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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MS Choice] 단정하게 마주 선 모던함을 공유하다
[PAMS Choice] 단정하게 마주 선 모던함을 공유하다
작성자 : 최재훈_서울문화재단 홍은예술창작센터 매니저 2014.09.16 아시아 > 한국

단정하게 마주 선 모던함을 공유하다
[PAMS Choice]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 안무가 전혁진 


모던함이 클래식의 대척점에 서있다고 오독하지 않는 젊은 안무가와의 대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보기보다 더 단단해서 유쾌했다. 고전적 스타일이 더 넓고 깊어질수록 모던함도 더 자유롭게 빛나는 법이다. 안무가 전혁진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Q(최재훈) : 2014 팸스초이스 선정작 <아가페(Agape)> 이야기부터 해보자. 팸스초이스는 국내 관객이 아니라 마켓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다.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인가?

A(전혁진) : <아가페>는 성서에 나온 7대 죄악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이 저지르는 죄악 속에서 본질적인 사랑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최후의 순간에 떠오르는 감정은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 전반부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잊고 사는 형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에는 절대적인 사랑을 그렸다.

Q : 무대장치가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 속 상징들이 다양한 의미를 가져 ‘쇼케이스’로 줄여내기 힘들었을 것 같다.

A : 회화적인 요소, 음악 그리고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서 고전적이지만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로 풀어보고 싶었다. 현대무용을 널리 알리겠다거나 대중화시켜야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고 싶었다. 어느 하나라도 빠져선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작품 속 상징과 무대장치들은 거의 다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완전체가 아니면 보여주지 않는 편이 낫다.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Q :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 “닻(dot)” 선정작인 <신세계>에 이어, <아가페>는 종교적 느낌이 있다. 작품 세계가 변하고 있는 건가?

A :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그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과 종교의 구원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비판적인 요소, 종교적인 요소를 굳이 넣었다기보다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 외롭고 힘든 상황 속, 그 혼돈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있을 것이다.

<아가페>

<아가페> 공연모습

Q : 팸스초이스를 통해 해외 공연의 기회가 생길 것 같다. 그간의 해외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A : 한선천과 함께 한 <동행>이라는 작품으로 작년 소피아댄스위크(SOFIA DANCE WEEK)에 다녀왔다. 앞으로는 일본, 프랑스쪽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2010년 요코하마댄스컬렉션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12년 스페인 마스탄자컨템포러리 댄스페스티벌(The International Contemporary Dance Festival)에서 베스트안무가상을 수상했다. 핀란드 포리댄스컴퍼니(PDC, Pori Dance Company)를 위해 <비너스 블라인드 앵글(Venus: A Blind Angle)>이라는 작품을 안무했다. 2014년 하반기에는 팸스링크(PAMS Link)를 통해 협력하게 된 핀란드 수잔나 컴퍼니(Susanna Leinonen Company)와 서강대 메리홀에서 콜라보 공연도 계획되어 있다.

Q : 신작과 함께 기존 작품을 레퍼토리 공연으로 재창작하는 것에도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아가페>의 재공연을 기대해 봐도 좋을까?

A : 스스로에게 가장 진실했던 순간이었다는 점에서 <아가페>는 처녀작 같은 느낌이 있다. 시간을 두고 꼭 재공연을 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무용이 구심점인 예술가, 전혁진

Q : 고등학교 시절 육상선수였고, 모델 활동, 뮤지컬 배우는 물론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영화 공부도 했다. 솔직히 늘 궁금했다. 이것은 무용에서 달아나기 위한 것인가, 무용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인가?

A : 그 모든 것이 무용을 하기 위한 도전이다. 다른 작업을 하면서 맺었던 인연이 무용공연의 협력자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 영화 공부 역시 꼭 해보고 싶은 댄스 필름을 만들기 위한 밑그림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다양한 분야를 알고 있을 때 무용에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되돌아보면 모든 경험이 무용으로 돌아오기 위한 작업들이었던 것 같다.

Q : 다양한 기획공연에 초청받고, 기업후원(jti 코리아)은 물론 유망예술가 선정, 평론가상 수상 등 전문가들에게 안무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대중적인 인기까지 더 해진다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대중과의 만남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A : 무용의 대중화, 순수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어렵지만 중요한 질문이다. 안무가 류장현과 요코하마에서 밤새 순수예술을 대중화시킬 것인가, 대중을 순수예술로 데려올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지금은 중간 접점에서 만난 것 같다.

서울문화재단 “닻dot” 선정작 <신세계> 공연

서울문화재단 “닻dot” 선정작 <신세계> 공연

Q : 댄싱9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매체를 통한 대중의 관심, 안무가에게 득인가? 독인가?

