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ATA[People|theApro.kr]]> http://kor.theapro.kr ko Sun, 18 Aug 2019 23:00:00 +0900 theApro <![CDATA[굿의 ‘전통’과 디지털 기술의 ‘현재’, 그사이에 서다 – 안무가·연출가 송해인]]> 굿의 ‘전통’과 디지털 기술의 ‘현재’, 그사이에 서다 – 안무가·연출가 송해인
 


▲ 필자와 송해인 안무가·연출가 © 이강혁

▲ 필자와 송해인 안무가·연출가 © 이강혁

<미여지뱅뒤>는 2016 서울아트마켓의 ‘팸스초이스’ 다원 분야에 선정되었습니다. 제목에 담긴 뜻이 궁금한데요.

미여지뱅뒤란 이승과 저승 사이의 시공간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에요.

이러한 제목을 붙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주큰굿(제주무형문화재 제13호)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4년 전부터 이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인간은 고독하고 외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굿과 같은 치유의 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여지뱅뒤>는 문화창조융합센터 융·복합콘텐츠 공모전(2015)에서 당선되기도 했는데요, 굿에 디지털 영상 기술을 접목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미여지뱅뒤처럼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빛’이 만드는 인터넷의 가상세계와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미여지뱅뒤>의 연출과 안무를 맡은 송해인은 국립국악중·고등학교에서 한국무용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에서 안무를 공부했다. 현재는 영국 브루넬대학(Brunel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재학하며 컨템퍼러리 및 디지털 공연예술에 대해 연구 중이다.

“한국무용을 공부하면서 이 춤에 담긴 서양무용의 영향을 적지 않게 느꼈어요. 그래서 한국무용의 원형과 장단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채상소고춤으로 유명한 김운태 선생님을 따라 제주도로 내려갔어요. 풍물굿과 전통 소리를 배웠고, 마로의 멤버들을 만나며 제주큰굿을 알게 됐습니다. 3개월 정도 생각했는데, 3년간의 배움으로 이어진 것이죠.”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눈뜸과 (사)전통공연예술개발원 마로(이하 마로) 멤버들과의 인연을 계기로 송해인은 <미여지뱅뒤>를 만들었다.

디지털 영상 기술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무용을 응용한 작품은 ‘나의 춤’이지만 ‘한 나라의 민속무용’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반면 디지털을 바탕으로 한 미디어 문화는 민속문화보다 배경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글로벌한 매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의 주된 문화인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제주큰굿이 많은 이들에게 과거에 비해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술가에게 제주도란 어떤 곳인가요?

한국에 오면 늘 제주도에 머무르면서 작업합니다. 숨은 예술가들이 많은 곳이에요. 함께 하는 마로의 합숙소는 서귀포 표선면이라는 곳에 있는데요,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나무와 바람의 느낌도 육지와 다릅니다. 이러한 환경들이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마로의 멤버들은 전통 굿을 깊이 연구하는 이들인데요, 매일의 연습과 이를 통해 전통 속에 있는 새로운 것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굿에 내재한 연희적인 성격과 장단 등을 창작물에 모티프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기도나 동해안 별신굿 등이 다수를 차지하는데요, <미여지뱅뒤>의 모티프인 제주큰굿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보름 동안 밤낮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굿입니다. 경기도 굿의 장단을 입고 춤을 추면 그 음악에 담긴 화려함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주큰굿은 연물(제주큰굿에 쓰이는 북, 징 등의 악기를 총칭하는 말) 장단과 가락이 단순해요. 음악과 무가(무당이 구연하는 사설이나 노래)도 단순히 반복되며 굿을 이끌어나갑니다. 현재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굿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이 얘기인 즉, 전승 과정에서 화려하게 발전한 다른 굿들과 달리 단순하고 소박하고 간결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강한 힘이 있죠. 

굿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무당이 부르는 무가가 그런 역할을 하죠. <미여지뱅뒤>에도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나요?

제주큰굿에는 많은 신화가 녹아 들어가 있어요. 하지만 제주도의 문화와 방언에 익숙지 않은 저로서는 마냥 건드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큰굿의 기본적인 의례들이 서사를 만들어요. ‘문열림’에서 신을 부르고, ‘추물공연’에서 제물(祭物)을 던지고, ‘푸다시’에선 한과 액을 푸는, 이런 방식이죠. <미여지뱅뒤>는 한 사람이 이러한 의식을 치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사실 관객들의 참여도 끌어내고 싶지만, 프로시니엄 무대에는 늘 제약이 많은 것 같아요.

굿은 해피엔딩에 속하죠?

그렇죠. 한과 액을 풀어내잖아요. 

▲ <미여지뱅뒤> © (사)전통공연예술개발원 마로

▲ <미여지뱅뒤> © (사)전통공연예술개발원 마로

송해인은 마로와 함께 2013년에 <이어도-더 파라다이스>를 선보였다. 제주큰굿과 제주도 이어도 설화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으로 3년 동안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제주에선 옛날에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어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이어도는 이런 자들의 안식처 같은 곳이죠.”

이승과 저승 사이를 뜻하는 <미여지뱅뒤>, 안식처와 같은 <이어도-더 파라다이스>. 두 작품 모두 우리에게 낯선, 아니 낯설 수밖에 없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송해인의 작품에서 공간은 중요한 의미이자 주인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날에는 증강현실, 가상현실 등의 수많은 ‘현실’이 존재하잖아요. 이러한 현실을 만들고 움직이는 현대인이나, 다른 시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한을 푸는 무당이나 어느 면에선 서로 닮지 않았나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굿은 노래(歌)·춤(舞)·음악(樂)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고, 디지털 맵핑과 인터랙티브 기술 등도 시·청각이 어우러지는 총체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두 소재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미여지뱅뒤>의 디지털 기술은 굿의 한 부분을 표현하기 위한 부분적인 기술로 도입했습니다. 사람 모양을 한 종이무구인 ‘기메’나, 놋쇠로 만든 둥근 거울 형태로 무당이 신의 얼굴로 간주하는 ‘동경’(혹은 명도(明斗)) 등을 굿의 도구(巫具)로 사용합니다. 제주큰굿의 우주와 세계를 대변하는 상징물들이죠. 디지털 기술도 굿을 이루는 도구로써 사용할 수 있겠다 싶었고, ‘전체의 부분’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두 요소가 크게 상충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다만 전통에 중심을 둔 분들은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저 역시 조심스러웠고, 각자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근래에 들어, 굿의 전승에서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면서 문화의 융·복합에 익숙한 그들의 감수성에 따라 굿을 다른 장르와 접목하기도 하고, 이러한 실험과 작품들에 명인들과 큰 스승들이 직접 출연하여 ‘힘’과 ‘의미’를 실어주기도 한다. <미여지뱅뒤>에도 송해인과 함께 서순실 심방이 직접 출연한다(심방이란 제주도에서 무당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이러한 작업들이 그 분께 실례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서순실 심방은 제주큰굿을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강한 분으로, 저의 작업에는 늘 오픈마인드로 도움을 주세요.”  

<미여지뱅뒤>로 팸스초이스에서 30분 동안 쇼케이스를 갖습니다. 이를 통해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주큰굿을 공부하면서 해외보다도 육지, 즉 서울을 뚫기가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제주도의 예술단체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의 해외를 경로하기도 했어요. 60분 분량의 작품인데, 주어진 시간은 30분.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저에겐 서울에서의 첫 무대입니다. 이번을 계기로 <미여지뱅뒤>와 같은 작품을 선호하고, 여기에 잘 맞는 페스티벌을 모색하고 싶어요. 사실 에든버러에 입성할 때도 춤·무용·소리 등 어느 장르로 분류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이런 장르를 선호하는 페스티벌이나 디렉터들과 연결됐으면 합니다. <이어도-더 파라다이스>를 해외에 올렸을 때 외국인들은 한국의 굿에 대한 ‘편견’이 없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 송해인 안무가·연출가 © 이강혁

▲ 송해인 안무가·연출가 © 이강혁

서울아트마켓 이후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현대인의 정신적 치유에도 관심이 많아요. 한국의 굿과 런던에서 접한 테라피아트(Therapy Art)와 결합할 예정입니다. ‘치유’라는 면에서 굿과 공통되는 점이 많거든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심방(무당)이 된 이들이 많은데, 테라피스트들도 그런 경우가 많더라고요. 11월에 서순실 심방, 마로와 함께 런던대의 SOAS(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제주큰굿 공연을 한 뒤에, 관객·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집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과 영국의 예술가 교류 작업의 일환인데요, 영화음향감독인 로데릭 스피킹과 함께 공연을 위한 리서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역시 테라피스트로 활동하고 있고요. 잘 되면 합동공연으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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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이희문, 혹자는 그를 조선의 아이돌이라 부른다!]]> 이희문, 혹자는 그를 조선의 아이돌이라 부른다!
 


90년대 몇몇 해금 연주자들이 당시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내놓았고 대중은 국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었다. 그 이후, 퓨전국악 혹은 창작국악이라는 이름으로 국악이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최근 언론이 경기민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경기민요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고 펑크한 파마머리 가발과 반바지 때로는 하이힐과 망사스타킹까지 파격적인 무대와 경기민요를 고급스럽게 혹은 B급스럽게 만든 이희문이 그 중심에 있다.
이희문이 다른 아티스트와 다른 점은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수요자 마인드의 공연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사고 할 수 있게 하는지 궁금하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보면 그의 미래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 소리꾼 이희문 © 이강혁

▲ 소리꾼 이희문 © 이강혁

이희문의 과거

무대 위에서의 모습을 보면 저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무대에서 풀지 않고는 못 살겠구나 싶어요. 노래하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나요?

중,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저는 의외로 조용했어요. 말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어요. 공부도 제법하는 준 모범생이었습니다. 다만 학교에서 음악 시간에 반 대표로 노래해야 할 때는 불려 나가 노래하기는 했지만, 내성적이고 앞에 나가서 말하는 것에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친구보다는 좋아하는 연예인에 많이 빠져있었습니다. 민해경이라는 가수를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연습을 많이 했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는 친구들과 춤추러 가는 것을 즐겼고 학과 공부보다는 16m 영화 동아리를 통해 다양한 영화를 많이 접했습니다. 

▲ <경기소리프로젝트 ’황제, 희문을 듣다’> 공연 및 음반 포스터 © 이희문 컴퍼니

▲ <경기소리프로젝트 ’황제, 희문을 듣다’> 공연 및 음반 포스터 © 이희문 컴퍼니

‘황제 희문을 듣다’라는 공연에서부터 포스터, 무대 의상 등이 남달랐습니다. 이희문에 대해 매력적인 부분은 공연을 만드는 데 있어서 시각적인 효과를 잘 고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를 접한 시절에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영화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제게 먼저 다가왔습니다. 저는 무대에 서는 사람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모가 아름답지 않아도 자기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스타일 작업이 중요합니다.
영화뿐 아니라 뮤직비디오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저는 마돈나, 마이클잭슨 같은 비디오형 가수들을 좋아했고 그들의 음악을 토대로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에도 매료되었습니다. 크로스 커닝햄이라는 뮤직비디오 감독의 작품에 빠지기도 했어요.
대학 때는 가수를 하려고 기획사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잘 안 되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한 후에 일본에 공부하러 갔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가수나 연예인에 대한 꿈을 대리만족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뮤직비디오 만드는 공부를 했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은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학교에서 주목하는 우수한 학생이었고 일본의 유명 뮤직비디오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고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의 인생을 향해 달려갔었죠. 사소한 실수로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꿈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큰 좌절의 시간이었습니다.

경기민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어머니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성인이 돼서 처음으로 이춘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풍월로 민요를 흥얼거렸는데 이 모습을 본 이춘희 선생님이 ‘소리해보는 게 어떻겠냐,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나를 찾아와라’고 하셨어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는 제가 공부를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셔서 주변에서 아무도 소리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이춘희 선생님의 그 말씀이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소리를 해보라는 권유를 듣는 순간이었습니다. 단순한 그 말 한마디가 제게는 큰 울림이 있는 말이 되었어요. 저는 그다음 날로 이춘희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취미로 할 생각이었는데 선생님은 제가 부르는 ‘긴아리랑’을 듣고 대뜸 ‘너 소리 해야겠다’ 라고 하셨지요. 

한국에 와서도 뮤직비디오 제작을 계속했는데 어떻게 경기민요로 전업하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일이 없을 때만 이춘희 선생님의 학원에 가서 연습도 하고 놀고 했어요. 배운지 한 달 만에 대회를 나갔는데 성적이 좋았어요. 많은 경연대회를 나가다가 다시 대학에도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세 번째 가게 된 거죠. 생각보다 대학에서 공부를 많이 해야만 했어요. 대학 공부와 뮤직비디오 제작 일을 같이 하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마침 그때가 MP3가 보급되면서 음반 판매량이 크게 줄고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예산이 뚝 떨어지는 시기였어요. 이 일을 계기로 진지하게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늙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소리’를 하기로 했죠.
제게는 소중한 일을 버리고 하는 ‘경기소리’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 제가 혼자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노래가 하고 싶어서 무슨 방법이 있을까 찾다가 경연대회를 나가게 됐습니다. 경연대회에서 주어진 4분 정도의 무대가 제게는 소중했습니다. 경연대회는 유일하게 제가 잡가를 노래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많은 대회를 나갔었죠. 하도 많은 대회를 나가니 상금을 타기 위해 대회를 나온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무언가 거대한 힘이 이희문이 경기소리를 하게끔 인생을 돌고 돌아오게 한 것 같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소리’이기에 무대가 그렇게 즐겁고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것 같다. 

▲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잡> © 이희문 컴퍼니

▲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잡> © 이희문 컴퍼니

망사스타킹과 하이힐 등등 파격적인 무대는 대중에게 경기민요를 주목하게 하는 것에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외에 다른 의도가 더 있을까요?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의상이 제게는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아들이 많은 집안이라 제가 태어날 때 딸이었으면 하는 기대가 많았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여장을 한 사진들이 있어요. 그리고 공연에 늘 바쁘신 어머니를 집에서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방식 중 하나는 어머니의 한복을 입고 어머니를 따라 하는 것이었어요. 여자 연예인을 동경할 때도 그녀처럼 노래하고 춤추는 연습을 많이 했었죠. 제게 여성적인 의상은 이렇게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무용가 안은미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제 안에 있는 감춰져 있는 것을 끄집어낼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쾌’를 할 때 이런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하는 공연이 제게도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가수 프린스처럼 중성적인 캐릭터를 연출하려는 것이었죠. 저에게 어렸을 때부터 경기민요는 여자들의 음악이었습니다. 이렇게 여장 의상을 입고 현대적인 의미로 풀어가는 것이 어쩌면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지금 함께 ‘놈놈’으로 공연 하는 신승태 씨를 만나서 저의 이런 퍼포먼스에 힘이 실렸습니다. 옆에서 받아주고 같이 할 사람이 있으니 더 재밌게 공연을 만들게 되었지요.
왜 이런 의상을 입느냐 물어보면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비주얼에 따라 다른 인격으로 넘어가는 그런 것이지요.

그동안 함께 작업했던 아티스트들이 매우 비범하고 특별했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게 된 이희문이 궁금합니다.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았고 이춘희 선생님을 통해 소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정신적인 것을 지배한 것은 무용가 안은미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이태원 작곡가와 장영규 작곡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경기소리를 스마트하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작곡가 이태원이라고 생각했어요. 이태원의 논리적인 음악 분석을 통해 경기소리가 펼쳐낼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영규 작곡가는 이런 것을 동물적 감각을 갖고 작업하는 분이었습니다.
이들 작곡가 외에도 함께 작업했던 정은혜, 안이호, 박민희에게도 좋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자람에게서 새로운 ‘밥그릇’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이희문 컴퍼니>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희문의 현재

이희문이 의도적으로 다양한 아티스트와 트레이닝을 하다 이제 그들을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용가 안은미 선생님을 통해 만난 이태원, 장영규 같은 비범한 사람들과 함께 섞여서 작업하고 싶다는 동경이 있었어요. 이런 소망은 다양한 공연을 통해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작업에서 그들은 저에게 잘 맞춰진 재단사 같은 분들이었죠.
이후에 무용가 안은미 선생님을 통해 미술작가, 기획자, 현대 무용가 등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들과의 작업은 또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이들과의 작업은 다른 장르와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즐거운 모험이었습니다. 오재우 미술작가, 정태유 사운드 디자이너, 재즈밴드 프렐류드 등등 새로운 아티스트와의 만남은 이제까지와 달리 각자의 장르를 바탕으로 수평적인 소통을 통해 새로운 공연물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이희문이 비범한 사람들과의 작업을 통해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이제는 새로운 음악을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난 후 그들과 같이 작업하게 되면 지금과는 다른 작업을 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이희문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계속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가는 생동감이 이희문이 가진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최근에는 이희문의 작업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공연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자본론>을 모티브로 하는 공연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오재우 미술작가의 스마트함이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오재우 작가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미술을 전공하다가 현대무용을 하는 장현준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자신의 몸으로 미술을 표현하고 싶어서 현대무용을 하는 아티스트입니다. 두산아트랩에서 이들 작가와 같이 작업하게 됐습니다. 우리 셋이 무엇을 할까 이야기를 하다 현재 가장 고민을 하는 문제를 끄집어내게 되었죠. 현실적인 문제로 예술을 포기하게 된 후배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책과는 친하지 않은 제게는 황당한 작업이지요. 지금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부터 읽고 있습니다. 아직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모르고 낯선 작업이지만 흥미롭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한 사람에 대한 동경이 그를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으로 이끌고 있다. 또한, 그 동경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숨겨진 노력이 현재 진행형의 이희문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탐> © 이희문 컴퍼니

▲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탐> © 이희문 컴퍼니

팸스초이스에 선정이 되었습니다. 팸스초이스에 거는 기대는 어떤 것이 있나요?

팸스 초이스는 2014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선정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잡’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후 이탈리아 파브리카 유로파 페스티벌에서 전석 매진되고 아시아 최초로 오프닝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연의 규모가 너무 커서 다른 곳에서의 공연 요청을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올해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탐’은 해외진출에 쉬운 규모의 공연을 만들었습니다. 해외의 다양한 곳에서 공연할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 소리꾼 이희문 © 이강혁

▲ 소리꾼 이희문 © 이강혁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의 작업뿐 아니라 전통의 깊이 있는 곳까지 파고드는 그의 관심이 이희문을 힘 있는 아티스트가 되도록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사람들은 현재의 그에 주목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이희문은 미래가 더 궁금한 아티스트라는 점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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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동시대의 이야기와 판소리다움을 찾아 나가는 두 창작자의 여정]]> 동시대의 이야기와 판소리다움을 찾아 나가는 두 창작자의 여정
 


‘판소리만들기-자’는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 <억척가>에 이어 남미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이방인의 노래>, 그리고 한국 소설가 주요섭의 단편 ’추물’ ’살인’을 판소리의 형식으로 무대에 올리며 늘 새로운 판소리로 관객의 귀와 눈을 매료시켜왔다. 익숙하지만 낯설고 새로운 형식의 판소리. 그들이 올해 선택한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이다. 소설가 김애란의 ‘노크하지 않는 집’을 원작으로 한 판소리 <여보세요>이다.
텅 빈 무대 한편에 놓여있는 2단 공간 박스와 그 위에 차갑고도 무겁게 놓여있는 메트로놈이 이번에도 심상치 않은 작품을 보여줄 듯 관객의 시선을 모은다. 검고 긴 머리를 단아하게 묶고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소리꾼 이승희, 그 옆에 북 외에도 소소한 악기들과 소품들을 놓고 소리꾼의 미소에 화답하는 고수 이향하가 앉아 있다. 소리꾼의 입에서 자명종의 진동소리와 ‘카톡’의 사운드가 튀어나오리라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판소리 <여보세요>는 ‘판소리만들기-자’의 지금까지 작품과는 또 다르게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로 관객에게 성큼 다가온다.
‘판소리만들기-자’에서 판소리의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창작자 소리꾼 이승희와 고수 이향하를 만나 그들의 삶과 판소리, 전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필자와 판소리만들기-자 소리꾼 이승희, 고수 이향하 © 박예림

▲ 필자와 판소리만들기-자 소리꾼 이승희, 고수 이향하 © 박예림

만남

소리꾼으로서 고수로서 판소리를 시작한 배경과 판소리만들기-자에 결합하게 된 배경은?

이승희 :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웃음), 서울에 올라와서 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어요.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어느새 외부에서 소리꾼으로 작업할 나이가 되었어요. 지인들의 소개로 자연스럽게 예술계의 다양한 작가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009년이었던 것 같아요. 판소리만들기-자에서 소리꾼을 찾는다고 해서 오디션을 봤고, 사람들의 연으로 안은미 선생님과 장영규 선생님도 만나게 되고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이향하 : 저는 대학에서 타악기를 전공했어요. 타악기는 집중할 수 있는 분야가 많아요. 정악 쪽으로 가는 친구들도 있고요. 대학 때부터 이자람 씨가 작업한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에 참여를 했고, 2007년 <사천가>를 처음 창작할 때 판소리만들기-자를 같이 시작했어요. 사실, 처음부터 판소리에 관심이 많았다기 보다는 타악 연주자로 여러 가지를 경험한 후에 사천가와 억척가의 창작과정에 함께 하면서 판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 진로가 판소리를 만드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고수라는 독보적인 타악기 주자로서의 포지션이 너무 재밌고, 판소리가 제 일이 된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는 거꾸로 갔다고 해야 할까요. 창작 판소리를 하다가 판소리 공부를 더 깊게 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판소리를 잘 몰랐어요.(웃음)

전통 판소리 & 창작 판소리

한 분은 전통에서 창작 판소리로 또 한분은 창작 판소리에서 전통 판소리까지 깊이를 더하고 계신 것 같은데, 두 분에게 판소리의 매력은?

이향하 : 저는 판소리가 너무 재밌어요. 어릴 적부터 구연동화도 너무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이야기를 해주는 거잖아요. 판소리는 소리꾼이라는 필터를 거쳐 이야기를 듣는 거고요, 저는 그 부분이 참 편안하고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음악적으로도 리듬과 어떤 뉘앙스들이 매우 고급스럽게 전달되는 것 같고요. 저는 소리꾼과 고수가 단둘이서 아무것도 없이 무궁무진하게 이야기를 펼쳐주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소리꾼은 소리로, 저는 제 포지션에서 그것들을 찾아서 만드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이승희 : 어릴 때 소리를 했을 때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저 목에서 나오는 기량만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높게 단어들을 야무지게 낼 수 있는지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판소리만들기-자에서 <사천가>를 하고, 이전에 전통 판소리에는 없던 연출이라는 역할을 만나게 되고, 작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사천가>는 초연을 이미 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극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대한 많은 설명을 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아 판소리는 이야기였지.’ 하는 생각이 처음 들어오더라고요. 목소리를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이끌어 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판소리의 다른 면을 보게 되는 거예요.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어떤 소리꾼’이 전달하느냐에 따라 다 다른 거예요. 각자 다 다른 재미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이향하 :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연희를 하기 때문에 집중하기가 수월하고, 그래서 더 이야기에 빠지는 것 같아요. 어른들의 전통 판소리를 들을 때도 작품을 알고 보니까, 정말 기가 막힌 거예요. 알면 더 많이 볼 수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아요.

▲ <여보세요> © 판소리만들기-자

▲ <여보세요> © 판소리만들기-자

전통 판소리와 창작 판소리는 분명 많은 차이점이 있는데, 그런데도 소리꾼과 고수 둘이 무대를 채워 나간다는 양식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 같다.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향하 : 전통 판소리는 소리꾼이 선생님의 소리를 그대로 받아서 연희하면서 공력을 쌓아가는 거라면, 창작 판소리는 어쨌든 이야기를 찾는 것을 시작으로 있는 것을 다 버무려서 만드는 것이라 작업이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창작 과정에서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판소리다운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에요. 판소리답다는 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만, 창자와 고수 단둘의 구조도 그렇고, 이야기하는 방식에서도 음악적인 면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판소리다운 방법이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일지를 늘 찾아 나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이것저것 펼쳐놓고 다 해보다가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장 기본만 남겨 놓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이승희 : 이번에 <여보세요>를 창작하면서도 대본이 나온 후에 향하 씨와 작창을 하고 음악 구성을 해야 하는데, 같은 장단이 너무 지겨우니까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는 곧 다시, 이게 옳은 선택일까 고민하다가 다시 기본 장단으로 돌아가고, 정말 깔끔하게 판소리 조로 하는 것이 딱 맞는 경우도 있고, 새로 찾은 것이 정말 너무 잘 들어맞을 때도 있고, 항상 여러 번 생각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향하 : 가장 판소리다운 것은 역시나 소리꾼의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라는 점인 것 같아요. 우리가 담고 싶은 철학이나 이야기를 소리꾼의 입을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최대한 함축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으려 하는데, 연출이자 작가인 이자람 씨와 작업할 때 그 분도 소리꾼이다 보니 협업이 잘 이루어졌어요. 소리꾼이 원하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찾아 나갔다고 해야 할까요. 판소리를 창작하는데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동시대성인 것 같아요. 낡거나 남의 이야기 같지 않고 내 이야기 같고, 엄마 이야기 같고, 친구 이야기 같이 공감할 수 있는 현재에 유효한 이야기를 찾는 거죠. 

이승희 : <여보세요>는 특히나 더 그런 것 같아요. 한국 소설로 작품을 만든 게 주요섭의 단편으로 만든 <추물살인>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현재 살아있는 젊은 소설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것은 처음이에요. 2016년 현재를 배경으로 하는 것도 처음이고요. 처음에는 정말 낯설었어요. 

작품

<여보세요>는 김애란의 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김애란의 소설을 선택한 이유는?

이향하 : <여보세요>는 이자람 씨가 김애란 소설집을 재밌게 읽고 판소리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본인보다는 이승희 씨가 소리꾼으로 적합할 것 같다고 제안해서 시작되었어요. 

이승희 :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처음에는 한 젊은 여자의 삶 속에서 어려움을 만나고 이겨내고 하는 소소한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똑같은 방의 모습이 나오면서 왠지 서늘함과 섬뜩함이 느껴졌어요. 제게는 이 이야기가 판타지적으로 느껴졌고, 이 작품을 어떻게 판소리로 만들지 걱정과 두려움이 생겼었어요. 보통 판소리는 여러 인물이 나와서 복작복작 하는 맛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사건이 전혀 없고, 한 여자의 생각과 추측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 나중에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여자의 상상인지 조자 모르게 흘러가더라고요. 기승전결이 전혀 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판소리로 창작할 수 있을지가 큰 숙제였었죠. 

이향하 : 저는 개인적으로 김애란 작가를 좋아해서 처음에는 무조건 좋았는데, 집에 와서 소설을 다시 읽었더니 이승희 씨와 같은 생각이 들어 고민했었어요. 그래도 이야기하면 할수록 판소리로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결국은 공감이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 속에서 동시대성을 읽고, 이 시대에 그리고 관객에 던질 질문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이승희 : 저도 향하씨도 모두 외지에서 와서 혼자 서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주인공 여자가 익숙하지 않은 사회에서 하숙집이라는 공간에 들어와 살아가는 모습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저도 지금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옆집 사람이 나가려고 하면 기다렸다가 내려가고 그러는데, 어릴 적에는 더 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 <여보세요> © 판소리만들기-자

▲ <여보세요> © 판소리만들기-자

소통

판소리는 무엇보다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하잖아요. 올 초에 두산아트랩에서 공연할 때 관객의 반응은?

이향하 : 메트로놈이 신선했다, 섬뜩했다 등의 의견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음색적인 효과만을 생각하고 메트로놈을 생각했는데, 메트로놈이 규칙적이고 차가운 느낌과 나중에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내는 데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아요. 역시나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내 실생활에 나오는 이야기를 판소리로 들으니까 새롭다는 거였어요. 

이승희 : 이전 작품인 <추물살인>이 워낙 관객과의 소통이 없던 공연이라, 이번에는 사건은 없지만, 대사에서 닥터마틴, 에뛰뜨 하우스와 같은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브랜드 용어가 나오다 보니 관객들이 재미있어하고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였던 것 같아요. 

이향하 : 랩에서의 관객 반응이 예상했다기보다는 우연적 산물이었다면, 10월에 스파프(SPAF,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작품을 다시 올릴 때는, 두산아트랩에서 좋았던 것을 더 발전시켜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을 확장하려고 해요. 전통 판소리에서는 추임새를 끌어내면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 또한 판소리다움의 하나로 판단하고 작업을 해 나가죠. <추물살인>에서는 계획적으로 그 부분을 분리했었는데, 그것 역시 두, 세 번째 공연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객과 소통하는 길을 그 안에서 찾게 되더라고요. 관객과의 끈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 <여보세요> © 판소리만들기-자

▲ <여보세요> © 판소리만들기-자

관객의 반응을 끌어내는데 있어 고수의 역할 또한 중요한데. 창작 판소리에서 고수로서 이향하씨는 전통 판소리의 고수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향하 : 연습실에서는 소리꾼과의 직선적인 관계에 집중해서 작품을 만들게 되는데, 관객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신경이 트라이앵글로 만들어지는 것 같고, 소리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삼각형을 만들고 그 안에서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거죠. 전통 판소리와 창작 판소리에서 고수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전통 판소리는 고법이라는 틀 안에서 학습된 것을 순간적인 판단하고 즉흥적으로 맞춰 치는 것이라면, 창작 판소리는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둬요. 예를 들어 전통 판소리에서는 ‘이면에 맞는 북을 친다’는 말이 있어요. 드라마, 소리꾼의 상태, 말이 주는 느낌에 맞는 북을 쳤을 때 그것이 좋은 북이고, 이면에 맞는 북이라고 말하는데, 창작 판소리에서는 이면에 맞는 북을 만드는 거예요. 악기를 선택하기도 하고, 리듬을 구성하기도 하고, 직접 퍼포밍에 대해 디렉션을 받기고 하고, 이면을 만드는 것이 가장 다른 것 같아요. 연희자로서의 고수와 창작자로서의 고수라고 해야 할까요. 맞는 음색을 찾아서 새로운 악기를 찾기도 하고, 리듬을 채우기도 하고, 순간순간 이면의 북의 요소를 가져다 쓰면서 이면을 구성하는 거죠. 

<여보세요>에서는 전통 악기로는 북과 장고를 사용하고, 트라이앵글 같은 소악기 그리고 주인공의 속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일상 속의 사물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물병, 밥그룻, 나무토막 등 실생활에서 나는 소리를 가지고 세트를 구성해서 사용해요. 사실 처음에는 열 손가락이 모자라게 많은 악기를 사용하고 싶었는데, 결국에는 북을 메인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북이 가장 레이어도 많고 에너지도 맞는 것 같아요. 

해외의 관객 만나기

팸스초이스로 선정돼서 한국 관객뿐만 아니라 해외 관객들도 만나게 될 텐데, 해외 관객과는 어떻게 공감을 만들어 낼지?

이향하 : 저희가 작품을 창작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이 SNS에요. 익명성이라든지, 나를 내가 표현하는 데 있어서 도식화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들이 작품에 나오는 똑같은 여러 개의 방안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을 보면 유사한 해시태그가 달린 비슷한 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각자는 자신의 개성을 어떤 것으로 표현하지만, 결국 같게 보이죠.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자신의 개성이라고 선택한 물건들이 닥터마틴, 에뛰뜨 하우스 등인데, 결국 사회가 정해 놓은 물건들이죠. 나만 사용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모두가 사용하는 거죠. 내 방도 다른 방도 모두 똑같고. 저희는 이런 점에서 보편적인 동시대성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이승희 : 청년들이 살아가는 지금 시대가 너무 어렵잖아요. 돈을 벌기도, 취직하기도 어렵고,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청년들이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자신감이 있어야 서로 고개라도 들고 인사를 할 텐데, 자신감이 없으니 자기가 편한 것만 하게 되죠. 그래서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고, 아무것도 안 하고, 밖에도 나가지 않고 그러는 것 같아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젊은 층에서 공감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향하 : 20대 여자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 속 어느 구석에서든지 우리 엄마, 동생, 삼촌, 외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발견되면 더 많은 사람이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열어놓고 작품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어요.

▲ 소리꾼 이승희, 고수 이향하 © 박예림

▲ 소리꾼 이승희, 고수 이향하 © 박예림

전통

창작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 고수로서 전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승희 : 전통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아요. 창작 판소리를 하지만 지금도 춘향가, 수궁가, 심청가는 꾸준히 하고 있고, 전통 판소리를 지속해서 함으로써 창작을 할 때 관계성을 더 잘 만들어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전통을 배제한 채 창작 판소리만 했다면, 판소리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보다는 어떻게 더 화려하고, 멋있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만을 고민했을 것 같아요. 

이향하 : 저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창작 판소리를 하면서 전통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판소리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전통이라는 것이 딱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창작 판소리 작업을 하면서 판소리라는 장르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생기고, 전통 판소리와 그 안의 소리꾼과 고수가 새롭게 보이는 지점이 많아요. 그게 바로 전통이 가진 힘인 것 같아요.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수 백 년을 건너온 그 안의 자유로움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옛날 선생님들의 소리를 들으면 그 안에서 자유로운 창작과 연희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그분들한테는 그게 전통이 아닌 거죠. 평생 해온 예술인 거죠. 북을 그렇게 쳐도 될까 싶을 정도로 자유롭게 연주를 하는 명인들은 보면 그분들한테는 전통이 아니라 현재의 예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시각이 생기는 것 같아요. 

작가의 길

이승희 : 예전보다 판소리로 하는 작업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애먼 길로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판소리가 가지는 기본적인 형식 안에서 느껴지는 재미를 가지고 가고 싶어요. 이야기의 소재를 잘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같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찾고 싶어요. 제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잘하는 것이 목을 쓰는 거고,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판소리가 재미없어지면 언젠가 그만두겠지만, 지금은 너무 재밌고, 관객이 좋아해 주시고, 창작자들이 찾지 못한 것을 관객들이 찾아주시는 것에 놀라기도 하고, 그러면서 계속 판소리를 만들어 가는 길을 가는 것 같아요.

이향하 : 이승희 씨와 작업을 하다 보면 판소리 할 때의 놀라운 집중력과 오기, 건강한 욕심과 함께 소리꾼의 자아가 느껴져요. 저도 타악기 연주, 밴드 연주할 때와는 달리 판소리 고수로 참여할 때는 제 자아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테크닉으로 하는 연주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하고 관객을 만나고, 다양한 역할을 해 나가면서 고수가 판소리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지고 있어요. 처음에 사천가에 참여할 때만 해도 음악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에만 많이 집중했더라면 지금은 소리꾼이 입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때, 저는 몸과 눈빛, 북으로 말하는 또 하나의 화자라고 느끼는 순간이 많아요. 

관객에게

이승희 : 사람들이 판소리를 보러 가는 건 연극을 보러 가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병풍 앞의 소리꾼만을 상상하지 말고,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을 들으러 편하게 왔으면 좋겠어요. 이야기의 순간을 즐기고 따라와 주고 재밌게 보면 그게 판소리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향하 : 제가 판소리가 재미있다고 정말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고수는 앞 선에 있는 관객이거든요. 최 앞 선에 있고, 가장 먼저 보고, 가장 가깝게 많이 보기 때문에, 창작자의 입장이기도 하지만, 관객의 입장이기도 하죠. 판소리는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장르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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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자기의 이국화(異國化)’를 경계하는 무용인]]> ’자기의 이국화(異國化)’를 경계하는 무용인
 


임지애는 작가 정신이 뚜렷이 보이는 안무가다. 춤의 재료에 대한 접근 방식이 지적(知的)이다. 오랜 시간의 리서치 작업을 통해 소재가 갖는 역사성이나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는 일은 작품 완성의 대전제가 된다. 그가 만들어낸 춤에서 아름다운 몸짓이나, 질서 있는 무용수의 움직임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감각적인 춤은 그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경계인으로 자처하는 것일까? 임지애 안무는 ’선과 악’, ’남과 여’, ’신과 인간’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올해 서울아트마켓(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 이하 PAMS)의 팸스초이스(PAMS Choice) 선정 작품인 그의 <뉴 몬스터(New Monster)> 역시 그런 시선이 담긴 작품이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식의 기존 인식 틀에 젖은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애매함이 있고 난해하다. 묘한 것은 그런 모호함 속에서 작품이 긴 여운과 잔영(殘影)을 남기고 그것이 관객의 사유와 질문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임지애 안무가를 9월 21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그의 예술관과 <뉴 몬스터> 등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필자와 임지애 안무가 © 이강혁

▲ 필자와 임지애 안무가 © 이강혁

<뉴 몬스터>가 팸스초이스 작품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합니다. 서울아트마켓을 통해 어떤 성과를 기대하고 있는지요.

그간 <뉴 몬스터>의 재공연 기회를 얻고 싶었는데 마침 팸스초이스 작품으로 뽑히게 되어서 기뻐요. 이 작품이 좀 더 다른 지역의 관객과 문화를 만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뉴 몬스터>는 어떤 작품이며,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2013년 3월 한팩라이징스타 프로그램1)으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처음 발표된 작품입니다. 곧이어 독일에서 공연했었습니다.
작품은 신화적인 요소를 차용해 그 이미지를 뒤틀어 다른 형상으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사람도, 동물도, 성별도 모호한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가만히 보면 신화라는 것이 굉장히 이분법적입니다. 선이 악을 이기는 구조, 남자와 여자, 신과 인간이라는 전형적이고 통념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것이 현대사회에서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분법보다는 중간이라는 지점에 온전히 있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작품 속에서 동물이 나오는데 그게 동물이 아니라 사실은 여자와 남자의 중간이에요. 중간이라는 지점이 매력이 있었고, 모호한 부분들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특별히 관객이라는 대상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익숙한 것들로부터 문제를 생산하고 싶은 욕구가 출발점이자 과정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인 질문에 들어가기 전에 무용인으로서의 자기소개를 해 주면 어떨까요.

무용은 중학교에 다니던 15살에 시작했어요.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하는 친구들에 비해 많이 늦은 셈이죠. 처음에는 춤을 막 추고 움직이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기 보다는 무용이 가진 형식, 예를 들어 머리 모양, 의상, 춤사위같이 춤이 갖는 독특한 형식에 끌려 그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후 안양예고를 거쳐 경희대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서울예술단에 입단했습니다. 그때까지는 한국무용을 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안애순무용단에 들어가 컨템포러리 무용을 하게 됐습니다. 2011년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의 인터유니버시티 무용 센터(Inter-university Center for Dance Berlin)에서 석사과정(Solo/Dance/Authorship)을 마쳤습니다.

1) 차세대 안무가 육성 프로그램. 한국공연예술센터(2014년 5월 29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통합) 주관.

▲ <뉴몬스터> © 임지애

▲ <뉴 몬스터> © 임지애

<뉴 몬스터>는 독일에서 공연했다고 하는데 현지 반응은 어땠었는지요.

독일 베를린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처음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서 한 작업인데 그 작품으로 독일 무용전문지 탄츠(Tanz) 매거진에 의해 ’2014 주목할 만한 예술가’에 선정됐어요. 처음에는 선정되었는지 몰랐는데 주변에서 얘기해서 알게 됐어요. 제가 한국무용을 쭉 하다 현대무용을 하게 됐는데 현지 사람들에게는 제 춤의 움직임이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전통을 화두로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유럽 사람들은 ’아시아의 전통’이라고 하면 그들의 머릿속에 이미 입력된 이미지가 있거든요. 그런 기대로 극장에 갔는데 그 기대가 완전히 배반당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임지애 안무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성격의 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무용의 난해성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요. 현대무용이 어떤 방식으로 관객과의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저 자신도 현대무용을 배우면서 무척 난해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를린에 5년째 있는데, 그곳은 현대무용계를 읽기가 어려워요. 더구나 처음에는 아주 많이 헷갈렸어요. 지금은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보통 작품을 하면서 관객을 많이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건 관객을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고 제가 진지하게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관객이 같이 반응해준다면 감사한 일이죠.
생각해 보면 작품이라는 것은 작가로부터 발생하는 일련의 생각이 계획을 통해 리서치를 거치고, 또 다른 대상들을 만나면서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입니다. 그런 것을 관객이 극장에서 1-2시간 보고 이해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아요.
요즘 작가들은 작업을 통해 특별히 무슨 주장을 하거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아요. 작품이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수단이 아닌 거죠. 오히려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이 더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어떠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작품을 스스로 개념 무용(Conceptual Dance)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는지요.

사실 개인적으로 춤에서 ’개념’이라는 용어가 아직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해요. 쓸 수 있는 적당한 다른 용어가 없어서 이해를 도우려고 간혹 쓰기는 해요.
주변에 보면 유럽을 통해서 개념 무용의 영향을 받은 무용인들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요. 제가 생각하는 개념 무용은 작품의 스타일이 아니라 작가의 태도와 관련이 있어요. 그러니까 작가가 작품에 대한 낡은 방식의 접근을 거부하고 새롭게 보려는 것, 자신을 안전한 곳에 놓으려 하지 않고 밀어내고 개발하고 그러는 태도죠. 개념 무용의 범주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보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 테두리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왠지 스스로 무덤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최근에는 춤의 소재로서 어떤 문제에 특히 관심이 있나요.

그동안 전통을 화두로 제도적 관습, 통념 따위에 대한 질문을 해왔습니다. 현재는 질문의 방향성을 살짝 틀어 ’전통을 통한 컨템포러리 제동 걸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요즘 공부하는 한국 춤의 역사적 맥락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된 질문들이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전통, 역사, 과거라는 선택된 기억들은 어떻게 현재와 다시 관계 맺는가. 후기 식민지 또는 근대화가 생산해낸 ’자기의 이국화’ 또는 ’타자화’가 동양의 문화를 향해 전형적인 프레임, 상투적 시선을 생산했고 그것이 어떻게 동시대에 문화를 지배하는가. 춤추는 몸은 단지 특정한 문화적 기억이 새겨지는 수동적 대상인가, 아니면 스스로 재구성하고 수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는 주체인가. 이런 질문들을 이미 선택되어 쓰인 한국춤의 역사적 궤도를 재안무하는 행위로 수행할 계획입니다.  

’자기의 이국화’라는 말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식민지 시대, 서양의 제국주의 시대 이후로 생긴 거라고 할 수 있죠. 그 사람들이 가진 동양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에 자기를 맞추는 겁니다. 무용가 최승희가 미국과 유럽 순회공연을 다닐 때 그쪽 큐레이터들이 자기네가 아는 동양적 이미지를 충족시켜 달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최승희가 귀국 후 "나는 동양의 춤을 오히려 외국에서 수입했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같은 맥락에서 제가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자기의 이국화’입니다. 예술시장에서 종종 이국적 정서를 어필하는 작업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올리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비단 예술가의 문제만은 아니고 그것을 선호하는 큐레이터의 시선 문제이기도 합니다.

▲ 임지애 안무가 © 이강혁

▲ 임지애 안무가 © 이강혁

긴 시간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가까운 장래에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가요.

현재 서울무용센터에서 레지던트 아티스트로 <한국무용사담>이라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0월 13일 그 결과물을 쇼케이스 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고요. 11월에는 광주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벌이는 아시아무용단 워크숍에 안무가로 초청돼 8개 아시아 국가 무용수들과 작업을 벌여 작품을 하나 만들게 됩니다.
이 작품 역시 제가 해 왔던 작업의 연장선상에 이뤄지는 겁니다. 여기 참여하는 아시아 무용수들이 대부분 자기네 나라 전통춤을 배운 후 어떤 계기에 서양 춤을 하게 된 친구들이거든요. 분명히 그들에게 테크닉 또는 정신적으로 전통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데 몸의 내부 충돌과 고통이 있었을 거예요. 저도 똑같았거든요. 그들 모두에게 ’자기 이국화’와 ’타자화’의 경험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문제를 작품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공연은 광주에서 11월 19~20일에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는 베를린으로 돌아가 내년으로 계획된 신작 <Ah~ Ah Ah>의 리서치 과정 발표를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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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진짜 가족 같은 우리가 정말 좋아서 하는 연극]]> 진짜 가족 같은 우리가 정말 좋아서 하는 연극
 


‘양배우 입니다.’ 양손프로젝트 블로그에서는 이렇게 매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DJ처럼 익숙한 첫인사를 건네는 양종욱 배우가 직접 공연소식을 전한다. 진솔하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문장과 내용은 담백한 여운을 남기며 자꾸만 다음 글, 또 다음 글을 읽게 한다. 관객들이 손꼽아 기다리며 보고 또 보고 싶어 하는 그들의 작품처럼. 지난여름 아비뇽에서 공연하며 유럽대륙에 첫 발을 내디딘 양손프로젝트는 이번엔 1931년에 발표된 유진오의 연재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여직공>으로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 출격을 앞두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박지혜 연출가에게서 서로 간의 긴밀함과 연극에 대한 진지함으로 똘똘 뭉친 이 매력적인 4인조의 삶과 연극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필자와 양손프로젝트 박지혜 연출가 © 이강혁

▲ 필자와 양손프로젝트 박지혜 연출가 © 이강혁

아비뇽에서 만난 적극적인 관객들 그리고 더 가까워진 우리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모파상 단편선-낮과 밤의 콩트> 공연 준비할 때 저희가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이 작품을 프랑스에서 공연한다고 생각하고 만들자.” 그런데 프랑스에 가게 된 거예요.1) 프랑스 고전 작품을 다른 나라, 문화권의 감정과 감각으로 표현한 걸 관객들이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했던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고 나가면 관객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평을 얘기하기도 하고, 감상을 얘기하고 싶어서 오퍼실로 올라오려고 하시는 분도 있었고요. 관객들이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더라고요.
아비뇽에 다녀오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아비뇽에 가서 4명이 같이 한집에 살았거든요. 같이 MT도 가긴 하지만 4주를 한 집에서 산 건 처음이었어요. 진짜 가족 같거든요. 너무 편하고, 모든 걸 얘기할 수 있고. 같이 지내보니까 더 좋더라고요. 사이가 더 견고해진 것 같았어요. 진짜 우리가 정말 가깝구나하는 친밀감이 생기더라고요.   

강렬한 느낌과 끈질긴 치열함이 맺어주는 작품과의 만남

어떻게 공연이 될 거라고 혹은 어떤 것을 미리 기대하고 만든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매번 다르긴 한데 가장 강렬하게 자기에게 찾아온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4명이 다 동의해야 시작하는데 4명이 다 동의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은 저희가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 이것들이 정말 치열하게 부딪히는 순간에 관심이 많아요. 4명 다 궁금하고 더 알고 싶고 나눌 수 있는지 기대가 될 때 선택되는 것 같아요. 단편소설 같은 경우에는 4명이 도서관에 들어가서 각자 찾아본 후 모여서 추리고, 다시 읽어보고 추린 다음에 다시 읽어보는 굉장히 긴 과정을 겪어요.

소설을 연극화하는 작업에서 얻는 남다른 즐거움

기본적으로 소설을 가지고 작업할 때는 희곡을 가지고 작업할 때와 시작점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소설은 잘 짜인, 세밀하게 묘사된 이야기가 있는 느낌인 거죠. 이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선택하고 포장하고 생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연습하면서도 그런 얘기를 우연히 하게 됐는데 희곡의 경우는 배우로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개념을 갖게 되는데, 소설을 무대화할 때는 배역을 연기한다는 느낌보다 일단 서사자가 존재하고 꼭 그 배역, 인물이 아니라 좀 더 추상적인 것까지 내가 연기를 하는 대상이 되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래서 희곡의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 때와 소설 작품의 배우로서 무대에 설 때 많이 다르고, 그게 재미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어요. 또, 소설의 서술어들을 표현하는 게 재미있는 부분인 것 같은데, 희곡에는 서술어가 없으니까요(지문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소설의 경우 풍경이나 내면을 직접 서술어로써 표현하는데, 연극에서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고 했을 때 그 소설의 서술어가 대사가 될 수도 있고 하나의 문장이 긴 씬이 될 수도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재미있다고 느껴요.    

1) ’Theatre des Halles’ 라는 극장에서 2016년 7월 6일 - 7월 28일까지 공연되었다.

▲ <여직공> © 양손프로젝트

▲ <여직공> © 양손프로젝트

“양손프로젝트=공동창작”

한 사람이 전체적으로 주도하지 않다 보니까 시작했을 때 이게 어떻게 나올지 전혀 가늠이 안 된 상태에서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결과물로 나오는 것, 그게 가장 재미있어요. 각자 다 자기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굉장히 몰입도가 큰 것 같아요. 작품에 관해 토론 할 때도 확실히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저도 더 자극을 많이 받게 되고요. 개개인한테 다 좀 더 주도적인 작업이 되는 것 같아요. 단점도 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러다 보니 산으로 가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 느끼는 건 연극작업, 특히 양손프로젝트 작업이 재미있는 게 상대방의 삶의 고민, 연극을 하면서 가지는 고민이 뭔지를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에서 그것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 지까지 같이 보게 되다 보니까 4명의 관계가 정말 긴밀해져요. 작품 만들 때 나누는 얘기도 좀 더 달라지고, 이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게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는 느낌이에요. 꾸준히 공동창작을 할 수 있었던 게 참 운이 좋았던 것 같고요. 모두 다 연출인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인 것 같기도 하고 배우인 것 같기도 한 느낌으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작가적이면서도 연출가적인 배우들과의 공동창작

저한테 사실 도움이 많이 돼요. 궁극적으로 저는 연극이 배우예술이라고 생각하고 무대에 서는 퍼포머(performer)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초반과정에서 만드는 것은 같이 열심히 하는 것이고, 제 역할은 배우가 가장 창의적인 아티스트로서 무대에 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퍼포머가 퍼포밍을 하는 순간에는 거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연출은 그것을 가장 깨끗하게 비춰주는 사람이고요.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는 넷이 똑같은 꿈과 지분을 가지고 얘기하지만 무대에 서고 나서부터는 사실 정확하게 배우, 연출이 구분되거든요.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죠. 그럼 저는 우리가 했던 얘기들이 실제로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를 바깥에서 봐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 제가 계속 안내해주고 제시해주기도 하고요. 다행히 이 사람들이 어떻게 다 이렇게 모였는지 모르겠지만, 권위의식 같은 것도 없고 제 얘길 정말 잘 들어줘요. 다행히 뜻이 잘 맞는 것 같., 그래서 제가 얘기하면 내 얘기가 너의 얘기고 너의 얘기가 내 얘기라고 이렇게 합의된 지점들이 생겨요.

