력으로 사운드 아트의 오늘을 이끌었다. 말로는 쉽지만, 실상은 어렵기 짝이 없는 ‘삶과 예술의 일치’라는 수행적인 강도가 항상 그의 공연에는 배어나온다. 왜? 류한길 작가는 소위 진영논리를 탈피해서 비평의 온정주의나 현학주의 그리고 전문가주의와 은근히 치열하게 대결하는 비평적 관점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올리는 글들은 공간 가득 퍼져나가는 파동의 음향물리를 실제 체험하지 않은 자의 탁상공론을 용납하지 않는 결기가 묻어난다. 음악은 비틀린 혀의 논리가 아니라 체험을 사랑하는 체험을 하는 시간의 느낌이라는 것이다.

Q : 성향상 머무르는 것을 배겨내지 못하시죠?

A : 그렇죠. 생래적으로 명명된 것, 범주화된 것을 싫어해요. 왜냐하면 그렇게 되는 순간! 의문부호가 회오리쳐서 되돌아 오거든요. 즉 ‘이것은 무엇인가?’ 명명된 것은 이미 굳어진 것이고, 굳어진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질감이 들지요.

Q : 사운드 아트가 음악과 인접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요?

A : 그런 부분도 있죠. 사람들은 저에게 소위 ‘섬띵 뉴’ (Something new)를 항상 요청해요. 그것은 음악 시장이 근처에 있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는 것이죠. 새로운 것이라 그런 의식 자체가 없어요.

Q : 하지만 류한길 작가의 공연은 항상 텐션이 있고, 나른하고 느슨할 때도 시침 뚝 떼고 마치 존 케이지 (John Cage)의 가면을 쓴 듯한 태연자약이 돋보이던데요? (웃음)

A : 제 사운드의 세계가 항상 좋은 소리를 듣지는 않아요. 미안해요. 사실은 좋은 소리보다는 나쁜 말을 들은 적이 많았죠. 제 생각으로는 사운드 아트는 귀를 틔우는 장치에요. 우리의 귀는 뇌와 연결되어 있어서 신경자극이 민감하죠. 그러나 현대 문명은 엄청난 노이즈를 지체 방출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과잉의 신경자극에 노출되어 있어요. 우리는 이러한 세계에서 사운드 아트를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존 케이지의 침묵도 효과적인 선택일 수도 있지요.

Q : 사람들도 존 케이지의 유명한 4‘ 33’‘ 같은 스코어를 알고는 있잖아요.

A : 하지만 실제로 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직접 실행해보라!’ 이것이 저의 코멘트이자 전세계 사운드 아티스트의 코멘트가 될 거에요.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액티브 리스닝’ (Active listening)이지요. ‘적극적 듣기’라는 과정과 단계가 필요해요. 우리는 듣지 않는 세상, 아니 들을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죠. 왜? 너무나 많은 소리에 이미 항상 에워싸여 있으니까요.

Q : 궁금해서 그런데, 실행해보면 어떻게 되나요? 별 것 있나요?

A : 제가 모예술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해봤는데, ‘액티브 리스닝’이란 사실 쉽지 않은 거지요. 1분만 지나니까, 몸들이 뱀처럼 비비 꼬이기 시작해요. 내공이 없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몸들로 물들어 있는가를 생각해봐야죠. 라디오가 발명된 초창기를 생각해보세요. 그때 어떤 예술가가 온갖 곳에 편재해 있는 라디오 소리에 미쳐서 그 독재적인 사운드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려고 했지요. 그러나 그는 방에서도, 거리에서도, 어떤 공간에서도 라디오가 꺼진 영역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는 결국 ‘거리감 상실’의 감각 속에 있었죠. 훨씬 더 진전된 뉴미디어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바로 그 ‘거리’가 중요한 것이죠.

‘거리’라는 개념은 류한길 작가가 전자 음악과 테크노 음악이 비평권력에 의해 신 붕괴 scene collapse라는 사태를 맞이하고, 그 후 비평권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면서 한 단계 신중해진 상황에서 재발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이 생존하고 굴러갈 수 있는 지반이 있은 다음에 기획과 비평이 있는 것인데, 당장의 장삿속을 위해서 피상성의 이벤트를 펼치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낀 것이다. 그로 인해 이제 미디어의 역사를 청각적 이미지로 고고학 탐사도 되는 것이다.

류한길, <다른 것을 위한 서술법>, 2010, LIG 아트홀 

Q : 사운드 아트라고 하지만, 음악으로도 볼 수 있죠. 그렇다면 ‘흥’이 있고 ‘신’이 나야 하는 법 아닌가요?

