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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MS Choice] 한국 현대무용계를 웃게 만든 채플린
[PAMS Choice] 한국 현대무용계를 웃게 만든 채플린
작성자 : 정다훈_공연 칼럼니스트 2013.08.19 아시아 > 한국

한국 현대무용계를 웃게 만든 채플린
[PAMS Choice] 안무가 안수영


여섯 살 때부터 도끼 빗과 두루마리 휴지를 몸에 걸친 채 마이클잭슨의 ‘문 워크’ 댄스를 따라하던 힙합 소년이 차이콥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를 만났다. 우아한 백조가 힙합과 현대무용이란 새로운 겉옷을 입자 관객들의 입가엔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웃음과 위트를 머금은 21세기 백조 그 중심엔 안무가 안수영이 있다. 한국현대무용계를 웃게 만든 찰리 채플린 안수영을 만나 그의 백조 이야기를 들었다.

백조들아 날아보자

Q : 2011년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에서 첫 선을 보인 <백조의 호수>가 ‘코리아 무브스’에 참가해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고 들었다.

A : 운이 좋은 남자다. 시댄스에서 첫 공연을 올린 뒤, 2012년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 이후 ‘코리아 무브스’를 통해 덴마크, 스웨덴,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의 13회 공연 모두 전석매진을 기록했다. 무용계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 지난 5월엔 강동아트센터 스프링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았고, 올 8월엔 춘천아트페스티벌에도 참여하게 됐다. 약 20회 정도 공연을 했는데 장기공연 하기 쉽지 않은 무용 작품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 공연 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Q : <백조의 호수>란 작품이 이렇게 사랑을 받고, 팸스초이스 선정작이 됐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A : 무용수들에겐 ‘무대’란 말보다 ‘호수’란 말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백조처럼 호수 위를 이동하는 무용수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 더 의미가 남다른 점은 <백조의 호수> 연습 시작 할 때, 무용수라고 말하지 않고 ‘백조들아 날아보자’라고 말 했던 점, 무용수들이 힘들어 할 때면 힘내라는 의미로 ‘해외에 팔릴 것 같아’란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현실로 다가온 점이다. 그래서 <백조의 호수>는 효자라고 말하고 다닌다.

Q : <백조의 호수>란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A : 힙합 댄서로 활동을 하다 대학 무용과에 들어가게 됐는데, 부전공으로 발레 수업을 듣게 됐다. 발레의 ‘바리에이션, 폴드브라’ 등을 배우는데 다른 학생들과 달리 내 몸에 익숙한 ‘팝핀’ 같은 힙합 동작이 나왔다. 재미있었던 그 때의 기억을 안무노트에 적어뒀다. 그러던 중 시댄스의 ‘힙합의 진화’란 섹션에서 처음으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

안수영 안무 <백조의 호수>

21세기 백조는 과연 아름다운가

Q : 작품 안에 환경에 대한 메시지도 들어있지 않나?

A : 당시 서해안 기름 유출 사건이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기름에 범벅이 된 새들이 시커매져서 썰물처럼 들어오는 걸 봤는데 좀비가 따로 없었다. 그 어떤 무서운 영화보다 쇼킹했던 사건이다. 그렇게 해서 리서치에 들어갔고 작품 안으로 오염된 새, 나아가 백조 이미지를 가지고 들어왔다. 비유적으로 우리 모두 오염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백조 같았다. 다들 본인은 별 장애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스마트 폰 없으면 불안한 현대인들 모두 오염 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봤다.

Q : 그 다음엔 이미지가 어떻게 확장 됐나?

A : 백조들에겐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날다 지쳐 죽거나 기형아 상태로 죽거나. 그들의 집인 서해안은 이미 오염돼서 돌아가더라도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21세기 백조들은 과연 아름다운가?’란 화두를 끄집어냈다. 무용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낼 죽으면 뭐 할래’란 질문에 이르게 됐고, 여러 답이 나왔다. 여자랑 자고 싶다는 부류,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는 부류,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부류 등이었다. 거기서 무용수들 한명 한명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변태적인 백조, 오염이 너무 심해지자 히스테리를 부리는 백조, ‘틱’ 같은 끊김이 있는 장애를 지닌 백조 등 여러 캐릭터가 나왔다.

Q :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시리즈 안무 및 <죽음의 조건>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작품을 보면 ‘죽음’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어둡다는 의미는 아니다.

A : ‘삶과 죽음’이란 것이 항상 공존하는 것 아닌가. 아름다운 삶이란 아름다운 죽음과도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죽음이란 얼마나 슬픈가. 어찌 보면 반어법적인 의미도 들어있다. ‘죽음’을 항상 생각한다기 보다는 ‘이렇게 안 하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텐데’란 바람이 담겨있다. <백조의 호수>란 작품도 ‘오염이 없었다면 백조들이 즐겁게 살 수 있었을 텐데’란 생각으로 만들었다.