잘 나가는 양손프로젝트? 좋아서 하는 연극!

저희는 항상 혼란스럽거든요. 정말 모르겠고. 좌절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매번 헤매는 것 같아요. “양손프로젝트 잘 나간다면서?” 그런 얘긴 소문인 것 같아요. 공연 봤냐고 물어보면 막상 안 본 사람도 많아요. 처음에는 양손프로젝트 팬이 많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럼 어떤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관객들이 어떻게 평가할까가 궁금하고 걱정스러운 순간이 있었는데 결국에는 기준이 너무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되니까 더 내적으로 실을 기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무엇보다 우리가 정말 좋아서 하면 좋겠어요. 

올해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소감

너무 기쁘고 행복해요! 누구나 어떤 낯선 환경에 가면 내 정체가 명확하게 보이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중국, 일본, 프랑스에 갔을 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여기 안에 있을 때는 우리는 이런 색깔인 것 같다고 느꼈던 어떤 정체성을, 나를 바깥에서 보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낯선 문화와 어떤 인식들이 새롭게 만들어주는 게 있더라고요. 저희는 소극장 공연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관객들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느낌도 있고요. 최대한 많은 문화권에서 경험해보고 잠깐이라도 그 문화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그 사람들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고 싶고요.

팸스초이스를 위한 양손프로젝트의 초이스

<여직공>은 저희 작품 중에 가장 신체적이고 비언어적인 표현, 소리, 움직임 이런 것들이 많이 있고, 좀 이미지적이고요. 세트가 없으므로 투어하기도 좋고. 이게 일제강점기 한 소녀의 이야기인데, 굉장히 특수한 상황이잖아요. 이러한 개인의 갈등은 특수한 상황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문화권이나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어요. 

▲ 박지혜 연출가 © 이강혁

▲ 박지혜 연출가 © 이강혁

서울아트마켓에 참가하면서 기대하는 부분, 해외진출 계획

<여직공>은 처음에 학교 복도에서 발표했고 그다음엔 공장을 개조한 갤러리에서 공연해서, 외국에 나갔을 때 극장이 아닌 공간, 대안공간이라고 불리는 그런 다양한 공간에서 관객들을 만나보고 싶은 기대도 있어요. 팀원들한테도 물어봤어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원하는 지역을 말해보라고. 프랑스에 간다고 했을 때 정말 간 것처럼, 말하는 대로 되기 때문에! 저는 독일, 종욱 오빠는 헝가리, 주희는 노르웨이, 지원이는 스위스, 상규 오빠는 아르헨티나. 이 중에 한 군데 가면 좋겠다, 가게 될 것이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하면서요.  

진정으로 서로를 깊고 넓게 이해하며 누구보다 진지하게 연극을 탐구해나가는 양손프로젝트. 진짜 가족 같은 이들이 정말 좋아서 하는 연극을 독일, 헝가리, 노르웨이, 스위스, 아르헨티나에서도 함께 나눌 그 날이 오기를,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함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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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춤으로 묻고 삶으로 답하다]]> 춤으로 묻고 삶으로 답하다
 


순수한 몸 자체만의 언어가 과연 어디까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 시작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벌써 단체의 10주년을 앞두고 있다.
한국사회의 예술단체로서 10년을 지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몸에 대한 색다른 해석과 독창적인 안무로 주목받고 있지만, 단체는 춤을 추는 것이 직업으로써 존중받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시 순수한 몸으로의 회귀를 기다리며, 2016 서울아트마켓을 준비하고 있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를 만났다. 

▲ 필자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김보람 안무가와 장경민 대표 © 이강혁

▲ 필자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김보람 안무가와 장경민 대표 © 이강혁

최근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근래 주요관심사가 궁금하다

전통의 요소를 가지고 작업에 접목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현재 대중들에게 주목 받고 있지 못하지만, 전통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작업과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 아닌, 재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단원들과 리서치를 통해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안무가로서 작업의 방향성과 단체로서의 작업방향의 틈은 무엇인지, 각각의 작업의 방법론은 무엇인가

안무가 김보람은 확고하게 소리를 표현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소리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싶고, 사실 이 부분은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1년 내내 몸을 쓰고 연구해도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게 매력적이기도 하다. 춤의 본질, 무용수들의 소리를 표현하면서, 몸의 가장 궁극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지향점으로 두고 있다. 허나 이는 안무가, 작가로서의 개인적인 고집이고, 단체의 지향점과 방향성은 음악만을 고집해서 한 가지 방향으로만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타 장르와의 협업, 무용수들의 안무역량 강화, 대중과의 커뮤니티 작업 등,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단체의 활동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위한 단체의 구심점은 어디이고 그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속해서 작품을 올리고 수익을 창출하면서, 다양한 레퍼토리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작품을 개발하는 데는, 낯선 작업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고민이 요구된다. 이런 고민을 단원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무용수에게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역할을 갖게 하는 것이 개인뿐 아니라 단체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 작업을 통한 지역사회와의 관계 맺음 또한 이런 방향성의 일환이기도 하다.

지금의 예술계는 작가 중심의 프로젝트 형식으로 생존하는 방식인데, 우리는 단체로서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과 춤을 추는 것을 직업으로 현실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런 환경의 조성은 결국 지속성을 가지고, 직업으로써 단체가 살아남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좋은 작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법론을 찾아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비단 좋은 작품을 만들고 레퍼토리화 시키는 것이 매번 생존과 직결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작업을 하기 위해, 단체 내에서 무용수가 개개인의 댄서로만 머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원들이 본인이 주체가 되고 책임질 수 있는 조직의 일원으로, 구성원 개개인의 역할에 대해 뜻을 함께 공유하며 운영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 직업으로써 단체의 의미는 무엇인가

현재 단원 5명과 작업에 따라 객원무용수들이 협력하고 있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데, 최소한 매달 3회 이상은 공연을 해야 최저 생활이라도 가능하다. 이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정말 많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가가 직업으로써 존중을 받는 것조차 당연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고 아직도 최저임금조차 못 받고 작업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또한, 상당수 예술가가 이런 보장과 대우가 없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 또한 지속적인 문제에 큰 영향이 미친다고 본다. 내가 하는 일이 직업으로써 자리를 잡으려면 직접 환경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단체의 발전과 가능성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존중과 같은 의미이다. 이 일을 직업으로써 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김보람 안무가와 장경민 대표 © 이강혁

▲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김보람 안무가와 장경민 대표 © 이강혁

올해로 9년째 활동하는 단체로서, 지금까지 전환점이나 변화의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상주예술단체로 선정된 것이 단체의 큰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2년 전 팸스초이스에 선정되기 전만 해도 프로젝트형 그룹이었고, 단체의 안정적인 운영과 작품으로 생존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해 무용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 우연히 강은영 기획자를 만나 함께 단체로서의 가능성을 도모하고자 했는데, 가장 큰 조력자였던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단체의 존폐에 대한 내부의 많은 회의가 있었다. 고심 끝에 그 빈자리를 단원들이 모두 합심해서 채우자는 쪽으로 정리했고, 상주단체로 운영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를 계기로 모든 단원의 마음가짐에 큰 변화가 있었다.

상주단체 선정과 안산으로의 거점이동은 작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한다.

공연의 안정적인 작업이 지속 가능하며, 연습할 공간이 있다는 것은 단체로서 굉장한 힘이고 장점이다. 다만, 작업할 공간과 극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없다는 것은 힘든 현실이기도 하다. 사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으로 거점을 옮긴 것은 관객에 대한 고민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서울에서 작업할 때 주요 관객은 문화 관계자와 지인들이 위주였는데,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의 경우 일반인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일반 관객들에게 무용을 잘 알리고 싶다는 의무감과 의욕도 컸다. 일반시민의 다양한 관심을 끌어내는 방법을 찾고, 상주단체로서 무용을 고정으로 볼 수 있는 지역의 시민들을 개발하는 것은 끊임없는 고민 지점이다.
모객의 측면에서 지금까지는 안산문화재단과 극장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는데, 요즘 줄어드는 관객을 보며 관객개발에 대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작품을 만들 때 관객개발에 대한 고민은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 궁금하다.

현대무용이라는 것이 항상 재미있거나 대중의 취향을 맞추기는 힘든 지점이 있지만, 대중들의 일반적인 문화로 자리를 잡을 방법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의 관객이 누구인지 계속 질문하고 있으며 최대한 열어놓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바디콘서트> ©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 <바디콘서트> ©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신작의 개발뿐 아니라, 단체의 레퍼토리화 작업에 대한 계획은 어떤가

현재 <바디콘서트>의 경우 다양한 레퍼토리로 발전시키고 있으며, 또한 야외공연에 대한 작품개발도 지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장소와 환경에서 공연할 수 있는 레퍼토리의 개발은 단체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높이는데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무용계 지원만 받다가 최근 야외공연을 진행하다 보니, 다양한 단위에서의 프로젝트 제안이나 공연을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는 것 같다. 이런 작업 방식을 통해 관객의 집중력을 모을 수 있는 훈련도 되는 것 같다. 야외공연과 극장공연의 병행이 상호 도움을 주고 있다. 향후 어떤 단체로 규정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최대한 도전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실험해보고자 한다. 그래서 특히 단체의 운영방향과 시스템화 시킬 수 있는 기획의 측면에서 보강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품은 지속적으로 관객을 만나면서 그 완성도를 더해간다. 작품제작을 위해 많은 시간, 노력, 비용을 투여하는 데 비해 작품의 재공연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무용 역시 신작의 비율이 재공연보다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신작지원에 대한 지속적인 시스템 문제 외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연간 천여 개의 신작이 올라가는데, 특히 무용계가 심하다고 생각된다. 한국문화 자체가 너무 빠르고 새로운 것에 대한 요구가 심하다는 것, 졸업 후 독립된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에 대한 교육과 환경조성이 안 되어 있다는 점 또한 영향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재공연의 경우,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기존의 멤버가 함께 고민하고, 그 고민을 토대로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데, 매번 무용수가 바뀔 수밖에 없는 환경의 문제도 크다고 생각된다. 무용수가 바뀌면 사실 처음부터 작품을 다시 만드는 것과 같아 재공연으로서의 가치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2016 팸스초이스 선정 소감과 <바디콘서트>의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2014년에 이어 다시 한 번 2016 팸스초이스로 선정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2014년 팸스초이스를 통해 선정된 <인간의 리듬>은 뉴욕시티센터(New York City Center) 스튜디오에서 공연되었다. 그리고 내년 2월 일본 무용팀과 레지던시 계획을 하고 있다. 이번 팸스초이스를 통해 오랜만에 서울에서 공연을 올리게 되었는데 특히 이번 공연장소가 바디콘서트 초연을 올렸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어서 더욱 감회가 새롭다. <바디콘서트>는 단체의 지향점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어서, 공연할 때마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설렌다.
<바디콘서트>는 이번 팸스초이스를 시작으로 올해 10월까지 3~4회 정도 공연이 진행될 예정인데, 우선 최대한 공연을 완성도 있게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이번 작업에 임할 생각이다. 또한 <바디콘서트> 작품으로 뮤지컬 시장으로 진입해보고자 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뮤지컬 시장 진입은 새로운 국면인데, 뮤지컬 영역으로의 진입 시도는 역시 활동영역 확장의 개념인가? 뮤지컬 진입을 위한 작품의 변화요소가 있는지 궁금하다.

뮤지컬은 다른 장르에 비해 고정관객이 있다고 보이는데, <바디콘서트>가 뮤지컬을 보던 관객들에게 신선한 전환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무용수 몸의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기도 하다. 또한, 장기공연에 대한 실험도 고려하며 욕심을 내고 있다. 뮤지컬 진입을 위한 작품의 변화요소는 없다. 지금의 <바디콘서트>로 무용수의 역량을 최대한 강화하는 것만으로 우선 시도할 생각이다. 다만 프로그램의 구성 혹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이 너무 추상적이지 않도록 기획하고자 한다. <바디콘서트>가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피드백과 지금까지의 <바디콘서트>의 성장을 통해 용기를 내보고자 한다.  

▲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장경민 대표와 김보람 안무가 © 이강혁

▲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장경민 대표와 김보람 안무가 © 이강혁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단체의 소감은 어떤가

내년에 지금까지 레퍼토리 7~8개 정도를 ’애매모호한 밤’이라는 콘셉트의 페스티벌형식으로 정리해보고 싶다. 현재 문화계의 흐름과 작업방식이 움직임에서 개념 그리고 다원과 협업의 구조로, 공연의 장르 구분 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다시 몸과 춤의 순수함에 집중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점에 단체의 지향점이 맞물려 좋은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0주년, 지금까지 온 것도 정말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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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달래와 함께한 8년의 노마드 지도]]> 달래와 함께한 8년의 노마드 지도
 


2009년, 프랑스 샤를르빌에서 ‘달래’를 처음 만났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이던 소녀가 프랑스의 많은 관객에게 큰 환호를 받았던 그 순간을. 그 이후로도 나는 ‘달래’와 2년을 함께 여행했었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청소년 극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예술무대 산’과 ‘달래’를 생각하면 고향이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예술무대 산의 조현산 대표님을 인터뷰 하러 가는 이 날도 그렇게 고향을 가는 것처럼 설레었다.
그 길에, 몇 가지 키워드가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진심, 인연, 결실, 꿈, 공동체, 보편성, 근원, 시간과 공간

▲ 예술무대 산 © 공식홈페이지

▲ 예술무대 산 © 공식홈페이지

#진심

‘달래이야기’가 올해로 8년째 되었다. 지금까지 해외 몇 개국에서 공연 했나? 그리고, 지금도 많은 곳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달래이야기’ 작품의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2009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25개국 50개 지역에서 공연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길게 사랑받을지 몰랐다. ‘달래이야기’의 생명이 참 긴 것 같다. 그 생명력의 원천은 ‘진심’인 것 같다. 완벽히 훌륭한 작품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장 큰 미덕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의 레퍼토리 중에 가장 오래 공연했고, 가장 연습도 많이 하는데, 가장 많이 힘들고, 긴장하는 작품이 ‘달래이야기’이다. 관객들이 우리가 쌓아가고 있는 시간을 함께 느끼는 것 같다.
사실 대단한 스펙터클이 없지만, 인간의 삶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느끼고 사는 평범한 일상.
총, 칼 든 전쟁이 아니라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수없는 전쟁과 갈등 속에 살고 있지 않는가. 거대한 아젠다가 우리를 둘러싸 있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우리 삶을 지속시켜주는 일상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관객이 이러한 부분에 공감해주는 것 같다.

#우연과 필연

‘달래’는 특별한 인형이자, 대단한 연기자 같다. ‘달래’를 만날 때마다 숨겨놓았던 어릴 적 느낌들이 살아나는 것 같다. ‘달래’는 어떻게 왔고, ‘달래’가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달래’가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재미있는 것은 ‘달래이야기’의 구조가 단순한데, 모두 자기 삶과 경험에 비추어서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이 전쟁이 아니라 하더라도 관객의 삶, 고통, 견딘 시간을 ‘달래’를 통해서 많이 투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실은 가장 약한 존재, 어린 아이이자, 소녀인 것으로 설정된 부분도 큰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도 ‘달래’는 인형이 아니라, 동료, 가족 같다. 

‘달래’는 여러 과정을 지나서, 2009년에 탄생했고, 그때부터는 하나의 인형과 함께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형을 만드는 기술이 있으면 똑같은 인형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똑같은 인형은 어렵다. 예를 들어 ‘달래이야기’의 강아지는 네모난 보자기로 만든 것인데, 여러 강아지 인형을 만들었는데, 최종적으로 막 연습하다가 즉흥적으로 만든 것인데, 그 이후로 똑같이 하려고 했지만, 그 인형 느낌이 안 나더라. 사람도 생명이 있지만, 인형도 생명이 있는 것 같다. 가끔 그 생명이 영원하진 않을 텐데 언제까지 같이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 <달래이야기> © 예술무대 산

▲ <달래이야기> © 예술무대 산

#반복과 결실

‘달래이야기’ 작품이 나오게 된 과정은 어떠하고, 예술무대 산의 작업방식은 어떠한가?

‘달래이야기’가 나오기까지는 어디가 출발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2002년에 전쟁 소재 공연을 만들었고, 또 다른 버전을 만들었고, 그리고 ‘달래’를 종이로 만들고, 또 다양한 형태로 만들다가 2009년에 ‘달래이야기’로 공연의 형식과 방향도 모이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주제를 정하고, 지속해서 제목을 바꾸는 등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이다. 맨 처음 정한 주제가 숙성의 시간을 계속 갖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작가도, 연출도 바뀌어서 완벽히 다른 작품이 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 한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반복적이고,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지만 그 세월의 공력이 작품 속에 쌓여가는 것이 느껴진다.      

#보편성

전 세계 곳곳에서 공연했는데, 인상 깊었던 해외 관객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나라마다 반응은 천차만별이었지만, 대부분 다 공감해주었다. 늘 따뜻하게 환대를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 후기 중 하나가 있다. 일본관객 중에서 아내가 남편이 직장을 다니는데 무척 무뚝뚝해서 집에 오면 TV보고, 밥 먹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아내가 ‘달래이야기’가 너무 보고 싶어서 사정해서 남편과 같이 공연을 보고 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특별히 감상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데, 그날은 남편이 TV를 보지 않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남미 브라질에서는 800석 규모의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 왔는데도 너무 열광적으로 박수를 쳐서 무척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입장 못한 관객은 공연을 야외에서 모니터로 보고, 우리 공연이 축제 같은 공연은 아님에도 축제처럼 즐긴 경험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동유럽 에스토니아 광장야외무대에서도 쇼케이스를 했었는데, 처음에는 사실 뜨거운 여름날에 시끄러운 야외공간에서 우리 공연을 하는 것이 안 맞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갑자기 조용해졌고, 특히 10분~15분 동안은 관객들의 집중도가 엄청났는데, 그 정적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관객들이 다가와서 다양한 질문도 해주었고 또 그들이 느낀 여러 가지 소감을 듣기도 하였다.  

#공동체

예술무대 산의 창립멤버(조현산 대표, 오정석 기획실장)가 함께 한 지 15년 가까이 되었다고 들었다. 대단하다. 어떻게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었나, 그 비결은 무엇인가?

우리도 신기하다. 우리는 언제든지 갈라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자고 한다. 수도 없이 싸우고, 위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이상을 공유하는 부분이 큰 것 같다. 우리는 지금 함께 작업하는 배우와 스탭들이 ‘예술무대 산’을 각자가 하고 싶은 도구로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예술무대 산’은 궁극적으로는 인형이라는 메소드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이는 정신적, 물리적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 공간, 공동체였으면 한다. ‘예술무대 산’의 뜻처럼 살아있는 공연을 실험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 <달래이야기> © 예술무대 산

▲ <달래이야기> © 예술무대 산

#인형, 인형극

인생에서 처음에 왜 인형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사실 인형극에 대한 편견도 꽤 많은데, 인형극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형이 대개 원시적이고 직접적이지 않나. 처음 선택할 때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지금 뒤돌아보니 그래서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여백이 많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관객과 만날 때 인형은 더 여백을 많이 보여주는 예술인 것 같다. 다른 예술 장르와의 차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백을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인형이 표정이 없지 않나. 그 여백을 관객이 채워가는 것이다. 관객은 상상한다. 달래가 표정이 없는데, 관객들이 달래 표정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별히 코와 입, 눈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데 관객들이 읽어내는 표정 이야기가 참 신기한 지점이다. 마치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는 인물의 모습, 냄새, 배경 등을 다 상상하지 않나. 상상력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표현수단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형극이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력이 확실히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싶다. 인형극을 하는 세월이 쌓여 그 인형극의 매력(여백, 상상력의 발견)에 빠지게 된 것 같다. 

사실 인형극을 장르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이 메소드를 사용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내가 관심 있고, 잘하는 것이 인형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하는 것이다. 무용, 마임 등 여러 장르에서도 인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나. 직관적이고, 시각적인 것으로 전 세계 연극 흐름이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형을 기능적, 장르적, 수단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우리 현실이 아쉽다. 

인형이 가진 근원적인 매력이 있다. 원시적이고, 스펙트럼이 넓다. 그 원시성에서 우리는 계속 생경함을 발견해나간다. 다른 장르와 좀 더 섞이고, 표현되고, 연구되고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매력을 많이 발견해내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도 인형에 대해서 연극의 또 하나의 메소드로서 다양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준비와 검토가 더 이루어지면 좋겠다.

#노마드

이번 서울아트마켓의 타겟은 중동이다.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소감 및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번에 팸스초이스에 처음 선정되어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간 <예술무대 산<은 그동안 유럽과 아시아쪽으로 공연투어를 많이 다녔다. 이번에 서울아트마켓에서 중동을 타겟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부분에 기대가 크고, 중동지역 초청손님들이 <달래이야기> 공연을 보고, 어떻게 느낄지 무척 궁금하다. 달래가 중동지역의 관객과 만날 날을 기다린다.

공연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느낌은 어떠한가. 8년의 여정 동안 각기 다른 나라에서 열정적인 반응을 얻고 한국에 돌아오면 어떠한지 궁금하다.

그 순간에는 보람, 기쁨을 다 느끼는데, 그런 만큼 부담도 많이 생긴다. 우리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좀 더 많이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도 생명처럼 느껴지는데, 이 수명이 언제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 오래 살아있길 바라는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것을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 어떠한 계획이 있는가?

‘달래이야기’로 9월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그리고, 캐나다 팀과의 합작인 ‘박스’가 내년에 캐나다 2개 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이다. 신작으로는 오는 10월에 ‘굿나잇 앨리스’를 공연할 예정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주제로 공연이 아닌 체험, 전시, 퍼레이드 등의 작업을 했었는데, 이제는 다시 공연으로 만들고 있다. 이렇듯 하나의 이야기에 대한 그냥 하나의 ‘공연’이 아닌 ‘경험’으로서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재밌는 것 같다. ‘굿나잇 앨리스’는 4~5세 아이들의 애착인형, 잠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소재로 인형과 영상을 접목해서 실험하고 있다. 홀로그램, 3D Mapping 등 다양한 영상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 <달래이야기> © 예술무대 산

▲ <달래이야기> © 예술무대 산

2009년 처음 만난 ‘예술무대 산’은 나에게 늘 소박한 감동을 주었다. 몇 년의 세월이 만난 현재도 ‘예술무대 산’은 억지가 없었다.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이 한 작업을 대단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낳은 우연을 믿고, 그것을 필연으로 만들어 작업 하고, ‘달래이야기’와 함께한 8년의 노마드의 여정동안 쌓인 시간과 공간을 차분히 응시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인형을 통한 여백과 상상의 경험으로 관객을 이끌어주는 힘과도 분명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술무대 산’의 15년이 가능했던 것이고, 앞으로도 더욱 증폭, 확장되리라 믿는다. 천천히, 차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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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오롯이 몸, 여전히 춤에 대한 사유들]]> 오롯이 몸, 여전히 춤에 대한 사유들
 


몸을 움직여 철학적 사유를 춤추는 사람도 있고, 철학적 사유를 몸으로 드러내는 춤도 있다. 최은진 안무가는 생각을 몸으로 치환하고, 그 치환된 몸의 움직임이 춤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거기에 언어가 개입한다. 몸의 움직임 사이로 끼어드는 말은 시차를 두고 몸과 충돌하며 갈등한다. 그래서일까? 최은진의 공연은 움직이는 순간보다 언어와 몸이 정지하는 순간,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자신을 부를 때 안무가가 아닌 공연예술가 같은 다른 수식어가 있을지 찾아보고 있다는 최은진이 깊게 빠진 고민은 역설적으로 오롯이 ‘춤’에 대한 고민이자 ‘안무’에 대한 고민이었다. 신선하게도!

▲ 필자와 최은진 안무가 © 이강혁

▲ 필자와 최은진 안무가 © 이강혁

2016 팸스초이스 선정작 <유용무용론> 이야기부터 해보자. 팸스초이스는 국내 관객이 아니라 국내외 해외 공연관계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해외 마켓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유용무용론>의 재공연 기회를 가지고 싶었는데, 마침 서울아트마켓 지원시기와 맞았다. 최초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노동자로서의 몸과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마찰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해외를 겨냥한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유용무용론>은 신체에 가해진 효율성에 대한 기준에 대항하는 하나의 즉흥 소극 같은 공연이다.

안무가이면서 생업을 위해 일을 하는 노동자로서의 몸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했다. 노동하는 몸과 춤추는 몸은 어떻게 구별이 되는가?

성인으로서 신체의 유효함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 신체가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자본의 획득으로 연결되지 않는 신체는 유효하지 못하다고 느끼며 절망하던 시기였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허락되는 신체의 모양으로부터 지속해서 탈출하고 다른 가치로서의 신체성을 발견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한 우물을 파라는 주변의 충고가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기능을 못 할지 알았나. 내 주변의 사람들 또한 그러한 모순을 그저 안고 쓴웃음을 지으며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계속하고 있는 듯 보였다. 자기 앞가림도 못 하고 무슨 예술인가 하는 자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러한 모순적 상태 자체를 포용할 필요가 있었다.

▲ <유용무용론> © 최은진

▲ <유용무용론> © 최은진

일종의 쇼케이스 개념이라 작품 속의 다양한 사유들을 줄여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일정이 임박해 턱걸이로 합류하게 되어서 아직 연습을 많이 하지 못했다. 처음 지원을 할 때는 초연 이후 2년간 이 주제에 대해 나름대로 했던 일상에서의 시도들을 녹여내 다른 방식으로 도출해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꼭 일정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러 번 고려해 보니 당시 그대로의 공연이 갖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신체하는 안무>도 그렇고 <유용무용론>도 그렇고 일정한 공연시간 안에 어떠한 신체의 변화를 일으키는 작전을 짜는 게 관건인데 45분 공연을 20분 안에 보여주기 위해서 밀도를 높일 방법을 모색 중이다. 

올해 초 서울무용센터에서 진행한 레지던시 교환 프로그램 SPACE RED(Research and Exchange for Dance)1)의 첫 번째 안무가로 선정되어 뉴욕 무브먼트리서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다녀왔다. 이때의 경험이 공연에 반영이 되었는가?

그 당시의 경험이 ‘나’라는 개인에게 반영되었기 때문에 공연에 미치게 될 영향이 없다고 볼 순 없지만, 직접적으로 공연의 내용을 변형한 것은 없다. 하지만 해외 레지선시 경험은 나 자신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가기 전에 했던 생각이 더 확고해져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공연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처한 예술 생태계라고 해야 하나, 그 조건이나 환경을 더 좋게 만드는 것 또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을 위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오지랖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은 나 스스로가 오래 잘하고 싶어서 그렇다. 다시 얘기하면 공연의 내용이라기보다 공연을 만드는 나의 태도나 마음가짐에 반영이 되었다. 

이력이 남다르다. 안무가가 된 이야기가 궁금하다.

내가 하는 것이 안무라는 의식을 가지고 했던 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전문사 과정 다니는 동안 학교 안팎에서 만든 작업인 것 같다. 문래동에 토요춤판이라고 매주 토요일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보여주는 플랫폼을 온앤오프 무용단이 주최하였다. 그때 그룹 서어라는 이름으로 장현준, 윤정아, 김정아와 함께 문래동 일대를 투어하는 장소특정적 솔로 공연들을 진행했었다. 공연예술이라는 걸 연극을 통해 처음 접했을 땐 안무나 연출이 하고 싶었다기보다 공연에 출연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점점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 나의 신체에 관심, 호기심을 갖게 됐다. 

오랜 숙련이 필요해서 무용수는 대부분 무용전공자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무의 경우에는 타 장르를 경험한 후 유입된 그룹이 있다. 최은진 안무가는 무용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용계가 전공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곳이라면 나는 정확히 외부에서 유입된 그룹에 속한다. 대학교 전공이 컴퓨터였으니까. 내가 무용인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라면 고민이 좀 있었다. 나는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 그걸 더 잘하고 싶어서 신체단련에 많은 시간을 쏟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춤을 잘 못 춰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편견을 피하려고 진짜 춤 도사가 되고 싶기도 했다. 동시에 그러한 몸이 모든 무용과 춤의 자리를 점유하는 것이 불만이기도 해서 ‘아! 다 무용이잖아요.’ 하고 우기면서 작업했다. 근데 이제는 우기는 게 좀 지치기도 했고, 그러한 정의나 확장의 경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른 방향성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요즘엔 안무가에 더해 내 자신을 지칭할 다른 이름을 찾는 중이다. 

약간 예민한 질문이기도 하다. 어떤 무용수를 선호하는가? 안무가의 깊은 사유를 몸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고도의 숙련이 된 (무용전공자) 무용수가 필요할 것 같다.

일단 즉흥이라는 것이 결국 무용수들이 실시간으로 선택을 내려야 함을 의미한다. 연습은 작품에 맞게 그러한 선택의 종류를 정하고, 가짓수를 줄이며, 연습을 통해 같은 영역 안에 있는 것을 습관화하면서 유사한 결의 신체성을 습득하는 것에 집중한다. 방금 이 문장 자체도 길었는데, 결국 형태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방법과 거기에 신체를 연결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화가 매우 중요해진다. 위성희, 윤상은 두 사람은 뛰어난 작업자들인 데다 본래 말이 잘 통하는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게다가 두 번 이상 작품을 함께 하면서 공통의 어휘를 획득하게 됐다. 앞으로 나의 작업방식이 또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기본적으로 대화에 큰 무리가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1) Space RED는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서울무용센터의 움직임 리서치 중심의 국제교류 사업입니다. 서울무용센터는 움직임에 대한 무용예술가와 타 장르 예술가의 리서치를 해외 기관과의 아티스트 교류, 국제 워크숍, 아카이빙 사업 등을 통해 지원하는 국제안무센터로서 기능할 예정입니다. [출처: 서울무용센터 홈페이지]

▲ 최은진 안무가 © 이강혁

▲ 최은진 안무가 © 이강혁

사유를 몸으로 표현하고, 그 표현이 춤으로 드러나는데, 다시 최은진 안무가의 작품에는 ‘말’이 존재한다. 어떤 의미인가?

처음에는 말보다는 몸이 더 솔직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재성이 도드라지는 방법들을 연구하다 보니 즉흥이라는 장르를 통해 상태의 변화를 만들고, 신체의 존재감이 바뀐 어떤 상태가 되는 것이 안무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신체하는 안무>는 몸과 언어 사이의 거리/시차로 발생하는 안무에 대한 작업이었다. <유용무용론>에서 언어는 서로 다른 신체성(노동/무용)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통합시키려는 모순에 관한 것이다. 주의해서 봐야 하는 것이 이도 저도 못하는 신체의 갈등에 있었기 때문에, 움직임이 미끄러져 나오기 직전의 정지/마찰 상태에 주목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제까지의 이력을 보면 ‘젊은’, ‘연구하는’, ‘철학하는’ 등의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예술가로서 늘 사유하고, 실험하는 모습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을 것 같다.

최은진은 언제까지 워크숍 같은 형태의 공연만 할 것인가, 평하는 분들도 있었다. 늘 탐구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지만, 그 연구 과정 사이에 만들어진 작품은 무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관점과 고민을 담고 있다. 당연히 준비하는 기간에 만들어진 작품은 그 자체로 극이며 완결형인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연구하고 학습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도 좋다. 

사유하는 안무가에게 관객은 어떤 대상인지 궁금했다. 학습되어야 할 대상인가? 경험해야 할 대상인가?

학습도 경험도 관객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려는 이야기를 관객들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앉아서 들어준다면 그걸로 좋다. 언뜻 와닿지 않아도 호기심을 가져주면 금상첨화겠지만, 중간에 나가면 할 수 없고……. 관객으로서 나는 공연 볼 때 둘 다 하지만 학습의 비율이 더 높은 거 같다. 

▲ 최은진 안무가 © 이강혁

▲ 최은진 안무가 © 이강혁

팸스초이스를 통해 해외 공연의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의 해외활동과 앞으로 계획에 대해 들려 달라.

세 번 해외에 나가봤다. 처음은 아르코의 AYAF프로그램으로 오스트리아의 임펄스탄츠 페스티벌(Impuls Tanz Festival) 공연을 보러 간 것이었고, 두 번째는 웨일즈 국립극단이 기획한 썸머캠프(Summer Camp with National Theatre Wales)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으며, 마지막이 서울무용센터를 통해 다녀온 뉴욕 무브먼트 리서치(Movement Research) 교환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빈에 갔을 때는 생전 처음 겪는 동양 여자라는 정체성과 나의 현대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혼란스러웠고 두 번째는 예술하기의 자유로움을 상기시켜준 귀한 기회였다. 그런데 이때는 공연하기는 했어도 참여한 예술가들이 관객이었다. 이른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했던 것은 뉴욕에서였다. 쓰고 보니 여러 가지로 기관과 국가 지원금의 혜택을 받는 행운이 있었음을 실감한다. 감사하게도 그런 활동들이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을 넓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거여서 공연자로서 지속을 위한 좋은 자양분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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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끊임없는 성찰로 동시대 유효한 춤을 건네는 안무가 전미숙]]> 끊임없는 성찰로 동시대 유효한 춤을 건네는 안무가 전미숙
 


전미숙은 자전적 이야기를 작품으로 이끌어내는 예민한 통찰력, 정제된 움직임과 치밀한 무대구성력을 인정받으며 30여 년간 국내외에서 활약해온 안무가이다. 1981년 현대무용 탐(TAM)1)이 창단되면서 안무가와 무용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8년 『세계현대무용사전(International Dictionary of Modern Dance)』에 등재되었고, 같은 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무용가 양성에 힘써왔다. 특히 2010년과 지난해 공연한 〈아모레 아모레 미오〉가 다수의 무용상을 수상하면서 중견 안무가로서의 흔들림 없는 위치를 입증하기도 했다. 

여전히 땀 냄새나는 춤의 기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무의 개별성과 경계를 고민하는 안무가 전미숙에게 올해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의 무대가 주어졌다. 9월 독일의 탄츠메세(Internationale Tanzmesse NRW)의 공식 쇼케이스 선정 작품이기도 한 〈바우(BOW)〉는 이번 팸스초이스를 통해 국내 초연될 예정이다. 인터뷰 내내 자기 성찰의 자세로 동시대성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중견 무용가의 위엄 대신 겸손함이, 천부적 자질 대신 온전한 노력으로 구축한 춤 세계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1) 이화여대 무용과 대학원생들에 의해 1980년에 창단. 탐 무용단은 다양한 이념과 주제, 현상들을 그들 작업의 텍스트로 사용하여 춤작업의 다각적 접근을 통해 우리나라 현대무용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출처: 현대무용단-탐 홈페이지]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1980년대부터 현대 춤 안무가로서 활동해 오셨습니다. 30년 넘는 춤 작업을 축약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난 춤 작업을 돌이켜보면 10년 정도의 주기로 작품성향이 변화했어요. 8~9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은 저의 정체성이나 사회문제에 관한 주제를 많이 다뤘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기존의 불합리한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반골 기질을 내면에 갖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나타났던 것 같아요. 대외적으로 알려졌던 것은 1987년 현대무용 탐의 이름으로 대한민국무용제(현 서울무용제)에 참가했던 〈얼굴찾기〉라는 안무작이었습니다. 주최 측으로부터 연기상을 받았는데 평단은 심사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별도의 심사를 단행했고 저의 안무작을 대상으로 선정해서 이슈가 됐었지요.

초기 작품들은 세태 속의 개인과 집단을 해부하여 당시 사회 분위기를 밀도 높은 무대구성력으로 형상화했던 것 같습니다. 90년대 중반 이후의 작업이 다른 양상을 갖는다면 그 변화에 특별한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걸까요?

영국 런던 컨템포러리 댄스 스쿨(런던현대무용학교, London Contemporary Dance School)에서 수학할 기회가 생겼어요. 이미 10년 넘게 무용계에서 활동하다가 용기 있게 건너간 상황이라 컨템포러리 댄스에 관한 기술적인 뭔가를 얻고 돌아가겠다는 투지도 매우 확고했죠. 영국 생활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무언가를 얻고 배우겠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의 변화인 것이지, 테크닉을 배우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부분이 아니었던 거예요. 영국에서 돌아온 후 작품의 성향도 서정적이고 전보다 자연스러운 느낌의 것으로 바뀌었죠.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흐름은 어떻습니까? 리뷰에서 ‘수학적으로 잘 계산된 역동적인 움직임’, ‘정제되고 정돈된 무대’라는 내용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요.

원래 제가 자기반성을 잘하는 성격이에요(웃음). 훌륭한 댄서의 비주얼도 아니고, 스스로 예술가라고 지칭할만한 캐릭터를 갖추지도 않은 것 같아요. 예술가, 무용가라고 하기에는 감정에 동요되지 않는 다분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도 중견 무용가라는 호칭으로 솔로무대에 서고 작품을 만들고 있더라고요. 아직 왜 무용을 하고 있을까, 용기가 부족해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이 가장 나다운 걸까 고민할 때가 많았죠. 나름대로 합리화한 결론이라면 나에게 춤은 하늘에서 주어진 운명과 같은 것, 그만큼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모든 창작자가 그렇겠지만, 자신의 기질을 담아야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잖아요. 예술가적 자질이 부족하다면 이성적인 기질을 바탕으로 관점과 구성이 논리적이고 수리적인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후에 만든 〈가지마세요〉나 〈반갑습니까〉 등은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에요. 결과물은 제가 원하는 만큼 방법론에서 치밀하거나 개념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그런 회의감에 만들어진 작품이 2010년에 초연, 지난해 재연한 〈아모레 아모레 미오〉였습니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춤이라고 하는 형태, 춤의 어휘를 배제한 움직임으로 풀어냈어요. 아직도 끊임없이 나다운 작품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씀드려야겠네요.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요즘 융복합, 탈장르, 인터랙티브 등의 용어가 춤 무대를 감싸면서 아이디어로 응집된 퍼포먼스 위주의 작품이 자주 눈에 띕니다. 반면 선생님의 작품은 특별한 테크닉을 보여주지 않아도 움직임 자체에 충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컨템포러리 댄스의 경계는 희미해졌어요. 근본적으로 우리가 춤을 통해 이야기할 때 다른 장르 혹은 분야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이냐는 질문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춤 작품에서는 ‘몸’에 대해 창작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평소 생각하시는 안무의 주안점은 무엇인가요?

제 작품의 중심은 움직임이죠. 움직임을 절제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런데도 상당히 많은 편이에요. 전체적으로 넓혀 본다면 조형미와 작품이 주는 이미지, 인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작품을 보고 나서 우리는 면면을 기억하기보다 마음속에 잔상을 남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형적인 아름다움이나 이미지 색채를 중시하게 된 것 같아요. 다행히도 제 안에 시각 쪽의 감각 혹은 기호가 내재하여 있었던 것 같고요. 이미지 구성을 위해서 오브제를 자주 활용하곤 합니다. 다만 간판처럼 사용하지는 말자, 그리고 더 이상의 활용이 안 될 때까지 극한대로 사용하자는 생각이에요. 오브제로 파생되어 나온 몸의 움직임에서부터 관객들의 마음에 남겨질 인상까지 연계 지점을 최대한 넓히고 충실히 표현하려고 하죠.

동시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무용인을 양성하고 계십니다. 안무법이 교수법으로 연결되고 있는지, 어떤 교육관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작업방식이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제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절대로 나처럼 하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어요. 이미 저와 제자들 사이에는 20년 이상의 시간차가 있는데 컨템포러리 댄스를 하고 있는 제자들이 저를 따라 하는 것은 동시대성을 지향하는, 혹은 당대에 만들어지고 생각하는 것보다 한발 앞서 제시해야 하는 예술가로서의 소명의식과 동떨어진 것이죠. 

한국의 도제식 교육에서 대부분 제자는 스승에게 순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제가 지적하는 즉시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수 있고 더 빠르게 성취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험난한 무용계에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할 힘을 기르는 거예요. 나의 성향이나 방식으로 자극하지 않고 오래 걸려도 그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 그렇게 자기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 선정작 <바우> 연습장면 © 황승택

▲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 선정작 <바우> 연습장면 © 황승택

올해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바우〉로 화제를 옮겨 보겠습니다. ‘인사’를 뜻하는 이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목표를 설정하고 안정적인 구조 속에 착실한 과정을 밟는 것이 그동안 저의 창작과정이었어요. 그 결과물은 잘 차려져 있는 밥상, 질서정연한 교과서 혹은 잘 만들어진 생산품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지금 우리의 사고방식, 창작의 방법은 전과 많이 다르죠. 내재해있던 것들이 펼쳐지거나 던져지고 예기치 않은 결과물로 드러나면서 창작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어요. 〈바우〉는 이제까지 제가 해왔던 무거운 접근에서 벗어나 주변에서 포착한 것을 가볍게 꺼내 든 작품이에요. 외국 초빙교수들은 한국 학생의 깍듯한 인사예절에 굉장한 흥미를 느끼고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라고까지 말씀하시더군요. 그들에게 이색적인 한국의 예절문화를 다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러나지 않는 겸손한 자세부터 숭배에 가까운 격식의 행위까지 한국 문화에 내재한 다양한 층위의 인사 제스처를 추출해 춤으로 작업해보고 싶었습니다. 

한국 문화의 다양한 인사법이 어떻게 담겨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무가의 입장에서 특기할만한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사란 상대에 대한 마음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서구와 달리 반가운 마음을 한 걸음 물러서서 소극적으로 겸손하게 나타내기도 하고 극도의 존경을 예를 다해 절도 있게 표할 때도 있어요. 블라인드를 연상케 하는 부채와 잔걸음, 멍석을 깔고 절을 올리는 제스처 등 오브제를 활용한 움직임이 작품 곳곳에 드러나 있어요. 음악은 모던테이블 댄스컴퍼니를 이끄는 김재덕 안무가가 맡아주었습니다. 원래 자신의 솔로무대에 사용된 음악인데 이 작품을 위해 정식 의뢰하여 다시 작곡되었어요. 김재덕의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분히 한국적이죠.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 안무가 전미숙 © 황승택

대부분의 국내 지원제도는 신진 안무가와 신작을 주목하고 집중적으로 지원해왔습니다. 최근 몇 년간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 무대에도 주로 젊은 안무가의 작품이 올라갔었죠. 한편으로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올해는 선정자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전방위적 활동을 보여주는 중견 안무가로서 이번 팸스초이스 선정에 남다른 소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국제교류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팸스초이스는 작품을 유통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창작자 입장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을 때 안무가의 연령대가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심사에서 주목받는 작품의 작업 방식은 저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세대 차, 작품의 성향 차이가 분명해서 저는 더는 적합한 대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도 저의 작품이 해외에서 어떻게 보일지, 아주 소수라도 제 작품을 인정해 주실지 다시 한 번 냉정한 평가를 받아보고 싶더군요. 심사 때 들었던 생각 때문에 이번 팸스초이스 선정소식은 다른 수상소식보다 몇 배 더 기뻤던 것 같아요. 해외에 내놓아도 좋다는 인정을 받은 것이니까요. 델리게이터의 선택을 받으면 항공료를 지원받을 수 있으므로 고민 없이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점도 기쁩니다. 우리 정서를 담은 기분 좋은 춤 작품으로 〈바우〉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팸스초이스 통해 다수의 해외 공연이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실 춤 창작에 그리 긴 시간이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아요. 다른 분들은 정년퇴직 이후에 더 활발하게 활동하시기도 하지만 저는 자기 비판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남은 시간 동안 안무가, 교육자로서 주어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9월에 있을 독일 탄츠메세와 10월 서울아트마켓에서의 〈바우〉, 서울아트마켓과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서 〈Nothing to Say〉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당장은 작품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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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전통을 사랑한 비보이(B-Boy)… 스트리트 댄스의 새 지평을 열다]]> 전통을 사랑한 비보이(B-Boy)… 스트리트 댄스의 새 지평을 열다
 


한국의 비보이(B-Boy)들은 유별나다.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까지 가서 기어이 우승컵을 들고 돌아온다. 비보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한국인은 독해요. 절대 지고는 못 살거든요.” 그래서일까. 지난 20여 년간 비보이들은 진화를 거듭했다. 특유의 집념과 열정 덕분이다. 2005년 공연을 시작한 넌버벌 퍼포먼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공연으로 브레이크 댄스와 발레를 접목했다. 2008년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고, 10년이 넘게 공연되는 장수 프로그램이 됐다.
2013년 방송을 시작한 엠넷의 춤 경연 프로그램 ‘댄싱9’은 브레이크 댄스의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하휘동을 비롯해 박인수·신규상·김기수·홍성식 등 스트리트 댄서들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트리트 댄서들은 발레, 현대무용, 댄스스포츠 등을 만나 융합과 변화를 거듭했다. 최근에는 현대 무용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연기하는 비보잉’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비보이들이 모인 예술가집단 ‘무대위사람들’은 영상 기술과 스트리트 댄스에 한국적인 정서를 불어 넣어 또 한 번 스트리트 댄스의 진화를 시도한다. 이미 해외 곳곳에서 창의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지난 달 이준학 무대위사람들 대표를 만나 2016 서울아트마켓(10월 4~8일)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묻고 들었다.

▲ 필자와 이준학 대표 © 이강혁

▲ 필자와 이준학 대표 © 이강혁

‘무대위사람들’을 소개해 주세요.

겜블러크루라는 브레이크 댄스 그룹과 애니메이션크루라는 팝핀 그룹이 2014년 연합해 만든 예술가 집단입니다. 서로 친하게 지내던 팀이었는데, “융복합 시대에 우리도 합쳐서 법인을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했어요. 월세 부담도 덜고요, 하하. 두 팀 모두 각자의 이름으로 활동하면서도,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국악팀, 현대무용팀 등과 연계해서 여러 공공기관의 초청 공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스트리트 댄스팀 하나만 가면 약하지만 국악, 현대무용이 함께라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거든요. 지금까지 2014년 유라시아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러시아, 벨라루스, 조지아,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6개국을, 2015년 두바이 패션 페스티벌, 홍콩 설 퍼레이드1), 아이슬란드 북극서클회의2)의 ‘한국의 밤’3), 한-보스니아, 사이프러스, 알제리 외교관계 수립 기념행사 등을 다녀왔습니다.

겜블러크루와 애니메이션크루는 어떤 팀인가요?

애니메이션크루는 ‘아메리칸 갓 탤런트’에 한국 대표로 본선까지 진출한 팀입니다. ‘팝핀계의 아이돌’이랄까요? 하하. 제가 속해있는 겜블러크루는 2002년 결성됐는데, 13년간 세계대회에서 50회 정도 우승했습니다. 국내 비보이들이 정말 잘해요. 우리는 힙합의 본고장도 아닌데 말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스트리트 댄스는 사실 한국인의 전통문화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해외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큰 호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희는 스트리트 댄스에 전통의 색을 입혔어요. 2014년에는 독도문화재단 공모 사업에 지원해 ‘춤의 시대’라는 넌버벌 공연을 제작했습니다. 평화의 섬에 사무라이 무리가 침략해요. 주인공을 제외한 주민들에게 가면을 씌우며 “나에게 복종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죠. 그런데 딱 한 사람만이 가면을 거부하고, 그 힘으로 섬을 원래 상태로 되돌립니다. 소품의 양을 줄이기 위해 배경이나 소품 등을 영상으로 대체했는데, 그렇게 영상을 결합한 브레이크 댄스 공연들을 선보이게 됐어요.

그 후 무대위사람들을 대표하는 무대가 된 것이 2016 팸스 초이스에 선정된 ‘오방색’이라는 공연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중요시했던 ‘조화로움’이라는 가치를 담은 오방색을 춤으로 표현했습니다.

1) 한 해를 시작하는 홍콩 설 축제의 하이라이트. 1996년 시작되었으며, 2007년 론니플래닛 블루리스트에서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로 선정되기도 함.
2) 북극 이슈에 대한 정부·학계·업계·언론계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대화를 촉진하고자 지난 2013년 그림손 대통령의 주도로 설립.
3) 제3차 북극써클(Arctic Circle) 회의에 비 북극권 국가로서는 최초로,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의 특별 요청에 따라 성사된 행사. 2015년 10월 17일 개최.

