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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은 극장의 주류 공연들과 달라야 한다
페스티벌은 극장의 주류 공연들과 달라야 한다
작성자 : 장지영_국민일보 기자 2012.11.27 아시아 > 일본

페스티벌은 극장의 주류 공연들과 달라야 한다
[W&W]이치무라 사치오_아트네트워크재팬 회장


아트네트워크재팬(ANJ)는 일본에서 예술 분야의 NPO(비영리조직) 법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2004년 설립돼 현재 일본 최대 공연예술축제인 페스티벌도쿄(F/T)의 사무국을 담당하는 것 외에 니시스가모 창조사, 가와사키 아트센터 등 여러 문화시설의 지정관리자로서 운영을 맡고 있다. ‘예술이 갖는 사회적 힘의 회복’과 ‘예술과 사회의 연결’을 이념으로 예술문화의 활성화 및 국제교류의 촉진을 추구하는 ANJ의 리더는 현재 ANJ 회장과 F/T 조직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치무라 사치오(市村作知雄, 63) 도쿄예술대학 음악환경창조과 교수다. 그는 최근엔 신진 예술가를 발굴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전시 및 공연할 수 있는 창작공간인 이자요이 요시다마치 스튜디오를 요코하마에 설립, 장기적으로 서울과 요코하마를 잇는 예술거점으로 성장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일본 문화예술계의 거물이지만 한국에 한 번도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 이치무라 ANJ 회장을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이치무라 사치오_ 서울에서 2012년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열린 ISPA(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Performing Arts, 국제공연예술협회)에 방문하였다.© Sangyun PARK , 서울문화재단 제공

Q : 명성은 익히 들었다. 그동안 일본 문화예술계에서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해왔는데, 한국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다.

A : 내가 F/T의 전신인 도쿄국제예술제의 디렉터를 할 때는 한국에서 공연예술축제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교류도 없었고, 그만큼 서로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다만 최근 한국에서 축제가 활발해지면서 일본과도 많이 교류하고 있어서 점점 서로를 알 기회가 많아졌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나이를 먹은 만큼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Q : 2009년 F/T가 출범하면서 당시 33살의 소마 치아키가 프로그램 디렉터로 발탁돼 큰 화제가 됐다. 예전에 소마 치아키와 인터뷰할 때 이치무라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남성 중심적인 사회여서 30대 여성이 이런 큰 공연예술축제의 지휘봉을 맡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고 들었다. 게다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축제 디렉터를 비롯해 예술계의 중요한 포지션은 예술가의 몫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기획자(프로듀서) 출신 디렉터에 예술계의 반발도 있었을 것 같다.

A : 내가 도쿄 국제공연예술제 디렉터를 할 때 여러 차례 30대의 젊은 축제 디렉터로 교체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일본 공연계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마 치아키의 경우 도쿄 국제예술제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축제 디렉터로서 역량을 키웠다. 물론 F/T 출범 당시 소마 치아키를 프로그램 디렉터로 임명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축제 이사회에 참가한 연출가인 니나가와 유키오 등 예술가들이 지지해 줬다. F/T가 올해로 5회를 치르면서 소마 치아키에 대한 우려와 의심은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기획자는 오랫동안 전문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예술가와 기획자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며, 지금은 전문성을 가진 기획자가 필요한 시대다.

 

이치무라 사치오_아트네트워크재팬 회장 © Sangyun PARK, 서울문화재단 제공


Q : 어떤 계기로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젊은 시절 용접공도 했다고 들었다.