A : 물론이죠. 2000년대 중반에 레이브 파티를 아우라소마 (Aurasoma)에서 한 적이 있었어요. 자체 기획으로 해서 대성공을 거두었지요. 그런데 그 한 번으로 우리의 음악적 밑천이 다 보여졌다고 우리는 냉정하게 판단했어요. 시간을 갖고 천천히 끌고 나가야 한다고 봤는데, 기획사가 자본의 이해로 개입해서 빼갖지요. ’뮤지션도, 작곡도, 개념도. 결국 테크노는 이런 것이다’ 라고 고정화되고, 그 영역의 음악은 금새 거덜이 나고 말았죠. 그 음악의 역사성과 맥락이 유지 안되었던 것이 안타깝죠.

Q : 최근 미술계에서 국내외적으로 사운드 아트를 전시한다는 일종의 유행이 불고 있는데, 그 당사자로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요.

A : 제가 미술 기반으로 시작한 작가로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미술에서 사운드 아트를 할 만한 기반이 없어요. 미술관을 보세요. 사운드를 설치할 만한 공명 공간이 되나요. 그리고 사운드 아트를 전시 개념으로 강행하는 것은 무리에요. 저도 약간은 억지장단을 맞춘 점은 있지만, 반성해야죠. 논란이 벌어진 것은 무엇보다 예전에 전자/테크노 기획과 비평권력이 그랬던 것처럼 사운드 아트 역시 시장의 기획상품처럼 접근하려는 태도가 엿보였기 때문이에요. 이상한 것은 이런 것이죠. 시청 앞 플라토 미술관에 전시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Felix Gonzalez-Torres) 같은 작가에 관한 글들을 보면, 한국 전시에서 ‘사탕 싹쓸이 사건’의 퍼포먼스적 맥락을 미학적으로 이야기할 능력이 되는 분들이 왜 사운드 아트에는 그런 심미안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하는 거에요.

Q : 그렇다면 류한길 작가의 사운드 아트 작업에는 모종의 암수와 모종의 복선과 모종의 장치가 있다는 말씀?

A : 저는 CD를 만들 때도 그 전편의 내러티브라든가 작전이 있고, 그것이 읽혀지기를 소망하는 사람이에요. 개념적인 작업으로 진행하고, 여기저기 단서를 좀 주고 힌트와 재미를 느끼길 바라지요. 이것이 제가 미술 기반의 작업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들릴 텐데, 즉 ‘읽어내고 말할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아무도 모르더군요 (웃음).

Q : 의외의 신선한 거리인데요. 앞으로는 저도 현장의 사운드에 취해 몸을 떨면서 무지몽매한 표정만 시종일관 지을 일이 아니라 새 각도에서 생각 좀 해봐야겠어요.

연주 중인 류한길, 2010, LIG 아트홀 

A : 덕수궁 프로젝트인가를 봤는데, 다른 작가가 그러더라고요. 관객과 비평이 읽을 수 있도록 ‘작품의 레퍼런스를 흘린다’ 라는 표현을 택했어요. 그게 저를 조금 자극한 것이기도 하지요.

Q : 하지만 류한길 작가는 한국이 낳은 사운드 아티스트로서 국제적인 교류와 음향적 에스페란토어의 소통에 굉장한 강점이 있잖아요. 외국에서는 상당히 반향이 있고 외국의 사운드 아티스트들과 나누는 부분이 많지요. 특히 외국의 거물급 아티스트들, 가령 즈비그뉴 칼콥스키 (Zbigniew Karkowski) 등과 스스럼없이 협연하거나 합작해서 영문 모르는 관객들에게 문화충격을 살짝 얹어주시기도 하고.(웃음)

A : 사토 유키에 (Sato Yukie)나 즈비그뉴 칼콥스키는 거물급이긴 하지만, 그런 티를 안 내는 인격자들이시죠 (웃음). 그런데 저도 국내외에서 공연을 하면 헷갈려요. 국내적으로는 거의 반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국제적으로는 가끔 놀라운 일을 겪거든요. 2008년 스웨덴의 공연이었는데, 그날 따라 제가 생각해도 그 사운드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시간이었어요. 참 묘한 일이었죠. 연주가 끝나면, 한국에서처럼 욕을 바가지로 덮어쓰겠구나 라는 약간의 비관도 스쳤었죠. 아, 그런데 공연이 끝난 후, 뜻밖의 호의적 반응이 밀려오는 거에요. 알고 보니, 스웨덴의 풍토는 한국에서는 그다지 환영 받지 않는 프리재즈가 대중음악화 되어 있을 정도로 급진적이었던 것이죠.