▲ 이준학 대표 © 이강혁

▲ 이준학 대표 © 이강혁

지금까지 10개국이 넘는 곳에서 해외 공연을 했는데요. 가장 인상적인 공연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지난해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공연에 갔을 때도 기억에 남아요. 남자들이 모두 보스니아 내전 때 전쟁터에 끌려가 여성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었어요. 저희 공연을 위해 한국어로 직접 “사랑해요 한국”, “고마워요”라는 팻말도 만들어주셨고, 호응도 엄청났었죠. 몸짓 하나로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벅찬 순간이었어요.

지난해 제20회 홍콩 구정축제를 위해 ‘스트리트 댄스 거리퍼레이드’를 기획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대위사람들 소속 예술가 40여 명이 축제를 위해 홍콩에 갔어요. 중화권 인구 4억 명이 온 오프라인으로 지켜보는 행사였습니다. 홍콩 거리 3㎞를 막아놓고 침사추이를 걸으며 춤을 췄어요. 스트리트 댄스의 본질이 ‘거리에서 추는 춤’이잖아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스트리트 댄스를 추는 느낌이었죠. 이 영상을 보고 서울디자인재단에서 공연을 요청하기도 했어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거리예술축제 ‘스트리트 댄스 거리퍼레이드’에선 이를 축소해 300m 거리에서 하는 춤을 선보였습니다.

기존의 스트리트 댄스와 다르게 공연의 연극적 요소들이 눈에 띕니다. 스트리트 댄스를 모르는 관객이라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일까요.

스트리트 댄서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이거예요. “그 머리에 뭐 쓰고 도는 애들?” 현대무용이나 발레는 뭔가를 표현하기가 쉬운데, 저희는 뭔가를 표현하거나 연기를 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엠넷 ‘댄싱9’에 겜블러크루 멤버 4명이 출연하면서 저희의 정체성도 조금씩 달라졌어요. 박인수, 김기수, 신규상, 홍성식이라는 친구들이 방송에 출연했는데, 거긴 스트리트 댄스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최고 춤꾼들만 모이는 자리잖아요. 그 친구들이 다양한 춤꾼들과 협업을 하면서 스포츠 댄스, 발레, 현대무용의 영향을 받아 왔어요. 그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문화융성위원회가 주최하는 ‘청춘마이크’4)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무대에 올랐는데 관객들이 저희 멤버 중 누군가를 보고 “현대무용수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자신들이 생각하던 딱딱하고 각진 브레이크 댄스와 달라서 ‘비보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아 우리가 현대무용과 브레이크 댄스를 엮어서 새로운 장르를 열어가고 있구나…’라고요, 하하.

‘연기하는 비보잉’인 셈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영화나 광고업계에서는 “비보이들이 춤은 정말 잘 추는데, 연기나 표현이 안 돼 아쉽다”고 많이들 하세요. 그래서 영화나 광고를 찍을 때는 늘 ‘대역’으로 들어가죠. 그런 한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들이 있어요. 박지훈 겜블러크루 대표는 2010년에 건국대학과 영화과에 들어가 졸업을 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어요. 연기에 꽂힌 거죠.

연기하는 비보이들이 늘어날수록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수 있게 돼요.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게 되니까요. 단순히 브레이크 댄스를 출 때보다 전달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아집니다. 겜블러크루가 서울시 대표 비보이 단일 때 현대무용가 김설진 씨와 협업해 만든 ‘심포니아’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꽤 파격적인 시도인데, 그렇게 타 장르와의 융합을 지속해서 추구하는 이유가 있나요.

“대한민국 비보이들 실력도 세계 최고고 방송에 나오면서 많이 유명해졌지. 근데 지금 다들 어디 갔지?” 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어요. 사실 굉장히 유명한 팀이었는데 와해 돼서 없어지는 팀도 많거든요. 그런 팀들을 위해 지자체에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게 많아요. 저희는 서울시 대표 비보이 단을 했었고, 진조크루5)라는 단체는 부천시의 지원을 받아 5년간 연습실 무상 임대를 받고 있습니다. 부천시는 진조크루와 함께 ‘부천 세계 비보이 대회’를 개최하게 됐으니 ‘윈윈(Win-win)’인 셈이죠.

4) 신인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문화가 있는 날 기획 사업. 청춘마이크를 통해 선정된 88인(팀)의 예술가는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대한민국 전역을 무대로 삼아 예술가와 전국민이 하나가 되는 축제를 펼친다. [출처 : 문화융성위원회]
5) 진조크루는 오를<진> 불사를<조> 불살라 오르다란 의미로 2001년 팀을 창단하여 불살라 오르는 팀명에 걸맞게 항상 열정적인 마인드와 독창적인 움직임을 지향하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추구한다. 2012년 세계 5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 하여 전 세계 최초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다년간 공식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켰으며 그 실력을 국가에서도 인정받아 2015 제1회 나라사랑 어워드 수상, 2015 대한민국 최고기록인증 예술부문 수상, 2014 한류 힙합문화 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14 다산대상 (문화예술부문), 2011 기록 문화상 (최다 기록), 2010 비보이 문화상(대상)을 수상 하였다. [출처 : 진조크루 공식 홈페이지]

▲ <오방색> © 무대위사람들

▲ <오방색> © 무대위사람들

이번에 2016 팸스 초이스로 선정된 ‘오방색’ 공연을 소개해 주세요.

현대무용으로 자극을 받은 부분들을 토대로 ‘오방색’을 기획하기 시작했어요. 세계무대에서 통할만 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데, 색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니까요. 청(靑), 백(白), 적(赤), 흑(黑), 황(黃) 다섯 가지 색에 한국적인 정서를 불어넣었죠.

‘청’은 창조와 생명 등을 상징하며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사용됐어요. 불교 사찰에서 아침저녁으로 행하는 종교의식인 ‘오분향례(五分香禮)’를 통해 다양한 내면의 모습이 깨어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백’은 결백과 진실, 삶, 순결 등을 의미합니다. ‘백의민족’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고독’을 주제로 흰옷을 입은 한 남자의 희로애락을 꿈속 이야기를 통해 들려줍니다.

태양, 불, 피 등 창조와 정열, 열정 등을 상징하는 ‘적’을 통해선 ‘사계’를 표현했습니다. ‘흑’을 통해선 어둠의 탄생으로 지혜의 원천인 우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어요. 마지막으로 ‘황’은 오방색의 중심으로 가장 고귀한 색입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늘 ‘사람’이라는 취지에서 인간을 주제로 한 ‘트론 댄스’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트론 댄스 영상을 보니 무척 화려하고 신비롭습니다.

트론 댄스는 의상에 EL와이어라는 전선을 연결해서 추는 춤입니다. 불이 꺼진 상태에서 버튼을 누르면 저희가 설계한 대로 빛이 나와요. 예전에는 화려한 볼거리만이 핵심이었는데, 요즘은 ‘감성 트론’에 집중하고 있어요. 이것도 ‘부드러운 비보잉’ ‘감성 스트리트 댄스’의 일환인 것 같아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스트리트 댄스를 추는 부분도 인상적인데요.

아는 형 중에 어머니께서 한복집을 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드라마 ‘태왕사신기’에도 협찬한 한복집이었죠. 무작정 가서 “저희가 이번에 해외 공연을 하게 됐는데, 한복 좀 빌려주실 수 있으시겠느냐”고 여쭤봤는데, 흔쾌히 협찬을 해주셨어요, 하하.

한국적인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독도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춤의 시대’를 만들고 나니까 한국적인 것을 세계에 더 알리고 싶더라고요. 전통과 스트리트 댄스를 결합한 레퍼토리를 많이 개발해 제작사를 꾸리는 것이 제 목표기도 하고요. 무대위사람들을 전문적인 공연 제작사로 키우기 위해서 넌버벌 공연 전문 회사에 입사해 1년간 회사가 돌아가는 방식을 배우기도 했어요. 요즘은 매일 하루 3~4시간씩 공모 사업을 검색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팀원들에게도 말하죠. “너희들이 걱정 없이 춤을 출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고요.

‘예술’과 ‘시장’의 만남을 추구했던 만큼 서울아트마켓 참여가 확정됐을 때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팸스 초이스에 4년 연속으로 신청했습니다. 선정됐을 때 정말 소리를 질렀어요. 시장에 저희 작품을 선보일 수 있고, 좋은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고 설렙니다.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진 셈이고요. 예술을 시장에 연결하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저희 같은 예술가 집단에게 꼭 필요해요. 그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 서울아트마켓인 것 같아요.

영세한 비보이 그룹들의 경우에는 생계 문제 때문에 춤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 외에 비보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나요.

비보이 1세대들의 경우 공연, 연습, 대회 이 세 가지만 무한 반복했어요. 지금은 공연, 연습, 대회, 공연 제작, 방송, 광고 등 저희가 할 수 있는 분야를 확장하고 있죠.겜블러크루는 특히 강연이나 교육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공공기관들과 함께 소년원, 군부대 등에서 춤을 가르치는 등 팀원들이 공연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합니다.힙합 정신은 ‘자유와 저항’이잖아요.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할 곳이 없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나,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군인들이 다양한 스트레스를 ‘제대로’ 표출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처음에는 말끝마다 “왜요?” “싫은데요.”를 입에 달고 살던 아이들이 조금씩 바뀌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해요. 처음에는 아이들을 달래려고 간식까지 사 가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더 좋아하니까요, 하하. 올해는 소년원 3곳, 군부대 5곳에 나가고 있습니다.

도서 산간지역 아이들을 위해 교육부 주최로 원격 영상 진로 상담도 진행하고 있어요. 시골에 사는 아이들은 비보이처럼 특수한 직군의 사람을 접할 기회가 없으니까요. 이것도 반응이 좋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학위를 받는 비보이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겸임교수로 출강하는 비보이들도 있어요. 서울종합예술학교, 국민대학교, 세종대학교 등에서 스트리트댄스 학과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요즘 비보이들 사이에서 ‘학위 열풍’이 불고 있어요. 세계 대회에서 몇 차례씩 우승하고 실력 좋은 친구들도 학위가 있어야 강의를 할 수 있으니까요. 저도 내년에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고 있어요. 댄서들 사이에선 ‘교육 분야’가 우리가 진출할 수 있는 또 다른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스트리트 댄스가 실생활에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춤이 되는 거예요.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하는 춤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운동 삼아 할 수 있는 ‘생활 체육’이 되는 거죠.

▲ 이준학 대표 © 이강혁

▲ 이준학 대표 © 이강혁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비보이들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선배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수명 짧으니까요. 우리나라는 군대도 가야하고 하니 빠른 시간에 더 많은 것을 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해요.” 결국 ‘독하게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단 한국 사람들은 지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잖아요. 저도 대회에서 지면 분해서 울거든요. 외국 친구들은 본업이 따로 있고, 춤은 취미로 하는 애들이 많아요. 그런데도 자유롭게 잘하죠. 외국 아이들이 “스트리트 댄스는 ‘자유’가 핵심인데 너희는 왜 밤까지 새면서 그렇게 독하게 하느냐”며 혀를 내두를 정도예요.

예전에는 공연 전에는 술도 안 먹었어요. “비보이가 무슨 술이야? 대회 앞두고는 절대 안 돼.”가 기본 모토였죠.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자유로워졌어요. 공연 전에도 가끔 술도 마시고요. 힙합이니까 자유로운 정신이 필요하잖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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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자유분방(自由奔放), 그 안에 존재하는 질서와 배려 - 박경소의 ‘이웃 같은’ 가야금]]> 자유분방(自由奔放), 그 안에 존재하는 질서와 배려  - 박경소의 ‘이웃 같은’ 가야금
 


Intro.

2015년 마지막 날, 박경소의 가야금을 들었다. ’가장 아름다운 관계2)라는 이름의 공연이었다. 거기엔 오직 가야금만이 존재했다. 어떤 다른 악기도 없었다. 박경소의 가야금에 취하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엔 박경소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모두 박경소가 만든 가야금작품이다.
박경소의 가야금이 연주되는 그 공간에는, 미세한 소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러 관객들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니다. 박경소의 가야금에 빨려 들어간 거다. 다정한 사람의 진솔한 얘기에 그저 그렇게 빠져든 거다.
모든 것이 다 새로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왠지 낯설지 않았다. 새로운 음악을 이렇게 친근하게 들었던 적이 있었나? 새로운 곡을 듣는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박경소의 가야금은 따뜻했고, 친절했고, 독특했고 또 애잔했다. 다정다감(多情多感)인 것이다. 전통과 현대를 모두 포용하면서, 객석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감싸 안았다.
그의 음악은, 그 날 객석에 놓인 여러 모양의 의자만큼이나 자유로웠다. 가로, 세로를 인위적으로 맞춘 객석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질서 속의 질서’가 느껴졌다. 의자도 그랬고, 박경소의 가야금이 그랬다. 거기에 모든 사람은 박경소의 가야금과 소통하면서, 모두 이웃이 되는 느낌이었다. 2016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가장 아름다운 관계>처럼 뭔가 거기에 있는 사람 사이에 어떤 ‘관계’가 맺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1) 2015년 12월 30일~3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 필자와 박경소 연주가 © 이강혁

▲ 필자와 박경소 연주가 © 이강혁

1. 관계

올해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로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선정되었다. 작품명에서 말하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음악적으로 얘기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소통’하는 관계다. 음악을 통해서 ‘상호’ 소통하는 관계다. 내가 음악을 하고, 가야금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호 소통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내가 공연을 하는 건, 바로 음악적인 책임감을 진다는 거다. 사람들과 잘 소통하기 위해선, 언제나 어디서나 내 음악을 책임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2. 공간

그저 책임감만 느끼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음악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음악은, 어쩌면 특히 내가 연주하는 가야금이라는 악기는,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다. ‘공간’이 무척 중요하다. 연주하는 무대의 크기를 비롯해 공연장마다 다른 공간의 구조 등 모든 것이 변수다. 이 모든 것들이 나와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크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서, 때로는 관객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게, 연주가로서 내가 겪은 힘든 순간이다. 

연주 하면서, 지금 내 음악이 잘 전달되고 있구나, 그렇지 않구나, 이런 것을 알게 된다. 넓은 공연장에서도 “지금 내 가야금이 이 공간 전체를 뚫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땐, 정말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다. 

예전에 큰 콘서트홀에서 연주 하는데, 지금 내 음악이 저 2층과 3층에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절감했다. 참 힘들었다. 그 이후로는 더욱더 “음악과 연관해서 ‘공간’의 구조”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늘 연주하는 공간이 어떤가를 염두에 둔다. 그 안에서 내 음악이 어떻게 공기를 타고, 그 안의 사람들에게 모두 전달되느냐, 늘 이것에 신경을 쓴다.
다행히 예전 징크스를 갖고 있었던 그 공간에서, 다시 가야금을 연주하게 되었을 때, 내 가야금이 그 안의 모든 것을 뚫고 나가는구나! 이런 경험을 했다. 아티스트가 신경 써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음악이 소통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3. 수학(數學)

연주가에서 출발한 작곡가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악기가 가진 기교에 충실 하려 한다는 점이다. 작품에 대한 구조적인 견고함이 아쉽다. 당신의 작품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당신은 왜 아닐까? (웃음)

학교 다닐 때, 문과와 이과로 나누지 않는가. ‘이과’에 해당하는 과목이 더 재미있었다. 보통 예술전공 학생들은 문과에 더 흥미를 갖고 있는데 말이다. 

특히 수학을 좋아한다. 수학 문제를 푸는 걸 무척 좋아한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는 커다란 흰 종이가 놓여있다. 그 종이 위에 문제를 풀어가면서 종이 위를 점차 채워가는 게 좋다. 공식을 대입하고 응용하면서 문제를 풀어갈 때의 그 희열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 음악도 마찬가지다. 박경소의 음악도 이렇게 수학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내게 수학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나, 음악작품을 완성해가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수학에 공식이 있고, 문제를 풀 때 이 공식을 대입시키고, 그것을 응용해서 문제가 풀려나가듯이, 내 음악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내 음악이 일단 어떤 공식이 있고, 어떤 구조를 먼저 만들어 놓는다. 내 음악에는 일단 개략적인 설계도가 늘 선행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점차 그 안에 구체적인 정서를 채워가기 때문이다. 

개략적인 설계도가 있다고? 그러고 보니, 당신의 음악은 건축물 같기도 하다.

예전 우리 음악도, 매우 구조적이라고 생각된다. 동양음악은 유교적인 가치관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5음이란 것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그런 궁, 상, 각, 치, 우. 라는 음은 저마다의 역할과 기능이 있었다. 따져보면 동양의 전통적인 음악도, 이런 수리와 논리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내 음악도 분명 이런 면을 지향하고 있다. 

다시 더 말하자면, 나는 곡을 연주할 때나, 작곡 할 때, 우선 전체적인 ‘구조’를 생각한다. 이런 구조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생겼을 때, 아주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이건 매우 이과적인 사고 아닌가? 그런데, 꼭 해 둘 말이 있다.

무슨 말?

나를 스스로 정의한다면, “박경소는, 조울증이 좀 있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이과 사람이다!”  (웃음) 일반적으로 이과 사람들이 자기 세계에 충실히 빠져있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남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오지랖이 넓다고나 할까? (웃음) 

4. 김죽파

당신의 음악을 논할 때, 김죽파 명인(1911∼1989)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지금 25현가야금을 주로 연주하지만, 내 음악에서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가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다. 학창시절의 한 때, 나는 오직 ‘서태지’와 ‘김죽파’만을 들었다.
서태지 듣고서 김죽파 듣고, 김죽파 듣고서 서태지 들었다.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음악에 아주 푹 빠졌던 시기가 있었다.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들으면서 잠이 들고,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들으면서 잠에서 깼다. 

그래서일까? 당신의 김죽파류 산조는, 당신의 스승세대보다도 오히려 더 ‘김죽파적’이다.

스승들은 훌륭하지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거다. 그러나,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오직 김죽파 명인에게서만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김죽파류에 크게 끌리지 않는다. 때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김죽파 명인은 저기를 저렇게 연주를 하지 않는데’, 또는 ‘저기의 음정 관계는 저렇지 않은데’ 등의 생각을 하면서 듣게 된다. 너무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소리를 통해서 김죽파 명인이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지 그 농현(弄絃)을 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었다.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5. 테크닉

박경소의 음반, 전 트랙을 쭉 들었다. 편안했다. 그런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게 박경소가 연주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편안한 것이겠지. 정교하고 복잡한 것인데, 참 쉽고 편안하게 들리게 한다.

그걸 알아주니 감사하다. 내가 가야금을 연주하고 곡을 만드는데 치열함이 존재하는 것 같다. 좀 심한 표현이 가능하다면, 내가 곡을 만들 때 새디스트(sadist), 마조히스트(masochist), 뭐 이런 단어를 가져와도 좋을까? 음악을 만들 때, 또한 어떤 테크닉을 구사하기 위해서, 자신을 가학적으로 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먹는 것과 자는 것을 유보하면서라도, 곡을 만들고 나만의 테크닉을 구사하는 것에 큰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것을 통해서, 내가 내 음악에 대해서 확신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이런 것을 내심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작곡가의 작품, 예를 들어서 나효신과 김희정 등 다른 여성작곡가의 작품을 국내외에서 여러 번 연주했다. 이런 연주를 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이런 것들의 매력과 장점을 습득하려 한 것 같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나의 콘텐츠를 만들고자 했다. “창작이 제일 힘들지만, 창작이 제일 재밌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는 불면(不眠)의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 난 분명 새디스트적인 속성이 있는 것 같다. (웃음) 

6. 메소드

당신은, 25현가야금 세대이다. 당신의 세대에 의해서, 25현가야금이 크게 빛을 발했다. 당신은 분명, 창작과 연주를 병행하는 25현가야금 연주의 리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25현가야금이 붐을 일으켰다. 학교에서도 25현가야금의 연주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산조와는 다르게, 25현가야금의 연주수법을 누군가가 체계적으로 가르쳐준 것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스승이나 선배 세대보다는, 우리 세대가 더욱 25현가야금에 익숙하다. 피아노를 더욱더 높은 수준까지 배우고 익혔고, 서양음악을 비롯한 여러 음악을 다양하게 접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25현가야금의 악보는 존재했지만, 거기엔 어떻게 연주하라는 지시는 별반 없었다. 이른바 ‘핑거링(fingering)2)’은 연주자 개인이 만들어내야 할 몫이었다. 나는 여기에 더욱더 재미를 느끼고, 적응이 빨랐던 것 같다. 악보 속의 음악을 머릿속으로 그려내면서, 이걸 가장 잘 구사할 방법은 무엇인가를 궁리했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서 25현가야금을 위한 나만의 연주방식과 기교가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런 것이 나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나는 그냥 특정한 악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연습 하지 않는다. 늘 가야금을 대하면서, ‘어떻게 손의 기운을 풀고,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내 생각과 느낌이 살아있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한다. 그게 곧 관객과 어떻게 잘 소통하느냐의 문제일 것일 거다. 이게 25현가야금과 관련해서 나만의 메소드라면 메소드다. 

2) 특정 악기를 연주할 때의 손가락을 사용하는 방법을 의미

7. 소통

요즘, 누구나, ‘소통’을 얘기한다. 그런데 가야금연주자로서, 박경소의 소통은 다른 것 같다.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긴 어려워도 당신의 음악에 내재된 소통은 좀 다른 것 같다. 말 당신이 만든 제목처럼, ‘이웃이 되어주세요’라고 늘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음악에서 그런 영역이 분명 중시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대치동에 살았다. 지금의 대치동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안 계시면, 옆집에 갔다. 그 집에서 냉장고를 열고, 음식을 먹어도 그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었다. 30년 전의 삶과 지금의 삶은 너무도 다른 것 같다. 새삼 ‘이웃’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내 음악 속에 이런 정서를 담아내고 싶다.

 이웃과 소통하는 방식도 다양한 것 같다. 때론 진지하게, 대론 장난스럽게, (웃음) 당신의  첫 번째 음반은, 일반적인 국악계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신선한 충격’이 라기보다 ‘이상한 충격’이었다. (웃음)

(웃음) 그 모든 것이 다 박경소다. 첫 번째 음반이 내놓을 때가 다시 기억이 난다. 코스모 브리즈(Cosmo Breeze, 2010년) 음반을 내놓는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그랬다. ‘이게 정말 가야금연주자 박경소의 ‘첫 번째’ 음반으로 할 거냐‘고. 보통 산조나 창작 음악으로 진지하게 접근한 다음에, 그다음에 이런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엉뚱한‘ 음반을 내놓은 거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에 분명 그 음악에 빠져있었고, 그게 바로 박경소였다. 오리엔탈 익스프레스(Oriental Express)3)를 함께 하는 최영준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주었는데, 그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서 내 음악을 발전시키는 것이 매우 재미있고 유익했다.

내가 평소에 대했던 박경소와 다르게, 이런 음악에서 박경소의 ‘뽕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국악 하는 다른 동년배와 좀 다른 게 있다면, 음악에선 좀 더 열려있었다는 거다. 이건 행운이고, 행복이다. 우리 집안에 음악가가 많이 있기 때문에, 모두 귀가 예민한 편이다. 소리에 민감하지만, 음악엔 열려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국악과 가야금을 하게 되었지만, 타 장르에 대해선 열려있는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도 많다. 난 기본적으로 호기심과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3) 김현종(드럼), 최영준(키보드), 김현모(베이스), 박경소(가야금)으로 이루어진 연주팀으로, 2006년 1집 앨범 ‘To The West’로 데뷔하였다. 2016년 5월에 국립국악원 연희마당에서 ‘빛나는 불협화음’이라는 공연의 아티스트로 참여한 바 있다.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 박경소 연주가 © 박경소

Outro.

박경소의 얘기는 끝이 없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의 생각은 끝이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 스스로 자신하고 반문하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그녀와의 대화는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 상통하는, 음반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느낌이었다. 현재 대부도에서 지내면서, 바다와 달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이야기 등, 이런 모든 것들은 히트 트랙이 될 수밖에 없어 아쉽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정서는 모두 그녀의 음악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가 박경소의 가야금을 더 가까이 한다면, 정말 이 조울증을 넘나드는 - 어쩌면 스스로 컨트롤하면서, 그것에서 가학적 재미를 포착하는 – 이과생 같은 박경소가 만들어낸 ‘견고하면서도, 속 깊은’ 음악을 더욱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을 거다. 

내가 평론하는 입장에서, 이 한마디는 꼭 말할 수 있다. 박경소 음악의 큰 특징의 하나가 있다. 매우 ‘분방’한 것 같은데, 그 안에 확실한 ‘질서’가 있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서 매우 ‘자유롭지만’, 그 안에서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배려’가 배어있다. 현시점에서 박경소의 음악을 설명할 수 있는 한 문장이다. “분방하지만 질서가 있고, 자유롭지만 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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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한국적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고 싶다”]]> “한국적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고 싶다”
 


이들은 근동사중주단 혹은 The NEQ(Near East Quartet)라 불린다. 2010년 색소폰 연주자 손성제를 주축으로 결성된 그룹이다. 재즈와 한국 전통음악 사이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시도를 단순한 결합이나 과거의 답습이 아닌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모델이라 말한다. 1집 앨범 ‘Chaosmos’(2010)는 새로운 음악적 스타일과 독특한 사운드를 느낄 수 있었고, 2011년 제7회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됐다. 2015년에는 국립극장 차세대 명창으로 선정된 김율희를 영입, 2집 앨범 ‘Passing of Illusion’을 발매했다. 이번에는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부문 크로스오버음반상을 수상하며 성가를 높였다.
김율희(보컬), 손성제(색소폰), 서수진(드러머), 정수욱(기타)의 라인업으로 구성된 근동사중주단을 만났다. 멤버들 모두 함께했지만 답변은 주로 정수욱이 했다.   

▲ 필자와 윤종연 대표 © 이강혁

▲ 필자와 근동사중주단 © 이강혁

2010년 근동사중주단을 결성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00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음악을 틀어보고 싶었다. 안 하던 음악들을 찾아봤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 음악이 있더라. 손성제씨가 ‘야학 선생님’같이 국악의 세계로 인도했다. 실력파 드러머인 서수진씨도 합류했다.
국악으로 뭘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그간 재즈 씬(scene)에만 있었다. 메인스트림 재즈. 미국의 것을 재현하는 데 목표를 두다가 회의를 느껴 다른 표현 방식을 찾았다. 우연히 국악, 타악을 만나게 됐다.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처음에는 국악적인 요소는 실험용 분량에 불과했다. 김율희씨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국악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정수욱) 

데뷔앨범 ‘Chaosmos’로 한국적 재즈와 장르를 벗어난 다양성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데뷔앨범은 어떤 의도로 녹음했나.

새로움을 주고 싶었다. 지금은 다양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당시엔 재즈 씬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다양하지 못했단 얘기다. 다양하고 풍성해지려면 새로운 게 나와야 한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새로운 게 중요하다. 새로움이 변화를 만든다. 이후 전보다 좀 더 다양해졌다. 크로스오버도 한 장르다. 국악 퓨전도 풍성해졌다. 국악 쪽에서 재즈를, 재즈 쪽에서 국악을 바라본 새로운 시도였다. (정수욱)

▲ 필자와 윤종연 대표 © 이강혁

© 근동사중주단

2011년도에도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됐다. 본인들의 음악 활동에 어떤 의미를 지녔나?

앨범이 나올 때마다 선정됐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상업적이지 않은 음반을 아트마켓에서 발굴해 의미를 부여했다. 계속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다. 1집 때 선정되었던 경험이 2집에 큰 원동력이 됐다. 기획자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했던 일인 만큼 서울아트마켓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수욱) 

2집 앨범 ‘Passing of Illusion’은 어떻게 녹음하게 됐나?

1집이 반면교사가 됐다. 원래 시작했을 때의 의도를 더욱 강화시키려 했다. (정수욱)

김율희씨는 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이 무엇인가.

국악계에는 전통 국악이 아닌 시도가 의외로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굳이 외국 활동에 대해 관심도 없었다. 국악은 한국에서 일등하면 세계 일등이다. 애초에는 충실하게 공부하느라 딴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시에서 열린 ‘모자이크 코리아 20141)에 참가했는데, 이는 처음으로 다른 음악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재즈인들의 마인드는 달랐다. 딴 세상 사람들같이 느껴졌다. 혼란과 문화 충격을 겪은 한편 자유로워지고픈 마음도 생기고 숨통이 트였다. 내 분야에 익숙해지다가 새로운 그룹 활동의 제의를 받은 거다. 젊기에 새로운 분야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반 호기심 반이었다. 다른 장르와 만남을 위해 그동안 써왔던 호흡을 달리 해야 했다. 해오던 내 호흡만 고집하고 부를 수 없었다. 맨 처음 창법에 대한 문제는 버리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판소리처럼 모든 것을 세게 부르지 못했다. (김율희)

1) ‘모자이크 코리아 2014’는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시청과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주 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이 주관 및 후원으로 진행한 축제형 콘서트로, 2014년 4월에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시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의 국악과 서양의 재즈의 협연을 선보였으며, K-POP 이외에 다양한 한국문화 콘텐츠의 소개하는 장이 되었다. 김율희씨는 국악 아티스트로, 정수욱씨는 재즈 아티스트로서 본 행사에 참여하였다.

서수진씨는 미국에서 재즈 드럼을 공부하다가 합류했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었나?

마음을 먹게 된 건 2집 듣고 나서다. 국악 같지도 재즈 같지도 않은 전혀 새로운 스타일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크로스오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선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없던 걸 만들어내고 싶다. (서수진) 

근동사중주단의 음악 정체성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국악과 재즈와의 밸런스를 어떻게 두어서 활동할 생각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국악도 아니고 재즈도 아닌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게 목표다. 우리가 들었던 국악이나 재즈를 다시 영사기로 투영하는 것처럼 새로운 프로젝트를 의도하고 있다. (정수욱) 

지난 작품 활동을 돌이켜봤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해외에서 공연할 때 우여곡절이라든지 성과를 얘기해 달라.

올해 초에 프랑스 쿠탕스(Coutances)에 갔다. 노르망디 근처에서 차로 4시간을 가야 하는 시골 지역이다. 그런데 독일 재즈 레이블 ACT 사장이 공연을 보기 위해 그 먼 곳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그 방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유명 레이블의 사장이 그 먼 곳까지 관심을 갖고 찾아와 준 것 자체가 우리에겐 매우 고무적이었다. 

▲ <불량충동> © 극단 몸꼴

▲ 김율희(보컬), 정수욱(기타) © 이강혁

즉흥 연주를 할 때 합주는 어떻게 진행되나?

즉흥 음악은 악보도 없다. 10번 하면 10번이 다 다르다. 포맷은 있다. 누군가 추를 잡고, 힘의 밸런스를 맞춘다. 나는 그게 율희씨 같다. 연주곡일 때는 다른데 노래 곡일 때는 그 추를 믿고 따라간다. (정수욱)

근동사중주단의 색깔, 방향을 알고는 있지만, 가사가 있고 판소리를 하는 사람이라서 어떻게 해야 여기 맞출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솔직히 연습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기존의 노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국악에서 배웠던 노래를 어떻게 풀어헤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한다. (김율희)

막상 연습장에 도착하면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잘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다. 이 음악이 존재하던 음악이 아니다. 생각이 서로 다를 때도 있다. 처음에 토대가 되는 요소들을 쌓는다. 쌓기만 하면 간단하지만 그 토대를 길게 하고 넓게 펼치면 달라진다. 그리고 안을 들여다보니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1집에서는 베이스가 있었는데 2집에선 드럼이 피아노와 베이스 역할을 한다. 또 김율희씨가 꽹과리나 징을 치기도 한다. (정수욱) 

▲ <불량충동> © 극단 몸꼴

▲ 근동사중주단 © 이강혁

향후 작품 계획은? 해외 진출 계획이 있나.

12월 19일부터 녹음 작업이 있다. 새로운 곡들을 만든다. 서로 의도를 맞추려면 많이 해 봐야 한다. 통산 3집인 이번 앨범은 다른 레이블에서의 1집이 될지도 모르겠다. 12월에 인도에서 공연이 있다.

외국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매체·청중·장소가 있다. 생경해서 논란이 됐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도 지금은 고전이 됐다. 우리도 그러한 기초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싶다. 음악의 층위를 세로로 쌓기 보다는 가로로 지평을 넓히고 싶은 거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이 잘 돼 있고 내공 있는 뮤지션들의 세션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서울아트마켓과 같은 플랫폼이 정기적으로 만들어지면 그러한 씬이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수욱)

또 한편으론 요즘은 우리가 외국을 나가는 것보다, 해외 사람들이 우리를 보러 오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시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제대로 된 2~30분 솔로 할 수 있는 클럽이 생긴다면 서울아트마켓이 바로 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당장의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어도 우리나라 음악 전체의 발전에 좋은 토양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정수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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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동시대 이슈를 연극에 담아내는 연출가 이경성]]> 동시대 이슈를 연극에 담아내는 연출가 이경성
 


우리는 타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경성 연출가는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중요시하지만, 과연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존재일까? 그와 그의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Creative VaQi)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그로 비롯된 다양한 층위의 문제에 대해 지속해서 질문을 던져왔다.
실례로, 지난해 선보인 <비포 애프터(Before After)>는 그의 연출적 특징을 총체적으로 잘 드러냈다는 평가와 더불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 이후 일상의 기억과 경험을 소재로 우리 삶과 사건의 관계를 살펴보는 연극을 선보였다. 동시대적 공감대를 형성한 작품이었다는 평과 함께 다수의 연극상을 받았다. 올해 팸스초이스로 선정된 <비포 애프터>와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다.   

▲ 필자와 이경성 연출가 © 박예림

▲ 필자와 이경성 연출가 © 박예림

이번에 팸스초이스로 <비포 애프터>가 선정되어 서울아트마켓에 참여하게 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서울아트마켓은 작년에 국제교류와 관련된 포럼에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양한 델리게이터들이 참여하고 공연예술을 통해 교류하는 모습이 상당히 좋아 보였어요. 기회가 되면 참여하고 싶었는데, 창작의 시기와 서울아트마켓의 일정이 맞지 않았어요. 한국의 주요 기획자와 창작자가 두루 참여하면서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극단이 참여하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팸스초이스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국제교류라면 다소 거창할 수 있지만, 내년부터는 다른 문화권에서의 적극적인 작품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바키는 공동창작을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창작의 과정 자체가 극단의 주요한 메소드라는 평을 받고 있어요. 일련의 과정과 경험을 통해 여기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극단 소개와 더불어 창작 활동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리 극단은 서로 동시대에 관해 지속해서 토론하고, 고민해야 할 거리를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과 교감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함께 연극을 통해 세상과 타자와 관계 맺는 방식이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려 하고 있어요.
한 예술가의 작업 방식은 그 예술가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과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연극을 만들면서 작가가 일차적으로 구성해 놓은 텍스트로부터 출발하는 게 창작자로서의 욕구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 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구성원들과 소위 말하는 공동창작을 통해 작품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표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의견과 생각들이 충돌하면서 이것이 다른 영역으로 어떻게 확장되는지, 다른 매체가 아닌 무대언어로 그것이 어떻게 변환되어 관객들과 만나게 되는 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두가 작가로 참여하여 인터뷰, 리서치, 토론, 발표, 글쓰기를 통해 창작하고, 저는 그것을 조율하고, 장면을 만들고 작품의 구조를 세우게 됩니다.
함께 만든다는 의미에서 크게 공동창작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방식을 표현할 수 있는 적합한 언어를 찾고 있어요. 우리는 다양한 집단에 속해 공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차이와 갈등을 발견해 가면서 소통을 합니다. 다행인 점은 시간이 쌓여가면서 극단에서 서로의 관심사가 닮아가고 있어요. 

▲ <서울연습-모델,하우스>, <남산 도큐멘타:연극의 연습-극장편> © 두산아트센터, 크리에이티브 바키

▲ <서울연습-모델, 하우스>,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 © 두산아트센터, 크리에이티브 바키

현재 진행형의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작품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있는 같아요. 그래서 우리의 현실과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삶과 연극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으로 인식됩니다.
그간의 창작 활동을 들으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08년에서 2010년 동안 연출가로서 제게 적합한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했습니다. 피지컬 씨어터도 해보고, 오브제극도 해보고, 장소 특정적 공연도 하고요. 당시를 돌이켜보면 어느 평론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아직 뭘 실험해야 할지 모르는 연출가다’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정말 그러한가?’ 소위 실험적 공연을 하는 그룹이 성장하면서 통상적으로 듣는 말이기도 하지만요.
작업 초기에는 극장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횡단보도, 광장, 미술관, 가정집, 호텔의 어느 방 등을 무대로 삼으면서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 공연 했습니다. 실재하는 공간을 통해 삶의 특정한 시간을 다시 체험케 함으로써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을 되짚어 보고 싶었거든요. <움직이는 전시회>,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 <강남의 역사-우리들의 스펙, 태클 대서사시>, <24시-밤의 제전>이 그러한 맥락에서 진행된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일들을 들여다보는 ‘연습’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연극은 삶의 연습이라는 맥락에서 <서울연습-모델, 하우스>, <연극의 연습-인물편>,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을 선보였고, 극장과 연극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연극이 현실을 다룰 수 있을까, 연극이 어떻게 삶의 영역으로 침투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에서 동시대적 이슈를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연극의 ‘동시대성’에 대해 말씀 나눠볼게요. 연출께서 가장 중요하게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한 것 같고요. 해외 공연 경험과 함께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2014년 페스티벌 도쿄에서 공연되었던 <몇 가지 방식의 대화들>은 전혀 다른 삶의 경험과 시간을 가지고 있는 젊은 배우들과 74세의 할머니가 만나는 과정을 그린 연극이었는데, 세대 간의 갈등과 역사, 정치의식의 차이와 같은 이슈들이 일본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관객들과 의미 있는 소통을 이끌어 냈습니다. 공연하는 동안에는 일본 관객들이 매우 차분한 반응을 보였는데 나중에 트위터에 보니까 그 안에서 열띤 토론과 의견을 쏟아내고 있었어요.  
이 공연은 올해 6월 독일 떼아터포르먼 축제(Festival Theatreformen)에도 초청되었는데 소위 말하는 독일 다큐멘터리 연극의 경우 굉장히 건조한 데 비해, 우리의 작품은 이성적이면서도 뭔가 알 수 없는 멜랑콜리한 정서가 느껴져 신기한 체험이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문화적 차이에 의해서 잘 전달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할머니가 경험하신 며느리와의 갈등 같은, 문화적으로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그렇지요.
그런데 이 축제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의 공연들이 오기 때문에 관객들이 작품과 더욱 잘 만날 수 있게 다양하게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사전에 역사적인 자료도 소개하고 예술감독이 첫 공연 전에 30분 정도 공연에 대한 소개 토크를, 와인을 마시면서 로비에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연출도 미리 신청하는 관객에 한해서 40분 정도 공연 무대에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공연 관람 전에 연출을 소개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 꿈꾸는 것, 고민하는 것을 말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지요. 여러 단계를 통해서 문화가 다른 공연을 만나는 지점을 축제 측과 함께 고민하였습니다. 단순히 작품을 상연하고 다시 짐을 싸고 돌아오는 패키지 여행식의 교류가 아니었어요.
또 올해 5월 독일 베를린 떼아터트레펜(The Berliner Theatertreffen)의 국제 포럼(Internationales Forum)에 초청을 받았는데, 많은 작가와 연출가들이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어려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연극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도 여성 연출가는 남성 중심적인 인도 사회에 대한 저항을, 이라크에서 벨기에로 온 난민 출신 연출가는 언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날지 모르는 바그다드로 돌아가 거리극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컨템포러리 아트의 미학적 기준에서는 그들의 작품이 내용과 형식면에서 세련되어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과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동시대적인 작품이라고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가와 그가 속한 배경을 고려했을 때, 그가 속한 사회적 맥락에서 잘 소통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만들고 있다고 느꼈어요. 가장 동시대적인 것은 자신(예술가)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인식하면서 그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응시와 더불어 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 <비포 애프터> © 크리에이티브 바키

▲ <비포 애프터> © 크리에이티브 바키

지난해 <비포 애프터>를 통해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번에 팸스초이스에도 선정되었고요. 작품 소개와 더불어 올해 10월 재공연을 하는데 지난해 초연과 비교했을 때 창작자로서 어떤지 궁금해요.  

<비포 애프터>는 2014년 우리에게 매우 큰 아픔을 준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인간과 인간이 진실 되게 소통하고, 타인의 일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것은 가능할까?’ 이 질문으로부터 작품이 시작되었어요.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도 다시 읽었어요. ‘나’라는 주체가 직접 그 고통을 겪어 보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배려하기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타인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고만 있는 것은 오히려 더 많은 몰이해를 낳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 모순과 긴장감 사이에서 작업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사회적인 연대는 타인의 고통을 통감하며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그 어떤 논리적인 설명보다 우리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우리가 무감각하다는 현실을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관객들도 이러한 지점을 작품을 통해 공감했던 것으로 생각해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무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계속 그것과 나를 의식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올해 <비포 애프터> 재공연은 제게 감사한 기회입니다. 초연과 재연 사이에 <그녀를 말해요>라는 작품을 통해서 피해자의 가족을 인터뷰한 작품도 있었어요.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고, 시야가 넓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경성 연출가 © 두산아트센터

▲ 이경성 연출가 © 두산아트센터

끝으로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참여하는 마음은 어떤가요?

팸스초이스를 통해 해외 공연을 전제로 하는 것이 최선의 목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다양한 미학적, 사회적 담론을 함께 이야기하는 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아트마켓에 참여하는 동안 진행되는 포럼, 미팅 등을 통해서 작품과 잘 연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각자 따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요. 물론 작품을 통해 다른 문화권에서 작품을 선보이면 좋겠지만, 이 기회를 통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델리게이터들이 2016년 한국에서는 공연예술을 통해서 이러한 소통, 담론들이 이뤄진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이경성 연출가와 그의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작품은 우리에게 함께 이야기를 해보자고 말을 건다. 연극을 통한 질문, 그의 질문은 우리의 현재를 각성시킨다. 공연 매체의 실험적 가능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공연이란 무엇인지 새로이 생각하게 된다. 극장과 연극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젊은 연출가, 앞으로 그의 시선이 우리의 무엇을 응시할지 기대해본다.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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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모순에서 빨려 들어가는 환영의 순간들]]> 모순에서 빨려 들어가는 환영의 순간들
 


2003년 창단한 극단 몸꼴은 국내의 대표적인 거리예술 전문 단체이다. 올해 극단 몸꼴의 <불량충동>은 <오르페우스>(2005 팸스초이스 선정작)와 <리어카, 뒤집어지다>(2006 팸스초이스 선정작)에 이어 세 번째로 팸스초이스에 선정됐다. 문래동에 자리한 단체의 연습실을 찾아가 대표 윤종연 연출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필자와 윤종연 대표 © 이강혁

▲ 필자와 윤종연 대표 © 이강혁

현재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예술감독이시기도 한데, 생각했던 것보다 젊으신 것 같아요. 연극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스무 살 때 유진규 선생님의 워크숍을 들었어요. 당시 유진규 선생님이 잠시 접었던 마임을 다시 하신다고, 당시 공간소극장 옆에 있던 볼재스튜디오에서 워크숍을 여셨죠. 워크숍 후에 극단을 만든다고 하셔서 저도 극단의 막내로 1년 정도 함께 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죠. 그 후 영국에 가서 3년 정도 코포럴 마임(corporeal mime)을 공부했습니다. 돌아와서 1년 정도 후, 제가 스물아홉쯤에 극단 몸꼴을 만들었죠. 

한국의 거리예술의 초창기부터 경험을 시작하셨어요.

당시 유진규 선생님이 시도했던 것이 바로 거리극이었어요. 시작은 단순했어요. 오브제의 변용과 지나가는 관객의 시선을 어떻게 잡아둘 것인가 이런 이야기들, 작은 화두를 갖고 시작을 했어요. 94년도에 그런 화두와 함께 극단 식구들, 마임협의회 분들과 춘천마임축제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 형식으로 작게 시작했습니다. 당시 90년대 중반 즈음에 재미있는 야외의 작업이 많았습니다. 연강홀의 로비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었고, 아르코예술극장에서는 무대에 비계를 설치하고, 객석에 인형들을 앉혀두고 관객들과 로비에서 시작해 무대로 돌아오는 공연을 하기도 했었죠. 또 실제 경복궁에서 명성왕후 시해 사건을 공연했던 적도 있어요. 당시 허가를 받지 않았고, 궁궐 여기저기를 도망 다니면서 했어요. 지금은 ‘이름 없는 공연팀’에 계신 신영철 연출가의 작업이었죠. 그때 이렇게도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충격을 여러 번 받았죠. 한국의 거리예술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과천축제나 안산거리극축제 이전 시기의 작업들에 대해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도가 더 풍성하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할 수 있어요.

풍성한 자산을 바탕으로 극단 몸꼴이 만들어졌군요.

처음에는 새절역의 연습실에서 시작했어요. 혈기왕성하고 폼 잡는 거 좋아했던 시절이라 영국에서 스튜디오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마룻바닥을 다 직접 깔았었죠. 나중에 결국 다 뜯고 나가야 했는데, 그때 10년쯤 된 여기 문래동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대학로 근처로 가고 싶었지만, 돈 문제가 있었고요. 지금은 그래도 예술가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그때에는 좀 삭막했죠. 1층엔 공장이 가동되고 2층들은 거의 쓰레기나 폐자재들이 차 있는 공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여기도 대공사를 하고 들어와 지금까지 이르렀네요.
유학을 가기 전에는 진실, 정의 같은 저에게는 다소 모호한 언어들보다 외형적인 것들,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형식적인 기술들, 장식적인 것들을 배우고 싶었죠. 신체 언어에 있어서도 내용보다는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모양들이 중요했고,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트레이닝을 지속했어요. 단체의 이름에 ‘꼴’이 들어간 것도 형태, 외형적인 것들을 중시하기 때문이었죠. 물론 이러한 생각은 차차 변화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거리극도 그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초기의 <오르페우스>나 <리어카, 뒤집어지다>의 경우 극장, 즉 실내에서 작업을 했어요. 하지만 거리극을 하면서 여러 다양한 삶을 마주하고, 인터뷰 하면서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시간들을 경험하고, 도시 위에서 부유하고 있는듯한 일종의 환영 같은 것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들 간의 관계는 무엇이며,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인지 등에 대한 생각이 이동하니 자연스럽게 사회나 지금 이 시대, 혹은 우리의 이야기에 관심이 간 것이죠. 

저는 우연히 몸꼴의 작업을 축제에서 만났을 때, 탁월한 신체 언어와 대규모의 미장센 등이 인상적이었어요.

초창기에는 정말 혹사에 가깝게, 몸을 밀어붙이며 훈련했었죠. 그때에는 그것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배우들의 단순한 움직임의 테크닉 뿐만 아니라, 몸이 물체와 어떻게 만날 것인지 만남에서 어떤 모순들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끝없이 탐구했어요. 저는 공간적인 모순, 시간적인 모순들이 익숙한 사물들을 낯선 시각으로 보게 만들고 그것이 시적인 순간들, 영험한 순간들을 찾아오게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때 관객도 연극적인 환영으로 빠져 들어가죠. 배우가 어느 순간에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 순간 침대는 마치 늪에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변하고 침대가 섬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런 변화의 순간들을 많이 찾아내려 했어요. 집요하게 가져가려 했던 몸, 훈련들이 몸꼴의 저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로는 거기에서 빠져나와 일상이나 사회, 삶, 시대로 고민의 방향이 옮겨간 것이죠. 사실 초창기 작업으로 주목받은 이후에, 욕심을 많이 내서 한 대규모의 작품들 중에서는 제가 생각하기에 조금 부끄러운 작품들도 있어요. 물론 대규모를 소화하며 얻은 나름의 중요한 성과도 있죠. 지금은 무조건 다수나 군중 혹은 몇 명을 만나느냐보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먼 거리의 시각적으로 화려한 작품들도 좋지만, 또 사람들을 더 가깝게 만나는 작품들도 좋아지기도 하고요.  

몸꼴에는 오랜 기간 함께 한 배우들이 있죠?

저한테는 정말 그런 배우들이 일당백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창단 초기부터 가졌던 극단의 미션이나 방향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러면서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이 어디를 바라보고 어디쯤에 있는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많은 설명을 안 해도 같이 작업할 수 있죠. 워크숍이나 메소드를 통해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 새로운 시선들을 만나려 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우리가 켜켜이 쌓아놓은 시간의 흔적과 거기에 숨겨진 힘들을 이제야 발견하고 있어요.  

▲ <불량충동> © 극단 몸꼴

▲ <불량충동> © 극단 몸꼴

<불량충동>에 대해

<불량충동>은 어떤 작품인가요?