A : 내 자신도 젊었을 때는 이렇게 문화예술계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1960년대 말 일본은 전공투(全共鬪) 운동이 한창이었다. 당시 와세다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취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젊었을 때 용접공을 비롯해 다양한 일을 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작가인 친구가 독일에 갔다가 일본 부토 단체인 산카이주쿠(山海塾)를 보고는 멤버들과 친해졌다. 그 친구의 제안으로 산카이주쿠에서 일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돈도 안되고 해서 망설였지만 결국 1983년부터 10년 이상을 산카이주쿠의 프로듀서로 일했고 지금도 이사회 멤버로 관여하고 있다. 또 산카이주쿠 프로듀서를 계기로 문화예술계에서 여러 일을 하게 됐으며 F/T의 전신인 도쿄 국제예술제에는 1998년부터 참가했다. 1988년 도쿄국제연극제에서 출발한 도쿄무대예술페스티벌은 1997년까지 격년으로 열렸는데, 당시에는 매회 실행위원회를 꾸려서 치르는 식이었다. 그런데, 1998년 축제의 조직 및 방향 등과 관련해 내부 갈등이 폭발한 끝에 내게 도와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솔직히 당시 도쿄무대예술페스티벌은 색깔도 방향성도 없는 한심한 축제였다. 1999년 축제를 치른 뒤 상시적인 조직의 필요성 때문에 2000년 봄 NPO 아트네트워크재팬이 출범했고 축제 역시 매년 개최되게 됐다. 그리고 2002년부터 도쿄국제예술제라는 이름으로 변경됐는데, 2008년부터 도쿄도의 ‘도쿄문화발신프로젝트’와 연계되면서 페스티벌 도쿄(F/T)로 새로 태어났다.

Q : 도쿄 국제예술제의 프로그램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F/T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등 오랫동안 페스티벌에 관여해 왔다. 바람직한 페스티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 아시아 각국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대부분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외국 작품을 보여주는데 급급하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가장 많은 예산을 가진 상하이 국제예술제다. 페스티벌은 기본적으로 극장에서 이뤄지는 주류 공연들과 달라야 한다. 관객을 많이 모으고 즐겁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연예인 캐스팅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페스티벌에선 관객들에게 내용 또는 형식면에서 충격을 줘서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페스티벌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페스티벌이 예술가나 예술단체에게 플랫폼 역할도 해줘야 한다. 이동이 자유롭고 언어가 비슷한 유럽과 달리 아시아는 이동도 힘들고 언어도 완전히 달라서 페스티벌이 그런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다. F/T의 경우 3년 전부터 아시아 젊은 예술가를 상대로 공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은 초창기라 어려운 점이 많지만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Q : 아트네트워크재팬(ANJ)은 니시스가모 창조사, 가와사키 아트센터 등 여러 문화시설의 지정관리자로 운영을 맡고 있다. 민간에서 이런 다양한 활동을 펼쳐 일본 문화예술계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온 것이 대단하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면 좀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A : 공공 쪽에서도 일을 해봤지만 나에겐 맞지 않는 것 같다. 작더라도 민간에서 자유롭게 하는 게 맘 편하다. 게다가 일본 문화예술계를 되돌아보면 그동안 현대예술 분야의 의미 있는 발전은 민간이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민간에선 돈이 없어 힘들지만 그만큼 치열한데 비해 공공에선 일의 진척이 너무 느리다. 예를 들어 최근 일본 의회에서 통과된 극장법을 보면 대관이나 흥행을 위한 공간에 머무르는 공공극장을 제작 극장으로 만들자는 것이 골자다. 일본은 공공극장이 2,100여개 정도 되는데, 대부분 대관 등의 방식을 통해 공연을 그저 보여주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에 극장법의 취지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100개 가운데 100개 정도를 거점 극장으로 잡는다면 적어도 예산이 1,000억엔(약 1조4천억원) 정도 들텐데, 일본 문화청이나 지자체의 재정이 감당할 수가 없다. 극장법은 한마디로 말해 ‘열심히 하자’고 얘기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히라타 오리자 등이 주창해온 극장법은 사실상 성공할 수가 없다.