Q : 초연 이후 작품이 계속 보완돼 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 안에 환경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을 관객들이 잘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A : 스토리텔링을 완벽하게 해서 개연성 있는 무용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무용을 보여주고 싶다. 휴지에 물방울이 ‘쓰윽’ 스며들 듯 말이다. 작품을 이해하고 좋게 바라보는 것, 그래서 다시 이해하는 것 보단 그냥 빠져드는 게 현대 무용의 묘미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클럽이 나쁘다 좋다’란 판단 전에 일단 경험해 보는 걸 권한다. 그 다음에 좋은지 나쁜지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안수영 안무 <백조의 호수>

최대 무기는 디테일

Q : 팸스 초이스는 일반 관객들과 달리 마켓 전문가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다. 각오는 되었는가?

A : 완벽주의자까진 아니지만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적을 알아야 나를 알 수 있다’는 생각에 마켓 부스도 구경한 적 있다.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 만족 할 수 있도록 작업을 손보는 중이다. 이번 <백조의 호수>는 ‘타이밍 싸움’이다. 이미 한 차례 봤던 사람도 어디가 바뀐 건지 모를 정도로 1초 1초의 디테일을 더 살리려고 노력 중이다. 일반 관객은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미 그들은 공연 전문가들 아닌가. 딱 보면 딱 알 수 있기에 더 타이트하게 장면 장면을 구성 중이다. 외국인들이 ‘한지(韓紙)’의 디테일에 놀라고 커피믹스의 기발함에 놀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저걸 어떻게 만들었지’하는 디테일과 기발함을 보여주고 싶다. 최대 무기는 디테일이다.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 무용

Q : 웃음이 ‘스르르’ 번지는 무용을 자주 보여줘서 안수영이란 이름을 들으면 ‘찰리 채플린’이 떠오른다.

A : 한팩 라이징 스타 <타임 트래블 칠공팔공>이란 작품을 보고 그런 평을 들어서 부끄럽지만 너무 좋았다. 그 전엔 별명이 없었다. 조심스럽지만 날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가 생긴 것이다. ‘웃음’이란 게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나의 조커, 히든카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Q : 심신이 피곤 할 땐 업무적으로 공연을 봐야 하는 게 꺼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안수영씨 작품은 스트레스가 풀려서 즐거운 마음으로 보러가게 된다.

A : 즐겁게 봐줘서 고맙다. 일부러 관객을 웃게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보단 웃음 포인트를 넣어 관객과 소통을 하고 싶다. 내가 생각해도 웃긴 데 관객 역시 그 장면에서 웃어주면 너무 즐겁다. 무용수들 역시 그럴 때 스트레스가 풀린다.

다른 한편으론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 거울효과도 있다. 흔히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무대 위에서 보게 되면 웃지 않은가. <백조의 호수>속 인물 들 역시 비정상으로 보이지만 스스로 정상이라 생각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언뜻 언뜻 비춰진다. 여기서 관객들이 많이 웃는 것 같다.

Q : ‘무용’과 ‘대중’이 가운데서 만나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관객의 이야기에도 항상 귀를 기울이는 무용수 같다.

A :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가 활발해 평이 바로 바로 올라온다. 블로그에 오른 평도 자주 찾아보는데 관객들은 정말 냉철한 것 같다. 디테일한 평들에 공감 갈 때가 많다. 관객들의 이런 이야기들이 무용수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작품이 산으로 가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관객들의 이런 애정이 좋은 작품은 더 좋게 살려낼 수 있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본다.

Q : <백조의 호수> 그리고 안수영이란 무용수가 좋은 평을 받게 된 이유가 뭘까?

A :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음. ‘무용이란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열아홉 살에 무용을 시작하며 벽에 붙여놨던 말이 ‘시간은 돌릴 수 없지만 잡을 수 있다’는 문구였다. 힙합 춤을 추다 뒤늦게 무용에 발을 붙이게 됐지만 누가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연습을 했다. 다른 동료가 ‘바뜨망 탄듀’나 ‘바’ 동작을 10번을 하고 몸을 푼다면 난 그 10배를 했다. 그게 스승님에게 해 줄 수 있는 나의 도리라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선생님을 거의 괴롭히다시피 매일 매일 따라다니며 배웠다. 아직은 살짝 호수위에 얼굴만 내밀고 있는 상태다. 이번 팸스 초이스를 발판 삼아 더 나아가고 싶다.

안수영 안무 <백조의 호수>

정다훈_공연 칼럼니스트

영문학과 교육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엔터미디어와 OTR의 공연기자 및 공연칼럼니스트, 공연예술잡지의 필자로 활동 중 이다. 세상 어딘가에 분명 ’오페라시 연극군 뮤지컬읍 무용면 발레리’가 있을 거란 상상을 하며, 10년을 하루 같이 공연장으로 달려가는 걸 멈추지 않고 있다. 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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