2013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오픈 스튜디오 때 제작 지원을 받고 쇼케이스 형태로 발표를 처음 했어요. 완성된 작품으로 작년에 하이서울페스티벌과 고양호수예술축제에서 발표했고요. 축제 후에 규모가 좀 작아진 버전의 완성도 있는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축제에서 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섬세한 질감들, 공기의 질감 즉 밀도를 색다르게 컨트롤 해가며 바꿔놓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거대하게 화려한 스펙터클에서 빠져나와 내밀한 움직임을 찾아가는 것이죠. 처음 시작은 <오르페우스>였어요. 그런데 우리만의 향수로 10년 전 작품을 이 시대에 갖다 놓으려니 뭔가 어기적거리는 게 많은 겁니다. 그래서 그때 도구들, 소재들은 그대로 놓고 지금 우리의 불만들을 얹혀보자 해서 나온 게 <불량충동>이에요. <불량충동>의 오브제인 사다리 자체가 갖는 의미들, 사다림의 흔들림이 갖는 의미들, 그 안에서 열망이나 욕망들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채워지지 못하는 다른 부분들, 그러면서 생기는 불안들, 불안 때문에 만들어지는 퇴행적인 행동 및 충동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는 모습들, 이로 인해 어긋나는 질서들을 이야기해보자 하고 만들게 된 작품이죠. 이번에 저도 함께 출연해요. 저는 원래 시작이 배우였던 사람이라 함께 안에서 움직이니까 이전에 못했던 소통들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좋아요. 

대형 오브제의 남다른 활용은 몸꼴의 또 다른 특징일 것 같은데요. <불량충동>의 사다리 오브제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어떤 오브제를 선택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배우에요. 오브제나 사물만 생각하면 아무런 영감이 떠오르지 않거든요. 거기에 오브제가 있을 때 배우는 어디에 위치해 있을 것인가를 따졌을 때 효과적인 연극적 장치들이 나오더라고요. <불량충동>의 사다리는 그렇게 나왔어요. 보통 사다리가 고정적이고 안정적이어야 오를 수 있는데, 안정적이지 못한 불안정한 사다리를 선택해서 극을 만들었죠. <리어카, 뒤집어지다>의 경우에는 리어카를 운용하면서 몸이 혹은 배우의 위치가 일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배치되는 순간을 상상하면서 리어카라는 오브제를 선택할 수 있었고요. 

팜스에 올해로 세 번째로 선정되었는데요. 그 동안의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요.

선정이 되어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처음에는 마켓이 열리고, 작품을 세일즈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낯설고 불편한 것이 있었죠. 하지만 해외 공연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었었어요. 이것은 예술감독직을 겸하면서도 많이 배웠는데요. 작품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통해 극단이나 축제 등이 어디로 가려는지 등의 비전을 공유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요. 저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재화나 물건이 아닌 이상 작품을 통해 어떤 의미를 나눌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죠.

다양해진 시선들

국내의 대표적인 거리예술 단체의 대표로서 거리예술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는 것이 있다면요.

거리예술은 변화와 발전의 시기를 거쳐 정책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러면서 거리예술을 바라보는 시각들도 다양해진 것 같아요. 거리예술이란 단어나 형식이 정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변화들이 일어났는데요. 저는 오히려 지금 우리가 하는 것들을 공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다양한 형식들, 접근들을 더 안아주거나 담아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원래 ‘거리’란 광의의 개념이기 때문이죠. 다양한 영역에서 더 확장할 수 있도록 해석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힙합이나 미술 쪽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시민 사회의 영역도 더 적극적으로 읽히는 등 또 다른 미래가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몸꼴의 앞으로의 계획은요?

올해에는 <멀리 있는 무덤>이란 작품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하이서울페스티벌, 고양호수예술축제에서 발표할 예정이에요. 극장과 야외의 환경에 맞게 작품을 변형해서요. 또 작년부터 이어진 태국의 비플로어 씨어터(B-Floor Theatre) 팀과의 협력 작업도 역시 이어갈 예정이에요. 태국 팀 연출가가 ‘검열’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태국은 군사정권에 왕권, 종교 때문에 예술가가 할 수 있는 말들이 아주 제한적이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조사도 많이 했고요. 그런 주제로 작년에는 저희가 주도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방콕시어터페스티벌(Bangkok Theatre Festival)에 참가했었고, 올해에는 그쪽이 주도가 돼 작품을 만들 겁니다. 내년에는 둘의 시선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것까지, 장기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 윤종연 대표 © 이강혁
▲ 윤종연 대표 © 이강혁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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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유일한 색깔로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안무가 안성수]]> 유일한 색깔로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안무가 안성수
 


안성수 픽업그룹이 올해로 세 번째 팸스초이스로 선정되어 <혼합> 공연을 앞두고 있다. 우리의 전통 음악과 춤사위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얼마 전 파리 샤이오 국립극장에서 초연했는데, 그동안 여러 해외무대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선보였던 안성수의 작품 중 특히 가장 큰 호응을 받았다. 줄리어드스쿨 재학 당시 안성수 픽업그룹을 창단, 뉴욕을 베이스로 전문무용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우리나라 고유의 무용계 문화와는 차별적인 길을 걸으며 안성수만의 독보적인 예술성을 구축해왔다. <혼합>을 위해 평소 너무 좋아했던 김소희 명창의 음반을 거의 모두 들었다는 그를 만나 작품에 대한, 그리고 안무가 안성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필자와 안성수 안무가 © 이강혁

▲ 필자와 안성수 안무가 © 이강혁

20여년전 뉴욕 유학 당시 안성수 픽업그룹을 창단해 현재까지 그룹을 이끌어오고 있다. 창단하게 된 계기와 초창기 활동을 소개 부탁한다.

줄리어드스쿨에서 공부할 당시, 학교에서 쇼케이스를 자주 가졌다. 작품 만드는 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창작물을 선보이는 시간이었는데, 내 작업을 동료나 선생님들이 좋아해 주더라. 그러던 중 댄스 시어터 워크숍(Dance Theater Workshop)에서 개최하는 프레시 트랙(Fresh Tracks) 프로그램에 지원 했고, 당선됐다. 그 공연이 안성수 픽업그룹의 첫 프로페셔널 무대였다. 그렇게 학교 동료들과 작업하다 졸업 후에는 사회에서 만난 무용수들과 작업을 이어갔다. 그때부터 나는 음악을 표현하는 데에 많은 집중을 했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잘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만나 작업을 해왔던 것 같다.

무용에는 뒤늦게 입문했는데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1년 반 정도 다니다가 군대를 다녀왔고, 그 후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 마이애미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1년 반 정도 공부해보니까, 이론 위주의 수업이 특별히 재미가 없었다. 어느 날 수업 후 운동을 하는데, 몸이 좀 굳어 있어 고민하던 내게 친구가 발레 클래스를 추천했다. 그곳에 가면 스트레칭 하는 시간이 있다고. 그렇게 무용 수업을 처음 듣게 됐다. 처음에는 스트레칭 하다가, 호기심이 생겨 다른 수업들을 들어보았다. 내 몸을 스스로 움직여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너무 좋았다. 

성인이 되어 처음 무용수업을 접하고, 몸을 움직인다는 게 어색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무용이라는 게 막연히 어려워 보일 수는 있지만, 당시 내가 접할 때는 높낮이, 시간, 빠르기 등 확실히 글로 써서 전달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힘들거나 어색한 점은 없었다. 우리나라처럼 다리를 높이 들거나 하는 테크닉 위주가 아니었다.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뉴욕으로 건너간 것인가

마이애미에 있을 때 줄리어드 무용과 교수가 학교를 방문했었는데, 내게 관심을 보였었다. 1년 후 학교에서 줄리어드 입학 오디션이 개최되었고,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합격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했다. 줄리어드를 3년 만에 마친 후, 뉴욕을 베이스로 5년 정도 활동했다. 무용단도 점점 커지고, 많은 주목을 받았다. 조이스 시어터(Joyce Theater)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귀국했다.  

뉴욕 활동 당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아메리칸 댄스 페스티벌(American Dance Festival)에서 안무가와 작곡가를 매칭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에 안무가로 선정되어 작곡가, 무용수들과 4주 동안 작업했다. 그때 만든 <빔(BIM)>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작품도 특별한 내용이 있기보다는 음악에 관한 것, 높낮이와 방향, 빠르기 등에 중점을 둔 작품이었다.  

한국의 대학 중심의 무용문화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작업스타일도 다르고, 결과물도 다르다. 획일화된 국내 무용계에 새로운 방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는데

나도 나를 이끌어주는 멘토가 있었다. 전 줄리아드스쿨 무용원 디렉터이자 네덜란드 댄스시어터(Nederlands Dans Theater) 창시자인 고(故) 벤자민 하카비(Benjamin Harkarvy)가 그분이다. 다만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그분은 내게 제시만 했을 뿐 직접 안무를 가르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홀란드 댄스 페스티벌(Holland Dance Festival)에서 공연할 작품을 만들라고 제안을 했지만 내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와서 이런저런 조언이나 간섭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초연 전까지는 작품을 보자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누구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내 경험을 토대로 했고 그것이 국내 무용계와 차별화되는 점이 아닌가 싶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자들을 양성하는 데에 있어 본인의 경험이 교육자로서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겠다

그렇다. 나는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실질적으로 내 것을 가르친 제자들은 18년 교직생활 중 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용가로서 생존하는 것, 그것 한가지다. 무용이라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춤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창작자’가 되라고 말한다. 동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연장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학교 전문사 과정에는 춤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은데, 오히려 그들이 이러한 창작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 안성수 안무가 © 이강혁

▲ 안성수 안무가 © 이강혁

제자들의 공연을 본 후, 피드백 하는 편인가

작품은 보러 가지만, 내 의견은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본인들이 스스로 경험해야 알 수 있지,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욕심을 조금 버리고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영화의 경우, 재미있는 것이 있고 재미없는 것이 있지 않나. 그렇다면 재미있는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란 것이다. 이것은 나 스스로 늘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욕심이 많으면 설명이 길어지고, 결국 작품은 지겨워진다. 

국내외 타 장르 예술가들과의 협업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정구호 디자이너와는 몇 차례 연출가/안무가로 만났고, 윤성주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그리고 핀란드 서커스 예술가들과 작업했다. 이러한 협업은 안무가로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

협업의 좋은 점은 마치 집을 쌓는 것과 같다. 나는 여기에 이것을 하고, 너는 저것을 하고. 협업하는 사람과의 전문성은 서로 터치하지 않는다. 두 명이 함께 최선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나만의 방법은 뒷전에 두고, 서로의 것을 존중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해외 페스티벌이나 아트마켓에 종종 참여하고 있다. 지금껏 어느 무대에서 공연해왔으며, 관객들과 현지 관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과거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서 <장미>를 선보인 후 폴란드에서 초청을 받아 다녀왔고,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Interantional Performing Arts Project)에서 주최한 ‘Kore-A-Moves’를 통해 2회에 걸쳐 15일간 유럽 극장 투어를 했다. 공모를 통해 캐나다 시나르(CINARS; Commerce International des arts de la scene)에 다녀왔고, 그것을 통해 멕시코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했다. 그리고 얼마 전 프랑스 샤이오 국립극장(Theatre national de Chaillot)에서 <혼합>을 초연했다. 현지 반응은 늘 좋았다. <장미>는 역동성을 좋아했고, <볼레로>는 한국적인 요소들을, <몸의 협주곡>은 재지(jazzy)함을 좋아했다. <혼합>의 경우 전통적인 요소가 가장 많은 작품이어서인지, 반응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 <혼합> © 안성수 픽업그룹

▲ <혼합> © 안성수 픽업그룹

이번 팸스초이스에서 공연하게 될 <혼합>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프랑스 샤이오 국립극장의 프로그래머 자흐모 펑틸라(Jarmo Penttila)가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몇 년간 한국을 방문해 거의 모든 작품을 봤다고 했다. 3년 전에 내 작품을 본 그가 내게 신작을 만들어달라 했다.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눴고,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행사인 만큼 한국을 잘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작업을 위해 한국 전통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김소희 명창의 음악을 거의 다 구매해서 들었다. 흔하지 않은 음악들, 그리고 내가 주로 사용해오던 중동의 타악기 소리를 사용했다. 한국무용의 팔 사위를 기본으로 춤사위를 변형시켰고, 칼을 소품으로 사용했다. 네 명의 한국무용을 전공한 무용수와 한 명의 힙합을 했던 무용수가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혼합>은 ‘굿’, 테러 등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기리는 굿이다. 

혼합한 춤은 어떤 움직임인가

내 마음에 드는 움직임이다. 나는 무용수와의 협업을 좋아한다. 작업 과정을 예를 들자면, 힙합무용수인 장경민에게 전체적인 그림을 주며 힙합 즉흥을 하도록 한다. 그리고 전통무용수에게 어느 동작을 하게하고. 영상을 녹화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가 수정할 부분을 체크한 후 무용수들에게 다시 알려준다. <혼합>의 경우 구상 단계에서부터 초연까지 3년이 걸렸다. 

최근 몇 년간 팸스초이스에는 주로 젊은(신진) 안무가가 선정, 공연되어왔다. 아이디어 면에서는 신선하나 예술적 완성도면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올해 안성수 픽업그룹이 포함되어 개인적으로 기쁘다. 소감이 어떤가

매우 기쁘다. 나 역시 되도록 젊은 안무가를 지원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열심히 작업해오고 있고, 해외 투어도 해야 하니 팸스초이스는 매우 좋은 기회인 것이 사실이다. 투어하는 데 있어 팸스초이스가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우선 바이어들의 관심을 살 수 있고, 초청 시 항공비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요즘엔 항공비 지원을 받지 못하면 축제에 가기 힘들다. 이전에 <장미> 역시 팸스초이스를 통해서 많은 해외 공연을 이뤄냈었다. 올해 <혼합> 역시 좋은 결과를 기대 중이다.

▲ 안성수 안무가 © 이강혁

▲ 안성수 안무가 © 이강혁

앞으로 국내외 활동 계획은

나는 항상 10주년 단위로 계획을 짠다. 지금까지는 잘 되어왔다. 마지막 10년 계획은 외국 컴퍼니 안무작업을 하는 것이다. 내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서양무용 컴퍼니를 통해 한국의 문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다. 과거 내가 뉴욕에서 시작했을 때와 현재 20여년이 지난 지금 나의 안무는 또 다르다. 훌륭한 서양 테크닉을 가진, 유럽의 컴퍼니와 작업하고 싶다. 현재 장기적인 관점으로 추진 중이다. 올해 탄츠메세(Internationale Tanzmesse NRW)에서 미팅도 예정되어 있고. 사실 이러한 협업이 타이밍이 중요한데, 지금이 좋은 시기인 것 같다. 현재 유럽이 아시아 쪽을 원한다. 단순히 유럽 컴퍼니와 작업해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것을 혼합한 서양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그게 현재 내 계획이다.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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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반복으로 완성되는 박순호의 춤, ‘아코모다도르(acomodador)’!]]> 반복으로 완성되는 박순호의 춤, ‘아코모다도르(acomodador)1)’!
 


박순호는 판소리, 타악 등 전통으로부터의 영감에서 현대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고 유도, 바둑 등 엄격한 규칙의 스포츠에서 자유로운 변형을 만들어내는 섬세한 감수성과 통찰력, 그리고 치밀하게 계산된 정교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국내외 유수 페스티벌 및 극장에 활발히 초청받고 있는 안무가이다. 그는 네덜란드 EDDC(European Dance Development Centre)에서 안무를 공부했고, 국제 레지던시와 협업, 미디어 아트 등 타 장르와의 합작,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 반경을 넓혀가며 안무가로서의 저력을 다져 왔다. 2007년 박순호 댄스프로젝트로 활동을 시작하여 2012년 브레시트 댄스컴퍼니로 단체명을 바꾼 박순호 대표는 2014년 LIG문화재단의 협력 아티스트로서, ‘스포츠 시리즈’ <유도>와 <활>을 연이어 발표하며 안무가로서의 존재감을 한 층 확대했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움직임과 오브제로 밀도 가득했던 <유도>가 2016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었다.
7월의 대학로에서 박순호 대표를 만나 그의 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말에 신중하고 커튼콜에도 잘 나가지 않을 만큼 낯가림이 심한 성격과 대조적으로 도발적 에너지가 가득한 박순호의 작품들은 일본의 맹인 검객으로 유명한 ‘자토이치(ZATOICHI, 座頭市)’를 떠올리게 한다. 자토이치가 침묵 속에서 검(劍)으로 말하듯 춤으로 말하는 박순호 대표가 오늘만은 필자의 언어로 대답해주길 바라면서 말을 걸어 본다.

필자와 박순호 대표 © 이강혁

▲ 필자와 박순호 대표 © 이강혁

브레시트 무용단 이름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죠? 그 의미가 궁금합니다.

‘베레쉬트(Bereshit)’는 창세기 1장 1절의 첫 단어입니다. 영어로 제네시스(genesis)1)죠. 브레쉬트, 베레쉬트 등 여러 가지로 발음하는데 저는 ‘브레시트’로 읽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이 단어의 느낌이 좋았어요. ‘시작에’라는 뜻은 종교적 의미를 떠나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창작행위와 그 에너지가 응축된 것이라 느껴집니다. 해외 공연에서도 무용단 이름에 대해 자주 질문을 받는데 앞으로 많이 불리면 익숙해지리라 생각해요. 

 1) 아코모다도르(acomodador): 포르투갈어로 조절하다 라는 뜻의 명사형으로,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에서 한계를 극복하고 자유로워지기 위한 자기성찰의 방법으로 등장한 단어. 
 2) 개역성경에서 ‘세상 창조에 관한 기록’이란 뜻을 가진 ‘창세기’의 히브리 제목 ‘베레쉬트(Bereshit)’는 ‘태초에’라는 의미를 가진다.


무용단의 구성과 그동안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무용단은 한성대를 졸업한 동문들과 시작해서 현재 5명의 단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200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라고사의 페스티벌(Zaragoza Trayectos)에 초청되면서 ‘박순호댄스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해외 활동을 하다 보니 무용단 이름을 만드는 게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2012년부터 ‘브레시트 댄스컴퍼니’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무용단은 2007년 스페인 공연을 계기로 멕시코, 영국, 인도 등 해외활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국내공연은 신작을 자주 내지 못하는 제 성향 탓에 활발히 하지는 못했습니다. 주요 레퍼토리도 <생명력 Life Force>, < 人 -조화와 불균형>, <활>, <유도> 등 많지 않아요.

많은 활동에도 레퍼토리가 적다는 것은 반복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려는 무용단의 방향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해요. 한국의 지원금제도는 신작에 치중되어있지요. 레퍼토리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정말 필요한 작업이고 그 가치가 인정되길 바랍니다.

동의합니다. 사실 한 작품을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것은 제 작업 성향이기도 해요. 저는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한 작품이 여러 곳에 초청되다 보니 반복을 하게 되는데 저는 똑같이 공연한 적이 없어요. 끊임없이 발전시키려 합니다. 물론 무용수들이 힘들어하기도 해요. 하지만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많은 사람이 찾아주고 박수를 받으면서 레퍼토리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스스로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제 단원들이 많이 이해해주고 저도 만족하고 있어요. 한국시장은 작품이 짧게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일이 많죠. 열정에 대한 보상이 따라주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어떤 무용단으로 비치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하는 무용단의 이미지가 있나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네 가지가 있는데 일, 사랑, 놀이, 그리고 연대라고 합니다. 후배들과 오래 함께하다 보니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네 가지를 함께 찾고 서로의 관계 안에서 발전하는 무용단이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예술적 색깔을 말하자면 전통을 현대적 시각에서 풀어내는 무용단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밖에서 만들어주는 이미지는 또 다른 저를 찾는 것 같습니다. 미국 언론에서 우리 무용단에 대해 ‘어반 쿨(urban cool)’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여러 번 보았는데, 우리 작품이 시크(chic)하다고 하더군요. 굉장히 빠르고 에너지 넘친다고 하는데 저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볼 수 있구나 신기하게 생각했죠. 

▲ <유도> © 브레시트댄스컴퍼니

▲ <유도> © 브레시트댄스컴퍼니

작품 <유도> 이야기를 해보죠. 초연 무대는 매력적인 춤의 밀도가 높고 흥미로운 오브제가 눈에 띄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안무자의 입장에서 <유도>는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주세요.

<유도>는 우연히 책에서 ‘여우사냥’에 대한 것을 읽으며 인간의 공격성, 폭력성이 스포츠 안에 내재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어요. 폭력적 본능이 현대에 와서 스포츠라는 옷을 입었다고 보는 것이죠. ‘폭력성’은 무엇일까 찾기 시작했을 때 마침 폴란드에 공연을 가서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섬뜩한 느낌을 받았어요. 폭력성은 생존본능이라는 생물학자의 주장도 있듯, 현대사회에서 폭력성은 양적으로 줄어든 것이지만 질적으로는 늘 같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스포츠 종목 중에서 오브제가 흥미로웠던 것이 유도 종목에서 사용하는 유도 매트였어요. 그래서 한번 작업해보고 싶었습니다. 

유도의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은유적으로 표현된 것들에 많은 이야기가 담긴 것 같은데,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LIG극장에서 초연될 때 풀지 못한 숙제처럼 부족한 면을 느꼈어요. 움직임에 대한 리서치, 장면마다 아이디어, 오브제, 조명, 사운드 등 세부 요소들은 많이 찾아서 넣었지만, 정작 폭력성을 어떻게 (안무라는 기법을 이용해) 관객에게 던져주어야 할지는 풀어내지 못했거든요. 그것을 찾는 것이 창작의 정점이고 그 정점이 감동을 줄 때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지금도 어떻게 완성할지 잘 모르겠어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스포츠의 승부가 아니라 정점에 오른 스포츠인들이 보여주는 과정, 그것의 감동입니다. 전문무용수들의 기량을 통해 이런 과정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팸스초이에 세 번째 선정되었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팸스초이스는 단순히 외국 프리젠터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조그만 무용단에게 열악한 국내시장에서 해외시장으로 나갈 기회를 주는 든든한 지원제도입니다. 저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그 극장에 왔던 프리젠터들이 초청을 해주면서 또 다른 기회를 얻어왔어요. 무용단과 단원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에 시장 개척의 기회는 중요한 것입니다. 팸스초이스는 앞으로도 해외시장에서 좋은 기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까지 제 작품 세 개가 해외진출의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매번 저희의 노력에 동기부여가 되어 준 점에 감사하고 있어요.

최근 국내공연규모가 소그룹으로 변하면서 해외진출이 쉬워지기도 했고, 제작단계부터 해외교류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팸스초이스에 거는 기대가 많아졌다고 할 수 있어요. 주관하는 기관과 예술가 모두 같은 비전을 가져야하고, 과정에 참여하는 전문가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유도>로 팸스초이스에 참여하면서 바라는 결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팸스초이스를 통한 성과를 말하자면 공연을 반복할 기회를 통해 완성도를 갖게 되고, 그 완성도가 다시 해외 초청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무용단의 경우 미국 매니지먼트를 얻게 되었어요.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 발을 디딘 것이 ‘제이콥스 필로우 페스티벌(Jacob’s Pillow Dance Festival)’이었고 이를 통해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해외진출이 공연에 그치지 않고 함께 작업하기를 원했는데 그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팸스초이스를 통해서도 이러한 기회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국내활동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고민될 것 같은데 어떤가요?

물론 의식하고 있는 점입니다. 그래서 가진 계획이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었고 작년부터 시작하게 되었어요. 소외지역의 양로원, 청소년센터 등을 찾는 공연을 작년에 10회 했고 올해는 상반기 5회를 마쳤습니다. 무용계 안에서의 공연도 좋지만 이런 활동도 상당히 만족하고 있어요. 

▲ 박순호 대표 © 이강혁

▲ 박순호 대표 © 이강혁

한국에서 안무가로 사는 것은 어떤가요?

사실 올해 초에 무용을 그만둘까 고민을 했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해외활동을 활발히 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안무만 하다가 행정가의 역할을 해야 하니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안무가가 되려 한 것이었는데, 경영과 행정을 고민하며 시장을 계산하고 있는 저를 본 것이죠. 저와 함께 하는 무용수들까지 불안하게 한다면 이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되었습니다. 누구나 겪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이라 생각해요. 

어떻게 그 갈등에서 빠져나왔나요?

아직 빠져나온 것은 아니고 극복하는 과도기에 있어요. 그 갈등 속에서 만든 작품이 <활>입니다. 힘든 시기에 <활>을 만들며 포르투갈어 ‘아코모다도르(acomodador)’를 알게 되었어요. ‘조절하다’라는 뜻인데, 활을 쏘려면 당연히 필요한 것이 ‘조절’이라 생각하다가 시간 지나니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더군요. 내 안에 더 집중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어요. 무의식, 본능으로 사는 것 말고 모든 순간 내 안의 것에 집중하고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에 소망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저 스스로 무용을 그만두는 적당한 시기를 알게 될 것 같아요. 40살이 넘도록 무용만 했으니 그다음 40년은 다른 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브레시트 무용단은 안정된 시스템을 갖게 되어 제가 빠져나와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껏 1인 리더로 모든 것을 이끌고 있는데 저도 안무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고, 후배들도 안무가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경험들을 무용단 안에서 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현실적인 생각도 하고 있어요. 모두가 현재의 과정에 만족하고 있기에 훗날 무용단이 없어지더라도 기분 좋게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이죠. 각자 1인 안무가로 독립해야겠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고 하고 있어요.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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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김효영의 음악은 ‘New’하고 ‘Now’하다]]> 생황·피리 연주자 김효영
김효영의 음악은 ‘New’하고 ‘Now’하다


언제부턴가 전통음악계에 ‘작가주의’란 말이 통용되고 있다. 흔히 잘 나간다는 연주자들은 ‘연주’만을 일삼지 않는다. 그들은 저 스스로 악기에 맞는 ‘음악을 만들고’, 작곡가에게 직접적인 영감을 주어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곡을 받아낸다’. 생황·피리 연주자 김효영은 작가주의 연주가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 국악은 선율과 화성의 시대였다. 선율을 노래하는 해금과 화성을 충분히 연출하는 여러 줄의 가야금이 각광 받았다. 그리고 이제 음색과 음향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그래서 묘한 음향의 생황과 양금이 조명받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유행의 흐름을 선도할 만큼의 생황의 레퍼토리도 연주자도 충분치 않다. 그래서 김효영이 생황을 위한 곡을 쓰거나 발표할 때, 많은 이들이 그녀의 존재와 행보를 주목한다. 생황을 비롯하여 피리와 태평소 그리고 작곡과 연주에 능한 김효영을 만나 2016 서울아트마켓(10월 4~8일)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묻고 들었다.   

필자와 김효영 생황연주가  © 이강혁

▲ 필자와 김효영 생황연주가  © 이강혁

서울아트마켓 참가는 이번이 처음인가요?

해외 진출에 관심이 많아서 예전에 구경 온 적이 몇 번 있어요. 2010년에는 개인 부스를 만들기도 했지만, 특별한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땐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선정된 소감과 올해 서울아트마켓을 통해 이루고 싶은 계획이 궁금합니다.

서울아트마켓을 찾는 국내외 델리게이트들에게 제 음악을 들려주고 해외 진출의 가능성을 검증 받아보고 싶습니다. 해외 공연은 지인이나 개인적인 경로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현지에서의 공연도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서울아트마켓을 해외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던 음악가나 앙상블이 많습니다. 이들을 볼 때 음악가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일단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나 앙상블을 보면 그들만의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독특한 색, 뛰어난 앙상블은 물론 음악은 말할 것도 없죠. 예를 들어, 그룹 잠비나이의 결성 초기에 ‘신선하다’ ‘뭔가 되겠다’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그룹 공명 역시 그랬죠. 그들의 음악적인 구성 역시 명확합니다. 국악기가 지닌 특성과 색에 집중하며 자기들의 색을 드러내죠.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저의 음악적인 색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명확한 색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그리고 ‘내가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건강한 고민을 이번 서울아트마켓을 계기로 하고 있습니다.   

피리와 태평소 그리고 이제는 김효영 씨만의 전매특허가 된 생황 연주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생황 자작곡을 만들기도 하고,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과 음악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2006년에 생황으로 첫 독주회를 한 이후 꾸준히 레퍼토리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활동 초기에는 탱고 같은 대중적 음악을 연주한 게 강한 인상을 주었는지, 국내 관객들에게만 인기가 있을 거라는 한계점을 지적하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실험적이고 면밀한 앙상블이 요구되는 곡들을 많이 연주했어요. 그랬더니 예전과 다른 시선으로 제 음악을 인정하더라고요. 국내에서는 저의 음악에 대해 한국음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곤 해요. 반면 해외에서는 세상에 있는 수많은 음악 중 하나라는 시선으로 저의 음악을 대하는 느낌을 받곤 해요.  

© 김효영

▲ © 김효영

김효영 씨가 생각하는 생황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일단 생김새가 독특하지 않나요? 외국에서 연주할 때, 대부분의 관객이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소리를 ‘천상의 소리’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연주법에 따라 ‘지옥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이기도 해요. 저는 이러한 특색을 최대한 살려서 곡을 만듭니다. 즉흥연주를 할 때 피리는 생황보다 더 많은 기동성을 발휘합니다. 제가 두 가지 악기를 모두 다룬다는 게 자랑스럽고, 저만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해외 공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5·6월 프랑스 북부의 발랑시엔 극장에서 <카르푸 앵테르나시오날(Carrefour International)> 공연이 있었어요. 한국·캄보디아·베트남·이란 등의 전통음악가들을 초청해서 각국의 전통음악을 선보이고, 콜라보레이션을 한 공연이었죠. 공연의 콘셉트는 음악을 통해 세계를 여행한다는 것이었어요. 나중에 기사를 보니 생황보다는 피리에 관심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당시 이란 전통악기인 탄부르와 이중주를 하기도 했는데, 반응이 좋았는지 내년 공연에 다시 초청받았습니다. 2015년 하우스콘서트 유럽투어에 참여했었는데요. 프랑스 리옹에서 로랑 마리우스(타악)와 협업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어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국의 색을 명확히 드러내는 ‘전통’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음악이 이런 뿌리와 닿아 있다는 점에서 기쁨을 느낄 때도 있고요. 해외로 나가면 이러한 ‘전통’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와 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최근 젊은 국악인들이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십분 활용하여 전세계 음악가들과 활발히 만나고 있습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나요?

2014년에 파리국제예술공동체(Cité Internationale des Arts)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3개월 동안 파리에 체류했어요. 그곳에서 프랑스의 재즈 보컬리스트, 피아니스트, 색소포니스트를 만났습니다. 새로운 음악가와의 만남은 곧 새로운 음악으로 이어지곤 하죠. 그들과 함께하며 만족할 만한 음악적 결과물을 얻기도 했어요. 하지만 귀국하면 이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경로와 기회를 잡기가 힘들더군요.

음악가들의 해외 진출을 보면, 자신의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한 공연과 페스티벌 참가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현지 음악가들과의 공동 작업의 길이 있습니다. 둘 중 어떤 것을 더 원하나요?

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모두 다 환영합니다. 지금까지 만든 음악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도, 낯선 음악가들과 함께 하는 것도 모두 욕심이 나기 때문이죠. 앞서 말한 <카르푸 앵테르나시오날(Carrefour International)> 공연에서 캄보디아의 전통무용에 맞춰 생황을 즉흥으로 연주한 적도 있는데요. 무용·연극과 즉흥적으로 함께 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선호해요. 다름과 차이를 전제로 한 만남, 나의 것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동화를 위한 만남은 언제나 늘 즐겁더라고요. 2015년에 하우스콘서트와 국립국악원이 함께 한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峯)>에서 ‘笙-Improvisation’을 무용가(임희영)와 함께했었는데요. 그것 역시 기억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 김효영

▲ © 김효영

이번 서울아트마켓에서 어떤 것을 보여줄 예정인가요?

저는 생황·피리·태평소를 모두 다루는 연주자이지만, 생황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계획이에요. 생황을 중심으로 독주, 대금과 함께 하는 2중주, 피아노·타악기와의 앙상블 등의 곡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제가 작곡한 독주곡 ‘고즈-넋’과 ‘생(笙)’을 비롯하여 저의 즉흥연주 능력을 부각시키고, 그동안 같이 작업해 온 작곡가 박경훈씨의 곡들도 소개하려고 해요. 아시아에서 태어난 생황은 전 세계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한국의 생황 연주자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자작곡과 작곡가의 곡을 모두 아우르는데요. 둘 중 어떤 것이 더 좋습니까?

제가 전문 작곡가가 아니기에 곡을 잘 쓰기는 어렵고, 또 작곡 과정 역시 오래 걸려요. 그래서 아직 많은 곡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곡은 나의 음악성을 오롯이 보여주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곡가가 써서 주는 곡이라고 해도 ‘나의 것’과 ‘나만의 음악성’이 없으면 안 됩니다. 내 연주를 작곡가가 듣고 그가 내게 맞는 곡을 작곡해서 주고, 그렇게 내가 원하고 그리워하던 음악을 눈 앞에서 그려갈 때, 연주가와 작곡가 모두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김효영 생황연주가  © 이강혁

▲ 김효영 생황연주가  © 이강혁

서울아트마켓이 열리는 10월은 김효영에게 정말 바쁜 달이다. 2일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오르고, 8일 2016 북촌낙락(北村樂樂)에서 <김효영의 생황풍류>를 선보인다. 특히 <김효영의 생황풍류>에서는 전통에 기반을 둔 생황 산조부터 즉흥곡까지 선보인다. 그 외에 그동안 활동하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검증받은 곡들로 구성한 그녀의 세 번째 음반이 나오는 때도 10월이다.
그녀의 바쁜 일정만큼 생황의 현주소와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생황은 그만큼 인기 있고, 여러 음악과 공연에함께 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것. 그 가운데 김효영이 있다.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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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관객과 함께 숨 쉬는 공연’을 위해 헌신하는 연출가 오태석]]> ‘관객과 함께 숨 쉬는 공연’을 위해 헌신하는 연출가 오태석
 


오태석은 우리 연극의 대표성을 확보한 극작가 겸 연출가이다. 지금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는 관습에 대한 실험과 도전을 지속해왔다.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웨딩드레스>가, 1968년 국립극장 장막희곡공모에 <환절기>가 연이어 당선되며 화려하게 극작가로 등단했다. 극작에 집중했던 초기에는 서구적 드라마트루기에 충실한 부조리극을 주로 발표했다. 동랑레퍼토리극단 <루브>(1972)를 통해 연출가로 입문한 후, <태><부자유친> 등의 성공으로 연출가로서의 입지도 확실하게 다졌다. 1984년 극단 목화를 창단하고, 대표로 활동한 이후에도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백마강 달밤에><자전거> 등을 통해 우리 연극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도전과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역사와 현실에 기반 한 비판적 사회인식이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데, 2000년 이후 <내사랑 DMZ>, <용호상박> 등의 작품을 통해 환경과 생태문제로까지 관심의 영역을 확대하였다.
6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쓰고 연출하면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관객이 상상하고 사유할 수 있는 영역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연출세계가 압축된 작품이 <로미오와 줄리엣>인데, 이 작품은 2016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었다. 이에 오태석 연출가를 만났다.

오태석 연출가와 필자  © 이강혁

▲ 오태석 연출가와 필자  © 이강혁

선생님의 연극 세계를 보편적으로 ‘전통연희의 재발견과 현재적 수용’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의 부조리극 창작부터 전통연희의 수용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일관된 지향점은 ‘관습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간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을 영국 바비칸 센터에서 공연했을 때, 3주 전에 표가 완전 매진되고, 공연리뷰가 지하철신문에도 나올 정도로 반응이 열렬했어요. 에든버러페스티벌 오프닝 작품으로 <템페스트>를 공연할 때는 3일이 지나니까 체감할 정도로 반응이 왔어요. 그네들의 작품을 우리 의상 입고, 우리 리듬과 움직임으로 공연한 것인데, 기립박수까지 하더라고요. 당시 관객들은 글로브 극장 시절에 보던 원초적인 연극을 본 것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공연을 함께 만들어가도록 관객의 몫을 되돌려주는 연극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한 거예요. 당연하게 무대에서 하던 것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는다는 점에서 관습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연극연수를 떠나 미국에서 동시대 연극을 접하고, <춘풍의 처>를 직접 제작ㆍ공연하면서 관객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인터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연극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실험을 지속해 오시는 선생님께서 전통에서 길을 찾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연극은 볼거리로 생각 거리를 만드는 거예요. 동서양 불문하고 연극의 시작은 동일했는데, 실내극장으로 들어가면서 관객이 할 일들을 많이 축소시켰어요. 관객이 관극한다는 것은 비약, 의외성, 즉흥성, 행간 등을 채워가는 행위인데 과잉친절, 극장 구조상의 문제 등으로 관객이 수동적이 되었죠. 연극이란 관객의 참여로 온전히 완성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연극의 원래 틀을 관객에게 되돌려주려고 하다 보니까 개방적인 전통연희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우리 언어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지역 방언을 무대언어로 생생하게 살려내려고 노력했으며, 전통연희 화법ㆍ관객에게 시선두기ㆍ맨발로 무대서기와 같은 자신만의 연기메소드를 정착시키셨는데요. 왜 이러한 실험과 도전을 하게 된 건가요?

젊은 시절, 서양의 연극은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남의 다리 긁는 것 같고, 남의 식구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회의감이 있었지요. 제4의 벽을 세워놓는 연극은 관객과의 소통에서 제한될 수밖에 없어요. 특히 관객이 실제로 쓰는 언어가 있는데, 쓰지도 않는 번역투의 문어체로 공연하니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죠. 잊히지 않고 살아서 계승되어 온 구어체처럼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해야 관객이 진심으로 호응해요.
라이브공연은 무대와 객석이 함께 숨 쉬는 것이기에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지금까지 노력하고 있어요. 동일한 시공간 속에서 관객의 에너지가 무대로 올라와서 상승작용을 할 때 비로소 상호 숨쉬기가 돼요. 관객의 지혜와 지식을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온 결과가 지금에 이른 것이죠. 전통연희가 비약, 생략, 즉흥성, 의외성 동원을 잘하니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고요. 

이미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선생님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출의도와 연출의 핵심에 대해 다시 듣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처음 관극했을 때,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이 충격이었지만 설득력이 있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첫사랑의 아름다움을 그린 작품인데, 비극으로 오해하고 있어요. 이 작품이 오래 공연될 수 있었던 핵심은 ‘아름다운 건 아픔의 시작’이란 사실을 보여주고, 가장 빛나던 시간을 체험케 한다는 점이에요. 아름다움의 정점의 순간을 포착하게 하죠. 이 순간 이후에는 무너져 훼손되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순간의 소멸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까요. 그런 점에 착안해서 우리의 ‘천연덕스럽게 넘어가는 발효문화’가 가미되면 밝은 얘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더해 출발했죠. 이런 맥락에서 첫날 밤의 붉은색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상징해요. 죽음처럼 보이지만 진짜로 살아있는 아름다움을 그리려고 연출한 것이죠.
결국 이 작품은 아름다움을 훼손시키는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이자 풍자라고 할 수 있어요. 아무 가치도 없는 양가의 썩어빠진 반목이 폭발하여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파괴하죠. 사랑으로는 그러한 반목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파괴적 결말을 통해 죽음을 안타깝게 바라보게 했죠.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의 결말을 남북분단 상황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연출의도와는 거리가 있어요. <템페스트>에서도 쌍두아를 남북문제의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분들이 많은데, 솔직히 불편해요. 프로스페로의 마술이 제대로 작용하여 캐리반의 가장 불편한 점을 풀어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요? 새경을 대신해서 자유를 줌으로써 프로스페로의 마술은 완결된 것이죠. 현재의 관점에서 가장 타당한 선택을 한 거예요. 

<로미오와 줄리엣>  © 극단 목화

▲ <로미오와 줄리엣>  © 극단 목화

런던 바비칸 센터 등 해외에 자주 초청받은 작품인데요, 현지의 관객 반응은 어떠했나요? 혹시 나라에 따른 편차가 있었나요?

영국 에든버러에서 공연하고, 이어서 칠레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데, 관객의 반응이 거의 같았어요. 시공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적극적이어서 놀랐죠. 기존에 보아온 것과 다른 공연이 무대에 펼쳐지고, ‘쥐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머리 회전을 시키니 관객이 새로운 체험을 한 거죠. 함께 만드는 연극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이번 작품이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것도 서양 관객들과 우리 방법론을 나누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지라고 선정해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공연의 특징은 끊임없이 작품을 수정ㆍ보완하기 때문에 재공연일지라도 이전과 동일한 작품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템페스트>의 경우, 초연과 재공연이 완전히 달라져서 다른 작품을 보는 듯 했지요.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이전 공연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한데, 미리 귀띔해 주실 수 있나요?

연극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현장성을 강화해야 해요. 참여자들이 석고처럼 굳어져 있으면 라이브는 불가능하죠. 매번 다른 관객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도 라이브가 되어야 하죠. 공연할 때마다 매번 부족한 점이 발견돼요. 매 공연마다 배우, 연출, 스태프 모두가 지적사항을 기록한 노트를 작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수정해나가는 거죠. 관객은 부족한 점을 확인하러 오는 것이 아닌데, 잘못된 것을 알면서 수정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죠.
관객에게 더 많은 몫을 내어주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려면 수없이 많은 망치질을 통해 끝없이 변화해야 해요. 공연은 창작자에게 생물체이죠. 레미콘이 끊임없이 돌아가야 굳지 않는 것처럼 배우들에게 잠자면서 뒤척일 때마다 발가락이라도 돌리라고 요구하죠. 목화 단원들은 굳지 않게 하려고 매일 3~4시간, 많으면 6~7시간 연습하는 것이 일과예요. 때문에 몸시계가 내재되어 버렸어요.
저는 동인제 극단이라는 것이 ‘허구의 시간을 하루에 8~10시간 함께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현실과 접하는 것을 가능한 한 막기 때문에 단원들은 저를 ‘감옥소 소장’이라고 뒤에서 부른답니다. 레미콘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자율성도 중요하지만 배우는 혼자 연습하기 힘들기 때문에 함께 할 때 효율성이 훨씬 커져요. 8시 공연할 때는, 반드시 1~2시에 모여서 매일 런스루 하고, 작성된 노트를 중심으로 저녁에 보완하여 공연하죠. 그래서 같은 공연이 없다는 말이 나온 거지요. 연습할수록 좋은 공연이 된다고 확신해요. 초연 이후 <로미오와 줄리엣>은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남기는 방향으로 다듬어가고 있어요. 이번 공연에서도 소탈, 단순하고, 치장 없이 더욱 정제해 나갈 예정이랍니다. 

오태석 연출가  © 이강혁

▲ 오태석 연출가  © 이강혁

극단 목화는 2015 팸스초이스에 이어 2016 팸스초이스에도 선정되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반복하지만 관객의 능동적인 숨쉬기를 요구하는 방법론을 계속 고민해요. 서양 관객도 스스로 공연의 완성에 적극 참여하니까 좋아하는 것이고요. 공연과 함께 숨 쉬는 기쁨을 관객도 다시 찾아야 돼요. 우리 극단의 공연이 어렵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데, 솔직히 동의하지 않아요. 관객과 숨쉬기를 함께한다면 어려운 공연은 없어요. 거리를 두고 관극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뿐이겠죠. 우리 공연은 연극 체험이 많지 않은 지방 관객도 흥겨워해요.
기록으로 존재하는 문어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생한 구어체로 이루어지니 이해가 잘 되죠. 그리고 장식으로 치장하지 않고 날것의 에너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해요. 지금 남산국악당에서 <춘풍의 처>를 공연하고 있는데, 예전 공연에 마이크를 사용 안 하니까 관객에게 전달이 잘 안 되더라고요. 국악의 묘미는 ‘가죽을 울리고, 심장을 울리는데’ 있는데, 많은 국악인들이 마이크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너무 이상했죠. 우리 극단과 공연할 때는 마이크를 못 쓰게 하니까 적응이 안 돼서 전달력이 떨어진 거죠. 시간이 흐르면서 마이크 없는 환경에 익숙해지니까 지금은 너무 잘 전달되지요. 기계에 가려지지 않은 날것의 진짜 소리를 들려드리니까 관객은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고요.

작년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를 통해 어떠한 성과가 있었는지, 그리고 서울아트마켓을 통해 올해 도전하시고자 하는 해외진출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작년에 팸스초이스에서 선정된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는 외국공연을 아직 못했어요. 관심이 없는 것 같지 않은데, 우리만의 이야기라는 편견으로 초청하는데 주저하더라고요. 올해는 아직까지 공연하지 못한 프랑스와 러시아 관객과 만나고 싶어요. 많은 나라에서 공연했는데, 이 나라들하고는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았어요. 어쨌든 올해는 작년보다 적극적인 마인드로 마케팅 해서 좋은 결과를 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어요.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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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예술을 통해 우리 삶을 꽃피우다]]> 예술을 통해 우리 삶을 꽃피우다
[피플]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 감독 카르멘 로메로


23년 전, 긴 침묵 속에 가려져 있던 연극을 향한 열망이 한 기획자의 열정과 함께 깨어났다. 칠레 산티아고 기차역에서 시작된 작은 연극운동은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였고, 오늘날 20개국 66개 단체가 참가하는 규모 있는 국제공연예술축제로 성장하였다. 시속 1,000킬로처럼 빠른 속도로 많은 이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산티아고 아밀(Santiago a Mil)’이란 이름이 붙여진 축제.1) 매년 1월 3주간 개최되는 축제를 통해 시민들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과 같은 세계적 예술가와 조우할 수 있었고, 예술가들은 해외 축제와 연을 맺어 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창설 이후 열정으로 축제를 이끌어 온 감독 카르멘 로메로(Carmen Romero)가 있다. 출장차 방문한 산티아고에서 그녀를 만나,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꿈을 추구하며 실현해 온”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Santiago a Mil International Theater Festival)의 시작과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산티아고 아밀의 아밀(a Mil)은 움직임과 속력을 표현하는 스페인어로 시속 1,000킬로를 상징한다.



Q(정선경). 두 기획자의 실천으로 출발한 축제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 궁금하다.

카르멘 로메로(이하 ‘카르멘’) : 칠레의 문화예술은 20세기 후반 피노체트 독재정권을 경험하며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2) 이 기간 칠레 예술가들에게는 무언가를 발산하고자 하는 힘, 연극에 대한 에너지는 있었지만 이를 발현할 수 있는 장이 없었다. 나는 이들에게 표현의 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동료 에블린 캠벨(Evelyn Campbell, 현 재단 제작감독)과 함께 아무것도 없던 마포초 기차역(Estación Mapocho)3) 에서 세 연극단체의 공연을 선보였다. 이것이 축제의 시작이다. 당시에는 재정 지원도 없었고, 오직 ‘이렇게 존재해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참여하여 독립연극(Independent Theatre)에 대한 움직임을 키워갔고, 프로젝트도 함께 성장했다. 2001년부터 해외작품을 함께 소개하기 시작했고, 2004년 국가 칙령으로 떼아뜨로 아밀재단 FITAM(Fundación Teatro a Mil)이 설립되었다.



2)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는 1973년부터 1990년까지 대통령직을 역임한 칠레의 정치가이자 군인이다. 재임 기간 3,197명의 인사가 정치적 이유로 처형, 감금, 고문, 강제 추방되었다. 연극 레퍼토리 < 죽음과 소녀 >는 이 시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3) 마포초역 문화센터(Centro Cultural Estación Mapocho)는 파트리치오 알윈(Patricio Aylwin) 정부(1990-1994)가 칠레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기차역을 문화센터로 개조해 만든 건물이다. 현재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의 장소로 공연, 전시, 박람회 등이 개최된다.


제23회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 포스터©Santiago a Mil International Festival

마포초역 문화센터©Centro Cultural Estación Mapocho

제23회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 포스터
©Santiago a Mil International Festival
마포초역 문화센터
©Centro Cultural Estación Mapocho

Q. 그럼 축제는 재단의 모태가 되고, 재단에서 축제를 운영하는 것인가? 떼아뜨로 아밀 재단과 역할을 소개해 달라.

카르멘 : 그렇다.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는 재단의 중심 사업이고, 축제를 통해 재단의 미션을 압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재단은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접하는 기회를 모든 이들로 확대한다. 우선, 저렴한 티켓 정책과 취약 계층을 위한 무료 공연으로 경제적 문턱을 낮추었다. 또한, 2011년부터 축제를 산티아고뿐만 아니라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발파라이소(Valparaíso), 로스 라고스(Los Lagos) 등 8개 도, 45개 도시로 확대 개최하여 지역의 문화향유기회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번에 초청된 극단 목화의 <템페스트>도 지역사업의 일환으로 산티아고 시립극장(Teatro Municipal de Santiago) 외에 페냐롤렌(Peñalolén), 탈카(Talca)에서 공연되었다

훌륭한 예술은 훌륭한 관객을 만든다

Q. 극단 목화 공연을 향한 관객 반응을 보고, 축제가 지역사회의 문화적 삶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에 있어 지역사회란 중요한 화두인 것 같다.

카르멘 : 우리는 “모든 이를 위한 훌륭한 예술(Teatro Popular y Elitista)”을 추구한다. 훌륭한 예술은 훌륭한 관객을 만든다. 이를 위해 재단은 예술가와 관객을 교육하고 양성한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교류하고 배우며, 공동체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고민하는 경험을 확대해 나가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2016년부터 칠레는 연극을 정규 교과목으로 교육할 예정이다. 우리는 의회에 연극을 교과목으로 채택할 것을 요청했고, 전 의회와 문화부가 동의했다.4) 사람을 향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이를 꾸준히 지켜나가면 무엇인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지역과 사회, 경제적 한계를 넘어 더 많은 사람이 교육을 통해 공연예술을 접하게 되었고, 예술이 그들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 기대가 크다. 