Q : 어떤 종류의 소리였나요? 그때 연주했던 소리의 타입?

A : 시계 태엽 소리였어요. 사실 정확히 말하면 금속 긁는 소리라고 할 수 있죠. 보통 그러면 한국에서는 ‘도대체 연주는 언제 시작해요?’ 라고 반문하는데, 스웨덴에서는 ’아, 소리 참 좋네요.’ 라고 하는 거에요 (웃음).

Q : 네덜란드 이북의 유럽은 별종, 별세계인가 봐요.

A : 아닌게 아니라 스웨덴은 너무나 조용한 나라였어요. 한국은 조용한 나라이기는커녕 끊이지 않는 소리의 연속인 세계죠.

Q : 소리의 감옥이랄 수도 있겠군요.

A : 그렇죠. 덩어리져 있고, 중첩되어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리를 의식적으로 듣기 거부하는지도 몰라요.

Q : 좌우간 류한길 작가는 우리가 예술사에서 배웠지만 이제 거의 사멸시켜버린 교류 방식, 즉 예술의 바터제 (Barter制)의 네트워크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A : 바터제란 물물교환 말씀이죠?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네요. 재미있어요. 얼마 전에 캐나다 개인전에 갔는데, 페이스북 정보로 누군가 저에 관한 소식을 올렸어요. 그러자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이 댓글을 단 것에요. 일정을 문의하면서 미국에 들렀다 갈 수 있겠느냐 라고. 알고 보니, 거기에도 제가 아는 작가가 있어서 그 기획자랑 연결되어서 그런 제안을 하게 된 것이죠.

Q : 굉장한 입소문이고, 굉장한 점조직이네요. 증여적이고 환대적이고. 꿈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죠?

A : 하지만 모두 가난해요.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가라고 해도 부자는 없어요. 사운드라는 것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이고, 공동체 체험에 가깝죠.

1960년대 플럭서스(Fluxus)는 국제적인 공조, 일종의 계모임 같은 것으로서 명성이라곤 없었다. 지금의 시점에 와서 미술사가들이 플럭서스를 미술사 안에 편입시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이제야 예술의 만신전에 오르는 것이고, 미래의 감각과 예지에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커뮤니티의 영역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세느강 좌안파 (Left Bank)라느니,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이라느니 하는 이름들은 그런 영역의 명사이다. 예술이란 본래 바둑돌 같은 예술가들이 수로 계산되어 사슬구조를 이루는 영역이었다.

연주 중인 류한길, 2010, LIG 아트홀 

Q : 이번에 하는 작품이 A Typist이죠?

A : 발음은 ‘에이 타이피스트’에요. 본래 ‘베케트의 타이피스트’였지만, 얼개를 조금 바꾸면서 제목도 변경했지요. 이 작품은 복합적이에요. 글쓰는 작가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는 상당히 몸을 혹사하는 행위고, 그 행위의 리듬과 동선을 따라서 음향이 발생하죠. 기본적으로 그 발생하는 음향을 사운드로 장치화하는 것이라고 보면 돼요. 나아가 맥락적으로는 좀 큰 부분이 있어요.

Q : 뭔가요?

A : 이런 거죠. 현대의 문학이란 결국 ’안 친절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하죠. 문단에서 메이저의 호의와 은총을 입은 작가들 빼고는 가난하게 악전고투하지 않습니까? 그게 우리 사운드 아트와 일맥상통한다고 할까요.

Q : 류작가는 연대하기의 천재인 것 같아요.

A : 좌우간 저는 이런 제안을 했어요. 컴퓨터 출현 이후 사장된 타자기가 올드미디어로서 흥미롭고, 그 타자기로 악기를 만들 수 있다고.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 글을 생산해보라. 그럼 작가는 다시 응수해오죠. ’타자기나 잘 만드세요.’

Q : 호오... 흥미로운데요. 미디어의 올드앤뉴는 시간적 차이 때문에 그 간극으로 인해 올드미디어가 탄력을 받는 사태, 즉 ‘재매개’ (Remediation)라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지요. 타자기의 음향화에는 미디어에 대한 통찰이 있는데요.

A : 원래 계획은 타자기 부대를 이끌고 투어를 다니는 거였어요.

Q : 퍼포머로서?

A : 네, 퍼포머가 되어가지고. 작가는 사운드를 생산하고, 사운드 아티스트는 글을 쓴다는 비밀 협약이었는데... 문제가 있었죠. 예기치 않은 문제가.

Q : 뭐였죠?

A : 작가들이 사람들 앞에서는 글을 못 쓴다는 놀라운 사실이에요.