니시스가모 창조사

Q : 지난 9월 요코하마에 설립된 이자요이 요시다마치 스튜디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요코하마에는 이미 다양한 예술공간이 있는데, 이 스튜디오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A : 이자요이는 요코하마예술문화진흥재단과 아사히맥주예술문화재단 등의 지원으로 건설됐고, 요시다마치 프로젝트가 운영하고 있다. 이자요이(十六夜)는 음력으로 매월 16일째가 되는 달(月)을 의미하는 일본어로 다음의 보름달을 향하는 첫 밤을 의미한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스튜디오를 설립한 목적은 우선 민간에 의한 예술 공간의 운영과 작품 창작이 가능한가에 대한 실험에 있다. 이를 위해 이자요이는 대관 공연 및 전시를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기획, 제작한 작품만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연극, 무용, 음악 및 복합장르의 공연과 전시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이곳에서 일본 아티스트의 작품은 모두 신작으로 이뤄진다. 적어도 1달간 공연 또는 전시함으로써 언론이나 관객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또 ANJ에서 독립한 규나사카(급경사) 스튜디오와 협력을 통해 아티스트가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공간 및 레지던스를 제공함으로써 해외 아티스트들의 작품 활동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한국 아티스트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아티스트들이 서울에서 공연 또는 전시하는 기분으로 요코하마에서 작품을 제작해 발표하고, 장기적으로는 일본 아티스트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Q : 이자요이의 여러 미션 가운데 요코하마와 서울을 잇는 예술교류의 거점을 지향하는 것이 눈에 띈다. 하필이면 왜 요코하마와 서울을 연결하려고 하는가?

A : 요코하마와 서울을 잇는 예술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현재 아시아에서 이런 협업이 가능한 나라가 일본과 한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사회주의 체제여서 예술가나 예술단체끼리의 자유로운 교류는 아직 무리다. 그런데, 최근 한국, 중국, 일본이 영토문제를 포함해 여러 정치적 갈등에 문화예술 분야의 교류까지 위축되는 것을 볼 때 국가 단위보다 그런 외풍의 우려가 적은 도시들 사이의 교류가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쿄보다 요코하마가 좀 더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예술 환경을 갖췄기 때문에 서울의 파트너로 요코하마를 선택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서울과 요코하마를 하나의 지역으로 간주해 공동으로 운영하는 페스티벌, 즉 국가를 뛰어넘어 도시와 도시가 연결되는 페스티벌을 개최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우선 그 시작으로 12월 김황의 <모두를 위한 피자>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서현석의 퍼포먼스를 ‘페스티벌 봄’과 공동제작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이자요이 스튜디오 전경 이자요이 스튜디오 내부

Q : 김황의 <모두를 위한 피자>는 지난해 ‘페스티벌 봄’에서 소개됐고, 서현석 역시 ‘페스티벌 봄’과 각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다. 이자요이의 파트너가 ‘페스티벌 봄’인가?

A : 이자요이나 ‘페스티벌 봄’ 모두 새로운 예술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협업이 수월하다. 올해는 우선 ‘페스티벌 봄’에서 이미 선보인 작품을 일본에 소개한 뒤, 내년에는 공동 제작하는 등 단계별로 나아갈 예정이다. ‘페스티벌 봄’의 김성희 감독은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추진력에 매번 놀라고 있다.

Q : 끝으로 그동안 문화예술계에서 일을 해오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 돈, 즉 예산을 확보하는 문제가 가장 어렵다. 프로듀서라면 누구나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의 예산이 많이 줄고 있는데,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시모토 도루 등장 이후 오사카를 봐라. 오사카의 문화예술은 거의 죽어가고 있다. 도쿄의 경우 다른 지자체와 달리 부유하기 때문에 그동안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해왔다. 다만 이사하라 신타로 지사가 최근 정계에 복귀하느라 지사를 그만뒀기 때문에 다음 지사가 어떤 문화예술 정책을 펼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F/T도 어떻게 될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 일본 기업들의 상황이 좋지 않다. 그만큼 문화예술 지원도 줄고 있다. 이에 비해 삼성을 비롯해 한국 기업들은 전 세계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자요이의 한일 교류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장지영_국민일보 기자

장지영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동 대학원(미술사 전공)을 졸업했고, 성균관대 공연예술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에서 오랫동안 공연예술과 문화예술정책을 담당했으며, 2009년 9월부터 1년간 한국기자협회 지원으로 도쿄대학대학원 문화자원학과에서 연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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