4) 교육개혁은 현 미셸 바체렛 헤리아(Michelle Bachelet Jeria)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로 ‘서비스 시장’이 아닌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로 무상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출처: 코트라 칠레 국가정보



Q. 칠레 예술가들을 위해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카르멘 : 공연예술 마스터 강의, 연기법 등 공연예술 관계자의 역량개발을 위한 무료워크숍을 연중 운영하고, 영국 로열코트(Royal Court Theatre)나 프랑스 태양극단(Théâtre du Soleil) 등 세계적 극장, 극단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칠레 및 중남미 예술가와 작품이 해외에 소개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대표적으로 칠레 공연예술마켓인 ‘플라테아’(PLATEA)(각주 5)를 개최한다. 



5) 플라테아는 칠레 및 중남미의 현대공연예술 작품 경향을 소개하고, 공연예술 전문가 간의 교류를 도모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산티아고 아밀 국제축제 기간 중 일주일 동안 개최된다. 매년 200명 내외의 공연예술 관계자가 참가하고 약 50개의 작품이 소개된다. 플라테아를 통해 프랑스 아비뇽 축제, 영국 에든버러 국제축제, 캐나다 트랜스아메리카 페스티벌(Festival TransAmériques), 독일 테아터포르멘 축제(Festival Theaterformen), 오스트리아 비엔나 축제주간(Wiener Festwochen) 등 세계 주요 축제로의 진출이 이루어졌다. 또한, 프리젠터 간 초청프로그램은 해외진출의 효과를 높인다. 대표적으로 2014년 소개된 라 레센티다(Teatro La Re-sentida)의 < 미래에 대한 상상(La imaginación del futuro) >은 2015년에만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독일, 싱가포르, 캐나다 등 14개 축제 및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플라테아©Fundación Teatro a Mil

지역 야외공연©Fundación Teatro a Mil

플라테아 ©Fundación Teatro a Mil 지역 야외공연 ©Fundación Teatro a Mil 

Q. 다양한 사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를 운영하는 조직체계와 예산규모가 궁금하다.

카르멘 : 재단은 기자, 프로듀서, 행정가, 엔지니어, 예술가 출신의 공연예술 전문가로 구성된 6개 팀으로 조직되어 있다. 각 부서는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문화향유를 확대하고, 새로운 관객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한다. 집행부는 사업에 대한 전략수립 및 조율, 제작부는 작품제작, 상업부는 재원조성, 대외협력부는 타겟 관객에게 사업과 작품을 홍보, 해외업무 및 공동제작팀은 해외진출, 행정 및 재정부는 전체 사업에 대한 법적 지원 및 재정을 담당한다. 예산은 연 500만 달러(한화 60억 원)다. 31%는 문화예술위원회, 대통령 직속기금을 통해 공공재원으로 지원되고, 30%는 문화기부법에 따른 기업 세제 혜택에 따른 기부, 나머지는 민간기업 후원, 티켓 판매 수익, 해외사업 수익 등을 통해 조달한다. 

Q. 산티아고뿐만 아니라 칠레 전역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적은 예산은 아니지만, 전국 단위의 사업을 운영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카르멘 : 그렇다. 그래서 재정후원 외 다양한 방식의 협력관계를 구축해왔다. 예를 들어 지역 공연 진행 시, 재단은 지역 극장에 대관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티켓 수익의 60%는 재단, 40%는 극장으로 배분되어 돌아가고, 재단 수입의 80%는 단체에 지급된다. 또한, 미디어와의 협력관계를 통해 전국 단위의 대대적 홍보를 진행한다. 

 

2009 센터스테이지코리아 칠레 한국특집 포스터

극단 목화 < 템페스트 > 공연 ©손준현(한겨레)

2009 센터스테이지코리아
칠레 한국특집 포스터
극단 목화 < 템페스트 > 공연
©손준현(한겨레)

Q. 2009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센터스테이지코리아’ 사업을 통해 3개의 한국단체(극단 서울공장, 밀물현대무용단, 들소리)를 소개한 이후, 2015년 극단 마방진 < 칼로 맥베스 >와 2016년 극단 목화 < 템페스트 >를 초청했다. 한국공연에 대한 생각과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카르멘 : 칠레 공연과는 매우 다르다. 하지만 한국만의 스타일을 보유하고 잘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소개했던 한국 초청작들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번에 소개한 극단 목화의 < 템페스트 > 역시 매진행렬과 기립박수 속에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6), 극단 서울공장의 < 두 메데아 >도 관객 반응이 매우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속해서 한국의 새로운 작품을 칠레 관객들에게 소개하며 관계를 지속해 나가길 희망한다. 한국 작품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



6) 손준현, “굿장단 탄 ‘템페스트’에 안데스 응답”, 한겨레 신문, 2016.01.21.



Q. 프로그래밍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카르멘 : 축제를 기획하는 것은 사람들의 ‘느낌’, 그리고 ‘심장’과 함께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특별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훌륭한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훌륭한 예술’이란 자신이 탐구한 바를 관객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내적 욕구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관객이 그것을 항상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는 철저하고 정직한 여행으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점이 축제를 프로그래밍하며 추구하고, 축제에 오는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점이다. 그래서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되, 수준 높은 작품만을 소개하고자 했고, 전형적인 서구의 규범과 문화가 아니라 역사적이고 현대적인 작품의 아름다움과 힘을 보여주고자 노력해왔다. 

“비록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카르멘 로메로 ©Shinah Kim

카르멘 로메로 ©KAMS

Q. 마지막으로 여성으로서, 리더로서, 당신 개인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카르멘 : 자녀 셋을 둔 엄마다. 남편은 예술가이고, 첫째는 가수, 둘째는 시각예술가다. 셋째는 연극을 하고 싶어 하다가 영화학교에 갔다. 가족 중 나만 예술가가 아니다(웃음).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다 예술가들에게 표현의 장을 열어주고 싶어 축제를 개최하게 되었다. 공연예술을 사랑하지만, 실제적이고 조직적인 역할에 더 맞는 사람인 것 같다.
우리 조직의 상당수가 여성이다. 우리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축제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프로젝트 시작 후, 지원을 받기까지 3년이 걸렸다. ‘열정’, ‘인내’, ‘타인에 대한 경청’을 통해 프로젝트를 발전시켜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개인이 아닌 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때때로 팀원이 진행하고자 하는 방향이 걱정될 때도 있지만, 담당자가 확신이 있다면 이를 믿고 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그렇게 진행했을 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둔 경우도 많았다. 마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새로운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예술이 새로운 세대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비록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 떼아뜨로 아밀 재단(Fundación Teatro a Mil)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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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동시대 월드뮤직의 최대 메카이자 네트워킹의 원천, 워멕스]]> 동시대 월드뮤직의 최대 메카이자 네트워킹의 원천, 워멕스
[피플] 월드뮤직엑스포(WOMEX)의 디렉터 알렉산더 발터(Alexander Walter)


지난해, 순례자의 길목인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개최 20주년을 기념한 월드뮤직엑스포(The World Music Expo, WOMEX, 이하 워멕스)가 열렸다. 그리고 일 년 후 다시 열린 워멕스는 유럽의 3대 야경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2015년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5일간 진행되었다. 이번 21번째 워멕스는 동유럽 최초의 워멕스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작 전부터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시리아 난민구제에 비협조적이었던 헝가리 정부에 대한 반발로 다수의 워멕시안들이 갑작스레 참가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적잖은 심적 부담을 겪었을 워멕스의 젊은 수장 알렉산더 발터(이하 알렉스)가 서울아트마켓(PAMS)을 찾았다. 행사 개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손발이 척척 맞는 팀원들 덕분에 서울을 방문할 수 있었다는 알렉스. 그는 워멕스의 가장 큰 원동력이자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동료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Q(김민경). 상당히 젊은 나이에 디렉터로서 워멕스를 이끌어 가게 되었다. 워멕스와 함께하고 있는 지금까지 당신의 여정이 궁금하다.

알렉산더 발터(이하 ‘알렉스’): 나는 독일 남부에 위치한 울름 출신으로, 슈투트가르트를 거쳐 베를린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었다.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하였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잠시 교환학생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2004년부터 워멕스의 콘퍼런스와 피란하 아츠(Piranha Arts)가 기획했던 페스티벌 ’하이마트클랭에’(Heimatklänge)의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동안 워멕스에서 콘텐츠&프로그램 매니저와 뮤직 프로그램 디렉터를 역임하면서 워멕스의 전반적인 구조와 업무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 워멕스를 준비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이다. 인턴들과 수습직원들의 역할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 지속적으로 수습직원들을 교육하고, 그들을 업무에 투입하고 있다.

Q. 음악공연 기획과의 첫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되었나?

알렉스:15~16살 무렵, 밴드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공연할 기회를 늘 노렸지만, 결코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직접 공연을 기획해서 올리면서부터가 시작이다.

<바리abandoned> 공연포스터

<바리abandoned> 공연 모습

월드뮤직엑스포(WOMEX) 디렉터 알렉산더 발터(Alexander Walter) ©이강혁

Q. 피란하 아츠(Piranha Arts) 조직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기 바란다.

알렉스: 1987년에 처음 설립된 피란하 아츠는 음악을 중심으로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그 음악을 소개하는 피란하 레코즈&퍼블리싱(Piranha Records & Publishing), 페스티벌 기획과 운영서비스를 총괄하는 피란하 컬쳐(Piranha Kultur), 음악 시장의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모이는 네트워킹 플랫폼 워멕스와 클래시컬 넥스트(Classical:Next)뿐만 아니라, 브라질 헤시피에서 개최되는 포르투 무지칼(Porto Musical), 카보베르데에서 개최되는 아틀란틱 뮤직 엑스포(Atlantic Music Expo),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사운드 오브 더 시티(Sound Of the Xity), 콜롬비아에서 개최되는 써큘아트(Circulart), 쿠바 하바나에서 개최될 프리메라 리니아(Primera Linea)와 파트너십을 통해 컨설팅과 스페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피란하 컨설트(Piranha Consult), 그리고 피란하 리서치(Piranha Research)로 크게 6개의 조직으로 구성된다. 특히 리서치팀은 정부지원을 통한 리서치 프로젝트들을 운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음악과 문화계에서 대두하는 변화를 인식하고, 아티스트와 인디음악 기획자들이 더욱 나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이는 워멕스팀을 비롯한 우리들의 기획과 컨설팅에 중요한 소스로 활용된다.

Q. 워멕스는 유럽에서 시작되어, 유럽의 각지를 순회하고 있다. 이 기조는 변함이 없는가? 각 도시를 순회하기 위한 선정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알렉스: 분명 워멕스는 유럽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것이 변화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상당수의 워멕스 참가자들이 유럽에서 활동하거나 유럽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개최지1)는 유럽 내 도시들을 제안받고, 입찰을 통해 최종 확정된다. 이때 워멕스를 유치하는 도시는 로컬 프로덕션과 예산, 주요 지역자치단체들과의 협력관계들을 책임지고 이끌어가게 된다.

1) 2016년 워멕스 개최지는 다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확정되었다. 현재 2017년 개최지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2018~2020년까지 워멕스 개최지 공모가 진행 중이다.

Q. 워멕스 유치 도시에 워멕스팀이 주는 일종의 혜택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알렉스: 좋은 질문이다. 워멕스는 도시를 옮겨가며 축제를 유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피력하고 싶다. 워멕스 유치 준비 기간과 유치 이후에 남겨진 노하우는 지역 문화가 글로벌하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와 이를 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2009~2011년까지 3년간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워멕스에서는 북유럽 권역(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핀란드)의 문화와 예술성을 보다 심도 있게 소개하기 위해 노르딕 클럽 스테이지(Nordic Club Stage)를 추가로 기획하였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후, 2012년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는 클럽 글로발칸 스테이지(Club Globalkan Stage)를 통해 그리스와 발칸반도의 음악을, 2013년 웨일스 카디프에서는 호라이즌 스테이지(The Horizons Stage)라는 타이틀로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아일랜드의 음악을 소개했고, 지난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는 아틀란틱 커넥션즈 스테이지(The Atlantic Connections Stage)에서 스페인 전역과 남아메리카 출신의 아티스트들을 특별히 소개한 바 있다. 올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클럽 두나(Club Duna2))라는 타이틀을 선정하여 헝가리를 중심으로 폴란드에서부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신 아티스트까지 총 9팀을 소개했다.

 
이러한 기획은 개최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 내 음악관계자들과 아티스트들을 적극적으로 노출하고, 비즈니스와 문화적 교류의 교두보가 되며, 서로 간 굳건한 결속력을 지속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었다. 또한, 해당 지역/권역과 해외관계자들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내 아티스트들의 쇼케이스 무대는 그들의 문화와 음악의 예술성을 해외 관계자들에게 선보이고 자축하는 것뿐 아니라, 지역 관객들을 유치하는 데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권역/지역별 월드뮤직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나아가 추후 공연 기획으로 이어지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확장되기도 한다. 2013년 워멕스의 로컬 파트너인 크루심루(Creu Cymru)는 웨일스 출신과 해외 아티스트들의 포스트 워멕스 투어(Post-WOMEX tour)를 기획 한 바 있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시작된 사운즈 프롬 스페인(Sounds from Spain) 역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여, 지역/권역 중심으로 형성된 네트워크가 꾸준히 유지되는 좋은 사례다.3)

2) DUNA는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의 헝가리어 이름이다. 
3) 알렉스는 이러한 기획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워멕스가 남긴 ‘유산’(Legacy)이라는 근사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바리abandoned> 공연포스터

<바리abandoned> 공연 모습

WOMEX 15에서의 바라지(Baraji) 쇼케이스 ©Jacob Crawfurd WOMEX 15 포스터 ©WOMEX

Q. 올해, 난민구제에 대한 헝가리 정부의 비협조로 일부 워멕스 참가자들이 보이콧을 선포하는 등 축제 개최에 험난한 길이 예상되었지만, 다행히도 워멕스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참가자들 덕분에 진정국면에 든 것으로 보인다. 준비하는 입장에서 어떠했나?

알렉스: 이런 상황에선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특정 상황에 대해) 참가자들이 우려를 표명하는 점에 대해선 우리 또한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워멕스는 그 어떠한 인종차별이나 혐오주의적인 행태에도 맞설 것이며, 문화와 국경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워멕스의 목표와 목적에 따라 더 나은 사례를 만들어가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헝가리 로컬 파트너 행베토(Hangvető)와의 공동성명으로 발표되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웨멕스가 개최되는 동유럽권 최초의 도시라는 점 이외에도, 오랜 기간 이 지역의 음악문화를 이끌고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워멕스는 물리적, 문화적, 정치적 혹은 상업적인 경계와 장벽을 허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사례가 되는 것이 중요한데, 올해 약 50여 국가가 워멕스 참가를 확정했다. 워멕스는 다시 한 번 문화 다양성의 중요성을 입증하게 되었다.

<바리abandoned> 공연포스터

<바리abandoned> 공연 모습

WOMEX 홈페이지 ©WOMEX

Virtual WOMEX 홈페이지 ©WOMEX

Q. 워멕스는 모든 문화적 배경과 종교, 정치를 아우르며 월드뮤직 커뮤니티 간의 화합과 소통을 중요시한다. 아티스트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점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 듣고 싶다.

알렉스: 미국의 음악가 프랭크 자파(Frank Zappa)는 “유머가 음악에 종속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렇다’의 예시를 선보였다. 나에게 ’정치가 음악에 종속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내 대답 역시 (아티스트가 정치적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느낀다면) ’물론’이다. 워멕스는 정치적 성향을 띠거나 그러한 액션을 취하는 조직이 아니다. 다만, 워멕스는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과 음악관계자들이 그들의 콘텐츠를 통해 교류를 이어가고,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는 플랫폼이다.

Q. 2016년 워멕스는 다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개최된다. 지난 20년을 성공적으로 달려온 워멕스의 향후가 기대된다.

알렉스: 워멕스는 ’진행 중’이다. 워멕스의 핵심은 월드뮤직 커뮤니티 그 자체라는 것이다. 해마다 콘퍼런스, 쇼케이스와 영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심사위원들 역시 워멕스 월드뮤직 커뮤니티의 일원들로 구성된다. 당연히 워멕스의 참가자들은 훌륭한 프로그램 기획에 대해 기대를 하게 마련이다. 네트워킹 기회를 확충하고, 새롭게 대두하여 뜨겁게 논의되는 현재의 이슈들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아울러 지식과 정보가 공유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워멕스가 다문화와 타문화 간의 이해를 높이고 공유하는 최고의 마켓(Prime Market)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보다 더 헌신적인 자세와 보다 더 열린 시각으로 음악 시장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바리abandoned> 공연포스터

<바리abandoned> 공연 모습

WOMEX 15 ©Jacob Crawfurd

실제로 이번 워멕스에서는 지금까지의 워멕스를 통틀어 가장 많은 문화권이 쇼케이스와 콘퍼런스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었고, 동유럽 최초 개최인 만큼 폴란드, 체코, 세르비아, 러시아 참가자들과의 만남의 기회도 많아졌다. 특히 한•중•일 동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참가자들과 아티스트의 수가 현격히 증가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는 한국 월드뮤직이 지난 몇 년에 걸쳐 (재)예술경영지원센터(KAMS)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특히 워멕스를 발판으로 세계 시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함에 따라 다른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도 주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국내는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도 새로운 마켓이 생겨나고 있으며, 권역 내에서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알렉산더 발터와의 인터뷰를 통해―워멕스의 참가자로서도, 유사한 행사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도―국제적으로 음악을 중심으로 한 마켓이 ’비즈니스 기회의 창출을 위한 교류와 네트워킹’이라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타문화에 대한 이해(Cross-Cultural understanding)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또한, 커뮤니티 간의 건강한 유대관계 형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순차적 확장이 필요하다는 점, 기획 의도가 표방하는 분명한 목표 설정과 달성을 위한 의지의 중요성 등을 다시 한 번 각인하게 되었다.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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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세계의 끝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세계의 끝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피플] 포르모사 국제 연극제 예술감독 다니엘 오마르 루포


우리는 참으로 건성건성 세계지도를 보아 왔는지 모른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세계의 끝,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변방 포르모사, 그 낯설고 먼 곳에서 손님이 왔다. 막상 만난 다니엘 오마르 루포(Daniel Omar Luppo, ’통합과 승인을 위한 포르모사 국제 연극제(Festival Internacional del Teatro de Formosa)’ 예술감독)는 축제감독이라기보다 강단 있는 지역 문화 활동가(activist)의 풍모를 지녔다. 하여, ’국제교류’나 ’문화협력’과 같은 기능적인 단어들을 성급하게 발설할 수는 없었다. 단지, 서로에게 낯선 이 세계의 끝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고, 단순하지만, 정직하게 물어볼 수밖에. 과연 아르헨티나의 최전방을 지키는 변방의 축제 감독답게, 인터뷰 내내 그의 태도는 명쾌했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결코,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계의 끝에서 내가 여전히 연극을 하는 한. 

 

 

 


Q(우연). 국제 연극제 축제명이 정서적이기보다 건조하고 선언적이다. 왜 통합(Integracion)과 승인(reconocimiento)인가?

다니엘 오마르 루포(이하, ’다니엘’): 선언이 맞다. 정치적인 결정, 정치적인 비전을 나타낸다. 그동안 모든 축제나 예술 활동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포르모사는 파라과이 국경에 있는 아르헨티나 최북단의 도시로, 과거의 국경 근처 도시들은 개발제한구역이었다. 따라서 국경 근처에 있는 변방 도시 사람들은 마치 국외자, 파라과이 사람들처럼 취급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20년 전부터 통신을 비롯한 지역 개발 투자가 이루어졌고, 이때부터 포르모사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사람이라는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 지역과의 통합, 이제야 우리 스스로 아르헨티나인이라 할 수 있다는 승인의 의미에서 이 축제 이름을 주 정부에 제안하였고,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장르 간의 결합이나 지역과 계층을 넘어서는 평등한 예술 향유를 의미하는 이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Q. 이 축제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포르모사 출신인가?

다니엘: 창립멤버 중의 하나였고, 지금은 예술감독이다. 포르모사 출신은 아니다. 1987년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다가 이 지역에 강연을 오게 되면서 흥미를 느끼고 정착하게 되었다. 극단을 창설하고, 점차 발전하여 축제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현재 26년 동안 포르모사에 살고 있다. 초기 이 축제는 브라질, 파라과이, 칠레 등 주변국만 참여하는 라틴아메리카 중심의 연극축제였는데, 3회차 이후부터 아시아, 유럽 등으로 참여 범위가 넓어졌다. 2015년으로 11회차를 맞이한 이 축제는 아르헨티나 국립공연예술협회(Instituto Nacional del Teatro, INT)와 포르모사 주 정부가 주최하고, 지역민들을 위해 모든 공연이 무료로 제공된다. 올해에는 한국단체 ’체험예술공간 꽃밭’의 어린이극이 초청되기도 하였다.

<바리abandoned> 공연포스터

<바리abandoned> 공연 모습

통합과 승인을 위한 포르모사 국제 연극제 2015 포스터
©International Theater Festival of Integration and Recognition Formosa

위) ‘체험예술공간 꽃밭’의 <종이창문> ©International Theater Festival of Integration and Recognition Formosa
아래) 극단 ‘로.기.나래’의 <선녀와 나무꾼> ©International Theater Festival of Integration and Recognition Formosa

Q. 포르모사가 아르헨티나의 변방이었듯,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사의 주변, 변방이었다. 경제적인 불안정, 군사독재와 쿠데타를 겪었던 정치적 혼돈, 식민 시대를 거쳐 온 정체성의 혼란 등 유사성이 많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니엘: 예술창작 행위 속에 ’자유를 향한 외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창작이 불가능하다.

Q. 아르헨티나야말로 예술 활동을 하는데 정치적인 압박이 많았던 곳 아닌가?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해외 망명도 많았다. 이런 고통의 시간을 지내온 아르헨티나 예술가들은 여전히 정치적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을 텐데….

다니엘: 2000년대 이후, 예술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환경은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나의 세대의 경우, 여전히 지난 역사에 관한 한, ’절대 잊지 않기 위해서’ 예술 활동을 한다. 철학적 표현이지만, 아르헨티나 예술가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면,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Q. ’잊지 않기 위해서’라는 표현을 들으니, 라틴 아메리카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말했던 ’가슴을 지닌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그 문장을 아는가? (안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 문장이 적절치 못한 순간에 쓰여 지기도 했다. 급속한 민주화, 너무 빠른 근대화 과정을 거친 사회는 늘 후유증이 있다.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냈다고 생각하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검열’ 문제는 이슈가 되고 있는데, 많이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아르헨티나의 예술창작 환경에 있어 여전히 남아있는 제약은 없는가?

다니엘: 검열과 같은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르헨티나에는 ’24800’(ley 24,800)1)이라는 공연법이 있다. 포르모사주 의원이 발의해서 생긴 법령이다. 예술지원을 위한 재원분배를 할 때, 공기관의 판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공정한 예술지원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공공영역의 결정에 문제가 있을 때, 반응이 매우 화끈하고 적극적이기 때문에 정부라 할지라도 함부로 일방적인 결정을 통보할 수가 없다.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했던 2001년의 사례를 하나 들면, 문화부에서 문화 예산을 삭감한다고 통보하니,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아티스트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몰려들어 "예술이 죽었다"라고 쓴 나무상자로 국회의사당을 엄청나게 둘러싼 채 격렬한 항의 시위를 했다. 나 또한 그때 국회의사당에 나무 상자를 쌓던 사람 중의 하나다.



1) http://sinca.cultura.gob.ar/sic/gestion/legislacion/ley.php?id=200



Q. 그 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포르모사로 망명한 것은, 아니, 망명 당한 것은 아닌가?

다니엘: (웃으며) 절대 아니다.

다니엘 오마르 루포(Daniel Omar Luppo) 포르모사 국제 연극제 예술감독 ©이강혁

Q. 아르헨티나 연극의 경향은 어떠한가? 현재의 이슈는 무엇인가?

다니엘: 아르헨티나는 매우 큰 나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창작되는 연극과 아르헨티나 곳곳 각 지역에서 창작되는 연극은 매우 다르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를 경험한 세대와 그 이후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연극에 대한 비전 또한 다르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하나로 정의하여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를 하나 들어보면,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공연의 수가 매우 많은 도시이기도 하지만, 인구 당 정신과 의사의 숫자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탱고가 탄생한 도시이지 않나? ’불안’은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정서다. 프랑스 파리와의 교류가 많기 때문에 정신의학과 관련된 스터디도 많은 편이다. 따라서 ’관계’에 대한 강한 집착이 나타난다. ’모자간’ ’부자간’ ’연인 간’ 관계를 다룬 연극들이 많은데, 최근 ’부자 관계’에 대한 연극이 마치 유행이자, 경향처럼 연극계 전체를 휩쓸었다. 그러나 나의 이성과 사상은 이러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향과는 다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우,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체험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났다. 

Q. 세계에서 가장 프로이트의 책을 많이 읽는다고 들은 적이 있다. 몸은 아르헨티나에 있으나, 뿌리는 유럽에 있다고 믿는 정체성의 혼돈, 정치, 경제적인 혼란이 이 불안의 토양이었을 것이라 본다. 그나저나, 이렇게 인터뷰가 진행되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친구들에게 항의를 받을 것 같다.

다니엘: 상관없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곧 아르헨티나다’라는 인식에 저항할 뿐이다.

Q.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일단 너무 멀다. 멀기 때문에 아는 바도 많지 않다. 한국의 예술 분야 종사자들에게 아르헨티나에 관해 물으면, 상당히 많은 수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2)를 언급한다. 여전히 보르헤스는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지적인 영감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반면에 공연예술에 관해 물으면, 델라구아다(De La Guarda)나 푸에르타 부르자(Fuerza Bruta)3)를 이야기한다. 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지적인 영감과 상업적인 엔터테인먼트, 이 상반된 인식이?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좀 더 알려 달라.

다니엘: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500년 후, 보르헤스는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델라구아다는 잊혀 질 것이다.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로 20세기를 대표하는 포스터모더니즘의 창시자격 인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시, 논픽션, 수필 등 여러 장르의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픽션들」(1944)이 있으며, 한국에서는 1999년 전집이 발매되었다.
3) 푸에르타 부르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유래된 포스트모던 극장 쇼이자 극단명이며, 2005년 디키 제임스(Diqui James)에 의해 만들어졌다. 2007년부터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다릴 로스 극장(Daryl Roth Theatre)과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뉴욕에서만 5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Q. (웃음) 그런가? 그렇다면, 500년 후까지 남아있을 아르헨티나 공연예술의 자산은 무엇인가?

다니엘: 아르헨티나 극작가인 아르만도 디세폴로(Armando Discepolo)4)와 96세로 생존하고 있는 극작연출가인 카를로스 고로스티사(Carlos Gorostiza)5), 이들의 작품들은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끝까지 남아있을 것이다. 기억해 달라.



4) 아르만도 디세폴로(1887~1971)는 아르헨티나의 극작가로 멜로 드라마의 비극적 풍자와 불화를 혼합한 것이 특징인 아르헨티나 버전의 그로테스크 문학―남미 태생의 유럽계(Criollo) 혹은 크리올인(Creole) 그로테스크로 알려진―을 발전시켰다.
5) 카를로스 고로스티사는(1920~) 아르헨티나의 현대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 소설가이다. 대표작으로는 사회 문제를 향한 계급적 태도를 묘사한 데뷔작 <엘 푸엔테(El Puente)>(1949)가 있다. 일반적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새로운 연극으로 간주된다.

인터뷰 중인 우연 극장장(좌)과 다니엘 오마르 루포 예술감독 (우) ©이강혁  

Q. 축제 프로그래밍을 할 때, 공연예술 분야에서 일하면서 당신이 지니고 있는 미션, 신념은 무언가?

다니엘: 한국에 와서 이자람의 공연을 보았다. 나는 그녀의 연극을 절대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절대 한국 연극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나는 감동했다. 침묵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느 국가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노래를 하거나 연기를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감지할 수 있다. 연극은 결국 영토의 몸(cuerpo del territory)이다. 결국 ’지역성’이 가장 호소력 있는 예술양식이 될 수 있고, 보편적인 것이다. 

Q. 세계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현대 예술에서 여전히 국가성(Nationality)이 유효하다는 말인가?

다니엘: 아니다. 내가 말하는 지역, 혹은 국가란, "지금, 내가 어. 디. 에 있는가?"를 의미한다.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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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포틀랜드 커뮤니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하얀 새’]]> 포틀랜드 커뮤니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하얀 새’
[피플] 화이트 버드 공동창립자 폴 킹


미국 서부에서 컨템포러리 댄스 공연만으로 시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화이트 버드(White Bird)’가 유일하다. ’화이트 버드’는 폴 킹(Paul King)과 월터 제프(Walter Jaffe)가 1997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공동으로 설립한 댄스 컴퍼니다. 서울아트마켓(PAMS)을 찾은 폴 킹을 만나 ’화이트 버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백종관). 원래 포틀랜드 출신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로 포틀랜드에서 ’화이트 버드’를 만들게 된 것인가?

폴 킹(이하 ‘폴’): 나와 월터는 원래 뉴욕에 살았다. 나는 페이스트리 셰프였고, 월터는 독일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출판 쪽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뉴욕을 떠나 다른 삶을 살고 싶었고, 어디가 우리에게 어울리는 곳인지 찾기 위해 몇 개의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 결과 정착한 곳이 포틀랜드다. 포틀랜드로 이주한 1996년, 미국서부예술연합(Western Arts Alliance, WAA) 콘퍼런스가 마침 포틀랜드에서 열렸고, 월터 지인의 초대로 우리는 콘퍼런스를 보러 갔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원래 장르를 가리지 않는 예술 애호가였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우연히 우리가 뉴욕에서 원래 알고 지내던 폴 테일러 댄스 컴퍼니(Paul Taylor Dance Company) 매니저를 만난 거다. 그는 우리에게 "포틀랜드에서 공연하고 싶은데 여기에는 우리 공연을 무대에 올려줄 만한 사람이 없다"면서 당신들이 공연을 한 번 성사시켜(present) 보라고 제안을 해 왔다. 우리는 공연을 성사시킨다(present)는 것의 의미도 잘 몰랐지만, 그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그게 화이트 버드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우리는 폴 테일러 댄스 컴퍼니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고, 첫날 1,400명의 관객이 들었다.

Q. 포틀랜드에 무용 애호가가 원래 많았을까? 처음에는 관객을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폴: 포틀랜드에서 활동하는 예술단체들의 모임이 있는데, 그들 도움으로 각 단체 회원들에게 공연 소식을 알릴 수 있었다. 또 처음에는 프로모션을 위한 일종의 경품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폴 테일러 댄스 컴퍼니의 공연이 끝나고 리셉션을 했는데, 우리는 사전에 초대장을 보내면서 그중 70% 정도의 사람들만 와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초대장을 받은 모든 이들이 리셉션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오자마자 폴은 어디에 있느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그때 폴 테일러는 우리와 함께할 수 없었는데, 사람들은 리셉션 초대장에 쓰인 내 사인 ’Paul’을 안무가 폴 테일러의 이름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웃음)
우리가 포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소개한 공연은 역시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스티븐 페트로니오(Stephen Petronio)의 작업이었다. 그때는 안무가와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별도의 프로모션 티켓을 판매하기도 했다. 아주 반응이 좋았고, 우리는 그 행사의 수익을 모두 포틀랜드 지역의 에이즈 관련 단체에 기부했다.

폴 킹과 월터 제프, 그리고 화이트 버드 ‘버니’ ©Jennifer Alyse

Q. 컴퍼니 운영 초창기부터 그렇게 기부활동을 진행한 것을 보면 ’화이트 버드’만의 확고한 운영 철학이 있는 것 같다.

폴:  ’화이트 버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포틀랜드라는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화이트 버드’에는 ‘NEST’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NEST는 No Empty Seats Today의 약자다. 시즌 프로그램 티켓을 예매한 관객들이 자신이 공연을 관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해당 공연의 티켓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NEST는 포틀랜드의 20여 개 지역단체와 연계되어 있는데, 기부된 티켓들은 이 단체들을 통해 평소에 공연을 접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공연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이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티켓 가격을 정할 때도 터무니없이 비싸지 않은, 합리적인 가격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그렇다면 ’화이트 버드’는 어떤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인가? 무용 공연을 선택하는 과정과 기준이 궁금하다. 또 시즌은 어떻게 프로그래밍하는지?

폴: ’화이트 버드’는 현재 미국 서부의 유일한 컨템포러리 댄스 프리젠터다. 일단, 우리가 발레와 같은 고전무용이 아닌 컨템포러리 댄스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번에 서울아트마켓에 참가한 것처럼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마켓 등의 행사에 참가해 가능한 많은 현대무용 공연을 접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West Moves’라는 미 서부지역 공연예술 페스티벌 네트워크가 있는데 이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무용 공연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비슷한 지역의 단체끼리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외국 무용단의 공연을 초대할 때, 하나의 단체가 추진하는 것보다 몇 개의 단체가 함께 진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무용단 입장에서도 한 곳이 아닌 서너 곳에서의 공연이 보장될 수 있으므로 장점이 있다. ’화이트 버드’는 올해로 18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고,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인지도도 꽤 높아졌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좋은 공연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가 전보다 더 쉬워졌다.
어떤 공연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화이트 버드’만의 브랜드를 잘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브랜딩은 신뢰의 문제다. 월터와 나, 모두 개인적인 취향이 있지만, 우리가 선보일 공연을 결정할 때에는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화이트 버드’라는 브랜드를 함께 해 온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한 시즌의 큐레이팅은 마치 여행 코스를 만드는 것과 같다. 우리는 관객들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데만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고, 덜 알려졌더라도 그 ’여행’이 성공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공연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려 한다.

Q. 신뢰라는 얘기를 했는데, 브랜딩을 위해 특별히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가?

폴: ’화이트 버드’의 프로그램은 단지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즌 준비를 위해 무용단들과 처음 접촉할 때부터 포틀랜드 커뮤니티를 위한 공연 이외의 서비스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무용단들과 함께 학교에서 무용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을 위한 움직임 워크숍을 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이런 커뮤니티 프로그램과 NEST 프로그램 등은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것만큼 중요한 일들이다. 우리의 목적은 단지 티켓을 파는 것이 아니다. 우리 지역 사람들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
티켓 수입 외에 기부금, 단체 지원금 등을 받아서 운영하는데 그중 일부는 지역 커뮤니티가 ’화이트 버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데 쓰인다. 우리는 어떤 요소가 관객들을 극장으로 오게 하는 지가 궁금하다. 포틀랜드 안에도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각각 ’화이트 버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공연을 보고 어떤 서비스를 받았을 때 기뻐하고 행복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분석해 이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바리abandoned> 공연포스터 

<바리abandoned> 공연 모습 

좌) 화이트 버드가 속해있는 알렌 슈니처 콘서트홀 ©White Bird
우) 화이트 버드 로고 ©White Bird / 화이트 버드의 NEST 프로그램 로고 ©White Bird

Q. 완성된 공연의 기획만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제작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연 제작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폴: 그동안 34개의 공연을 제작했다. 화이트 버드 14-15시즌 프로그램 중에는 ‘ODC/DANCE’가 직접 제작한 공연이다. 우리는 매해 우수한 안무가를 선정해 ’바니상(Barney Creative Award)’을 수여하는데(우리들의 CEO인 하얀 앵무새 ’바니’의 이름에서 따왔다), ODC/DANCE의 안무가 케이트 위어(Kate Weare)가 지난 바니상 수상자다. 만오천 달러를 상금이자 제작 비용으로 수여했고 그 결과물을 이번 시즌에 무대에서 선보이게 된다.

Q. ’화이트 버드’ 시즌 프로그램에는 ’Uncaged’라는 섹션이 있다. 어떤 공연들을 만날 수 있는지?

폴: ’Uncaged’라는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우리는 한 시즌에 3개의 공연장을 사용한다. 그중 하나가 포틀랜드 주립대학(PSU)에 있는 링컨홀(Lincoln Hall)인데, 이곳은 예전에 고등학교 건물이었다. ’White Bird Uncaged’는 원래 ’’White Bird/PSU Dance Series’라는 이름으로 링컨홀에서 진행됐었다. 그런데 링컨홀의 낙후된 시설을 재정비하기 위해 2년간 원래 링컨홀에서 공연하기로 했던 무용단들은 포틀랜드 내 다른 공간에서 공연을 진행해야만 했다. 문을 닫은 놀이공원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커다란 창고, 아케이드 로비 등에서 공연했다. 링컨홀의 리노베이션이 끝난 후 공연은 다시 ’새장(cage)’ 안 무대 위에 올려지고 있지만, 우리는 극장 밖에서 펼쳐졌던 그 에너지를 기억하기 위해 섹션 이름을 ’Uncaged’로 바꾸게 되었다. ’Uncaged’는 그 이름처럼, 비교적 아직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혁신적인 안무가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바리abandoned> 공연포스터 

<바리abandoned> 공연 모습 

실뱅 에말드(Sylvain Émard)가 연출한 <그랜드 콘티넨탈(Le Grand Continental)>
©White Bird
화이트 버드의 공연 및 프로그램 ©White Bird
 

Q. 앞으로 ’화이트 버드’를 이끌어 가는 데 있어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폴: 올해가 18년째이고, 이제 곧 20주년을 맞이하는데 20주년 기념 공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15주년 기념으로는 퀘벡의 안무가 실뱅 에말드(Sylvain Émard)가 연출한 <그랜드 콘티넨탈(Le Grand Continental)>을 포틀랜드 광장에서 선보였었다. 164명의 비전문 무용수들이 10주간의 연습을 거쳐 완성한 멋진 작품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랜드 콘티넨탈>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2015 안산국제거리극축제 폐막작). 당시 그 공연에 참가했던 시민들을 만나면, 언제 또 <그랜드 콘티넨탈>을 하는지 묻곤 한다. 어쩌면 20주년이 되는 2017년에 다시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특별한 계획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일부러 더 무언가를 덧붙이고 싶진 않다. 대신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을 계속, 더 제대로 하고 싶고 ’화이트 버드’가 뿌리 내리고 있는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다지고 싶다. 포틀랜드의 젊은이들이 이 커뮤니티에 관심을 가지고 또 새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계속 돕고 싶다.
수익을 올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덩치를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널리 쓰이는 표현 중에 ’어떻게든 버텨내기만 하면 더 강해진다(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라는 말이 있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대신 ’어떻게든 이상야릇해지자(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weird)’라고 말한다. 우리는 계속 ’이상한’ 사람들로 남아있고 싶다.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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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축제는 거창한 발전(crazy dream)보다 완성도다]]> 축제는 거창한 발전(crazy dream)보다 완성도다
[피플] 캘거리 포크뮤직 페스티벌 예술감독 케리 클락


최근 한국음악이 유럽 월드뮤직 시장에서 화제가 되면서 유럽 및 미국 음악시장을 목표를 하는 국내 음악팀들이 늘고 있다. 미국과 가까운, 그러나 비자에 있어 미국보다 자유로운 음악시장이 있다. 바로 캐나다다. 캐나다는 해마다 6월 말부터 9월까지 각종 축제의 연속이다. 코미디페스티벌에서부터 재즈페스티벌까지 종류도 장르도 다양하다. 워멕스(World Music Expo, WOMEX)의 캐나다 문화예술위원회(Canada Council for the Arts) 부스를 방문하면 60여 개가 넘는 음악페스티벌 리스트를 받아볼 수 있는데, 포크뮤직, 재즈, 리듬 앤 블루스, 월드뮤직 등 다양한 음악페스티벌이 소리 없이 강한 이들의 네트워크를 입증하고 있다. 캐나다 최초의 월드뮤직 마켓인 문디알 몬트리올(Mundial Montréal)의 5회째 개최를 앞두고 세계 음악을 향한 소통의 문을 활짝 연 캐나다. 서울아트마켓 월드뮤직 전문가 교류프로그램(Journey to Korean Music)의 초청인사로 서울을 방문한 캘거리 포크뮤직 페스티벌(Calgary Folk Music Festival) 예술감독, 케리 클락(Kerry Clarke)을 만나보았다. 

캘거리 포크뮤직 페스티벌은

Q(이수진). 캘거리 포크뮤직 페스티벌은 어떤 축제인가, 캐나다 내에 어떻게 자리 잡았나.

케리 클락(이하 ‘케리’): 캐나다 포크뮤직 페스티벌의 역사는 5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에스텔 클라인(Estelle Klein)이라는 여성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당시에는 웨스턴 전통음악(western traditions)을 위주로 했고 어쿠스틱 음악인 싱어송라이터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어서 위니펙 포크뮤직 페스티벌(Winnipeg Folk Festival)이 약 42년 전에 시작되었고, 이후에 밴쿠버, 캘거리, 에드먼턴 등에서 포크뮤직 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대략 37년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20명 정도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이틀간의 작은 축제였고, 웨스턴 포크음악들이 무대의 주류였다. 점차 규모가 커져서 4일로 축제 기간이 늘었고, 워크숍과 같은 프로그램이 생겼다.
현재는 전 세계에서 매년 70명 정도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한다. 웨스턴 포크음악, 켈틱음악(Celtic)1) 켈트 문화권인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콘월, 브르타뉴, 갈리시아에서 불리고, 연주되는 음악을 중심으로 블루그래스(bluegrass)2) 1940년대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컨트리 음악의 하위 장르. 하이톤의 보컬과 피들, 기타, 만돌린, 베이스, 다섯 줄 밴조로 편성되며, 밴조 또는 기타가 리드하는 점이 특징., 세계의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일렉트로닉 등 진화된 현대음악들도 다루고 있다. 축제는 도심에 있는 공원(Prince’s Island Park)에서 이루어지는데, 지역사회와의 접근성이나 그로 인한 축제 수익을 고려한 대중적인 장소이다. 물론 뮤지션들이 좋아하고 편안해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만이천 명 정도의 관객들이 축제를 찾는다. 메인무대, 콜라보레이션 워크숍(collaboration) 등 축제 본 프로그램 외에도 지역사회 주민들을 위한 음악교실(teaching workshop)을 캐나다 현지 뮤지션들이나 캐나다를 투어 중인 뮤지션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매번 200명가량의 지역주민들이 참여한다. 악기나 작곡을 배우고 지역 극장과 연계해서 공연을 기획하기도 한다.

1) 켈트 문화권인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콘월, 브르타뉴, 갈리시아에서 불리고, 연주되는 음악
2) 1940년대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컨트리 음악의 하위 장르. 하이톤의 보컬과 피들, 기타, 만돌린, 베이스, 다섯 줄 밴조로 편성되며, 밴조 또는 기타가 리드하는 점이 특징.



Q. 축제의 운영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재원조성은 어떻게 하는가?

케리: 캐나다 아티스트들은 주로 캐나다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창작기금을 지원받고, 우리 같은 지역 축제들은 캐나다 문화유산부(Canadian Heritage)를 통해 정부기금의 일부, 지방정부 에이전시라고 할 수 있는 캘거리 문화예술발전위원회(Calgary Arts development)와 앨버타 문화예술재단(Alberta Foundation for the Arts, AFFA)이 운영하는 복권기금의 일부를 운영비로 지원받고 있다. 연간 35억(4 million dollars CDN) 정도의 예산을 운영하고 있는데 20%는 공공재원에서 조달하고, 나머지는 민간기업 후원, 티켓 판매, 비어가든(beer garden) 등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바리abandoned> 공연포스터 

<바리abandoned> 공연 모습 

거문고팩토리의 콜라보레이션 무대
©Geomungo Factory
CJSW 라디오방송국 라이브 녹음 스튜디오. 케리가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Geomungo

축제 내 콜라보레이션에 대하여

Q. 페스티벌 중 메인무대나 라인업 못지않게 흥미로운 프로그램은 콜라보레이션 워크숍3)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케리: 축제에 오게 되면 뮤지션들끼리도 무대를 공유하거나 마주칠 일이 많지 않다. 보통 콜라보레이션 무대는 뮤지션들끼리 한 무대에 서서 번갈아 가며 음악을 들려주고 서로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한 뮤지션이 음악을 소개하고 ‘나의 이 음악의 영감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라 설명하면, 다음 뮤지션이 그의 어머니로부터 영감을 받았던 곡을 연주하여 화답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음악적 교감을 마친 이들은 함께 하모니를 이루며 무대를 완성해 나간다.
콜라보레이션이 늘 성공적이지는 않다. 난 그것을 준비된 신기루(arranged mirage)라고 부른다. 어떨 때는 무작위로 만난 두 뮤지션이 너무도 성공적인 무대를 만들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안 하느니만 못한 무대가 나오기도 한다. (웃음)

3) 콜라보레이션 워크숍은 무작위로 선정된 라인업의 여러 뮤지션들이 한 무대에서 즉흥 연주를 선보이는 프로그램, 여러 뮤지션들이 리허설 없이 워크숍 무대에서 처음 만나는 게 특징이다. 캐나다 포크뮤직 페스티벌에서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Q. 관객들은 오히려 그 예기치 못하는 지점에 열광하는 것 같더라. 실제 이런 무대들이 축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케리: 콜라보레이션의 또 하나의 장점은 헤드라인을 장식하지 못하는 국내외 아티스트의 발견이다. 캐나다 출신의 신인 뮤지션들, 그리고 해외 월드뮤지션들의 단독무대에는 많은 관객들이 오기 어렵다. 그러나 관객들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익숙지 않은 악기들이 내는 소리를 접하게 되고, 뮤지션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하모니에 눈을 뜨기도 한다. 거문고팩토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문고라는 악기에 대해 캐나다 관객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바 비토바(Iva Bittová)와 같은 바이올리니스트와의 하모니, 레오나드 섬너(Leonard Sumner)와 같은 래퍼와의 하모니, 스테판 나일스(Stephane Nilles)와 같은 펑크뮤지션과의 하모니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들은 거문고라는 악기와 이 밴드에 익숙해지고 귀를 열게 된다. 이런 경험은 관객들뿐만 아니라 뮤지션들에게도 음악적으로 많은 영감과 경험을 주는 동시에 그들의 음악을 홍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Q.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가 시작되었나? 캐나다 음악축제의 전통인가?

케리: 그렇다. 아마도 매리포자 포크 페스티벌(Mariposa Folk Festival)이 시초였을 것이다. 위니펙에서 동부지역 전까지, 주로 캐나다 서부지역 포크 페스티벌에서 이런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다.캐나다 록 페스티벌이나 월드뮤직 페스티벌 등 다른 장르 페스티벌에서는 이런 콜라보레이션을 하지 않는다. 캐나다 서부지역 포크 페스티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아주 ’캐나다(very canadian)스러운’ 광경이다. 그 외 ’캐나다스러운’ 것은 타 음악 페스티벌과는 다르게 모든 음악 장르를 아우르고(mashed) 있다는 것이다. 인디, 블루그래스, 펑크, 월드뮤직…. 이런 다양한 음악무대는 캐나다 서부지역 포크 페스티벌에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리 크리스톨(Gary Cristall), 당시 밴쿠버 포크 페스티벌 예술감독이 이러한 아이디어의 선구자였고, 전 세계에서 아티스트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다른 축제 감독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영감을 줬고, 지금까지 전통처럼 해오게 된 거다.

Q. 해외의 뮤지션들을 어떤 루트로 알고 초청하게 되는가? 네트워크가 궁금하다

케리: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던 월드뮤직(캐나다 외 제3세계)은 아프리카와 캐리비안 음악이었다. 아프리카 음악은 월드뮤직 음악 전파의 시초였는데, 최근에는 인도음악 등 아시아 음악이 주목을 받고 있고 월드뮤직 무대에서도 조금씩 아시아 음악을 접하고 있다. 페스티벌 감독 간 네트워크가 실질적인 정보통이 되고 있다. 거문고팩토리 같은 경우는 워멕스에서 담당자 미팅 전, 한국을 방문했던 위니펙 포크뮤직 페스티벌 감독 크리스 프레이어(Chris Frayer)의 추천이 있었고, 들소리도 캐나다 에이전시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밴쿠버 축제감독이 좋아하던 그룹이었다. 몇몇 감독이 잘 알고 있는 인도 뮤지션이라던가, 멕시코 뮤지션이라던가 해외의 뮤지션들에 대한 정보를 동료들에게 주는 식이다. 그리고 캐나다 문화예술위원회에는 캐나다 뮤지션이나 해외 뮤지션의 투어를 지원할 수 있는 기금이 있다. 그래서 위원회는 우리 축제에 맞는 뮤지션들을 찾아 초청을 제안하기도 한다. 초청할 밴드의 국가에서 항공비 지원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초청이 훨씬 수월해진다. 모든 팀들의 국제항공료까지 지원해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원거리에 있는 뮤지션들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Q. 거문고팩토리와 들소리가 작년 캘거리 포크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한국팀은 처음이라고 알고 있는데 한국 뮤지션들에 대한 캐나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케리: 그렇다. 처음이다.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관객들이 해외음악이나 새로운 음악에 대해 열려있다. 아시아 무대는 접할 기회가 많이 없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거문고팩토리의 경우, 무대를 보면서 우려되는 면도 있었다. 거문고팩토리는 무대 플로어에 앉아서 연주하는 팀인데 그런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축제 공연팀이 워낙 많다 보니 셋업 시간이 정말 짧은데(15분가량) 이러한 무대전환에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그룹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콜라보레이션의 경우도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 그룹끼리 무대에 올린다든지, 아시아 그룹끼리 묶는다든지 아이디어를 짰는데, 아시아 음악끼리도 타악기와 밸런스가 맞는지 사전 검증이 되었던 것이 아니어서 어떤 무대가 될지 걱정되기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사고 없이 무대가 끝났다.