A : 무용에 대한 대중과의 거리를 좁혀준 것은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현대무용을 오해하게 될까 조금은 걱정이다. 윌리엄 포사이스(William Forsythe)의 공연을 보기 위해 파리오페라 하우스에 간 적이 있다. 3층 사이드 객석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무대를 보고 있었는데, VIP 자리에 있던 관객이 욕을 하면서 나가더라. 윌리엄 포사이스 공연을 10년이나 지켜본 오랜 팬이었는데, 처음으로 그의 작품에 실망했다는 표현을 과하게 한 것이다. 그런 팬이 있다는 것이 멋지지 않은가? 그렇게 시간을 길게 두고 관객들에게 무용의 매력을 알게 해주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변질되지 않고, 소수의 관객들을 조금씩 늘여나가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중과의 만남이다. 틀린 방향은 없다. 각자의 갈 길, 지향점이 다른 것 뿐이다.

Q : 장르 융합적인 작품들을 보여주지만, 안무 스타일이나 극의 기승전결은 굉장히 단정하고 클래식한 느낌이다. 전혁진 안무가에게 현대무용이라는 건 무엇인가?

A : 현대무용을 하는 안무가라면 모두 고민할 것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파괴, 탈피하는 작업을 통해 현대적인 느낌과 실험을 하는 안무가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억지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모든 것들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디지털 탈을 쓴 아날로그인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성격, 안무 방식들이 고전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오래된 것들, 옛 것들에 대한 갈망이 늘 내 안에 있다.

Q : 또 궁금한 건, 왜 시작하게 되었냐는 것이다. 무용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A : 아주 어렸을 때 꿈은 바둑기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운동을 하다가 육상선수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였다. 새벽 운동을 하다가 내가 왜 뛰고 있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여자 친구를 무용학원에 데려다주는데 무용학원 원장님이 나의 신체조건을 보고 무용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육상으로 대학 진학이 결정되어 있었는데도, 호기심이 생겼다. 발레를 시작해 보니 육상과 비슷했다. 높이 뛰고, 많이 돌고,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었다. 당시 왜 무용에는 올림픽이 없냐는 질문을 할 만큼 무용에 대해 몰랐지만, 결국 현대무용의 기묘함에 이끌려서 현대무용을 하게 되었다.

Q : 안무가로서의 첫 작품은?

A : 대학에서는 빨리 욕심내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첫 안무작은 2008년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에 나간 작품이다. 이때는 뭐든지 다 해보고 싶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욕심 또한 너무 과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색깔 찾기의 과정이었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내 작품을 선보일 무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Q :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를 만들게 된 계기는?

A :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타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각자 자기 역할과 자기 예술만 얘기하고 막상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더라. 처음부터 작품을 같이 만들어나가고 그 과정이 모여 작품이 탄탄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Q :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은 현재진행형의 안무가라고 생각한다. 2014년 하반기 작품계획은?

A : 사실 2014년 상반기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다. 비판도 많이 들었고, 그것이 고스란히 다시 고민으로 남았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여전히 안무다>를 통해 개념적인 리서치 작업을 했다. 이제는 여유를 두고 2-3년 전부터 생각해 온 작업을 오랜 시간 숙성시킬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까지 작품 구상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싶다.

<아가페>이미지컷

<아가페>이미지컷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아가페>

인간을 향한 신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사랑인 <아가페>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다양한 오브제들과 무대미술로 구현된 미장센, 몸의 기호학적인 상징성을 통해 인간의 죄악된 본성과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갈망을 퍼포먼스의 언어로 사유해 나가고 있다. 중세 회화에서 발견되는 아이콘, 상징체계, 신체와 이미지의 배치 방식 등을 차용하면서 회화의 평면 구도를 극장이라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가져와 고정된 평면 프레임에 존재하던 회화적 이미지를 현장성과 수행성이 담긴 시간 예술로 치환해 새로운 미학을 도출해낸다. 중세 회화 그 이면에 담긴 인류의 욕망과 타락, 구원 등의 묵직한 이슈들을 한 개인의 담담한 성찰을 통해 추적함으로써 현 시대의 갈구하는 바를 대변해낸다. 다소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의식에서 출발한 작업은 어떠한 방식으로 현시적이고 세속적인 삶과의 연계성을 찾고 동시대적인 사유를 도출하며 재해석될지 기대하게 만든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GROUND ZERO Project)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는​ 안무가 전혁진을 주축으로 한 복합 예술그룹이다. 컨템포러리 댄스를 중심으로 인터랙티브 아트, 현악 5중주, 설치미술, 필름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한국, 일본, 유럽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만들어 왔다. 현대무용, 인터랙티브 아트, 설치미술, 필름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공동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시대를 반영하는 소재를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여 독창적이고 위트 있는 드라마 그리고 다이내믹한 테크닉으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작은 <비너스 : 블라인드 앵글(VENUS : a Blind Angle)>, <신세계>,  <불협화음>, <동행>, <우리는 다르게 진화했다> 외 다수의 작품이 있다.

최재훈_서울문화재단 홍은예술창작센터 매니저

최재훈은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웹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 근무하며 무용 및 관련 예술가 지원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포털 예스24의 웹진 채널예스에 <최재훈의 시네마트 Cinemart>라는 제목으로 영화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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