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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전문가들을 통해  해외 공연예술계의 주요 동향 및 이슈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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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이상한 것에 대한 시도, 의미 없는 놀이에서 출발한다
예술은 이상한 것에 대한 시도, 의미 없는 놀이에서 출발한다
작성자 : 최정휘_공연기획자 2014.06.12 오세아니아 > 호주

예술은 이상한 것에 대한 시도, 의미 없는 놀이에서 출발한다
[동향] 2014 유럽공연예술회의 멜버른 위성회의


유럽공연예술회의(IETM)는 ‘비공식유럽극장회의(Informal European Theatre Meeting)’의 약자로서 1981년 ‘독립(Independent)’이라는 단어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민간 페스티벌, 극장, 제작자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유럽의 네트워크이다. 2003년부터는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으며 2005년에는 기존의 명칭 IETM에 ‘현대공연예술국제네트워크(international network for contemporary performing arts)’를 붙여 유럽의 지역적 한계를 벗어난 국제적인 네트워크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오고 있다. IETM은 매년 두 번의 정기회의와 세계 여러 곳에서 특정 주제나 지역을 포커스로 위성회의(Satellite Meeting)를 개최한다. 위성회의 기간 동안에는 다양한 주제로 패널토의 형식의 세션들이 이어진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중국(베이징, 상하이), 서울, 도쿄, 인도네시아 등에서 위성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2014 IETM 멜버른위성회의 포스터

멜버른 위성회의 첫째 날

2014 IETM 멜버른 위성회의 포스터 멜버른  위성회의 첫째 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예술

호주 멜버른 위성회의(IETM Asian Satellite Meeting, Melbourne Satellite)에는 34개국에서 240여 명이 참석했다. 호주예술위원회(Australia Council for the Arts)가 수년간 공을 많이 들여 유치한 행사로, 멜버른아트센터(Arts Centre Melbourne)의 아시아 교류 프로젝트인 <랩(LAB)>프로그램과 연결하여 참가의 동기와 관심을 높이고 호주의 공연예술을 알리는 계기로도 잘 활용했다. 멜버른아트센터의 〈랩〉은 호주와 아시아 예술가들 그리고 ‘연결자(connector)’라고 부르는 프로듀서들이 매칭방식으로 팀을 이루고 각 팀들이 협업 프로젝트를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회의는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필리핀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가장 눈에 띄었던 단체는 예술감독 마리아 트리 수리스트야니(Maria Tri Sulistyani)가 이끄는 인도네시아 인형극 단체인 페이퍼문 인형극단(Papermoon Puppet Theatre)이었다. 이 극단은 정부 지원이나 기타 공공지원을 거의 받을 수 없고, 공연을 매진시켜도 티켓 수입으로 제작비의 단 1% 정도만 커버할 수 있는 열악한 현실 속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모금하고, 대학의 수학 수업을 위한 짧은 퍼포먼스를 해서 수입을 얻기도 하며, 단원들과 함께 인형을 제작, 판매하면서 지난 8년간 작업을 지속해 왔다고 한다.

“예술가란 잡지 판매원이나 의사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직업이라 생각해요. 예술가이기 때문에 이것은 할 수 있고, 저것은 하면 안 된다고 구분하지 않아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기회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페이퍼문 인형극단 공연모습

후쿠다케 하우스의 레지던시프로그램

페이퍼문 인형극단 공연모습 후쿠다케 하우스의 레지던시프로그램

환경과 기후 변화를 생각하는 국제교류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둘째 날 오전, “그린국제교류 - 국제이동 대 가상협력(Green international exchange- International mobility versus virtual cooperation?)” 세션이었다. 국제 교류와 협업이 갈수록 활발해지는 추세 속에서 기후 변화 및 환경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여러 사례가 발표되었다. 그중에서 멜버른 시가 운영하는 아트하우스(Arts House)에서 진행하는 〈고잉 노웨어(Going Nowhere)〉1)라는 프로젝트가 주목을 끌었다. 영국의 캠브리지 정크션(Cambridge Junction)이 공동제작한 이 프로젝트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즉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연료 소모와 공해물질 배출을 줄이고 지금 각자의 자리에 머문 상태에서 바다 건너편의 예술가들과 협업한다면 어떤 예술적 결과물이 나올지 실험해 보자는 취지이다. 이 콘셉트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다. 무조건 움직이지 말라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국가의 예술가들에게는 매우 위험하고 폭력적인 캠페인이라는 강한 반발도 있었고, 기후 문제는 모든 부분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엽적인 행동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더 나아가서 해외시장 개척과 진출에 맞추어져 있는 정책의 무게중심을 국내 시장과 관객 개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예술가의 활동 전반에서 환경, 기후 문제를 고민하고 접목시킬 수 있도록 촉진하는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었다. 국제 교류와 협업을 위해서 보다 자주, 오랜 시간, 직접적으로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작업해보자’는 컨셉은 다소 모순적인 아이디어로 보이기는 했으나 이 프로젝트의 진짜 목표가 움직이지 말자는 캠페인이 아니라는 점은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개념을 뒤집어보고 거기서 어떤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지 탐험한다는 취지는 매력적이었다. 한계와 모순 속에서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마술 같은 힘인 것이다.