캘거리 포크뮤직 페스티벌 예술감독 케리 클락
©KAMS  
캘거리 포크뮤직 페스티벌 2015 포스터
©Calgary Folk Fesival

 

Q: 케리, 당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떻게 이 직업을 시작하게 되었나?

케리: CJSW 캠퍼스 라디오국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되면서 비상업적인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캘거리 포크뮤직 페스티벌에서 예술감독직 공고가 났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20년이 넘었다. 

Q: 20년이 넘게 캘거리 포크뮤직 페스티벌을 위해 일하며 갖게 된 남다른 애정이 있을 것 같다. 축제감독으로서, 개인으로서 향후의 계획은?

케리: 오는 2월에는 실내공연(indoor)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3개의 무대에 25명 뮤지션들의 공연들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잘 해내는 것이 최근 가장 큰 이슈이다.
캘거리 포크뮤직 페스티벌에 대한 사견은 지금의 축제를 잘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환경과 안전에 대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주류 허용 범위를 조절하는 등 기존의 프로그램들이 수월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 왔다. 축제를 20년 넘게 운영해오면서 축제의 규모가 너무 커졌다. 이브닝 메인 공연부터 트위너 공연, 애프터 파티 공연까지 나흘 동안 11개의 무대에서 120회의 공연을 준비하는 셈이다. 축제의 무대 수를 늘리거나, 기존의 프로그램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crazy dream)를 꿈꾸기보다는 올해 어떤 뮤지션들을 세우고, 어떤 국가의 음악을 조명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기존의 틀을 유지하되 축제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다.

  

ⓒK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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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콜렉티브 에이(Collective A)의 차진엽]]> [피플] 감각적인 외면, 감성적인 내면
[PAMS Choice]
콜렉티브 에이(Collective A)의 차진엽

 


최근 무용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현대무용가들 중에 차진엽을 빼놓을 수는 없다. 최정상급 기량과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무용수인 데다가 안무가로서의 인지도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대중에게는 TV 프로그램이나 화장품 광고 혹은 패션 잡지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전문예술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그녀에게 매혹된 이들이 그녀에 관해 더 깊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춤으로 그려낸다. 춤에 미친 차진엽의 삶에 대한 독백이 <춤, 그녀… 미치다>로 실현된다.

최정상급 무용수이자 주목받는 안무가

Q(심정민). 차진엽은 기교, 표현성, 무대장악력뿐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빼어난 무용수다. 세계적인 무용단에서 활약했던 경력 또한 다양하다.

차진엽(이하 ‘차’) : 2000년 들어 해외 안무가들과 작업할 기회가 이어졌다. 여러 안무가와 잠깐씩 작업을 하다가 2004년에 런던 현대무용학교(London Contemporary Dance School)로 유학을 가면서 본격적으로 해외 무용단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런던에 도착해서 처음 본 공연이 영국 호페쉬 쉑터 무용단(Hofesh Shechter Company)이었다. 당시 활동 초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었다. 거기서 활동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내가 춤추는 것을 본 호페쉬 쉑터(Hofesh Shechter)의 선택을 받았다. 2006년부터는 네덜란드 갈릴리 댄스 컴퍼니(NDD/ Galili Dance)에 정식 입단하여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세계 정상급 안무가들과 함께 작업은 정말 소중하다. 무용수로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뿐 아니라 안무가로서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직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Q. 2010년쯤 안무가로 영역을 확장했는데, 무용수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무기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착실하게 작품력을 높여갔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로튼 애플(Rotten Apple)> 이라든가 <춤, 그녀… 미치다>도 그렇고. 특히 2014년부터는 안무가로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듯싶다.

차 : 2008년 귀국한 후에 주로 무용수로서 바쁘게 활동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창작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내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어 성취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러던 차에 2009년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에서 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첫 작품부터 안무가로서 주목받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저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을 실현하면서 차근차근 안무가로 성장해가고 싶었다. 이후 <로튼 애플>과 <춤, 그녀… 미치다>로 관심을 받게 되어 기뻤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해보고 싶은 창작도 많고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 

콜렉티브 에이(Collective A)의 차진엽 ©이강혁 <춤, 그녀… 미치다> 공연 ©Collective A

화려한 융‧복합 속에서도 결국 중심은 움직임

Q. 최근 무용 예술의 특징은 융‧복합이라고 할 수 있다. 탈 장르니 복합매체니 인터랙티브니… 최근에는 하이브리드라는 용어까지 나오고 있다. 차진엽의 작품들에도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진다. 춤과 타분야를 어설프게 엮어놓는 무용가들에 비해, 차진엽은 춤에 타분야를 도발적으로 끌어들이면서도 그와 뛰어난 흡착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작품에서 제대로 된 융‧복합을 성사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차 : 요즘 융‧복합이란 말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원래 춤은 종합예술이므로 융‧복합적인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춤과 다른 분야를 어우르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 가다. 주제를 더욱 잘 형상화하기 위해 때론 음악, 때론 무대미술, 때론 의상, 때론 영상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특정 분야와의 융‧복합이 전면에 드러날 수 있겠다. 단순히 트렌드인 마냥 아무 의식 없이 쫓아가는 것은 무의미하다.

Q. 어떤 분야와 융‧복합을 시도한다고 해도 결국 중심을 잡아 줘야 하는 것은 움직임이다. 반드시 기교적일 필요는 없지만, 결정적 순간에 주제 이미지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움직임은 필수적이다.

차 : 맞는 말이다. 여러 분야를 끌어들여 화려한 융합을 시도한다 해도 움직임이 중심을 잡고 있지 않으면 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융‧복합한다고 해도 무용 안에서의 융‧복합이지, 아무런 근간 없는 짜깁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게 합치는 것에만 치중하게 되면 춤의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멀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말,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춤, 그녀… 미치다>를 발표하게 되었다.

<춤, 그녀… 미치다> 공연 ©Collective A <춤, 그녀… 미치다> 공연 ©Collective A

<춤, 그녀… 미치다> 춤에 미친 그녀의 삶에 대한 독백

Q. 올해 팸스초이스(PAMS Choice)에 선정된 <춤, 그녀… 미치다>는 춤에 미친 자신의 삶을 한 시간 가까운 독무로 그려낸다. 광고나 영화예고편처럼 감각적인 영상에다가, 사실성과 상징성을 함께 갖춘 세트, 미니멀한 세련미를 돋우는 조명, 감성적이다가도 때론 기이하게 울리는 음향까지 더해 자신의 춤 독백을 예술적으로 완성했다. 더욱이 본인의 창작을 가장 잘 실현해낼 수 있는 무용수라는 점에서 차진엽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고 본다. 이번 작품에 관해 설명해달라.

차 : <춤, 그녀… 미치다>는 두 개의 공간을 바탕으로 한다. 하나는 공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공간, 다른 하나는 사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공간이다. 열정적이고 저돌적인 무용가라는 평가를 받는 나지만, 사실 아기자기하게 무언가를 모으고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기도 하다. 실제로 공연에는 그동안 발표했던 작품 영상과 함께 와인, 초, 장난감, 미러볼처럼 사소한 소품들이 등장한다. 공과 사의 모습이 다르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하지만, 두 모습 모두 자연스러운 ‘나’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전혀 다름을 느끼지 않는다. 공적인 모습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춤, 그녀… 미치다>는 이러한 두 모습의 ‘나’를 있는 그대로 투영해 놓은 작품이다.

안무가이자 무용가 차진엽(좌)과 무용평론가 심정민(우)
©이강혁
콜렉티브 에이(Collective A)의 차진엽
©이강혁

국내 젊은 무용가의 해외 진출 가능성과 문제점

Q. 팸스초이스(PAMS Choice)를 통해 해외 공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해외의 주요 페스티벌이나 극장에 초청된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무조건 해외에 나간다고 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내보다 무용환경이 열악한 국가의 페스티벌이나 극장에 초청되었다고 해서 해외 진출의 성과를 따질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지원기관에서도 해외 페스티벌과 극장의 레벨을 파악하여 지원에 우선순위나 차등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물론 우리 젊은 무용가의 해외 진출 가능성과 문제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차 : 내가 터를 잡고 있는 국내 무대에서 확고하게 인정받고 자리 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프로필에 몇 줄 올리기 위한, 실제적인 성과가 거의 없는, 그러니까 별 의미 없는 해외 공연을 다녀오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국가 간이나 예술계 사이에 네트워킹은 이미 잘 짜여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좋은 작품들을 연달아 발표한다면 다른 나라의 페스티벌이나 극장에서도 언젠가 주목하기 시작할 테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외 진출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런 식으로 역량을 인정받으면서 차츰 더 큰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것이 정석이다. 바로 그 시점에서 지원기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더해지면 가장 효과적인 해외 진출의 성과를 낼 수 있겠다.

Q. 무용계는 남성보다 여성 인구비율이 훨씬 높다. 하지만 열악한 창작여건에다가 남성무용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여성무용가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차진엽은 꾸준하게 성장을 거듭하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왔다. 근래에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젊은 여성무용수들을 이끄는 존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차진엽의 행보가 단지 한 개인의 성취가 아닌 우리 무용계의 여성무용가로서 길잡이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 : 여성무용가가 무용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창작 일선에서는 남성무용가보다 주목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도 이러한 현실에 대해 이러저러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여자 후배들이 나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기에, 그들을 위해서라도 흔들림 없이 활동을 지속해 가려고 한다. 짬짬이 그들과 대화도 하고 앞선 경험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결국은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정민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춤, 그녀… 미치다>

<춤, 그녀… 미치다>는 2014년 12월에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 초연된 작품이다. 차진엽이 춤에 미친 자신의 삶을 한 시간 가까운 독무로 그려나간다. 작품을 설명하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은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예술가의 숙명과도 같다. 미치도록 빠져들어야만 비로소 하나의 예술을 잉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진엽은 광고나 영화 예고편 감각적인 영상에다가, 사실성과 상징성을 함께 갖춘 세트, 미니멀한 세련미를 돋우는 조명, 감성적이다가도 때론 기이하게 울리는 음향을 더해 자신의 춤 독백을 예술적으로 완성했다. 더욱이 본인의 창작을 가장 잘 실현해낼 수 있는 무용수라는 점에서 차진엽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콜렉티브 에이(Collective A)

2009년 차진엽이 창단한 콜렉티브 에이는 ‘All kinds of Arts(모든 종류의 예술들)’를 끌어들여 다채로운 창작작업을 펼쳐나가는 단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지향점이 분명한 젊은 현대무용단으로, 탄탄한 움직임을 기반으로 음악, 무대미술, 의상, 영상 등 다른 분야와의 융‧복합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독립단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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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판소리만들기-자, 예술감독 이자람 × 연출가 박지혜]]> [피플] ‘창작 판소리’가 동시대 관객과 만나기까지
[PAMS Choice] 판소리만들기-자, 예술감독 이자람 × 연출가 박지혜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을 판소리와 융합하여 <사천가>와 <억척가>를 발표, 판소리와 연극을 훌륭히 접목시켰던 소리꾼 이자람은 지속 가능한 판소리 무대에 관해 고민하던 중 “판소리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되었고, “연극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비슷한 고민을 하던 연출가 박지혜를 만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각자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표한 <이방인의 노래>는 ‘연극뿐 아니라 판소리 작업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이 될 것’으로 평단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판소리만들기-자의 예술감독이자 소리꾼인 이자람과 연출가 박지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판소리로 가능한 소통의 새로운 방식을 찾아서

Q(유현진). 얼마만의 만남인가? 그동안의 근황은 어떠한지.

박지혜(이하 ‘박’) : 되게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데 사실 함께 작업을 마친지 한 달 밖에 안됐다. <이방인의 노래>로 7월엔 오키나와, 8월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 함께 다녀왔다. 그 후에는 소속해있는 양손프로젝트와 4주간 연습을 하고 베세토 연극제에서 <한개의 사람>이라는 작품을 올렸다.

이자람(이하 ‘이’) : 아주 오랜만인 것 같은데 사실 8월 밀양 일정 이전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이방인의 노래> 서울 공연을 위한 준비로 5월부터 줄곧 함께였다. 그전에는 <판소리 단편선_추물/살인> 공연을 위해 함께였고. 그래도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다. (웃음)

Q. <이방인의 노래>로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감회와 각오가 있다면.

박 :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어 기쁘다. 사실 작품을 서울아트마켓 무대에 올린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는 ‘이것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신경 써야겠다’는 본능이 가장 먼저 발동했다. 하지만, 결국 공연이라는 것은 어느 무대에서든 본질적으로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작품이 원래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며 우리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꼼꼼히 짚어나가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 궁극적으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조금 더 명확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중요치 않게 되었고, 다만 우리 안에서 이 이야기의 흐름을 쭉 정리한 후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만나 함께 나눠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 나에겐 세 번째 팸스초이스 무대다. <사천가>(2009년 선정작)와 <억척가>(2012년 선정작)로 서울아트마켓에 소개된 적이 있고, 그때는 사람들에게 ‘판소리는 이런 겁니다’ 하고 보여주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이번 팸스초이스 쇼케이스에서 선보이게 될 작품 <이방인의 노래>는 <억척가>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판소리극이다. 소리꾼으로서 어디를 향해갈지, 어떤 무대에, 어떻게 서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며 만들어낸 작품이기 때문에 나의 이전 작업을 보신 분들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봐주실지―조금 두렵긴 하지만―궁금하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타문화 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지점에서부터 공감대를 형성해갈지도 무척 궁금하다.
 많은 분께서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해주시는 <사천가>나 <억척가>를 생각해보면, 그런 접점들이 무척 중요했던 것 같다. <이방인의 노래>에 서는 소리꾼 이자람은 이전 작처럼 재주를 부린다기보다 이야기를 건네는 입장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Q. 박지혜 연출은 서울아트마켓이 처음인가? 팸스초이스 쇼케이스에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 : 처음이다. 다른 작품으로 일본, 중국 공연을 해오면서, 작품이 다양한 관객을 만났을 때 그 자체가 가진 함의가 깊어지고 레이어가 많이 생긴다고 느꼈다. 비단 해외가 아니라 한국 지방의 특정 관객을 만날 때도 역시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작품이 새로이 완성되고 도달되는 것을 경험했다. 서울아트마켓은 해외의 수많은 관객을 만나는 정거장 같은 무대이니만큼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고 작품의 깊이를 더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다.

Q. 올해 <이방인의 노래>로 일본 오키나와 키지무나 페스타(Kijimuna Festa, 오키나와 국제아동청소년연극제)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박 : 굉장히 뜨거웠다. 전에 양손프로젝트와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으로 만든 작품 <개는 맹수다>로 일본 돗토리 버드 씨어터 페스티벌(Bird Theatre Festival Tottori)에 다녀왔다. 그때 일본 관객들은 참 점잖고, 예의 바르고, 관객으로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 걸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입히기를 지극히 꺼리는 느낌이랄까. 이번 오키나와 공연 중에는 관객들이 정말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런 점에서 더 놀라웠다. 현지 스태프들 말로는 중간중간 웃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공연을 보는 것이 결코 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판소리의 특성상 보는 관객들도 조금 더 마음을 열고 함께해주셨던 것 같다. 아이보다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너무 재밌어하시고 눈물도 흘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방인의 노래> 공연 직전에는 자람 씨가 모노레일에서 전통 판소리 <심청가> 공연을 했는데 그때도 관객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압도되고 있다는 기운을 받았다. 나 역시 관객으로 참여한 그 순간, 그 세계에 매료되었는데, 일본 관객들에게도 다른 나라의 전통을 보는 일이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 나도 굉장히 뜨거웠다고 생각했다. 일본에는 <사천가>나 <억척가>로도 가 본 적이 없던 터라 반응이 더욱 궁금했던 공연이었다. 또 <이방인의 노래>의 첫 해외 공연이어서 제가 만든 판소리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해주실지, 작품 자체가 다른 언어로 전달될 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유효하게 전달이 될지 궁금했었는데 의외로 한국 관객들과 굉장히 비슷한 호흡과 템포로 웃고, 탄성을 보내주셨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공간이 아주 작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매우 점잖고 예의 바르다고 들어왔던 일본 관객들이 활짝 열린 마음으로 뜨겁게, 열심히 보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팀 모두가 행복하게 공연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Q. 또 새로이 발견한 지점이 있다면?

박 : 어려웠던 것은 자막이었다. 장면마다 정해진 리듬이 있는데 관객들에게는 자막을 읽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이 : 맞다. 그래서 이번 일본 공연에서는 자막을 읽는 시간이 필요한 구간을 찾아내어, 소리꾼이 해당 장면의 리듬을 최대한 잃지 않는 선에서 관객이 자막 읽는 시간을 기다려주기 위한 작업을 따로 했다.

박 : 작품이 해외로 가게 되면, 자막을 놓고 자막과 장면 사이의 호흡을 디테일하게 잡는 리허설을 꼭 따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열리는 해당 지역의 사람들이 특히 더 공감하는 어떤 대목이 있다고 느꼈다. 한국과는 다른 지점이었다. 새로 발견된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려운 지점이기도 했다.

<이방인의 노래> ©판소리만들기-자 <이방인의 노래> ©판소리만들기-자

연극, 소설 그리고 판소리의 만남

Q. 이자람 씨는 팸스초이스를 통해 이전 작업인 <사천가>, <억척가> 모두를 성공적으로 해외에 알렸다. 이전 작업들과 이번 <이방인의 노래>를 준비하며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 일단 이번 작품은 이전 작보다 공연 자체의 규모가 작다. <사천가>나 <억척가>는 대극장 공연으로 초청되고 있는 데 반해 <이방인의 노래>는 스튜디오나 박스극장에 어울리게 태어난 작품이라 극을 올리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
공연하는 사람으로서 물리적인 시간에 대한 부담으로 단편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전통 판소리도 시간이 길고, <사천가>나 <억척가>도 혼자 두 시간 반을 공연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한 시간 남짓한 단편 판소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그래서 단편 희곡과 소설을 읽다가 알게 된 한국 근대 소설가 주요섭의 <추물>과 <살인>으로 박지혜 연출과 함께 ‘판소리단편선’ 작업을 시작했다. 새롭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박지혜 연출이 남미의 환상문학과 판소리가 어떤 부분 닮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무렵 남미의 문학작품들을 찾아 읽다가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단편소설 를 만났다.

Q. ‘판소리’와 ‘브레히트’는 손꼽히는 어울림, 좋은 선택으로 국내외 평단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판소리’와 ‘마르케스’의 만남까지,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어떠한 점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되었나?

이 : <이방인의 노래> 첫머리에도 그런 대사가 있지만, 정말로 를 읽고 낮잠이 들었다가 본능적으로 이 단편을 판소리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니 좀처럼 쉽지 않았다. 소설과 ‘판소리’에 대한 개념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지점이 있기도 했고, 영문번역이 나의 언어로 체화되는 데까지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인물과 사건들에 소리꾼이 어느 정도로 개입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도 길었다. 좀처럼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작업 막바지에 작품에 등장하는 ‘라사라’라는 인물이 문득 나의 친언니와 닮았음을 발견하곤 박지혜 연출과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이러한 발견들은 모두 이 작품을 고른 나의 본능이 나 스스로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앞으로 이 공연을 진행하면서 쭉 잃고 싶지 않은 지점이기도 하다. 

박 : 감각적으로 이 작품에서 내가 배울 것이 있다고 느끼면 붙잡는 편이다. 일단 붙잡고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이 작품의 미덕, 정체성, 이런 것이 늘 숙제인데, 주변 사람들과 등장인물들의 닮은 점들이 내게 주는 위로가 있고 그들에게 주는 위로가 있고. 이렇게 발견되는 것들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계속 발견하고 싶다.

Q. 판소리는 ‘한 사람의 화자가 이야기 속에 펼쳐지는 모든 상황과 인물을 전달’한다는 장르의 특성상 소리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번 작품은 ‘소설 속 언어를 판소리화’한 것인데, 그런 점에서 작업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혹은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박 : 작가의 인생관이나 철학은 정확하게 작가가 작품에 원래 썼던 문체로 드러나고, 그것이 판소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원작에 따라 소리꾼의 말투도 달라지고, 화법이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달라진다. 마르케스의 에도 역시 마르케스의 문체와 철학이 담겨 있는데 그것이 판소리로 오는 과정에서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했던 것 같다. 우리의 언어로 표현했지만, 여전히 작품 안에서 마르케스의 언어감각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이지 않고 묘사적이며, 그 묘사 안에 작가의 세계관이 담겨있고, 독자나 관객이 상상하게 하고…. 작품에 그런 부분이 여전히 유효하다.

이 : 판소리 대본을 영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마치 영문 시를 써내는 것과 같이 예민하고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해낼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한에서 작가가 원하는 바를 잘 전달하려고 노력 중이다. 팸스 무대를 위해 번역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번역본을 받았다. 우리 안에서 섬세하게 검토하고, 필요하면 수정도 해가며 꼼꼼히 준비하고 있다.

소리꾼 이자람 ©판소리만들기-자 <이방인의 노래> 포스터 ©판소리만들기-자


Q. 박지혜 연출에게 묻는다. <이방인의 노래> 작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박 : 소리꾼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는가’, ‘이 작품을 어떤 시선으로 담아내는가’를 설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이것은 창작 판소리의 본질적인 부분인데, 전통 판소리는 소리꾼이 해당 이야기를 부르는 이유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러나 창작 판소리는 새로 판소리를 만들어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전통 판소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현대의 관객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입장을 가진 ‘시선’이 분명히 존재해야 하고, 이 시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창작 판소리 작업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와 소리꾼이 공존하는 부분에서 어떤 거리와 위치에서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할지가 참 어려웠다.

이 : 소리꾼이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이야기를 대하고 다루어내는지가 판소리라는 장르의 특징이면서 힘이다. 그만큼 그 부분이 어렵기도 하다.

Q. 그렇다면 판소리는 무엇인가? <이방인의 노래>는 판소리인가?

이 : 판소리는 한 사람의 서사자가 자신의 기술들로 하나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공연 장르이다. 모든 기술이 중요하지만, 관객이 가장 크게 받아들이는 기술은 바로 소리꾼의 ‘소리’다. 소리꾼은 다양한 리듬 위에서 자신의 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소리꾼이 그 이야기를 잘해낼 수 있도록 무대 위에 고수(들)가 함께한다. 고수는 관객과 소리꾼의 중간자 역할이기도 하고, 드라마 속 인물처럼 있기도 하고, 음악을 돕는 기술자이기도 하다. 소리꾼은 무대 위에서 매 순간에 발생하는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기술과 이야기를 가지고 노는 공연의 관장자다. 관객을 살피고, 이야기가 잘 흘러가는지를 살피면서 주어진 약속을 실행하는 퍼포머인 것이다. 소리꾼이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만들어진다. 무대 위의 소리꾼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음악적 뉘앙스도, 인물도, 전부 달라진다. 이야기에 대한 소리꾼의 태도가 그대로 공연으로 반영되어 관객을 만나고 그 자체가 판소리 공연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나는 작업을 함에 있어 소리꾼과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낀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만든 <판소리단편선:주요섭_추물/살인>이나 <이방인의 노래>는 판소리다. 물론 <사천가>와 <억척가>도 판소리다.
통영에서 있었던 <이방인의 노래> 초연 때, <사천가>와 <억척가>를 모두 본 프랑스인 관객이, 자막 없는 상태로―원작 내용 역시 모르는 채로―공연을 보고 나서 ‘아쉽게도 이전 작 같은 펀치가 없다’고 얘기했었다. 그분이 경험한 <사천가>나 <억척가>는 극적 긴장도가 높은 드라마가 무대 위에 극대화된 작품이었고 그에 걸맞게 판소리 역시 강하게 쓰인 작품이었다. 아마도 그러한 이자람의 작업들을 기억하는 그분이 이번 작품에 기대했던 점 역시 그러한 ‘한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방인의 노래>는 규모부터 그런 ‘한방’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스스로도 판소리라는 장르에는 꼭 그런 ‘한방’ 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회의를 느끼려는 시점에 이 작품의 원작을 만났고, 작품으로 완성된 <이방인의 노래>가 서울에서 초연될 때―이전의 작업들과 다른 이 작품이―어떻게 관객과 만날지 궁금했었다. 다행히도 공연을 만든 우리가 관객과 나누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깝고 원활하게 나눌 수 있었던 경험을 했기에 이번 팸스초이스를 준비하면서도 ‘이러한 경험을 외국 관객들과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외국이라고 다를까, 사람들을 놀라게 할 강렬한 ‘한방’ 없이도 판소리를 통해 관객들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박지혜와 이자람, 이자람과 박지혜의 이야기

Q. 두 사람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박지혜 연출은 현재 공연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양손프로젝트’의 연출을 맡고 있는데, 최근 어떠한 작업을 하였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박 : 양손프로젝트는 최근에 베세토 연극제에서 한•중•일 단편선 <한개의 사람>을 했다. 계속 소설을 원작으로 양손프로젝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의도된 시작은 아니었으나 팀 전원이 소설 작업에 깊은 매력을 느껴 탐색을 계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해온 단편 작업을 총정리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내년 혹은 내 후년에 양손프로젝트가 작업해온 단편을 한 번에 다 올려보고 싶다. 현진건, 김동인, 모파상, 다자이 오사무 등 총 스무 편 정도 되는 작품들을 올리며 우리 작업을 다져볼 기회를 갖고 싶다. 우리가 어떤 문법과 어휘를 발견했는지 정리해보고, 또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다시 경험해 볼 수 있는 그런. 그리고 나서는 진짜 다른 걸 해보고 싶다.

Q. ‘다른 것’이라면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 않을 계획이란 의미인가?

박 : 소설에 접근하는 방식에서의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 소설은 이미 양손프로젝트가 가고 있는 하나의 길인 듯하고, 소설 안에서 장편의 호흡이라거나 아예 이 문법 안의 창작이거나, 아직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지만 새로운 접근을 시작하고 싶다.
당장 다음 작업은 라는 희곡이다. 양손프로젝트가 희곡을 한 경험이 <죽음과 소녀> 말고는 거의 없어 희곡 작업임과 동시에 신작을 오랜만에 올리는 것이 기대된다. 새로운 공기를 마실 준비를 하는 셈이다. 두산아트센터에서 11월 13일부터 선보인다. 

소리꾼 이자람(좌)과 박지혜 연출가(우) ©판소리만들기-자


Q. 그러한 작업에 이자람 씨와의 판소리 작업이 주는 영향이 있나?

박 : 판소리 작업은 내가 진행하는 작업들에 대단히 많은 영향을 준다. 개인적으로 1인극이나 소설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판소리와 만나는 지점이 생긴 것 같다. 그게 아직 결과물로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고 현재 소화시키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판소리가 인물을 만들어내고 장면을 청각화 하는 방식과, 소리꾼이라는 캐릭터가 관객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연극에는 없는 다른 종류의 서사극이고 새로운 지점이어서, 그것이 내 안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소화가 될지 나 또한 지켜보는 중이다.
그런데 이번 <이방인의 노래>는 또 다르다. 이전 작업인 <판소리단편선:주요섭_추물/살인>이 ‘판소리라면 으레 이렇구나’ 했던 것을 경험한 것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전형적인 판소리에서 벗어나는, 뭐랄까 더 철학적이고 잔잔하고 고요한 작품이었는데 판소리 안에서 또 새로운 영역을 발견한 느낌이다. 이것은 양손프로젝트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소리꾼과 인물이 만나는 아주 고요하고도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아직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 경험이 참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 자신의 껍질을 까는, 계속 어디로 갈 수 있는 연극작업을 하고 싶다.

Q. 이자람 씨는 앞으로 계속해서 창작판소리 작업을 하실 계획인지?

이 : 그렇다. 나의 기능들이 아직 무사한 순간까지 계속 작업하고 싶다.

Q. 하반기 일정에 대해 알려달라  

이 : 올 하반기는 <억척가>로 국내 지방 투어를 진행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천안, 구리를 다녀왔고, 그 사이 11월에는 인간문화재 송순섭 선생님과 함께하는 동편제 <흥보가> 완창을 준비하고 있다. 남는 시간에는 희곡들을 읽으며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 혹은 공연을 보게 될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 연극이든, 판소리든, 공연을 많이 봐주시면 좋겠다.

박 : 여러분 삶의 시간을 공연에 투자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단 두 시간이라도 공연과 함께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유현진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이방인의 노래>

<이방인의 노래>는 『백년동안의 고독』 등을 집필한 남미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 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최고와 최선, 영웅과 1등, 자극과 화려함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마음을 울리는 이 잔잔한 이야기 속에 숨겨진 짙은 여운을 관객들과 함께 나눠보고 싶었다”는 제작노트의 글처럼 이 작품은 모두가 이방인인 이 세상에서 만남이 가지는 따뜻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2015년 5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정식발표와 동시에 ‘소설과 연극, 판소리의 성공적인 만남’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사천가>, <억척가>로 잘 알려진 소리꾼 이자람이 직접 무대에 선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판소리만들기-자

판소리만들기-자는 예술감독 이자람을 필두로 판소리를 토대로 한 새로운 작품을 창작, 공연하는 단체이다. 한국의 대표적 전통연희 판소리는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고 관객과의 친밀도가 높은 세계적 공연예술양식으로, ‘자’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판소리 다섯 마당의 양식적, 미학적, 서사적 요소를 비롯한 다양한 양분을 토대로 새로운 공연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판소리단편선’이라는 타이틀 아래 “기존에 비해 짧지만, 완성형의 이야기가 담긴 판소리”를 모토로 2014년 말 주요섭의 단편소설 <추물>과 <살인>을 엮은 <판소리단편선1_추물/살인>을 발표하였으며, 2015년 5월 <판소리단편선2_이방인의 노래>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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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제이제이브로(JJbro)]]> [피플] 일탈, 자유분방함으로 풀어낸 해학의 메시지
[PAMS Choice] 제이제이브로(JJbro)


제이제이브로는 날것 그대로의 움직임을 통해 춤 자체를 새로 들여다보려 하는 두 무용수가 결성한 그룹이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쓰기보다 아주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움직임들을 재료로 세상의 시선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만들고자 뭉쳤다. 2015년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지미 앤 잭>은 바로 그런 소외된 움직임들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그들의 첫 작품이다. 장난스러운 움직임 속에 감추어진 메시지들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전흥렬, 표상만 두 사람을 만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자유분방한 개성으로 뭉친 듀오

Q(조형빈).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소감은 어떠한지.

전흥렬(이하 ‘전’) : 우선은 선정된 것만으로 매우 기뻤다. 심사를 거쳐 선정되는 것이 호락호락한 과정은 아니기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인정받았구나’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아무래도 팸스초이스를 발판 삼아 해외 커넥션에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런 기회들을 더 만들어 나가고 싶은 것이 지금 심정이다.

Q. 간략한 단체 소개를 부탁한다.

전 : 제이제이브로라는 팀명을 가지고 활동하는 전흥렬, 표상만이다. 학교 후배인 동생과 작년 말부터 호흡을 맞추게 되었는데, 추구하는 성향도 맞고 색깔도 비슷해서 함께 팀을 만들게 되었다. 주로 우리 둘로 구성되는 듀엣을 하고 있고, 아직은 다른 사람을 추가하지 않고 이렇게 둘이서만 작업하고 있다. 팀 이름은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애칭, 지미와 잭의 이름을 따서 제이제이브로라고 짓게 되었다.

Q. <지미 앤 잭>이라는 작품으로 국내외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이 있었는지 설명해 달라.

전 : 맨 처음에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은 작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서울댄스컬렉션이라는 경연에 지원하면서부터였다. 거기서 초연을 하고 상을 받고 나서, 일본 후쿠오카 댄스 프린지 페스티벌(Fukuoka Dance Fringe Festival)에 초청되어 올해 2월에 공연을 다녀왔다. 그리고 독일의 포츠담 탄츠타게(Potsdamer Tanztage) 페스티벌이라고 있는데, 올해 5월에 거기 가서도 <지미 앤 잭>을 공연했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6월에 노원국제코믹댄스페스티벌(CoDance)에서 초청을 받아 또 같은 작품으로 공연을 올렸다. 가장 최근에는 8월에 춘천아트페스티벌에서 <지미 앤 잭>을 공연했다.

<지미 앤 잭> 공연 ©JJbro <지미 앤 잭> 공연 ©JJbro


Q. 무용 공연의 특성상 한 작품을 가지고 여러 번, 또 오래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활발한 활동을 한 것 같다. 특히 해외 공연의 경우 한국과는 또 다른 반응이 있었을 것 같은데.

전 : 현지 반응은 매우 좋았다. 공연이라는 것이 장소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환경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들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작품의 발랄함 때문인지 어린 아이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것이 좀 흥미로웠다. 작품의 수위가 높아서 아이들은 오히려 배제하고 작업했는데, 어떤 때는 아이들이 더 좋아하더라. 6월에 참가했던 코믹댄스페스티벌 같은 경우, 2월에 있었던 일본 공연을 보시고 저희를 초청해 주신 경우다. 해외에서의 공연이 국내의 커넥션으로 확장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틀림과 다름, 다양성을 풀어낸 해학

Q.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지미 앤 잭> 작품을 구상하는 데 있어서 특별히 추구했던 방향이나, 어떤 것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전 : <지미 앤 잭>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무용을 오래 쉬었다가 다시 도전하게 되면서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 오히려 눈치를 덜 보고 작업을 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둘만이 가지고 있는 평소에 장난치는 모습, 우리 고유의 느낌들을 많이 살려서 작업할 수 있었다. 솔직히 어떤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나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작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부분에서 벗어나 우리의 색깔을 완벽하게 다듬어가고자 하는 게 지금 목표다.

표상만(이하 ‘표’) : 저는 원래 형이랑 팀을 만들어서 하기 전에는 한국무용을 했는데, 춤이라고 하면 보통 평상시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주게 되지 않나. 그래서 이전까지는 한국무용의 그런 점에 매우 익숙했었던 것 같다. 평상시의 내 모습과 무대에 올라갔을 때의 모습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형 같은 경우는 대학교 때부터 그런 자유로움에 대해 계속 갈구해왔던 것 같다. 형이 나를 믿어주고 같이 팀을 하게 되면서, 두 사람 모두 그런 부분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우리가 춤을 춰 왔던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융합돼서, 좀 더 자유분방하고, 감추고 싶은 면까지도 무대에서 그대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지미 앤 잭>을 통해서 많이 나왔던 것 같다.

Q. 자유로움을 표출하고자 하는 모습이 무대 언어로 구체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지미 앤 잭>에 나오는 동작들은 어떻게 보면 원초적인, 아이들 같은 천진난만함을 주지 않나. 이런 천진함과 해학을 통해 작품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전 : 작품의 메시지라고 할 수도 있겠고, 어떻게 보면 작품을 만들게 된 동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사실 방 안에서 혼자 상상하고 움직이는 게 많은데, 이걸 남들이 봤을 때는, ‘어 이상해. 쟤 왜 저러지?’라는 반응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항상 숨기고 무대에서조차 숨겨왔었는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이런 독특한, 어떻게 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들이 사실 틀린 것은 아닌데. 그냥 성향이 다른 것뿐인데 왜 이런 것들을 감추려고 해야 하나. 이걸 무대 위로 옮겨보고 싶었다. 우린 틀리지 않았다, 단지 다른 것일 뿐이다, 라는 것.

표 : 공연을 하고 나면 보신 분들로부터 다양한 평을 듣는데, <지미 앤 잭>에 대한 이야기 중 이런 것도 있었다. 남자 둘이 장난스럽게 노는 모습이 동성애적 코드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작품을 만들 때 우리가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었지만, 실상 메시지 자체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어떻게 보면 훌륭한 또 하나의 해석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흥미로웠다.

Q.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작품을 보면 무용수 둘이 서로의 하체를 터치하는 동작이 자주 나온다. 매우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마치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전 : 어렸을 때 보면, 남자아이들이 성기를 가지고 장난치지 않나. 그런 데서부터 장난스럽게 나온 동작인데, 관객들은 다양하게 해석을 해주시더라. 작품에 보면 여자 목소리의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작품 초반에 나오는 친절한 나레이션을 통해 동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 작품 전체의 메시지는 가볍지 않지만, 관객들이 더 쉽고 편안하게 작품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넣은 장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후반부에 가서 지미와 잭이 하는 어떤 일탈적인 행동들에 대해 놀라고 강제하려는 것으로 바뀐다. 창피한 행동,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 같은 것들이 거부 받기 시작하는 거다. 사실 집에서 혼자 하면 아무렇지 않은 것들인데, 목소리는 ‘잭, 너 그러면 안 돼, 그건 나쁜 짓이야’라고 강제하기 시작한다. 이게 비윤리적이거나 반도덕적인 것이 아닌데도, 그저 이상하다는 것 하나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상황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표 : 사실 저희가 안무를 할 때 하체를 터치하는 부분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서로 친하기 때문에 작품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경연에 가지고 나가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심사위원이나 관객들이 보기에 좀 그렇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머리 싸매고 하다가, 결국 형이 ‘아 몰라, 그냥 해!’ 하면서 그대로 밀고 나가게 되었다. 내가 형한테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어느 순간은 형보다 더 자유분방하고 이상한 짓들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때가 딱 <지미 앤 잭> 작업을 같이했던 시기다.

전 : 이 작품의 메시지가 어떻게 보면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모습이 동생에게는 자유분방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어디 가서는 또 위축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항상 나 자신에게 얘기하는데, 이게 도덕적 규범에 어긋나거나 법적인 것에 어긋난 게 아니라 내 색깔이 다른 것뿐인데 내가 왜 표출을 못 하지?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감추지 말고 더 당당해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지미 앤 잭> 공연 ©JJbro <지미 앤 잭> 공연 ©JJbro


Q. 10월 초에 있는 서울아트마켓 이후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만들 작품에서 새롭게 시도하거나,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지.

전 : 10월 말에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참가하는 새 작품을 준비 중이다. 작년에 수상했던 자격으로 다시 참가하게 되었는데, 신작의 경우에는 좀 다른 것들을 시도하려고 생각 중이다. <지미 앤 잭> 같은 경우는 연극적인 것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만들고 있는 작품은 춤만으로 풀어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캐릭터적인 부분을 많이 배제하고, 춤 속에서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느낌의 작품을 구상 중이다. <지미 앤 잭>이 우리 캐릭터가 이것이라고 대놓고 보여주는 작품이었다면, 차기작에서는 춤을 더 추고 싶은 욕심이 있다.

Q.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구상이나, 단체의 방향성에 대해서 말해달라.

전 : 우선 팸스초이스 등을 통해 해외에 우리를 알릴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자 한다. 어린아이 같은 욕심일 수도 있는데, 해외에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계획이 정해진 것은 없지만, 아직 해외에서 공연을 많이 한 케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차기작이 성공적으로 올려져서 국내에서도 더 많이 공연되었으면 한다. 처음에 팀을 만들면서는 관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어린아이 시점에서 보고, 해석해서 보여주자는 컨셉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거기에서 나아가 우리 색깔을 좀 더 뚜렷하게 만들자는 목적이 얹어졌다. 그냥 잠깐만 스쳐봐도 제이제이브로는 저렇지, 라고 할 만한 우리만의 색깔을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그런 부분을 지금 많이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조형빈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지미 앤 잭>

“자신에게 더욱 솔직해지고 고유의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는 그 순간을 위해.”
 <지미 앤 잭>은 그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아를 감추고, 자신을 숨기고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작품이다. 2014년 서울댄스컬렉션에서 안무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 2월 일본 후쿠오카 댄스 프린지 페스티벌, 6월 노원국제코믹댄스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제이제이브로(JJbro)

제이제이브로(JJbro)는 전흥렬과 표상만으로 구성된 현대무용 듀오이다. 현시대의 모든 현상을 소년의 감성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나아가 그 해결점들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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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바라지(Baraji)]]> [피플] 가장 전통적인 창작방식으로, 모두의 안녕을 비는 마음으로
[PAMS Choice] 바라지(Baraji)


거문고 팩토리, 숨[su:m], 잠비나이 등 최근 해외활동이 왕성한 국악팀의 사례를 살펴보면 국내의 쇼케이스 무대(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Journey to Korean Music, PAMS Choice)와 해외 쇼케이스(혹은 공연)를 단계적으로 거치고, 워멕스(WOMEX) 공식 쇼케이스 선정이 기폭제가 되어 해외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또 해외 공연은 무료 쇼케이스에서 유료공연으로, 단 건에서 다 건(투어)으로 확대하는 양상을 보인다.
바라지(Baraji)는 낙방 없이 단숨에 이 단계를 거친 사례이자, 유료공연으로 해외투어를 시작하는 해외진출 사례이기도 하다. 단연 눈에 띄는 행보에 ‘바라지’의 무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의 저력은 무엇일까? 해금 연주자 원나경을 만나봤다. 

굿판의 바라지 소리를 무대의 즉흥음악으로

Q(박인혜): 2015 팸스초이스 선정과 워멕스 공식 쇼케이스 선정을 축하한다. ‘바라지(Baraji)’라는 팀 이름은 무슨 뜻인가?

원나경(이하 원): ‘바라지(Baraji)’는 ‘뒷바라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를 알뜰히 보살펴주는 행위다. 또한, 굿판에서 ‘바라지’는 무녀의 노래를 받아주는 반주자의 즉흥소리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연주와 소리로 ‘바라지’를 해준다.

Q: 단순히 반주자의 연주나 추임새 그 이상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굿판에서 ‘바라지’는 어떻게 구성되나?

원: 진도씻김굿을 보면, 굿판을 이끌어가는 무녀가 소리를 할 때 악기로 반주하면서 동시에 즉흥소리를 한다. 민요를 반주할 때, 연주자가 노래선율을 따라서 즉흥으로 반주하는 것을 ‘수성가락’이라고 하지 않나. 굿판에서는 이런 수성가락을 악기와 목소리로 동시에 한다. 그래서 무녀의 노래와 바라지 소리가 동시에 나오는 경우도 있고, 시나위처럼 전혀 다른 선율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노래가 뻗는 부분이나 쉬는 부분에 이를 받쳐주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Q: ‘바라지’ 음악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준다면.

원: 굿판에 나타나는 이런 특정한 음악적인 양식 - ‘바라지’가 우리 음악의 기본이다. 악기를 하면서 동시에 소리를 하는 형태다. 장구를 하면서 노래를 하고, 아쟁을 연주하면서 노래하고, 북을 치면서 노래하고. 악기를 하면서 동시에 노래하는 것이 우리의 색깔이라면 색이겠다. 자연스레 이름을 ‘바라지(Baraji)’라고 정했다.

바라지(Baraji) 공연 ©나승열 바라지(Baraji) 공연 ©나승열  

Q: 활동 초기와 지금의 멤버 구성이 다르다. 처음엔 어떻게 시작했나?

원: 민속악계에서 함께 활동하던 중앙대 출신의 연주자들 몇 명에게 중앙대학교 교수로 있는 한승석 선생님이 팀을 만들어보자고 권유했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진도씻김굿을 듣고 자라온 진도 출신의 강민수(타악, 소리), 조성재(아쟁, 타악, 소리), 김태영(타악, 소리)이 있었기에 남도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친구들이 모여 바라지를 시작하게 되었다.  

Q: 지금은 타악과 가야금, 대금, 해금, 피리, 아쟁, 노래의 구성이다.

원: 기존멤버 강민수, 조성재, 김태영, 정광윤(대금, 타악, 소리)에 소리꾼 김율희가 가세하고, 2014년 여름에 이재혁(피리, 태평소)과 원나경(해금), 김민영(가야금)이 합류하게 되면서 지금의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사실 남도음악의 색깔은 기존의 멤버들이 유지하고 있다. 음악에서도 이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여기에 경서도 음악에 두루 능통한 이재혁, 창작음악에 능한 김민영이 가세하여 바라지 음악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투박하고 촌스러운 맛, 그래서 더 입에 잘 붙는 맛

Q: 지금의 멤버로 모인 이후의 활동이 눈에 띈다. 올해 첫 음반 《비손》(Beasohn, Song of Prayer)을 내고, 국내외 공연들을 성황리에 마쳤다. 팸스초이스에서 선보일 작품 <비손>은 어떤 내용인가?

원: 지원 당시 계획은 음반에 실린 ‘비손’, ‘씻김시나위’, ‘무취타’, ‘바라지축원’, ‘만선’ 등을 공연할 생각이었다. 한국인에게는 반응이 좋지만 가사의 의미가 큰 곡들의 특성상 외국인들은 그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 과감히 뺐다. 대신 새로운 곡을 선보인다.

Q: 새로운 곡은 어떤 곡인가?

원: ‘휘산조’와 ‘정든 아리’다. ‘휘산조’는 7월 공연에서 초연한 곡인데, 휘모리장단으로 몰아치는 빠른 곡이다. 관객 반응이 아주 좋았다. ‘정든 아리’는 칠채 장단에 경기민요 긴아리랑을 접목해서 새로 만드는 중이다. 그 외에 ‘무취타’는 반복되는 부분을 빼고 조금 짧은 버전으로 연주하고, ‘바라지축원’은 기존에 하던 진도씻김굿 제석거리를 가져다 만든 축원은 살리고, 동해안 별신굿의 장단을 이용하여 새로 만든 축원을 뒷부분에 추가했다.  

Q: 멤버들이 민속음악-특히 굿판의 음악에 능하다. 굿 음악의 매력적인 선율들을 악기 간의 선율 넘나듦으로 구성하고, 장단배치로 짜임새 있는 현대판 ‘씻김시나위’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 작업 방식은 어떤가?

원: 첫 아이디어는 주로 예술감독인 한승석 선생님이 가져온다. 원래 연행되던 순서와 상관없이, 음악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골라서 장단을 재조합하거나 짧은 주제로 선율을 만든다. 구조를 제시하면 멤버들이 살을 붙인다. 각자의 선율을 만드는 식이다. 진도씻김굿 자체가 즉흥이지 않나. 거기서 자연스레 학습된 선율이 멤버들에게 내재되어 있다. 피리연주자도, 해금연주자도, 가야금연주자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배워온 음악들을 담아뒀다가 바라지라는 이름으로 놀면서 선율을 풀어낸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선율들이 음악이 된다. 여러 번 즉흥으로 연주하면서 음악이 완성된다. 전통적인 창작방식이다.

바라지(Baraji) 공연 ©나승열 바라지(Baraji) 공연 포스터 ©Baraji

Q: ‘씻김시나위’, ‘바라지축원’ 같은 곡에서는 진도씻김굿의 향이 짙다.

원: 멤버 중 5명이 남도지방 출신이고 그중 3명은 부모님이 진도씻김굿, 진도다시래기의 무형문화재이다.1) 게다가 한승석 감독님도 진도(珍島) 출신이다. 진도씻김굿이 자연스레 우리 음악의 바탕이 되었지만, 진도씻김굿만 하는 팀이라는 인식은 부담스럽다. 사실 우리 레퍼토리 중에서 진도씻김굿이 모태인 것은 ‘씻김시나위’와 ‘바라지축원’ 2곡뿐이다. 우리의 관심 영역에는 진도씻김굿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무속음악도 포함된다. 여러 지역의 무속음악을 같이 공부하고, 음악을 만들고 있다. 실제로 우리 곡 중 ‘무취타’는 경서도 음악에 능통한 이재혁의 합류로 경서도 무속과 남도 무속 느낌이 공존하는 재밌는 곡이 됐다.   

1) 강민수 -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진도다시래기 예능보유자 강준섭 명인의 아들
조성재 -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주조교 송순단 명인의 아들
김태영 -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주조교 김오현 명인의 아들



Q: ‘바라지’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원: 투박하고 촌스러운 것이 아닐까? 요즘에는 정돈되고 세련된 음악이 많다. 음악 자체보다 분위기나 뉘앙스로 표현하는 음악도 많고, 의미가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것들도 많아서 때로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는 음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다. ‘휘산조’는 산조의 휘모리 가락으로 만들고, ‘씻김시나위’는 씻김굿의 무녀 소리를 가지고 만들었다. 제목 그대로 딱 그거다. 이렇게 솔직하게 음악을 하는 방식이 바라지에 잘 맞는 것 같다. 개념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음악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음악이 뭘 말하는지가 확실하다.   

Q: 이후의 계획은 무엇인가?

원: 9월에 폴란드 투어를 하고 나면 10월에는 팸스초이스와 헝가리 워멕스 쇼케이스가 있다. 돌아오면 12월에 소극장에서 3일간 공연을 한다. 우수국악작품을 재공연하는 ‘만판-풍류서울’이라는 프로그램이다. 그간의 레퍼토리를 아우르는 공연이 될 것이다. 팸스와 워멕스를 거치고 나면 또 새로운 레퍼토리가 나오거나 기존 곡을 보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무대공연을 할수록 음악들이 자꾸 변한다. 즉흥으로 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국내든 해외든 공연을 많이 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음악으로 무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크다.  