Q : 아!

A : <에이 타이피스트>의 이상은 4인의 무빙 씨어터 (Vagabond Moving Theater) 같은 것으로 국제적인 투어도 가능하리라 상상했었죠. 아직 그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일단 작가적 고충을 이해해야 할 것 같아요. 남들의 시선 앞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벌거벗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러니 뮤지션의 욕망대로 글쓰기와 사운드라는 우직한 연결만 생각해선 안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에이 타이피스트> 공연에서는 타자기 소리가 의외로 매력적이었다거나 베케트적 매력이 이런 것이었나 라는 반응도 있었어요. 물론 반대의 반응도 있었음을 시인해야 하지만.

Q : 저는 어떻게 들었냐 하면, 우주의 외딴 행성에 살고 있는 원숭이 족속들이 밤마다 무수히 타자기를 두들겨대는데, 어쩌다 우연히, 순전히 우연하게도 베케트의 희곡을 써내는 기적이 SF적인 사운드로 환청되는 거예요.

A : <에이 타이피스트>는 솔직히 글쓰기라는 노동이 ’몸을 쓰는 맛’과 ’사운드라는 반향’으로 우회해서 보여주는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도한 것이죠. 그런 SF적 환청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사실 글쓰기와 사운드 생산하기는 동종의 어떤 감각이 있다고 믿어져요. 그 우연한 무엇인가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포획하는 방식이라든가 중구난방의 가운데에서 더 긴장을 ’쪼는 맛’ 이라든가 등등.

Q : <에이 타이피스트>는 외국에서의 반응을 의식해서 만들었나요?


A : 제가 <에이 타이피스트> (A Typist)를 하는 이유는 국제적으로 다시 반향을 얻겠다는 무슨 그런 이유가 아니에요. 과거에 제가 사운드 아트를 사토 유키에나 오토모 요시히데 (Otomo Yoshihide) 같은 이들의 음악적 충격을 받아서 시작하면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라는 고민의 소산이죠.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않을 까요. 비-연주자. 한국에서는 음악이라고 하면, 모두 전문화되고 위계화되어 있어요. 아무나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장벽이 높고 강하죠. ’장르적으로 잘 훈련된 부분을 깨지 않으면서 새롭게 포괄할 수 있는 형식이 뭐냐’ 라는 것이죠.

Q : 지금 류작가가 말한 그 부분이 개념적으로 매우 흥미롭네요. 왜냐하면 보통은 장르적 트레이닝의 축적을 ‘깨고’ 간다는 식인데, 지금 ‘깨지 않고’ 감싸 안는다는 것이잖아요. 비-연주자 라는 개념도 주목할 만하고요.

A : 네, 사람들은 때려부쉈을 때 뭐가 가능하다고 보지요. 하지만 저는 ‘원기능’, 가령 시계나 스피커가 가진 자체 기능을 재발명 하려고 하지요. 저는 퓨전, 퓨전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다시 생각해요. ‘퓨전이 되면 망한다.’ 라고. 융복합이 아니다! 다들 정작 중요한 것들은 다 빼먹고 간다는 게 너무 강하다고 봅니다. 체험! 체험되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미디어 스펙터클에 경도되어 열광하는 것은 허무하지요.

Q : 항상 도약이라는 치명적 액션이 있어요. 개념적으로든, 실행적으로든.

A : 저는 판이 이루어지면 재미가 반감되는 체질이에요. ‘점프’를 해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점프’를 하면 삶이 고단해진다는 거지요. 예전에는 인정 못했는데, 지금은 명확해졌어요.

어쩌면 우리도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장르예술이 ‘깊이’를 볼모 삼아 웰메이드와 스펙터클과 하드코어와 진탕놀기 같은 소위 남한예술 - 북쪽이 막혀 있어서 섬보다 못한 섬이라는 자각이 전혀 없는 로컬의 예술 -에서 탈피하여 진전된 국면을 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류한길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미 국제적인 연대와 우정이라는 20세기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의 실행 방식을 사운드 아트에서 10년 넘게 실천해왔다. 우리만 영문도 잘 모른 채, 트집을 잡다가 이제야 겨우 찬양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신세라고나 할까.

사진제공: LIG 아트홀







김남수_안무비평가

김남수는 2002년 무용예술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면서 무용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무용월간지 <몸(Momm)>에 기고했으며, 2003년 재창간과 함께 편집위원을 지냈다. 2006년 퍼포밍아트지 [판](PAN) 창간과 함께 현재까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백남준의 귀환』 『백남준-말에서 크리스토까지』 등을 편집•출간했다. 2011년 국립극단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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