1) 2012년에 호주와 유럽에서 각각 4명의 예술가와 프로듀서가 모여 아이디어랩을 개최한 것으로 시작된 〈고잉 노웨어(Going Nowhere)〉는 올해 11월, 호주 멜버른과 영국 캠브리지에서 지난 3년간의 작업 결과물을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사람들의 기상 보고(The People’s Weather Report)〉는 〈고잉 노웨어〉의 하이라이트 작품으로서 전세계 누구든 목소리를 통해 참여에 도전해 볼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하단 참고.

멜버른 위성회의 세션2

영국 캠브리지 정션(Cambridge Junction)

멜버른 위성회의 세션2 영국 캠브리지 정션(Cambridge Junction)

협업, 모두가 만드는 이야기

첫째 날 ‘온 레지던시(On Residencies)’와 마지막 날에 있었던 ‘국제업무지원(On support for international practice)’세션도 흥미로웠다. 먼저 ‘레지던시’에서 소개된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는 일본의 아시아 아트 플랫폼 후쿠다케하우스(Fukutake House Asia Art Platform)가 기억에 남는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지추미술관(Chichu Art Museum)으로 유명한 나오시마 섬이 속해 있는 세토내해(瀬戸内海,せとないかい)의 여러 섬들에서 세토우치 국제미술제(Setouchi Triennale)가 열린다. 인구 감소와 노령화, 경제 쇠락의 문제점을 겪고 있는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출발한 축제이다. 이와 연계된 시각예술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아시아아트 플랫폼 후쿠다케하우스는 요리사의 레지던시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요리사는 워크숍을 통해 세토내해 지역의 식자재와 요리법을 접목한 음식을 선보였다. 그리고 레지던시 요리사가 새롭게 탄생시킨 요리는 현지 레스토랑의 메뉴로 자리 잡는다. 일본에서는 이 밖에도 쓰나미 이후 예술가와 함께 거주하며 도시 재건을 위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보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장소특정형 공연프로젝트 등 지역 개발을 위한 예술 프로젝트가 활발히 고안되고 있었다.


마지막 날 ‘국제업무지원’ 세션에서는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 호주예술위원회(Australia Council for the Arts)등 지원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스스로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해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술가들에게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하라고 독려하는 일은 누구보다도 먼저 지원 기관이 나서야 할 역할이며, 지원 기관은 이 과정을 함께 하는 파트너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협업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우정, 이해, 공감, 연대와 같은 단어들이 지원 기관 내에서 가치를 획득하기란 쉽지 않죠. 여기서 중요한 것이 ‘스토리’입니다. 작업 과정 속에서 생겨난 갖가지 이야기들이 그런 단어들을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원 기관은 그 이야기들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멜버른 위성회의 세션2

영국 캠브리지 정션(Cambridge Junction)

호주예술위원회 멜버른 위성회의 세션3

IETM은 참가자들에게 회의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비즈니스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한다. 묵직한 소개 자료를 뿌리며 바삐 움직이기보다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함께 모여 즐겁게 이야기하고 여러 의견들을 나누라고 부탁한다. 분명한 목적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장착하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단도직입적인 만남에 익숙해져 있던 터에 이런 여유는 오히려 불안하게 다가왔다. 공지된 주제와 다른 방향으로 패널토의가 흘러가면 금세 불편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정해진 주제나 목적에서 시작은 하지만 거기 얽매이지 않고,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확장하고 다른 길로 이야기가 흐르면 주제를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참가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공통의 이슈를 발견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함께해 나갈 수 있는 일들과 문제 해결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멜버른에서 공연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이상한 것을 시도해 보고 의미 없이 즐겁게 노는 것에서 예술이 출발한다는 것, 거기에 박수 쳐주고 함께 놀면서 예술이 성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리스크를 허락하고 겪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예술가와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점도 잊지 않고자 한다.




◎사진 출처 _ IETM 홈페이지


〈사람들의 기상 보고(The People’s Weather Report)〉

이 프로젝트는 연출가, 작가, 환경 활동가, 설치 미술가가 함께 모여 진행하고 있는 오디오 설치 작품이자 라디오를 통한 방송 프로젝트로, 전 세계 각지로부터의 날씨에 대한 묘사를 모으는 것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직업을 가졌든,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자신의 활동 공간과 거주 지역의 날씨 이야기를 5분 정도의 길이로 녹음하여 보내면 되는데, 언어는 꼭 영어가 아니어도 된다. 환경와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만 있다면 사회, 과학, 경제, 예술, 문학 등 어떤 분야에서의 접근도 가능하다. 프로젝트 팀은 전 세계에서 모인 날씨 이야기 중에 약 300개 정도를 선정하여 설치 미술에 사운드를 심게 된다. 동시에 라디오를 통해 선정된 날씨 이야기가 방송될 예정이다. 참가 신청 안내는 7월 중 아트하우스(Arts House) 웹사이트를 통해 공지될 예정이다.

◈ 아트하우스 웹사이트 : http://www.melbourne.vic.gov.au/Arts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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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휘_공연기획자
최정휘는 서강대학교에서 연극회 활동을 하며 공연기획과 예술경영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00년 LG아트센터에 입사하여 2012년까지 언론홍보와 마케팅, 해외 공연 프로그래밍, 국내 공연 제작 등 기획과 제작 업무에 두루 경험을 쌓았다. 창작공간 운영, 커뮤니티 프로젝트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열정과 소신을 지닌 20대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기획자로서 70대를 맞이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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