   

©박인혜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비손>

공식 음반 《비손》 발매 후 여러 공연을 거쳐 벼려진 곡들로 작품을 구성했다. 기존 레퍼토리에서 가사전달이 중요한 것들을 제외하고, 퍼포먼스와 음악적 변화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곡들을 연결했다. 휘모리 가락으로 다이나믹하게 몰아치는 ‘휘산조’, 칠채 장단과 긴아리랑을 얹은 ‘정든 아리’,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경기도와 진도 무속 장단의 변화로 담아낸 ‘무취타’, 진도씻김굿의 축원, 굿판의 춤, 동해안별신굿의 장단으로 채운 ‘바라지축원’을 선보인다. 메인보컬의 소리를 받아주는 연주자들의 즉흥연주, 무대를 채우는 타악과 바라지소리가 특징이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바라지(Baraji)

’바라지’는 누군가를 알뜰히 돌보는 것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전통음악에서는 판을 이끌어 가는 주된 소리에 더해지는 반주자들의 즉흥소리를 의미한다. 바라지소리는 특히 진도씻김굿에서 극대화되어 독특한 음악양식을 이루며, ‘바라지’는 바로 이 양식을 주된 표현방식으로 삼는 팀이다. 더불어 전통을 기반으로 시대적 감각에 맞는 작품의 창작을 고민하며, ‘바라지’의 음악이 세상을 좀 더 인간답게 하는 데 바라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음악집단이다.
 2011년 결성 후 2014년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APaMM’ 공식 쇼케이스 선정, PAMS ‘Journey to Korean Music’ 선정, 2015년 음반발매공연, PAMS Choice 선정, WOMEX 공식 쇼케이스 선정 등 국내외로 순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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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아트 프로젝트 보라]]> [피플] 몸의 언어에 주목할 때, 이미지는 곧 메시지가 된다
[PAMS Choice] 아트 프로젝트 보라


‘아트 프로젝트 보라’는 현재 국내 무용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안무가로 급부상한 김보라가 이끄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공연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계속적인 진화의 과정을 겪으며 나름의 독특한 어법과 색깔을 구축해가고 있는 ‘아트 프로젝트 보라’는 논리와 개념으로 박제화된 작업들과는 차별화된 ‘이미지’와 ‘감각의 향연’을 만들어낸다. ‘아트 프로젝트 보라’의 대표이자 안무가인 김보라를 만나 작업에 대한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무용의 정체성, 그리고 표현의 확장

Q(송남은). ‘아트 프로젝트 보라’에 대해 간략한 소개 먼저 부탁한다.

김보라(이하 ‘김’): 2013년 솔로 작업을 위해 1인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현재는 본인을 주축으로 객원 무용수부터 책임 프로듀서, 협력 아티스트들을 아우르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컨템포러리 무용을 기반으로 미술, 영화, 행위예술, 음악, 패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작업 안으로 수용하고, 이를 통해 개성적인 표현 언어를 발굴하는 것을 지향한다. 전형적인 레퍼토리 무용단보다는 유연하고, 단기 프로젝트 그룹보다는 좀 더 결속력 있는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여러 계획을 세우고 있다.

Q. ‘아트 프로젝트 보라’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전개한 최근 3년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해 달라.

김: 2014년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Yokohama Dance Collection) 심사위원상 수상을 계기로, 최근까지 유럽 및 아시아 10개 이상의 축제에서 초청 공연을 했고, 앞으로도 다수의 해외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멕시코 세르반티노 축제(Festival International Cervantino), 프랑스 생 상드니 축제(Rencontres Chorégraphiques Internationales de Seine-Saint-Denis), 벨기에 디셈버 당스(December Dance), 독일 탄츠메세(Internationale Tanzmesse NRW), 네덜란드 코르조 극장(KORZO Theatre) 초청 공연이 있다.

Q. 이제까지의 해외 공연 활동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김: 국경을 넘어 새로운 관객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다양한 반응과 호응을 얻는 것이 흥미진진했고, 작품의 창작뿐 아니라 유통되는 과정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기회였다. 나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아티스트로서 더욱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싶은 욕구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킨 도전적인 경험이었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관객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나?

김: 벨기에 디셈버 당스(December Dance) 페스티벌 초청 공연 후 현지 기자분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의 피드백이 큰 격려가 되었다. 특정한 테크닉이나 스타일에서 벗어난, 정형화되지 않은 거칠지만 독특한 개성을 제 작품에서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서구 지향적이지 않으면서 아시아 전통에 기반을 둔 것도 아닌, 도무지 원류를 예측할 수 없는 ‘김보라’만의 유일한 차별성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 관객의 피드백으로 인해 해외 공연에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다. 작가로서 더 발전하고 싶다는 의욕과 도전의식도 생기게 되었고.

        
 

 

<꼬리언어학> ©Art Project BORA <꼬리언어학> ©Art Project BORA

일상의 사소한 관찰에서 경이로운 이미지의 탄생으로

Q. 작업의 발단으로 작용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령 영감의 원천이라든가 작업의 모티브는 어디에서 발견하는지, 그 시작점이 궁금하다.

김: 내게 ‘이미지’는 항상 영감의 원천이자 작업의 동기가 되어왔다. 그 이미지라는 것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물, 오브제, 동식물, 사람 등에서부터 다른 예술가들이 만들어 놓은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을 의미한다. 특정한 이미지에서 촉발된 호기심은 점차 몸의 언어로 전환하고자 하는 작업의 욕구로 이어지는데 나에게는 이 메커니즘을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사소한 관찰이 매혹의 순간으로 바뀌는 그 현상, 그것을 내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작품에 춤 외적인 것들, 다양한 예술 요소들이 삽입된 것은 단순히 연출적 효과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풍부한 영감의 원천들을 작품 속에 포진해놓는 것이다. 그것을 관찰하고 조망하다 보면 관객들도 그 이미지 속에서 어떤 경이로움을 발견하지 않을까.

Q. 그렇다면 본인에게 있어 ‘이미지’는 곧 작업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지만, 작업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건가?

김: 평소 삶에서 발견한 이미지들의 심상을 무용이라는 예술을 통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눈으로 경험한 것들을 몸의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최초의 이미지들은 변형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하고, 심지어 내가 눈으로 경험하지 않았던 상상의 이미지들로 재탄생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는 눈으로 본 것을 몸짓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소통 언어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A는 B다’라고 규정하지도 단정 짓지도 않는 것. 나는 여러 상황을 통해 말과 글로 제한하는 순간 더 이상의 해석의 여지도 상상의 기회도 없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그것에서 적잖은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작업에서는 그 언어의 틀을 배제하고 오롯이 이미지 자체로 무언가를 연상하고 느끼고 자유롭게 해석되기를 원해 왔다.

이미지텔링, 직관과 상상으로 대화하고 싶다

Q. 무용을 연극이나 문학처럼 내러티브와 서사적인 측면에서 감상하고 이해하려는 경향이 종종 있는데, ‘아트 프로젝트 보라’의 작업은 오히려 ‘디자인’(design)에 가까운 것 같다. 이미지가 곧 메시지가 되는 것 말이다.

김: 그렇다. 그런 점에서 스토리텔링 보다는 이미지텔링이 더 적절한 표현이 될 것 같다. 하나의 확정된 개념 혹은 내러티브가 일관성 있게 작업 전체를 관통하며 맥락을 이어가는 방식의 작업과는 상당히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 중첩, 전환에서 연상되는 어떤 것, 어떤 느낌과 정서를 도출하고 싶다. 관객들 저마다의 해석과 느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심지어 행위의 주체인 무용수들에게도. 사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관객들에게 주입하거나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원치 않는 점도 있다.

Q. 다양한 이미지 실험을 위해 무용 외 예술 장르들과의 만남을 시도해왔는데, 작업의 방식은 어떠했나?

김: 이제까지는 협력하는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진행할 때 내 스스로가 작업의 구심점이 되어 각 요소들에 디렉션을 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왔다. 앞으로는 타 장르와 만나 일종의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좀 더 적극적인 콜라보레이션의 방식을 시도해 보고 싶다. 하지만 무용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협업이기를 원한다. 외부적인 자극을 언제나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심에서부터 뻗어 나가는 확장을 위함이지, 중심을 붕괴시키고 정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융합은 아닐 것이다.

<꼬리언어학> ©Art Project BORA <꼬리언어학> ©Art Project BORA  

몸의 언어에 주목하는 것, 이미지가 곧 메시지가 될 때

Q. 2015 팸스초이스(PAMS Choice)에 선정되었다. 선정작 <꼬리언어학> 작품을 소개해달라.

김: <꼬리언어학>은 2014년에 초연된 이래 이번 팸스초이스를 통해 두 번째 무대를 가진다. 고양이는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는 기호로써 꼬리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그것이 작업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들 나름의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을 보면서, 인간 또한 문자 언어가 아닌 몸의 언어로 원초적인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앞서 말했듯이, 언어로 규정되는 많은 것들이 오히려 소통을 왜곡하고 제한하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몸의 언어에 주목함으로써 소통의 한계를 넘고 싶은 나의 갈망을 대변하고 있다.

Q.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게 부여한 나름의 상징이 있을 것 같다. 모든 무용수가 여성이라는 점도 궁금한 지점이고.

김: 이 작품에서 여성 무용수들은 신화나 설화에서 차용된 상상의 어떤 존재라 할 수 있다. 인간인지 동물인지 아예 추측이 안 되는 어떤 판타지적인 존재의 이미지, 기이한 형상이 필요했다. 여성이라고 인지했는데 일순간 동물처럼 보이는 낯섦 같은 것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선입견의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한 일종의 장치인데, 그저 눈앞에서 펼쳐지는 몸의 이미지들을 고정관념 없이 바라보는 것이 이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터뷰하는 지금도 계속 언어로 무언가를 규정하고 있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알려 달라.

김: 올해 10월에는 팸스초이스와 멕시코 세르반티노 축제에서 <꼬리언어학>을 공연하고, 11월에 공연예술창작산실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소무>라는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2016년 4월에는 프랑스의 필름작업 그룹인 N+N Corsino와 협업 작업을 앞두고 있는데, 그 결과물은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전시 형태로 공개될 예정이다. 5월에는 프랑스 생 상드니 페스티벌에 <소무> 작품이 초청되어 공연된다.

Q. 지금까지 활발히 이어 온 국제적인 활동을 앞으로도 얼마나 지속해서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나누면서 마무리했으면 한다.

김: 사실상 국내에서는 몇 개월의 기간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 연속적으로 공연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해외 공연의 문이 지속적으로 열리면서, 하나의 작품이 끊임없이 다양한 관객들 앞에서 공연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의 작품이 점점 레퍼토리로 정착되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 이후로는 해외의 여러 플랫폼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해외의 프로모터들과도 커넥션이 형성되면서 작품 유통의 채널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공들여 창작한 작품이 활발하게 유통될 기회가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예술가들이 창작을 계속 이어가는 데 동기 부여가 되는 건 분명하다. 단순히 해외에 진출하는 것, 교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국제 공연 시장 안에서 지속적인 비즈니스가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남은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꼬리언어학>

고양이의 꼬리 언어와 제스처의 상징체계를 움직임의 모티브로 하여 위선적인 교양주의와 언어의 해석적 오류를 풍자하는 작품이다. 꼬리 언어에 착안하여, 선과면, 또는 선과 도형의 교차와 같이 구조적이고 기호학적인 움직임들을 재조합하고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차원의 언어가 창조되는 것을 그려본다. ’나’라는 개체의 존재성과 ’우리’ 혹은 ’그들’이라는 사회적 공동체성에 대한 의미와 소통의 이슈를 환기하게 시킴으로써 현대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작업은 말과 글보다 더 원초적이고 더 명징한 몸의 언어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과정이며, 위선과 교양으로 포장되고 은폐된 수많은 사회적 대화와 관계 그 이면의 ’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작은 시도이다. 2014년 3월, ‘러프컷 나잇’(Rough Cut Nights)에서 초연되었으며, 2015년 10월, 멕시코 세르반티노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아트 프로젝트 보라(Art Project BORA)

아트 프로젝트 보라는 현대무용을 중심으로 장르와 공간의 개념을 허무는 작업과 타 장르와의 교류를 통한 실험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동시대를 반영하는 소재를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여 독창적이고 위트 있는 드라마, 그로테스크한 미적 표현과 영화적 안무, 연출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혼잣말>, <프랑켄슈타인>, , <꼬리언어학>, <소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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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창작그룹 노니, 김경희 연출가]]> [피플] 늘 모험하는 아티스트 그룹 ‘창작그룹 노니’
[PAMS Choice] 창작그룹 노니


공연을 만들며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마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창작그룹 노니’ (이하 ‘노니’)는 창단부터 지금까지 10년 내내 이러한 자세로 길을 걸어왔고 다양한 색채와 색다른 결들의 작업으로 관객과 만나왔다. ‘노니’의 연출가 김경희 대표를 만나 작업의 방향과 여러 가지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창작그룹

Q(엄현희). 2006년 창단한 ‘창작그룹 노니’는 꽤 오래된 팀이다. 어떻게 시작되었나.

김경희(이하 ‘김’): 2005년 겨울에 <꼭두>란 작업이 먼저 나왔다. 그때 모였던 사람들은 거의 다 학생들로 연극연기, 전통연희 각 한명씩과 무대미술 열 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현재 ‘노니’에는 김경희 대표와 소경진 연희감독이 남아있다). 당시 기획도 연기도 제작도 모든 것을 스스로 해보며, 각자의 영역에서 생각해왔던 역할과 작업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도하고, 함께 작업하는 것에 제일 초점을 뒀다. 특히 무대미술의 경우, 시스템 안에서 주어진 작업을 해 나아가는 것이 통념인데, ‘스스로 판을 벌일 수 있는 무대미술가, 능동적인 창작자로서 작업을 해보자’란 결심과 시스템 바깥을 넘나들 수 있는 작업에의 확장 등을 고민했다. 경진(연희감독)도 비슷한 맥락에서 전통연희를 재미있고 새롭게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저와 경진이 주축이 돼 관심의 지속을 모색했고, 이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그룹 ‘창작그룹 노니’의 창단으로 이어졌다.

Q. 결국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작업을 시도한다는 의미 아닌가.

김: 그것은 새로운 관계나 구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극단 시스템에선 새로운 작업이 나오기 어렵다는 판단이었지만 새로운 작업을 위한 ‘창작그룹 노니’의 새로운 관계 모색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노니’는 프로젝트 그룹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진행에 따라 ‘흩어 모여’보기도 하고, 아티스트들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해보거나 혹은 다른 역할도 적극적으로 해보면서 다른 것을 시도한다. 대개 프로젝트 내부에서 1인 2역 정도를 수행하고 있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면 어색하게 느끼는 부분이 여전히 있어 지금은 중도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Q. 시간이 흐를수록 ‘노니’의 작업에서 전통의 색채가 줄어드는 것만 같다.

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전통의 요소 안에 잠재되어있는 가능성과 훈련된 신체에 관심이 있었고, 전통연희 역시 하나의 재료였다. 여전히 전통 안에 즐거움이 있다는 신뢰가 있고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어떠한 형태로든 깔려있다. 그것이 때에 따라 연극이나 파쿠르(parkour), 사운드 등의 장르와 만난 탓에 작업의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너무 익숙하고 편한 방식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고민도 함께 담겨있다.

        
 

 

인터뷰 중인 김경희 연출과 엄현희 평론가 ©조광사진관 인터뷰 중인 김경희 연출 ©조광사진관

‘관통하는 것’을 찾아가기

Q. 올해까지 팸스에 세 번 선정되었다. <꼭두> (2006), <1+1=추락樂남매>(2013), <기억하는 사물들>(2015) 까지. ‘노니’는 출발부터 지금까지 해외 공연이 잦은 편이다.

김: <꼭두>가 제일 많이 나갔고, 투어도 다녔다. 독일, 중국, 인도를 갔었는데, 독일이나 인도의 경우 축제 안에서 도시들을 묶어 투어를 하는 방식도 있었다. 주로 해외 축제 초청을 많이 받았다. 축제에 초청되면 가급적 워크숍을 병행하려 노력했다. <꼭두>를 하던 ‘노니’ 초반에는 멤버 대부분이 전통연희자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현지 아티스트나 관심 있는 현지인들 대상으로 탈춤, 타악, 소리 등을 엮어 진행했다. 몇 번 해외에 다녀보니 한국을 여전히 생소한 곳으로 생각하는 걸 느껴 공연에 대한 집중도 높이고 다양한 부분에서 더 가까이서 소통하고 싶어 진행해 왔다.

Q. 나라마다 작품에 대한 반응이 다른지 궁금하다.

김: 다르면서 같기도 하다. 그런 반응들을 알아가는 것도 국제 작업의 즐거움일 수 있다.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신기하게도 좋아하는 대목이 겹치기도 하는데 작품과 딱 만나게 되는 순간이 그러하다. 관통하는 점은 비슷하다고 느끼게 된다. 제3의 언어를 찾은 느낌이라 반갑고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Q. 관통, ‘서로 통하는 점을 찾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김: 작업의 이유는 기본적으로 소통, 만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관객 없는 골방에서 혼자 하면 된다. 서로 딱 맞아지는 순간, 만나지는 순간마다 큰 기쁨을 느낀다. 그 순간을 찾아가는 과정이 하나의 작업이고, 전체적으로는 각자의 언어가 만나는 지점과 방식을 점차 찾아가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제적 협업도 흥미로운 점이 많다. 직전 작업인 <역:STATION:驛>의 경우 프랑스 서커스 예술가들과 함께했다. 감각의 확장이 재밌으면서도 쉽지는 않았다. 어쨌든 자주 편하게 만나야 결과물이 나오는데, 보통 서로 알 만해지면 떠날 시간이 되니 아쉬움이 남게 된다.

        
 

 

문화역서울 284(구 서울역)에서 <기억하는 사물들> 공연
©창작그룹 노니
문화역서울 284(구 서울역)에서 <기억하는 사물들> 공연
©창작그룹 노니

이야기는 이미 공간에 있다

Q. <기억하는 사물들>은 어떤 작품인가.

김: <기억하는 사물들>은 공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드러난 작업이다. 공간마다 충분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느껴지고 보이는 대로의, ‘공간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하려면 빛이나 소리, 오브제 등을 통해 확장시키고 방향성을 잡아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사실 획일화되고,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들이 지배하는 서울 시내에서 흥미로운 에너지를 뿜어대는 공간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작년 <기억하는 사물들>이 공연된 문화역서울 284(구 서울역)나, 이번의 공간인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구 구의취수장)를 만난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자 행운이다. 가급적 공간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공간을 관찰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관객들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이번 작업은 함께하는 작업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는 2013년에 <템페스트>를 공연했다. 그때 함께 작업했던 파쿠르의 몇몇 퍼포머들이 이번 <기억하는 사물들>에도 참여한다. 2013년에 <템페스트>를 한 경험들이 이번 2015년의 <기억하는 사물들>에서 어떻게 영향이 미칠지, 어떤 것들을 표현해줄지 기대하고 있다. 그때 이후 공간도 공사를 통해 많이 바뀌었고, 이들도 그 시간과 함께 많이 성장하고 변했으니까.

Q. 특히 <템페스트>부터 작품 속의 ‘물질성’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다.

김: 무대미술 베이스의 작업자로서 아무래도 재료가 익숙하고 관심이 많다. 그전부터 인형이나 오브제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관심이 많았다. <템페스트> 이전 작품인 <몽키땐쓰>까지는 프로젝트 구성원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파악하고, 그 부분에 중점을 둬서 작업을 기획하고 제작했다. <템페스트>부터는 좀 더 관심을 개인의 내면으로 가져가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첫 작품인 <꼭두>부터 지금까지 반복되는 관심과 주제는 죽음이나 굿 등의 제의식이다. 사실 죽음은 인간을 물질로 되돌리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유한할 수밖에 없는 존재는 삶을 살고 여러 활동하면서, 동시에 물질이기도 하다. 그 물질의 ‘운동성(키네틱)’이란 질문으로 오게 된 것이 <몽키땐쓰>였고, 공간과 물질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야기, 그 안에서 몸과 일상 오브제들로 물질의 ‘운동성(키네틱)’을 구현해보려 시작한 것이 <템페스트>부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운동성(키네틱)’으로 삶과 죽음의 관계, 그리고 물질성을 확인하는 작업들을 계속하고 있다.

하고 싶은 대로, 선입관을 깨는

Q. ‘노니’는 ‘극장 안’의 작업과 ‘극장 밖’, 축제 등의 야외 장소나 극장이 아닌 공간 양쪽 모두에 관심을 두고 있다.

김: 무대미술가로서 극장 안은 제약이 좀 있긴 하지만 한편으론 공연을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으니 무척 편한 공간이다. 오히려 좀 더 모험적이며 재밌는 요소들이 많은 곳을 찾아 밖으로 가는 면도 있는데, 극장 안은 빈 캠퍼스여서 이야기를 쌓아 건축해야 한다면, 극장 밖은 이미 이야기가 쌓여 있는, 발굴 가능한 매력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니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인 미술부분(시각언어)과 직결되어 있다. 공간 이외에도 극장 밖에서 작업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객에게도 있다. 극장 ‘안’ 관객과 ‘밖’ 관객은 여러 부분에서 다르다. 어떤 방식의 작업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도 하지만 결정하게도 한다. ‘노니’는 기존의 장르 등을 신경 쓰지 않고 작업하는데, 오히려 보는 이들이 구분하고 분류하려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극장 ‘밖’의 작업은 주로 공공공간에서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 강한 선입관과 제약이 있어 작업을 실행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공공공간의 관계자들과 작업에 대해 일일이 소통하고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극장 밖의 작업은 단순히 극장 안의 작업이 극장 바깥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깨뜨려야 가능한 일이다. 요새는 극장 밖에서 작업하는 동료들이 많아져 관객의 인식 변화도 느껴지고, 점점 더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작업 계획과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 내년 봄 <역:STATION:驛>이 프랑스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가을에는 한국에서, 더 많은 곳에서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작업은 일정한 공간에서 안정적으로 리허설을 거쳐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조금은 다른 공연 상황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상당히 가변적인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작업의 특성에 맞는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 ‘노니’ 초기에 재밌는 작업을 꿈꿨던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신나고 즐거워지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단편선과 선원들 멤버 단편선 - 보컬, 기타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멤버 장도혁 – 퍼커션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멤버 최우영 – 베이스 ⓒ단편선과 선원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구 구의취수장) 외부 ©조광사진관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구 구의취수장) 외부 ©조광사진관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내부
©조광사진관
 

©엄현희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공간의 기억 / 기억하는 사물들>

사물들은 공간의 기억을 압축하여 이야기를 품고 있다. 관객들은 지도를 가지고 사물을 찾아 공간을 탐색하며, 사물의 이야기를 듣거나 보게 된다. 일정한 간이 되면 기차의 경적이 울리듯, 시계가 돌듯, 거대한 기계가 돌고 모든 사물들도 함께 깨어난다. 그들은 각각 다른 소리와 움직임을 가진다. 그때 나타나는 몸들이 점처럼 흩어져있던 공간을 연결하고 확장시켜 과거 기억의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시간으로 끌어낸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창작그룹 노니(Creative Group NONI)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모인 ‘창작그룹 노니’는 2006년부터 12개의 공연 레퍼토리 활동을 비롯해 음악, 전통연희, 미술, 세 유닛이 공연뿐만 아니라 각자 개성을 살린 새로운 방식의 활동으로도 폭넓게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유닛활동을 통해 개개인과 각 분야가 가진 기량을 집중적으로 높이고 소규모 연구와 창작을 다양하게 실험, 확장하여, 창작 작업의 기반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역:Station:驛>, <기억하는 사물들>, <그, 것>, <곡도굿>, , <신호유희>, <몽키땐쓰>, <1+1=추락樂남매>, <바람노리>, <도깨비 불 린: 燐>, <꼭두> 등 다수의 작품을 창작, 공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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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극단 목화 연출가 오태석]]> [피플] 사회와 샅바 잡고 한 판 겨룬 작품,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PAMS Choice] 극단 목화 연출가 오태석
 


오태석은 1967년 극작가로 등단한 이래 50년 가까이 치열한 연극실험을 하면서 한국 현대연극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는 1984년 극단 목화를 창단하였고, 배우, 스태프들과 더불어 세계화의 획일적 문화 흐름에 맞서는 국지화를 지향하며 독특한 연극 세계를 형성한다. 한편으론 한국 전통문화에서 길어 올린 문화적 기억으로 오늘날 한국 관객과 호흡하며 새롭고 생동감 있는 연극미학을 구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가지고 해외에 진출하여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의 연극에는 이데올로기나 권력 투쟁, 전쟁, 인간의 상품화 등이 범람하는 죽음의 현실이 치열하게 묘사되면서도, 그 안에서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생명을 끌어안는 존재가 함께 포착된다.

관객이 무대에 초대되어 배우 사이를 유영(遊泳)하듯

Q(이상란): 2000년대 들어서 해외에 자주 초청공연을 가시는데, 작년 11월에 미국 라마마 극장(La Mama Theater)에서 공연하셨던 건 어땠나요?

오(오태석): 라마마 극장은 내게 특별한 곳이에요. 70년대에 거기서 칸토르(Tadeusz Kantor)의 <죽음의 교실(The Dead Class)>을 봤거든요. 그걸 보면서 “아 연극은 이런 거였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연극의 원시적인 모습이랄까. 그러면서 우리 전통극에 대한 확신도 가졌고요.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초분>과 <태>를 공연했지요. 40년 전에. 이번에 공연하러 가니까, 왜 우리가 이 공연을 보기 위해 40년을 기다려야 했나 하는 반응이었어요.

Q: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이후 <심청이...>) 초연이 1990년에 있었지요. 저는 1994년 예술의전당 <오태석 연극제>서 이 공연을 처음 보았는데, 그때 선생님의 세상을 보는 시각이라든가 공간 감각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이 공연은 국내 관객뿐 아니라 해외 관객에게도 특별한 반향을 일으킨 것 같은데요.

오: 7, 8년 전인 것 같은데요. LA 비교문학학회에 초청되어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극장(노스리지, CSUN Department of Theatre)에서 <심청이...>를 공연한 적이 있었어요. 관객은 그 학회에 참석했던 분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요. 당시 우리를 초청한 김아정씨가 이 작품은 300년 전의 한국 고전을 빌려 현대의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간단히 소개하고 공연을 바로 시작했어요. 자막 없이. 공연이 끝나고 김아정씨가 부총장 되시는 분이 없어졌다고 걱정하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후에 전화가 왔는데, “새로운 술 하나를 따 놓고 난로 옆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자꾸 눈물이 나와서 실수를 할까 봐 거기에 계속 있을 수 없었다”고 했어요. 그분이 흑인 여자 분이었는데, 공연이 그 사람에게 특별하게 작용한 것이지요.
영국의 셰익스피어 연구자로 잘 알려진 존 러셀 브라운(John Russell Brown)이라는 분이 있잖아요. 그 사람은 “내가 마치 배우들에게 초대되어서 그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고 했어요. 생략과 비약을 해서 틈새를 만들고, 관객들에게 당신들이 들어와야 당신의 상상력과 경험들로 연극을 함께 만들 수 있다고 자리를 내어줄 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나 해요. 함께 호흡하는 거죠. 말이라는 게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도 듣는 거거든요. 신체언어, 소리 등으로 충분히 읽어낼 수 있지 않나. 올해 1월에 한 <심청이...> 공연은 좀 간단해졌나요?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공연 사진
©극단 목화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공연 사진
©극단 목화

마중물로서의 심청

Q. 관객의 몸을 상당히 자극하는 공연이었지요. 관객에게 물도 튀고 공도 날라 오고. 그래서 객석에서 그 공을 잡아 던지기도 했지요. 이 작품은 정세명이라는 순박한 시골청년이 서울이라는 공간에 와서 어떻게 급격히 몰락하는가 하는 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심청이는 왜 등장하는지요?

오: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 석을 바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이야기를 심청이가 듣지요. 아버지는 나를 낳아주셨는데, 내가 인제수(人祭需)가 되어 삼백 석을 구하면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지 않을까 하고 17세의 소녀가 생각한 거죠. 그런 생각을 한 심청이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올라온 거죠. 그럼 내가 또 이 사람을 위해서 몸을 던지면 그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심청이는 (고전 속의) 죄가 없었어요. 아버지가 잘못한 거죠.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심청이가 정세명이 화염병을 못 만들게 하려고 불을 질러 사람을 망쳤잖아요. 나도 본의 아니게 잘못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게 바로 고전에서 진일보한 거죠. 아버지가 눈이 멀어 세상과 벽이 있었듯이 정세명이도 얼굴을 망쳐서 세상과 벽이 생긴 거죠. 군산부두의 몸 파는 아가씨들도 마찬가지고요. 정세명과 아가씨들을 등고(等高)에 놓고 본 거예요. 심청이가 그전에는 아버지만을 위해 했는데, 이번에는 이들을 위해 펌프의 윗물, 마중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세상의 부조리에는 나도 참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심청이를 통해 한 거죠.

연출가 오태석 ©극단 목화

세상의 불행은 나와 무관하지 않은 것

Q. 심청이를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관객하고 닮았죠.

오: 바로 그렇게 관객석까지 전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힘이 모자라서 그만... (웃음) 지금 시리아에서, 지중해에서, 사람들이 유럽으로 오려고 배 밑으로 들어가고 가시철망에 갇히고... 참담하잖아요. 내가 살려고 하는 것처럼 그들도 살기 위해 그렇게 애쓰는 거 아니에요. 어떤 불행한 일이 벌어졌을 때 나랑 무관한 게 아니지 않을까. 그 눈을 좀 띄워 보려고 했는데 그게 어려워요.

Q. 저는 <심청이...> 공연에서 정세명이 백가면을 쓰고 공 맞으며 물 뿜는 장면이 마음에 많이 남아요. 그때 물은 사실 피잖아요. 공연에서 쓰인 물 자체와 물의 이미지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 성경에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 “이 여인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우리도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거잖아요. 누구에게도 해코지하면 안 되는데, 우리는 던지고 빠져나가거든요. 정세명은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공을 던지라고 하고 그것으로 다시 살아가려 하지요. 그런데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보조원이 죽게 되지요. 그때 완전히 좌절한 세명에게 심청이는 잃어버린 소 33마리를 생각하라고 자극하며 다시 일어서라 하지요. 심청이의 물은 미천한 봉사의 딸을 왕후가 되게 만드는 순환의 의미지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물은 거의 피지요. 세명이도 그 절망 속에서 홍수 속에 떠내려가는 소 33마리를 다시 보게 되지요. 절망 속에서 다시 일으키는 물. 그래서 용왕의 권유대로 바다로 가지요. 갈매기 보고 새롭게 살아가려고. 그런데 그곳이 가장 큰 함정이 되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힘까지 가세해서.

Q. 군산 바다의 배. 몸 파는 아가씨들이 들어있는 상자 갑의 조야한 조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있는 웃음소리 살 냄새 등이 우리의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축도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곳에서 세명은 동정심을 담보로 한 테러리스트로 변화하지요. 이 부분에 이르면 관객이 몹시 괴로워져요. 불쌍하긴 한데 무언가 하기는 싫고 이런 딜레마에 관객이 빠지거든요. 아가씨들이 다 함께 바다에 뛰어내리기 직전에 공연이 끝나잖아요.

오: 결국 세상의 불행한 일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없지요. 그런데 도움의 손길을 내놓지 않는 세상이지요. 내가 해볼 때까지 해봤는데 이제 당신들이 해보시라고 관객에게 넘겨 드리는 거지요. 좀 야비했나? (...웃음...) 돈 내고 괴롭힘을 당해야 하니. 사실 이 작품은 내가 이 사회와 샅바 잡고 한판 겨룬 거예요.

극단 목화 30주년 기념 공연 공연 포스터
©극단 목화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공연 포스터
©극단 목화

예전에 대가족이 해주던 교육과 사랑, 이제는 연극이

Q. 앞으로의 연극 작업에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오: 요즘 핵가족들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정서를 메마르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이제 문화가 옛날에 대가족이 하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삼촌 고모 이모 행랑어멈 등 그들을 통해서 자기 나름대로 빨아들이는 교육. 그걸 문화가 해줘야 해요. 연극 속에서 쾌쾌한 것들을 맛보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나 삼촌이 주는 넉넉하고 다양한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죠. 한국 전통미학인 비약과 생략, 즉흥성과 의외성 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젊은 관객들과 자꾸 만나려 합니다.

말은 눈으로 더 많이 듣는다

Q. 극단 목화의 공연은 운문으로 이루어지잖아요. 문화적인 맥락이 다른 해외의 관객들과 만날 때 그 운문적인 것을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요.

오: 번역을 잘해서 자막을 만들어야겠지요. 언어는 축약해서 구어체로 만들고, 간결하되 말의 펀치가 살아 있게 해야겠지요. 그렇지만 말은 귀로만 듣지 않아요. 눈으로 더 많이 듣지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걸 캘리포니아 대학극장에서 <심청이...> 공연했을 때 느꼈어요.

©이상란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오태석은 말한다. “이 이야기는 89년에 쓸 적에 일회성으로 끝나기를 바랐던 작품이에요. 당시에 일어나던 칼부림 사건, 믿을 수 없던 일들이 앞으로는 없길 바랐던 작품이란 말이지. 2015년, 한 세대를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이 공연을 할 수 있고 관객으로 하여금 리얼리티를 가지고 여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해요. 거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한테도 눈웃음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는 1990년 초연을 시작으로 1991년 제28회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 1993년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 2005년 미국 LA ‘세계비교극문학회’가 주최한 세미나에 동양권 연극 최초로 초청되어 세계 학자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극단 목화

극단 목화는 독특한 연극 세계를 구축하여 온 오태석을 중심으로 1984년 창단되었으며 ‘생략’, ‘비약’, ‘의외성과 즉흥성’이라는 전통연희의 특징을 기반으로 목화만의 방법론을 구축해왔다. 관객을 볼거리의 주인공으로 삼는 전통연희의 철학을 수용하며 자연스레 ‘우리말’, ‘우리몸짓’, ‘우리소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왔다. ‘물레를 돌리는 마음’이라는 극단의 모토처럼 365일 공연과 연습으로 채우고 있으며 한국의 색깔과 말, 정체성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우리들이 잃어서는 안 될 부분들을 연극을 통해 관객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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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박박(park park)의 박민희]]> [피플] 소리로 그리는 공간
[PAMS Choice] 박박(park park
)의 박민희


지난해 봄, <가곡실격: 방5↻>을 보았다. 시를 노래하는 오래된 전통 성악곡 ‘가곡’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었다. 장소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작은 방들로 나누어진 영등포의 전시장 커먼센터 2층이었다. 공연을 본 후 한 미술잡지에 “하나의 공연이 어떻게 몸을 은근하게 파고들어 와 설레는 경험을 안겨주는지를 전달하고픈 마음”이라고 썼다. 이 정도면 리뷰라기 보다는 고백에 가깝다. 우리가 저녁과 주말을 반납하고 미술관과 공연장을 찾는 것은 작품이 주는 감각적 자극과 그것이 후렴처럼 남기는 지적 자극이 주는 마약과 같은 힘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가곡실격: 방5↻>은 중독자의 삶을 연명하게 해주는 공연이었다. 며칠 전 박민희 작가를 만나 공연에 대해 자세히 묻고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대화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나눈 얘기들의 질감을 전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해 본다. 작가는 소리의 물질성을 얘기하면서 “소리로 공간에 그림을 그린다”라는 표현을 했다. 반대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문자를 통해 그녀의 가늘지만 단단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격식을 실함으로써 다른 것을 해보자

Q(김해주). <가곡실격: 방5↻>은 ‘가곡실격’ 이라는 이름이 붙은 세 번째 작업인가요?

박민희(이하 ‘박’): ‘가곡실격’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작업들이 실은 더 있었어요. 일종의 테스트 공연으로 시도했을 때와 완성된 공연일 때 제목이 서로 달라요. <가곡실격: 쓸쓸쓸>, <가곡실격: 27:00 AM>은 <가곡실격: 나흘밤>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가곡실격: 방5↻>도 그전에 공연하면서 놓쳤던 부분들을 정리해 완성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가곡실격’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박: 중학교 2학년 때 가곡을 처음 접하고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가곡을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가곡을 처음 접했을 때와 직접 노래를 부를 때, 그리고 공연으로 볼 때, 각각의 간극이 매우 컸어요. 가곡을 배우면서는 음악적 형식이 중요할 뿐 아니라 ‘움직이거나 웃으면 안 된다’와 같은 행위의 형식 자체가 고유한 미감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오늘날 가곡 공연에서 그 미감이 잘 전달되지도 않고 의미도 퇴색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처음부터 이렇게 별로였을까 의심하게 되었죠. 가곡이 극장으로 간 것 자체가 어떤 시대적인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극장이 아닌 곳에서도 잘 전달될 수 있는 방식 혹은 극장에서라도 더욱 잘 전달될 수 있는 방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믿고 있는 이 가곡의 공연이 과연 진짜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죠. 가곡실격은 “내가 이 격을 자의적으로 실(失)하겠다. 즉, 격식을 실함으로써 다른 것을 해보겠다”는 의미가 들어있어요.

Q. ‘가곡실격’이라는 말이 하나의 선언처럼 들리네요. ‘가곡실격’이라는 제목으로 연출 작업을 시작한 건가요?

박: 그 이전에 몇 차례의 습작이 있었어요. 그때는 가곡에 대한 질문보다 신체에 대한 질문이 더 컸어요. 저는 노래를 포함해서 몸을 이용하는 에너지가 다 동일하다고 느껴요. 목소리의 운동성이나 신체로 완성되는 드로잉이 없을까를 궁금해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목에서 나오는 하나의 소리가 선이 되는 거죠. 신체, 목소리 등이 시간 안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질처럼 중첩된다고 느꼈어요.
또 하나, 관객과 늘 분리되어 있는 무대의 형태가 불만이었어요. 십 대 때부터 보아 왔던 수많은 재미없는 공연들의 무대는 관객과 분리된 형태였어요. 그래서 결국, 프로시니엄 무대의 표준을 믿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객석과 구분없는 수평적인 무대에서 관객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완성되는 형태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Q. 작은 방안에서 관객과 퍼포머가 일대일로 만나는 이 작업은 말씀하신 수평적 공간으로서 탁월하게 작동했던 것 같아요. 동시에 서로의 몸과 시선의 방향이 어긋나 있어 관객과 퍼포머가 적절히 거리를 둘 수도 있었고요.

박: 갑자기 낯선 것을 대하면 사람들이 당황할 수 있는데, 각 방에서 4분마다 전환되는 방식으로 순서를 분할해서 관객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어요.

박박(park park)의 박민희 ©이강혁
김해주 큐레이터(좌)와 박박(park park)의 박민희(우) ©이강혁

가까이에서 오해 없이 잘 들려주고 싶다는 바람

Q. <가곡실격: 방5↻>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박: 전통음악을 배우는 과정에서 의심할 수 없는, 지켜야 하는 어떤 명제가 있었어요. 가곡을 이어간다는 사명감이라던가, 가곡은 우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무 곳에서나 노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었어요. 이십 대 중반에 그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우아함은 행위하는 사람의 신념과 철학, 지적인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지 형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어요. 어느 날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놀던 중에 제 노래를 들려달라는 청이 있었어요. 무대에서의 정식 공연이 아니라 그저 내 노래를 궁금해하는 친구들을 위해 온몸에 힘을 빼고 노래했던 그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가곡을 사랑하는 만큼 이 노래가 잘 들리기를 원하는데, 가까이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거라는 생각이 시작이었어요. 더 정확히는 오해 없이 잘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대에 있으면 오해가 너무 많아요. 선생님들로부터 ‘가곡은 좋은 것이고,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완전히 납득이 안되었어요. 권위만으로는 좋음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전달 방법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Q. 작품의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합니다.

박: 이 작업은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완성했어요. 연습도 많이 하지 않았고, 퍼포머들을 방별로 따로 만나서 미션을 주었어요. 음악의 시간적인 흐름을 공간에 배치해서 책을 만들듯이 구조를 짰어요. 전체는 인트로, 1장에서 5장, 아우트로 이렇게 구성되는데 각 장이 공간에 배치되어 있고, 4분 단위로 사람들이 이것을 뚫고 나오면서 시간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제일 많이 고민했던 것은 각각의 방이 갖는 음악의 구조를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가곡 한바탕’의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었어요.

Q. 가곡의 각 장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 이 작업에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박: 네. 저의 해석들이죠. 저는 이론가가 아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얻은 한국 문화의 어법이 저에게 배어 있는 이상 한국음악을 하는 내가 퍼포머이자, 창작자이자, 이론가라고 믿어요. 조금 전 음악이 물질처럼 느껴졌다는 말을 했었는데요. 노래가 나 같기도, 엄마 같기도, 선생님 같기도, 그리고 친구 같기도 한 순간이 있어요. 노래가 시간을 관통하는 유령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론가들은 바라보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이론가가 모르는 내 몸의 이론이 있거든요. 노래를 먹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적인 것도 절대 무시할 수 없어요. 그런 체화된 감각을 통한 가곡의 해석이 이 작업 안에 들어 있는데 저는 이게 맞다는 확신이 있어요.

Q. 각 방에 따라 어떤 순간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곤거림이 있고, 어떤 순간은 하나의 소리만 들리기도 했어요. 텍스트에 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박: 1번, 2번 방에서는 가곡을 노래해요. 처음에는 ‘이수대엽(二數大葉)’이라는 느린 노래로 시작해요. 가곡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오래된 노래로, ‘삭대엽(數大葉)’을 골조로 하는 노래 다섯 개를 한 세트로 반복해요. 그리고 2번 방은 17-18 세기, ‘농(弄), 락(樂), 편(編)’을 부르고요. 역시 다섯 개를 세트로 해요. 이것은 한 명의 관객이 7장의 모든 공간을 지나는 동안 지속해서 다른 노래들의 조합을 만나고, 모든 관객이 각자 다른 경험을 하는 구조였어요. 1, 2번 방에서 나오는 소리는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를 연상하는 내용이지만 텍스트가 잘 들리지는 않아요.
3번 방에서는 판소리의 아니리 형태로 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편이죠. 예전에 한 잡지에서 시를 써달라고 해서 끄적여 둔 일기를 고쳐 보낸 적이 있어요. 제목이 ‘방’이고, 잠이 들락 말락 한 상태에 관한 것이었어요. 퍼포머였던 안이호씨에게 이 글을 그의 시선으로 다시 써 달라고 했고 그중 하나가 아주 좋아서 그대로 쓰게 되었어요.

Q. 이 장에서 글을 퍼포머에게 다시 쓰게 한 것은, 아니리 가사를 쓰는 특별한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인가요?

박: 말하는 화자가 직접 쓰는 것이 제일 좋아요. 모든 전통 음악이 그렇듯이 자기 몸에 익숙한 언어와 소리가 있거든요. 몇몇 판소리의 하이라이트에서 시조창조의 노래를 사용하여 대비를 줌으로써 판소리가 더 잘 들리게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 작업에서는 아니리를 가곡의 맥락에서 사용하여 그런 대비를 만들려고 했어요. 안이호씨가 이를 정말 잘 해석해줘서 어울리는 질감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그런데 가곡은 시를 노래하는 것이라서 텍스트가 잘 들리지 않아요. 어릴 때는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기도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시를 누가 알아 들겠어요. 대신 어떤 시가 마음에 들면 평생 함께하게 되잖아요. 시의 내면을 함축적이고 추상적으로 띄워 올리기 위해 가곡에서 발성을 정제하고 소리를 기하학적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곡실격: 방5↻> 공연 ©박박(park park) <가곡실격: 방5↻> 공연 ©박박(park park) <가곡실격: 방5↻> 공연 ©박박(park park)

기묘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가곡 한바탕’

Q. 마지막 다섯 번째 방에서 박민희씨가 직접 노래를 하셨어요. 하나의 음만이 들렸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 하나의 소리가 벽을 타고 흘러서 다시 나에게 도달하면서 뒤늦게 발성된 음과 서로 만나는 기묘한 공간감이 느껴졌어요.

박: 각 방에 있던 퍼포머는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음정만을 함께 맞추었어요. 저는 매번 달라지는 조성 안에서 어떤 음에 부딪혀도 어울릴 하나의 음정을 지속했고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가곡의 4장과 5장의 의미이기도 하고 혹은 ‘가곡 한바탕’의 마지막 곡의 의미이기도 해요.

Q. 각 방의 내, 외부가 합해져서 들리는 음의 다른 조합이 일곱 장의 변주로 이어졌어요. 특히 대여음(outro)으로 설정된 마지막 공간은 건물 내부와 외부에 걸쳐져 있는 계단 위였죠. 영등포의 거리를 바라보는 동시에 뒤로는 남아 있는 음의 조합을 느끼는 순간은 마치 현재와 과거가 함께 흘러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 점에서 방이라는 제목 옆에 붙어 있는 기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박: 그것이 순환의 의미이고, 이에 대해서 몇 년 동안 작업을 해왔어요. ‘가곡 한바탕’의 한 곡 한 곡이 모여 음악적 형식 안에서 순환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가곡은 특별한 창작자가 없기 때문에 모두가 주인일 수 있어서 하나의 생명체처럼 돌아다니기도 하거든요. 어떤 콘텐츠가 시간이 지나면서 퍼포머의 행위와 인생을 통해 각기 다른 형태로 도출되고 다시 다른 시간에서 순환하는 것이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Q. 이 작업과 그 이전의 <나흘밤>에 나오는 특정한 움직임들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박: 이 작업 움직임의 경우에는 시간에 기반을 둔 거였어요. 가곡이 지나온 시간을 생각한 것 같아요. ‘고요한 절정’을 염두에 두고 침묵을 배치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있기만 하면 침묵이 침묵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침묵을 느끼게 하는 장치를 생각했어요. 서로 다른 두 사람에게서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교차해 보려고 했어요. 한 사람은 아주 천천히 시선을 움직이고 한 사람은 눈을 깜빡이죠. 느린 시간과 빠른 시간을 지나온 가곡처럼 우리 모두 어떤 이상한 시간을 지나왔다고 생각해요. 영등포, 백화점 건물, 사창가의 불빛 등 공간의 겹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처럼요. 움직임은 음악의 변주라고 생각하지, 특별히 안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나흘밤>에서도 움직임은 음악의 장단 구조를 시각화한 것이었어요.

Q. 가곡으로 더 풀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으세요?

박: 예전에 제가 가곡에 대해 집요했던 이유는 단순히 가곡이 좋아서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이것이 시대의 단편을 담고 있는 어떤 것이어서, 이에 대해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근대사는 과거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계속 앞으로만 가잖아요. 그 가운데 가곡처럼 어중간하게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 공간, 지역이 너무 많아요. 일제 시대 이후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버린 것의 결정체가 가곡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가곡에 대한 질문이 지금 사회에 대한, 자본주의에 대한 물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21세기의 종교이자 신이 되어 버린 자본이 만들어내는 몰개성에 의해 개인의 취향이 말살되어 가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작은 단위의 공연을 만들어 가는 것도 하나의 질문이에요.

Q. 혹시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박: 종종 재미라는 상태에 대해 생각을 해요. 저는 제 작업이 유난히 머리가 발달한 사람이 봐도, 유난히 몸이 발달한 사람이 봐도 재미있는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시각예술의 개념들도 좋아하고 무당처럼 몸이 발달한 퍼포머들도 좋아하는데, 그것이 교묘하게 섞일 수 있는 상태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감각이 앞서있는 관객이 와도 피부에서 재밌고 개념을 아는 사람은 또 그래서 재밌는 거죠. 예전에는 관념이 앞서는 미술 작품들에도 흥미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아니에요. 저는 기술을 쓰는 것은 잘할 줄 몰라요. 그건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다 하는 것들이죠. 공연은 인간의 필요를 느끼게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인간이 공연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신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 그 욕망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기술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공연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김해주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가곡실격: 방5↻>

<가곡실격: 방5↻>은 18세기 풍류방을 중심으로 성행하던 전통가곡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가곡의 음악적 형식을 입체적인 공간 구조로 해석, 이를 각 방의 위치로 치환하여 드러낸다. 각 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위치와 질감은 박박(PARK PARK)이 해석한 가곡이다. 1인 극장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방5↻>은 가곡이라는 음악이 시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방5↻>만의 공간적 장치는 듣는 이의 내면 깊숙이에 작용하여 가곡 장르의 고유한 음악적 특징과 내밀한 시적 언어를 드러내며, 가곡이 소수의 놀이문화라는 태생적 특성을 긍정적 어법으로 재현하고 있다. 동시대 안에 전통문화를 배치하는 박박의 ’가곡실격’ 시리즈로 <나흘밤>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며, 관객의 관람을 통해 그 구성이 완성된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박박(park park)

박박(park park)은 꾸준히 동시대 안에 전통문화를 재배치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아티스트 박민희가 이끄는 단체로, 전통가곡과 가사, 시조 등 지역성이 남아있는 목소리를 탐구한다. 탐구의 소결론들은 공연을 통해 발표한다. 목소리를 담아온 음악적 양식에 안팎으로 집중하여 공연을 구성하는데, 그 구성 방식이란 관객과 무대, 그리고 행위자 모두 그 양식 안에서 해석될 수 있는 방식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표작품은 가곡실격 시리즈의 <나흘밤>과 <방5↻>으로, 박민희가 탐구해온 ’가곡하기’의 방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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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단편선과 선원들]]> [피플] 가장 격렬하게, 가장 처연하게, 가장 거대하게
[PAMS Choice
]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은 싱어송라이터 ‘회기동 단편선’을 중심으로 사이키델릭, 인디 포크, 월드뮤직 등이 뒤섞인 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한다. 기타-바이올린-퍼커션-베이스의 4인조로 이루어진 밴드는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사운드를 전달한다. 이들의 음악은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21세기 한국의 한 단면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이 누군가에게는 난해한 음악일 수 있겠지만, 이는 다분히 한국적이며, 또 팝적인 매력도 지니고 있다. 단편선과 선원들의 회기동 단편선과 이야기를 나눴다.

인디 딱지 떼어내기

Q(권석정). ‘팸스 초이스’에 선정된 소감이 어떤가?

회기동 단편선(이하 ‘단’):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 한국에서는 메이저, 인디 등으로 뮤지션을 규정하곤 하는데 난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인디 딱지를 좋아하지 않고, 메이저에 들어갈 일도 딱히 없다. 내 음악은 여러 나라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 월드뮤직이라 불리는 각국의 민속 음악을 비롯해 국악, 재즈, 록 등의 영향을 고루 받았다. 이런 내 음악이 인디로만 분류되는 한국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팸스 초이스에 선정된 것이 좋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한다. 물론 내 음악이 잘 팔릴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해외의 여러 음악을 직접 보고 느끼고, 그 나라의 뮤지션들과 이야기해보는 것만으로 내게는 큰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Q. ‘팸스 초이스’에서는 이례적으로 퓨전국악이 아닌 팀이 선정됐다고 한다.

단: 우리 음악에서 지금 이 시대 한국 음악의 흐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서양문물을 비롯해 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단편선과 선원들은 국악을 비롯해 한국에 혼재된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을 골고루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혼란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현대의 한국에 대해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여러 양식의 삶 간의 충돌’ 내지는 ‘혼란’이다. 그 또한 한국의 일면이므로, 한편으론 매우 한국적인 음악일수도 있다.

Q.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음반’을 수상했다. 본인들의 음악은 록이라고 생각하나?

단: 우리 음악을 록으로 한정짓고 싶지는 않다. 내가 록과 포크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평가는 받을 수 있겠다. 단편선과 선원들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은 사이키델릭한 팝 음악이었다. 난 《동물》이 팝이라고 생각하지만, 대중은 그것을 팝이라고 여기지 않는 괴리감이 있다. 물론 수상을 한 것은 매우 영광이다. 단편선과 선원들은 인디 중에서도 인디, 언더그라운드 중에서도 언더그라운드이기 때문에 상을 받을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을 받은 것은 우리가 걸어온 길, 방법이 단지 우리 안에서만 끝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라 생각해 기분 좋았다.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이 만나, 그리고

Q. 단편선과 선원들은 어떻게 결성하게 됐나?

단: 솔로일 때에는 엑스페리먼트 아방가르드 계열의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솔로앨범 《백년》을 내고 EBS ‘스페이스 공감’ 제의를 받으면서 방송에 나가기 위해 동료를 모았다. 그렇게 모인 멤버들은 《백년》에 실린 음악과는 크게 상관없는 이들이었다. 그들과 앙상블을 맞추다 보니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음악 쪽으로 흘렀는데 그 느낌이 아주 좋았다. 그 느낌이 《동물》로 이어진 것이다.

Q. 단편선과 선원들은 편성이 특이하다. 단편선(보컬, 기타), 장도혁(퍼커션), 최우영(베이스), 그리고 최근 교체된 바이올린 주자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이다. 멤버 구성이 흥미롭다.

단: ‘스페이스 공감’ 방송에서는 베이스 없이 퍼커션과 바이올린만 함께했다. 방송까지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도 했고, 드럼, 베이스가 있으면 내가 편곡을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3인조로 연습을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멋진 음악이 나왔다. 당시 내가 프렌치 팝에 관심이 많을 때라 바이올린을 꼭 넣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솔로 앨범 《백년》을 냈을 때는 ‘단편선 앤 더 오케스트라’라는 11인조로 공연하기도 했다. 일렉트릭 기타, 건반, 코러스, 바이올린 등 여러 악기가 들어간 편성이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빅밴드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편성을 해보면서 내가 그런 큰 규모의 밴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반면 단편선과 선원들은 소편성이라서 디렉팅이 가능했다. 악기 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디테일이 강조됐다. 방송에서 3인조로 공연한 후 앨범을 녹음하며 베이스를 추가하게 됐다.

Q. 단편선과 선원들로 어떤 음악을 하려 했나?

단: 처음에 곡을 쓸 때 의도한 틀은 없었다. 곡을 만들어놓고 보니 어떤 사람들은 불교음악 같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서양음악이라고 하더라. 텍스트에는 동양적인 메시지가 있지만, 곡 자체의 구조는 서양적이다. 그렇게 동서양이 두서없이 섞인 음악이다. 가사에는 동서양의 신과 역사, 사회에 대한 개념이 혼재돼 있다. 서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그런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한 데 어우러져, 《동물》

Q. 개인적으로 앨범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곡부터 최근 영미권의 인디 포크, 월드뮤직, 멀리는 60~70년대의 아름다웠던 브리티시 포크, 사이키델릭 포크의 색까지 매우 복합적인 포크(트레디셔널부터 모던포크까지)음악 스타일이 뒤섞여 있다고 느꼈다. 대개 이런 음악은 청자가 자기 취향대로 받아들이기 마련인데, 월드뮤직 마니아라면 집시 음악이 들릴 것이고 아트 록, 브리티시 포크 마니아라면 스파이로 자이라 풍의 난해한 음악, 또는 ‘러브’의 사이키델릭 포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단: 동의한다. 스파이로 자이라 또한 매우 좋아하는 팀이다. 부연하자면, 《동물》에 미국의 음악은 거의 없다.

Q. 영향받은 뮤지션을 꼽자면?

단: 옛날 음악을 많이 듣는다. 가장 영향을 받은 이라면 신중현을 꼽을 수 있겠다. 신중현의 음악 자체도 내게 레퍼런스가 됐지만, 나아가 음악을 하는 그의 태도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나는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을 만들면서 동시대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신중현의 음악에서도 동시대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신중현은 동시대 영미권 음악에 뒤처지지 않으며 어떤 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앞섰다. 동시대의 사이키델릭 음악을 비롯해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의 음악, 일본의 음악을 인지한 상태에서 음악을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동시대 세계 음악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음악들이라고 생각한다.

Q. 단편선과 선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시대성이란?

단: 리듬이다. 음악이 재밌으려면 리듬, 그루브가 현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물》을 자평하자면, 그루브가 아주 세련되지는 않다고 치더라도 촌스러운 곡은 없다고 생각한다. 2010년대에 만드는 곡은 2010년대의 음악다워야 한다. 대다수의 레퍼런스는 과거의 것이지만, 그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지금의 EDM, 아이돌 댄스음악을 좋아하는 이들도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을 낡은 것이라고 여기지 않게 하는 것이 내 목표 중 하나다. 혹자는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을 프로그레시브 록이라고 말한다. 물론 나도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하지만, 난 내 음악을 듣는 이의 몸이 움직일 수 있었으면 한다.

Q. 단편선과 선원들의 가사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공감을 자아낸다.

단: 반면 내 가사의 약점은 훅이 없다는 것이다. 난 내가 쓰고 싶은 말만 가사로 쓴다. 문법, 논리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가사에 담긴 내 의도, 태도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Q. 앨범 제목은 왜 《동물》인가?

단: 짐승으로 하지 않고 ‘동물’로 한 이유는 물리적인 파워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물질보다는 인간의 정신에 대해 더 많이 논한다. 서양에서도 이념, 정신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다. 하지만 난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더 많다. 오히려 우리가 뭘 먹는지, 어디서 자는지, 거주공간이 어떠한지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 물질적인 것이 더 많은 진실을 가지고 있다. 《동물》엔 그 물질적인 것에 대한 서사가 담겼다. 더불어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상을 결국 인간이 해결해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어렵겠지만, 힘을 합쳐 노력하면 이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Q. 정치적 성향은 어떤가?

단: 온건한 좌파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음악적 메시지에도 그런 것이 담겨있다. 음악가는 자신이 바라는 것,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아니겠는가. 내 정체성이 음악에 드러나는 것은 단지 그것뿐이다. 난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 성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것이 강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

단편선과 선원들 공연 포스터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공연 포스터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동물》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공연 포스터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공연 포스터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동물》
©단편선과 선원들

그저 즐겁게, 그저 신나게

Q. 그동안의 해외 활동은 어땠나?

단: 솔로로 네 번 정도 일본에 다녀왔다. 그 외에 독일,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공연 제안을 받았지만 손익분기점을 생각해서 가지 못했다. 해외 매체에 우리 앨범이 꽤 소개되기도 했지만, 손익도 맞지 않는데 굳이 해외 공연을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외 공연에서도 일한 만큼 벌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일본에서는 유력 매체에서 호평을 받았다. 일본에 한국의 뉴웨이브 음악을 소개하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위댄스, 404, 야마가타 트윅스터, 피기비츠 등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 음악이 일본 음악보다 오히려 신선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 뮤지션들과는 다른 부분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Q. 앞으로 가보고 싶은 나라가 있다면?

단: 미국보다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가보고 싶다. 한국인은 동남아시아를 잘 모른다. 동남아를 은근히 무시하고 비아냥거리는 분위기가 있는데, 난 그들에게서 분명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구 열강의 침략에서 많은 것을 빼앗겼다. 우리보다도 더 많은 것을 빼앗겼다. 그런 나라가 가진 모순은 무엇일지 매우 궁금하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가지는 모순과 그들의 모순이 어떻게 다른지 직접 보고 싶다. 그 외 동유럽 쪽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나 사실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는 북한이다.

Q. 해외 공연에서 목표가 있다면?

단: 그저 관객들과 함께 즐겁게 싶고, 춤추고 싶을 뿐이다. 한국 인디 신에서는 음악을 즐겁게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자세도 훌륭한 덕목이지만, 난 그저 내 음악을 통해 즐겁게 놀고 싶다. 앞으로도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

Q. 향후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단: 차기작은 내년 봄에 낼 계획이다. 지금보다 더 팝적인 음악이 나올 것 같다. 인디 신이어서 뚫을 수 없었던 것들, 접근할 수 없었던 것들에 다가서고 싶다.

단편선과 선원들 멤버 단편선 - 보컬, 기타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멤버 장도혁 – 퍼커션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멤버 최우영 – 베이스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멤버 단편선 - 보컬, 기타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멤버 장도혁 – 퍼커션
©단편선과 선원들
‘단편선과 선원들 멤버 최우영 – 베이스
©단편선과 선원들

©권석정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동물》

《동물》은 4인조 그룹 ‘단편선과 선원들’의 첫 번째 앨범이자, 음반을 발매하며 연 쇼케이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정교하게 조율된 난폭함을 근본으로 삼는 단편선과 선원들의 연주는 음반에서는 물론, 시종일관 울부짖고 으르렁거리며 뛰어다니는 공연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전기적인 변조를 자제하는 대신, 대부분 나무와 철로 이루어진 어쿠스틱 악기들의 잠재된 소리를 한계까지 쥐어짜는 단편선과 선원들의 라이브는 매번 그 강도를 갱신, 순수하고 거대한 감동을 선사한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단편선과 선원들(Danpyunsun and the Sailors)

단편선과 선원들은 실험적인 포크 음악을 추구해온 회기동 단편선을 주축으로 2013년 여름 결성된 4인조 그룹이다. 클래식, 집시 음악, 포크 팝, 엑스페리먼트 록 등 각자 서로 다른 음악에 기반을 두고 활동해 온 단편선과 선원들은 동양과 서양의 영향을 고루 받은 새로운 팝 사운드를 제시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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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타니모션(TANEMOTION)]]> [피플] 그 모든 수식어를 넘어, 우리는 ‘밴드’다
[PAMS Choice] 타니모션(TANEMOTION)


생각해보면 ‘국악’이라는 명칭은 다루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하물며 서양음악이 기반이 된 현대 대중음악과 국악이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 음악들은,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을 요한다. 아, 물론 이것은 음악을 언어로 기록하는 이들의 책임이다. 즐기는 데 무슨 조심이 필요하겠는가. 조금 낯선 외양은 즐거움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타니모션은 그런 즐거움의 소지를 가진 밴드다. 5인조인 타니모션의 멤버 중 아코디언과 건반을 맡은 연리목, 생황과 피리, 태평소 주자인 김소엽, 아쟁의 김슬지, 이 세 사람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동시대라는 감각, 장르나 스타일보다 중요할 것

Q(한명륜): PAMS CHOICE 선정을 축하드린다. 의의를 자평한다면.

김슬지(이하 ‘슬지’): PAMS CHOICE는 음악뿐만 아니라 연극, 무용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다른 예술 장르도 그렇지만 음악은 동시대성이 가장 중요하다. 심사위원분들이 동시대에 가장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한국 음악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하셨을 것 같다. 그 결과 선택된 팀이 타니모션이라는 것이 뜻깊다.

Q: 사실 타니모션처럼 한국 전통음악과 서양음악 포맷을 공유하는 유형의 경우 어떤 용어로 표현해야 할 것인가가 조심스럽다. ‘퓨전국악’ 등은 정체성과 유효성 면에서 부족한 용어로 지적되고 있다.

연리목(이하 ‘연’): 사실 우리도 그 고민이 깊다. ‘국악기가 함께 하는 하이브리드 밴드’ 등 다소 설명적인 말로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미디어에서는 축약된 표현으로 나가는데 거기 어울릴 만한 용어를 만드는 것이 간단치 않다.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슬지: 국악과 서양음악 기반의 대중음악을 접목하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 왔는데, 이런 고민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온 것이다. 굳이 세대를 나눈다면 이러한 시도의 1세대는 국악과 서양음악의 틀을 조화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고, 2세대는 사운드의 측면에서 현대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세대는 곡의 형식과 사운드 모두에서 팝, 즉 당대 대중음악의 감성을 담고 대중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려는 세대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서 모호하고, 때로는 위험한 정의와 개념이 등장해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조금씩 개선되어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한국 전통음악이 역사적 단절을 겪은 데서 기인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소엽: 생황만 해도 그렇다. 생황은 원래 중국 악기다. 이 악기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20세기 초, 혹은 그 이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생황 역시 일제 강점기 문화 말살로 인해 단절을 겪으면서 기술면의 맥까지 끊어졌다. 실제로 리드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국내에서 수리할 방법이 없다.

한국 악기의 정체성, 사운드의 질감부터 다시 찾는 중

Q. 인터뷰를 준비하며 첫 음반 [타니모션―천차만별 콘서트 음반](이하 [천차만별])을 되짚어 들어보게 됐다. 오히려 [Tan-Emotion](2014) 보다 서양음악적인 느낌이 들었다.

연: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이었나.

Q. 조심스럽긴 하지만, 월드뮤직의 요소 혹은 클래식 중에서도 낭만파 스타일이 떠올랐다. 특히 ‘황월’의 아쟁 소리는 비올라와 첼로의 중간 음색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애상 가득한 왈츠적 구성도 그렇고.

슬지: 사실 그런 평가를 받으면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 든다. 물론 그 당시엔 그런 시도를 한 것이 맞다. 국악기로 서양음악 같은 사운드를 내고, 그것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 보겠다는 욕심 말이다. 성공적인 셈인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자체가 아쉬운 점일 수도 있다. 다른 악기를 흉내 내서가 아니라, 악기 본연의 성격을 살려서 인정받는 것이 연주자의 의무라면 의무이기 때문이다. 다음 앨범에 바로 이 ‘황월’을 다시 수록할 예정이다. 비교되었던 비올라나 첼로와는 다른 아쟁 특유의 거친 질감을 100% 살리고 싶다.

Q. 사실 음색은 마스터링이 중요한 부분일 수 있는데.

소엽: 그런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태평소나 피리는 공연 시 드럼의 타격 음을 뚫고 나올 정도로 강하다. 악기를 배울 때도 ‘뱃심’을 끌어내도록 교육받는다. 그런데 녹음했을 때, 생각보다 약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태평소가 얼마나 우렁찬 악기인데. 농담을 보태자면, 연주자는 악기를 닮는다. 그래서 취주악기 전공하는 여학생들이 좀 시원시원한 데가 있다. 술도 잘 마시고(웃음).

연: 물론 후 작업에서 톤을 잡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작곡과 편곡 단계에서 여러 악기가 자기 톤을 찾도록 잘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김소현-상황

김슬지-아쟁

김소진-보컬,기타

연리목-건반

타니모션 멤버 김소현 – 생황
타니모션 멤버 김소진 – 보컬, 기타
타니모션 멤버 김슬지 – 아쟁
타니모션 멤버 연리목 – 건반

PAMS 선정작 [Tan+Emotion], ‘밴드’의 음악인 이유

Q. 첫 작품과 [Tan+Emotion]의 멤버 구성을 보면 1기, 2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연: 사실 멤버는 보컬(권송희→김소진), 생황, 피리(김태경→김소엽) 두 포지션만 교체가 있었다. 하지만 이 포지션의 멤버들이 각각 2년씩을 활동하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Q. 전작에 비해 전통적인 테마가 강한 인상을 준다. 특히 굿이라는 주제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익숙한 소재는 아닌데.

슬지: 그럴 수 있다. 국악 전공자들도 아주 익숙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대화된 굿을 배우며 그 흐름을 배울 기회는 있다.

Q. 그런 한편으로 록적인 성향을 가진 곡도 있다. ‘파도’는 특히 블루스의 성향도 강하다. 연리목은 록밴드 ‘눈뜨고 코베인’의 멤버이기도 하지만 다른 두 멤버들은 이러한 감각이 낯설지 않나.

슬지: 물론 전통음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국악을 시작했던 만큼 어릴 때의 레퍼런스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타니모션을 하면서 좀 더 넓게 듣고 있다. 역시 국악인인 친오빠의 영향도 있는데, 오빠가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 같은 하드하고 그루브감 있는 밴드의 팬이었다. 그 외에 ‘눈뜨고 코베인’의 음악도 즐겨 듣는다(웃음).

소엽: 내 경우는 조금 다르다. 피리의 국악적 스타일, 즉 굵직하고 거침없는 울림을 담아낸 측면이 블루스와도 잘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파도’도 제주도 ‘칠머리당굿’의 한 부분을 차용해 만든 곡이다. 제의의 순간에 보이는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록적인 표현도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연: 타니모션을 좋아해 주시는 많은 분이 ‘파도’의 매력을 언급하신다. (임대진)이사님도 좋아하시고(웃음). 그만큼 임팩트가 큰 곡이라 사랑해 주신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소망, 해외에서도 한국에서도 사랑받고 싶다

Q. PAMS CHOICE를 통해 해외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쇼케이스의 기회를 얻었다. 이전에 해외 공연 경험은.

연: 아쉽게도 없다. 심지어 2013년 전주소리축제에서 ‘소리 프론티어 대상’을 받았을 때도 해외 공연 특전이 없었다.

슬지: 그런데 우리 다음 해 수상 팀부터는 해외 공연 특전이 있더라. 이번을 기회로 활발히 활동하고 싶다.

임대진: 사실 해외공연이라는 것은 큰 성공이나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또 그럴 수도 없다. 우리 음악을 많이 알리는 기회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국내 음악 시장에서 그만큼 기회가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해 안타까울 때가 있다.

Q. 그렇다면 해외 진출 시 어느 국가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

타니모션: 아직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장담할 수 없는 문제다. 내적으로 고민도 많다.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기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체성은 한국 밴드라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고 한국 시장에 통하는 그런 밴드도 되고 싶다.

tan-p3 (타니모션 밴드)

tan-p3 (타니모션 밴드)

Q. 앞으로의 활동 방향은?

연: 아무래도 작곡가로서 컨템퍼러리라는 지향이 있다. 학생 때부터의 소망인데, 국악관현악 작곡에 도전해보고 싶다.

소엽: 언니 그 곡 저 줘요(웃음). 지금은 타니모션에 집중하는 단계다. 국악기가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해보고 싶다.

슬지: 아쟁 음색에 대한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다만 이를 전통적으로 계승한다기보다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것이 목표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TAN+EMOTION>

<TAN+EMOTION> 은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자연스러운 하모니로 새로운 음색의 팝을 제안한다. 판소리와 재즈, 사하라 사막과 제주도를 오가며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계 없는 음악들 속에서, 타니모션 만의 색을 발견할 수 있다. 재즈의 스캣 기법을 판소리와 접목시키고 아이리쉬휘슬과 아코디언이 합쳐진 연주곡 [For Four], 한국적 샤머니즘의 진수인 ‘굿’에서 영감을 받은 연작 [내려온다],[파도],[탄다타],[부정거리]등의 레퍼토리들을 선보인다.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전주세계소리축제, 서울재즈페스티벌 등에 초청되어 어떤 장르에 섞여도 어울림과 동시에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으며, 국악을 기반으로 한 동시대 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타니모션(TANEMOTION)

‘타니모션’은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탄다는 뜻의 탄금(彈琴)과 감동, 강렬한 감정을 뜻하는 Emotion,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이름으로 ‘사람의 감정을 타고 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 음악에 대한 전문성과 대중음악이 주는 친근함을 두루 갖춘 6인조 밴드이다. 독특한 사운드와 가슴 절로 후련해지는 유쾌한 가사,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재치 있는 해석이 매력적이다. 2010년 결성 이후 <마음을 타다>, <새굿 프로젝트>, <빙글뱅글>, <탄다-타> 등의 공연을 통해 매년 발전된 모습을 선보였고, 2013 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프론티어 대상, 2011 천차만별콘서트 우수상, 2011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은상을 수상하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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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고블린파티]]> 현재 진행형 도깨비당 [Goblin Party]
[PAMS Choice] 고블린파티


항상 더 나은 작품을 위해 노력하는 젊은 도깨비들이 올해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 해외문화원 순회프로그램 그리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연달아 선정되면서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 10월 고블린파티를 준비 중인, ‘인간미’ 넘치는 도깨비당 대표들을 만나 보았다.

도깨비임을 자처한 안무가들

Q(이영찬):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서 단체 소개를 부탁한다. ‘고블린파티’라는 팀 이름이 재미있고 인상적이다.

A(고블린파티): 고블린파티의 임진호, 지경민이다. 고블린파티는 우리 둘과 <혼구녕>에 출연하는 다른 두 멤버, 그리고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까지 5명이 주로 활동하는 무용 단체이다. 현 멤버로 호흡을 맞춘 지는 꽤 되었지만 고블린파티라는 팀 이름으로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였다. 팀 이름을 정할 당시, 단순히 ‘안무가 이름 + 무용단, 또는 댄스컴퍼니’는 원하지 않았다. 어디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 팀 명을 원했다. 일단 고블린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여기에 ‘당’을 의미하는 ’파티(Party)’가 붙게 되었다. 우리 팀을 ‘괴물잔치’로 해석하시기도 하더라. 그 의미도 물론 좋아하고 생각도 했었지만, 실제로는 ‘도깨비 당’이 맞다. 팀 명을 바꾼 후부터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 아무래도 이름을 잘 지은 것 같다. <인간의 왕국>, <불시착>, <I GO>그리고 <혼구녕>까지 많은 분께서 좋게 평가해주시고 있다.  


Q: 올해 서울아트마켓의 ’팸스초이스’ 뿐만 아니라  ’해외문화원 순회프로그램’, 동기간에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 초청작’에도 선정되었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A: 솔직히 말하면 부담도 많이 되고 두렵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번을 계기로 더 성장하는 고블린파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그동안 해외초청을 많이 받아 왔지만, 항공료 및 전반적인 부분을 직접 해결해야 해서 무산된 적이 있었다. 앞으로는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처음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것을 알았을 때, 날개가 생긴 것 같아 매우 기뻤다. 부담감이 크지만 그만큼 고블린파티의 작품이 해외에 소개될 기회가 늘어났고, 잘 준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혼구녕>ⓒ고블린파티

<I GO>ⓒ고블린파티

<혼구녕> ©고블린파티 <I GO> ©고블린파티

 산 자와 죽은 자간의 경계 넘기

Q: 팸스초이스 작품 <혼구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왜 이러한 작품을 만들게 되었나?

A: 가업으로 ‘장례식장’을 하고 있다(임진호). 그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장례의식을 많이 봐왔고 대학원생 때는 학비를 위해 장례지도사와 공연연습을 병행했다. 장례지도사 일을 하면서 다양한 고인들을 만났다. 연로하셔서 돌아가신 분들은 새벽에 혼자서 씻겨드리기도 하고 염을 잘해서 보내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자살 혹은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고인을 보내드릴 때는 매우 힘들었다. 징그럽고 끔찍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분들의 몸을 씻겨드릴 때 그 몸에 아직 세상에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 있음을 느낀다. 몸에 새겨져 있다. 너무 안타까웠다. <혼구녕>은 인간의 여러 죽음들 가운데서도 그런 분들의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 작품이다.  


Q: <혼구녕>의 전작인 <I GO>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두 작품이 어떻게 다른가? 두 작품을 묶어서 하나의 공연으로 보여주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어떤 작품을 먼저 보여주고 싶은가?

A: 일단 <혼구녕>은 국립현대무용단의 ‘전통의 재발명전’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지게 되었다. <I GO>에 우리나라 전통의 색채를 가미하고,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켜 <혼구녕>을 만들었다. 그래서 전통 장례 관련 소품들을 많이 쓰고 트로트 음악도 사용했다. <I GO>, <혼구녕> 두 작품 모두 인간의 죽음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혼구녕>이 세상에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소재로 했다면 <I GO>는 그 반대다. 자연적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꿈꾸는 것 같은 죽음이다. 창작자 입장에서 <I GO>만 만들었을 때는 아쉬움이 많았는데, <혼구녕>을 통해서 그런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고마운 기회였다.
공연 순서는 우리가 ‘죽음’에 대한 고민했던 차례대로가 자연스러울 것 같지만, <혼구녕>을 먼저 보여드리고 <I GO>를 뒤이어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혼구녕>의 서민적 느낌과 죽음의 색채 자체에는 우울함이 깔려 있다. 그래서 더 유쾌하게 풀어내고자 했고 전반적으로 작품이 무겁지 않다. 그러나 <I GO>의 경우에는 가볍게 시작하지만 전반적으로 무겁다. 먹먹한 느낌이 온다. ‘죽음’을 주제로 하나의 공연을 구성한다면, 그 먹먹한 느낌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Q: <혼구녕>을 보면 표정, 독백과 같은 연기 부분의 요소가 매우 돋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작품의 구성 또한 연극 같다. 댄스 씨어터인가? 무용이 아닌 다른 장르와의 협업에 대해서 말씀 부탁한다.

A: 구성이 많이 쪼개지고 섞여 있어 흐름을 잡기 어려워서 그렇지 댄스 씨어터를 구상하고 만든 작품이 맞다. 연기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각자 서로 잘하고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
우리는 열려있고 자유로운 창작을 추구하며 다 함께 노력하는 팀이다. 프로필 상에는 역할을 구분해 적어 놓았지만 안무를 할 때 팀원 전체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고 수용해서 작품을 만든다. 다른 장르와의 연계도 마음이 맞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Q: 이번 서울아트마켓에서 <혼구녕>을 해외 프리젠터에게 어떤 방식으로 선보일 계획인가? 공연 전반부 한글 내레이션도 있고 지경민의 독백도 있다. 

A: <혼구녕>의 공연시간이 전체 40분이기 때문에 작품 자체를 쇼케이스로 선보이는 데 문제가 없다. 극장의 구조를 활용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고민해 보려 한다. 전반부에 나오는 내레이션은 따로 녹음한 것이 아니라 김도향 선생님 노래의 일부다. 그래서 영어로 바꿔 녹음할 수가 없다. 그대로 쓰려고 한다. 후반부 지경민의 독백 부분은 영어로 바꿀까도 했지만, 그냥 한글로 하려고 한다. 스크린을 설치해서 자막을 쓰는 것에 대해서는, 무대에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반대 한다. 사전에 안내 자료를 통해서 내용을 숙지하고 작품을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지경민

고블린파티

임진호

지경민 고블린파티 임진호

Q: 공연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언제인가? 

A: 국내 지방에서 공연할 때면, 꼬마들이 남아서 우리랑 같이 사진을 찍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때 정말 기분이 좋다. 해외에서도 큰 도시에서 공연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소도시에서 공연도 하고 그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활동 같은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하면 뿌듯할 것 같다.       


Q: 끝으로 향후 일정 소개와 고블린파티에 대해 한마디 부탁한다.

A: 7월 <불시착>의 스페인 3개 도시 투어 이후 7, 8월에는 창무국제무용제 무대에 설 예정이다. 9월에는 국립현대무용단 공연이 있고, 10월에는 서울아트마켓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고블린파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 작품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부족한 점을 알면서 보완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안무가 입장에서 공연 때마다 무용수가 바뀌면 매번 새로 연습을 해야 해서 작품을 발전시켜 나가기가 쉽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멤버들과 항상 함께 창작하고 함께 무대에 선다. 그래서 공연을 준비할 때, 단순 연습에 집중하지 않고 작품의 더 나은 방향을 위한 창작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큰 뼈대는 유지하면서 작품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수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공연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할 수 있지만 앞으로 공연될 작품에 대해서는 항상 조심스럽다.  얼마든지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이번 서울아트마켓이 고블린파티가 한 뼘 더 자라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고블린파티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혼구녕> (Soul Piercing)

<혼구녕>은 국립현대 무용단의 2014년 시즌 프로그램 ‘역사와 기억’, 전통의 재발명전의 공모를 통해 선정, 발표된 작품으로 2015 한국춤비평가협회 선정한 춤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혼구녕>은 죽은 자를 모시는 전통 상례 속에서 엿보이는 죽음을 대하는 온갖 당혹감과 모순된 태도들에 대한 관찰을 기반으로 하여, 죽음이라는 경계의 주변을 떠도는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카오스를 그로테스크하게 과장된 유희와 상상으로 풀어낸다. 죽음이 던져주는 주체할 수 없는 혼란과 존재의 자괴감 속에서도 죽음 너머를 초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애틋하고 절실한 해석이 숨어있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고블린파티 (Goblin Party)

비상한 힘과 재주로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이나 심술궂은 짓을 많이 하는 한국의 도깨비를 단체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고블린파티(Goblin Party)는 2007년 창단, 독일 탄츠메쎄, 네덜란드 스프링 어웨이크닝 축제, 벨기에 무용비엔날레 ‘춤의 나라들’ 등 국내외 유수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유의 유머와 진지함을 무기로 관객과의 소통에 가장 큰 중점을 두되, 관객의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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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히라타 오리자 이후, 일본연극엔 그가 있다]]> 히라타 오리자 이후, 일본연극엔 그가 있다
[피플] 작가 이와이 히데토


2003년 극단 하이바이(ハイバイ)를 결성해 극작가 겸 연출가 겸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이와이 히데토(岩井秀人)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2012년에 NHK BS프리미엄 드라마 <낳으면 태어난다, 그 후(生むと生まれるそれからのこと)>로 ―극작가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드라마 각본상인 무코다쿠니코(向田邦子)상을 수상하고, 연달아 2013년에 <어떤 여자(ある女)>로 키시다 쿠니오(岸田國士)상을 수상해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사실 그의 수상에 대해 일본 연극계 곳곳에서 “이제서야!”라는 말이 나왔을 만큼, 그는 이미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또한, 그는 작년에 대표작 <히키칸쿤 토네이도(ヒッキー・カンクーントルネード)>를 소설 버전으로 재구성하여 단행본을 출판했고, 올해는 순수문학잡지 『문학계(文學界)』에 소설 <배우 해보지 않을래요? 강좌(俳優してみませんか講座)>를 발표하며 작가로서 그 활동범위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환타지아 공연 (2014)

환타지아 공연 @광화문 광장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두산아트센터

일련의 ‘히키’ 시리즈에 대해

Q(이홍이) : 이와이 작가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인 <히키 칸쿤 토네이도>는 2011년 서울아트마켓(PAMS)에서 해외 쇼케이스로 공연되었고, 그 이후 두산아트센터에서 극단 하이바이의 본 공연을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A(이와이히데토) : 그렇다. 서울아트마켓에는 일본 측의 추천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이후 또 다른 대표작 <손(て)>이 런던에서 리딩 형태로 공연되었지만, 극단 하이바이라는 이름으로 해외공연을 한 것은 서울아트마켓이 처음이었다.

Q : <히키칸쿤 토네이도>는 지금까지 아홉 번이나 공연되었고, 올해 7월~8월에는 일본 10개 도시에서 공연이 예정되어있을 만큼 이와이 작가의 대표작이다. 아마도 작가 자신을 모리타토미오라는 인물에 투영시킨 자전적 작품이라 더욱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후속편들을 지속해서 발표해왔다. 2006년에 <히키칸쿤 연극요법(ヒッキー・カンクーンエンゲキリョウホウ)>을 발표했고, 2012년에는 파르코 극장에서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ヒッキー・ソトニデテミターノ)>를 공연했는데, 일종의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집필한 것인가?

A : 그런 것은 아니다. 실은 그것은 숨기고 있던 사실인데. (웃음) <히키칸쿤 연극요법>은 이번에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와 같이 모리타 토미오가 집 밖으로 나온 뒤를 상상해서 그린 이야기다. 하지만 그때는 이번처럼 상담소나 기숙사를 취재해서 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한계를 느꼈다.

Q :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의 일본 초연은 파르코 극장에서 이루어졌다. 파르코 극장은 늘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곳이고, 상업극이 많이 올라가는 큰 극장이다. 공연에는 모리타 토미오 역의 후키코시 미츠루(吹越満) 씨를 제외하고 거의 항상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이 출연했다. 게다가 스토리텔링 면에서도 대중에게 친근하지만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작업과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A: 나중에 생각하니까 정말 감사한 일인데, 극장에서는 전적으로 나의 작업을 신뢰해주었다. 물론 극장 측에서 스태프를 추천하는 등 함께 이야기한 부분도 있지만, 내가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는 것을 지지해주었다. 알고 보니 흔한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 특히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일하다 보면, 캐스팅은 그렇다 쳐도 대본에 대해서 여러 말을 듣게 된다. 보는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이 참 좋았다. 또 객석을 억지로 채우려고 초대권을 남발하지도 않았다. 꼭 관객이 가득 차지 않더라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즐기는 그런 객석의 분위기가 좋았다. 

세움 유세움 대표(좌), 방영문 아트디렉터(우)

이홍이x 이와이히데토(Iwai Hideto)

극단 하이바이와 제작사 키나다와의 관계

Q : 이번에는 극단 하이바이와 제작사 키나다(quinada)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A : 한국도 극단 안에 제작/기획 파트가 함께 있는 것이 일반적인가? 사실 나도 처음에는 제작과 기획을 같이 담당했다. 그리고 꽤 재미있었다. 그러나 나 혼자 하기에는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시점에 미요시 사치코(三好佐智子) 씨(quinada 대표)를 알게 되었다. 두 단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위해 희생하고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함께 일을 해나가는 관계다.  

A(미요시 사치코) : 나는 극단 하이바이의 작품을 제작하거나 기획하는 일이 아니라, 작가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다. 이와이 씨뿐 아니라 극단 샘플(サンプル)의 마츠이 슈우(松井周) 씨도 담당하고 있는데, 만약 이 두 사람이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만둘 것이고, 두 사람이 더는 글을 쓰지 못한다면 나 역시 그들을 떠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두 사람에게 5년 뒤의 꿈을 물었다. 마츠이 씨는 해외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때부터 모든 공연에 영어자막을 넣었고, 이와이 씨는 국내 투어를 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했다. 작가가 1년에 몇 편씩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의 인생 전체를 보고 계획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환타지아 공연 (2014)

환타지아 공연 @광화문 광장

<남자들>©曵野若菜WakanaHikino <히키칸쿤 토네이도>©曵野若菜WakanaHikino

Q : <히키칸쿤 토네이도>리딩 공연을 포함해, 또 다른 대표작 <손>과 <남자들(おとこたち)>이 각각 한국의 서로 다른 연출가에 의해 공연될 예정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한국 관객들을 만날 텐데, 기대되는 점이나 포부를 알려 달라.

A : 사실 이 작품들 모두 일본에서는 다른 연출가에게 공연허가를 하지 않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해외의 경우는 다른 것 같다. 이번에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를 보면서 다른 문화권의 한국 연출가와 배우들에 의해 달라진 점을 확인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런 재미있는 발견을 또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이 세 작품은 개인적으로 각각 매우 다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손>은 테크니컬 면에서 두 인물의 시점으로 장면이 반복되는 특징이 있다. 그런 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고,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정말 지금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 그래서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을 네 남자의 에피소드로 엮은 작품이다. ‘늙음’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이기에 즐겁고 밝게 만들었다. 일본에서도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 끝으로 <히키칸쿤 토네이도>는 리딩 공연이라는 점에서, 레슬링 장면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하다. 특히 한국 영화와 한국 배우들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꿈도 가지고 있다.

ⒸKAMS


 
이와이 히데토(Iwai Hideto)

  1974년생으로, 2003년 결성한 극단 하이바이의 대표이자 작가 겸 연출가 겸 배우이다. 2007년부터는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가 대표로 있는 극단 청년단(靑年團)의 연출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도쿄지만 도쿄 같지 않은 동네 ’무사시코가네이(武蔵小金井)’를 거점으로, ’대중의 유행이나 움직임을 동경하지만 거기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시선’을 무기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자신과 타인의 거리감에 지나치게 민감한 ‘자의식 안테나’에 기초한다. 여기에 히라타 오리자의 ‘현대구어연극 메소드’를 접목하여 독자적인 절실함과 우스꽝스러움을 발휘한다. 이것은 의외로 많은 사람의 동정과 공감을 얻었고, 이와이의 세계는 점점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족, 타인으로 넓어졌다.
  대표작으로는 본인이 만 16세부터 20세까지 히키코모리였다는 지극히 개인적 체험을 코미디로 변화시킨 <히키칸쿤 토네이도>(2003), 폭력적이었던 아버지를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어긋난 기억을 그린 <손>(2008), 영상과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젊은 남녀의 일상 판타지 <영혼을 보는 소녀 히도미>(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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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세움 [SE:UM]]]> 한국의 장단, 세상의 음악을 품다.
[PAMS Choice] 세움 [SE:UM]


<세움>의 음악은 그 어떠한 틀에 갇혀있지 않고, 자유롭고, 원초적이며, 감정에 매우 충실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국악 연주자와 즉흥음악을 하는 서양 연주자들이 만나 서로 각자의 ‘호흡’을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견고한 앙상블을 만들어 낸다. 2015년 팸스초이스(PAMS Choice)에 선정된 《KOREAN BREATH》를 계기로 세상의 음악을 품으려는 첫발을 뗀 그들의 행보가 기대된다.

예술가 중심의 공간, 문화공작소 <세움>

Q : 작년 서울아트마켓에 처음 참여하고, 올해 이렇게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었다. 소감이 어떤지? 

유세움 (이하 유) : 작년 서울아트마켓이 끝나고 폐막식 때 내년에 또 보자고 인사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팸스초이스에 선정될 것이라는 큰 기대는 없었기에 사실 많이 놀랐고, 기뻤다. <세움>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데뷔하기까지 장고의 시간을 가지면서 팀 스스로 충분히 준비되었는지 자문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작년 서울아트마켓의 부스전시와 오픈스테이지에서의 공연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고, 이것이 발판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올해의 서울아트마켓과 팸스초이스가 개인적으로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Q : ‘세움’이라는 이름이 <문화공작소 세움>과 <세움>에 쓰이고 있는데,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

유: <문화공작소 세움>은 예술가가 스스로 창작의 기반을 만들고, 유기적으로 협업하고, 결합하고, 융합하는 과정을 실제로 발현할 수 있는 모태가 되는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들이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게 되면 스스로의 예술을 풀어낼 수 있는 환경이 쉽지 않고, 오히려 외부의 시각에서 자신의 예술을 수정하고 편집하고 각색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문화공작소 세움>은 이러한 현상을 지양하고, 항상 예술가가 하고 싶은 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 예술가 중심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게 되었다.
<문화공작소 세움>에서는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있으며, 소속되어 있는 여러 팀을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예술가 유니온 형태의 제작사라고 보면 된다. 

Q : <세움>은 전통 타악기 연주자와 가야금을 중심으로 색소폰,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들로 구성되어 활동하는 걸로 알고 있다. 연주자들이 작곡도 함께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팀을 구성하게 되었는지? 

유: <세움>은 2012년도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그때는 지금과 같은 구조로 활동하고 있지는 않았다. 흔히 말하는 퓨전국악의 형태로 구성을 했는데, 활동하면서 음악적으로 한계에 부딪혔고 몇 개월 동안 휴지기를 가졌다. 그 와중에 현재 김성배 음악감독(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을 만났고 즉흥음악, 재즈에 대해 알게 되어 사고를 폭넓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세움>을 만들게 된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서양음악이 한국음악화 될 수 있는 방법을 방법론적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실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음악의 ‘장단’, ‘숨’, 즉 ‘호흡’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음악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환타지아 공연 (2014)

환타지아 공연 @광화문 광장

환타지아 공연 (2014) ⓒ방영문 환타지아 공연 @광화문 광장 ⓒ방영문

장르와 사람 간의 자연스러운 결합

Q :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인 《KOREAN BREATH》 또한 ‘호흡’에 대한 이야기인데, 작품에 대해서 좀 더 소개해 달라.

유: 《KOREAN BREATH》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예전보다 음악적으로 조금 더 자유롭고,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것에 대해 주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음악 연주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언어, ‘호흡’과 서양음악 연주자들이 가지고 있는 ’호흡‘이 다른데, 이를 단순하게 함께 연주하여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자체의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서양의 색소폰, 콘트라베이스와 트럼펫을 가지고 한국음악을 그냥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악기라는 선상에서 보았을 때 악기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이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숨’이 잘 발현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본능에 충실한 장르 간의 협업과 창작, 결합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것이다. 

Q : 《KOREAN BREATH》 작품에 대해 듣다보니 <세움>의 작업방식과 아이디어를 끌어오는 방식이 궁금하다. 

유: 흐르는 대로, 우리가 관심이 있는 것에 대해 실천하는 것이 <세움>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다. 일부러 음악의 소재를 찾기 위해 주위에 관심을 가진 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우리 주위에 있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며 관심을 갖게 되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소재를 찾게 된다. 어떤 연주자들과 연주를 하느냐에 따라서도 굉장히 다르다. 객원 세션과 협업을 하다 보면 또 다른 형식으로 연주가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다. 모르던 장단이 튀어나왔을 때,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며 하나의 트랙이 완성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상상력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고, 이것이 <세움>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Q : 최근에 영상미디어 작업과의 협업을 통해 공연의 성격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세움>의 음악이 영상미디어 작업과 연계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지 궁금하다.

방영문 (이하 방): <세움>이 하는 작업 자체를 설명하는 입장에서도, 그리고 듣는 입장에서도 <세움>의 음악을 명쾌하게 정의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작업 과정은 물론, 음악에서 설명하기 힘든 부분도 음악으로만 접근하다 보니, 관객들이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현장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실천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록 사진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세움>의 작업과정을 곁에서 함께 지켜보고 들으면서, 이 음악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여러 방면으로 표현하고 있다. 《KOREAN BREATH》 공연 때는 영상미디어와 음악을 함께 무대에서 선보이기도 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세움 유세움 대표(좌), 방영문 아트디렉터(우)

세움 유세움 대표(좌), 방영문 아트디렉터(우)

관객의 내재된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다

Q : 그렇다면 서울아트마켓을 통해서 <세움>은 어떤 것을 기대하는가? 

유 : 작년에는 <세움>을 대중과 공연예술관계자에게 알리는 계기로 삼고자 서울아트마켓에 참여했다. <세움>의 작업이 예술가 중심의 실험적인 활동 위주이다 보니 대중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색깔을 유지하며, 우리의 음악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고자 한다. 국내이든 해외이든 <세움>의 음악과 그 스타일을 어필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고, 이를 위한 새로운 판로를 서울아트마켓에서 적극적으로 찾고자 한다.

Q : <세움>의 음악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으면 하는가?

유 : 음악을 들었을 때, 시각적인 형상화가 자연스럽게 발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분야들이 뒤섞여 있어 난잡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이것이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계속 가고 있다. 음악적 도구로서 <세움>의 음악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이 관객들의 내재되어 있는 감성을 계속 찔러줄 수 있었으면 한다. 

방 : 같은 음악을 들어도 누구의 감성이냐에 따라 각자가 그리는 그림이 다를 텐데, 그런 감정 자체로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감정에 굉장히 충실한 음악!

 KOREAN BREATH 에든버러 프린지 공연 포스터

KOREAN BREATH 에든버러 프린지 공연 포스터

Q : 앞으로의 공연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유 : 작년에는 이태원 등지에서 클럽연주를 많이 했다. 올해는 클럽에서의 연주는 물론, 무대에서 선보이는 여러 작품이 계획되어 있다. 해외공연으로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이 8월 16일부터 22일까지 아담 하우스(Adam House) C(-1) Venue에서 예정되어 있다. 2015년 팸스초이스 선정작품인 《KOREAN BREATH》를 선보인다. 그 후 광양 문화예술회관,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서울아트마켓 쇼케이스 전에 1.5집 앨범인 ‘심연’이 발매될 예정이다. 

 

ⒸKAMS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KOREAN BREATH>

<KOREAN BREATH>는 한국의 숨을 기반으로 한 음악적 실험과 연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국 전통(풍물, 연희, 판소리, 무속 등) 특유의 ‘호흡’(숨)에서 음악적인 영감을 얻어 창작된 <KOREAN BREATH>는 한국 전통 장단을 기반으로 한 서양의 즉흥 음악, 재즈를 표방하고 있다. 음악의 질감에 대한 탐구와 장르 간의 화학적 결합을 통하여 한국형 트랜스 뮤직(Trance music)을 지향하는 작품이다.<KOREAN BREATH>는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의 공식공연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이를 통하여 국내뿐만이 아닌 해외 관객에게 작품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KOREAN BREATH>에서 연주된 레퍼토리를 담은 앨범 [SE:UM]은 2015 한국 대중음악상 2개 부문(최우수 크로스오버 & 최우수 연주)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음악적 실험과 작품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세움 [SE:UM]

‘세움’은 예술가 스스로 자신의 창작 기반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돕자는 목표 아래 세워진 단체다. 이러한 목표를 바탕으로 예술적 영감을 더욱 자유롭게 펼쳐나가고 있다. 음악을 중심으로 해서 영상, 사진, 미디어와의 다양한 협업을 이루어 공연의 성격을 확장해가고 있으며, 지속해서 콘텐츠를 개발하고 발표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궁극적으로 장르 간의 협업과 창작을 통하여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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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공연창작집단 뛰다]]> 고요함 속에 내딛는 치열한 정중동(靜中動)의 한 걸음
[PAMS Choice] 공연창작집단 뛰다


2015년 6월.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서울 대학로를 뒤로하고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한 지 꽉 찬 5년이 되었다. 군인이 절반을 넘는 인구 2만 6천의 화천에 열댓 명의 젊은이들이 단체로 이주해 온 것을 화천군도 반기지 않을 리 없었다. 화천 문화예술진흥에 대한 협약을 맺고 10년을 내다보며 터전을 옮긴 지 딱 절반이 흘렀다. 2015년 지금, 뛰다는 <고통에 대한 명상>으로 벌써 네 번째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어 또 한번 국제 네트워크를 확장할 기회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뛰다의 진정한 비전은 오랫동안 품어온 고민에 있었다. 

화천행(行) 5주년, 공연창작집단 뛰다 NOW

Q (이연경) : 화천에 내려가며 문화예술진흥에 대한 협약을 맺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추진은 어떠한지. 화천군과의 협력은 어떤지 궁금하다.

A(배요섭, 이하 배): 화천군과의 가장 큰 협력은 폐교를 리모델링해서 만든 ‘시골마을 예술텃밭’의 공간을 계속 사용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작년에는 화천군의 의뢰로 군민 약 130여 명과 함께 전통 수상 마당극인 <낭천별곡>이라는 공연을 올린 바 있다. 한 시간 반짜리 공연을 위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한달 반 정도를 준비했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화천에서 하고 있는 작업 중에 지역주민과 함께한 가장 이상적인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만들어진 공연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작업 안에 직접 들어와 그들의 삶을 소재로 한편의 공연을 만든다는 과정이 매우 이상적이었고 결과물도 좋아 우리를 포함한 참여자 모두와 군 관계자들도 크게 만족한 프로젝트였다. 향후에도 이러한 프로젝트를 다시 하게 된다면 지역주민과 예술을 매개로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참여할 의사가 있지만, 아무래도 화천군은 우리보다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현상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협력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Q : 뛰다의 행보는 크게 서울 대학로 시기를 1단계, 이주 및 정착 시기를 2단계, 이주 5년 차가 되는 지금을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2015년 지금, 뛰다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인가.

배 : 지역으로의 이주를 어렴풋이 고려는 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움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화천에 이주해 오고 나서도 우리는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뛰다가 가지고 있는 화두는 ‘어떻게 하면 공간이 잘 활용될 수 있을까’ 이다. 공간이 갖춰지고, 프로그램도 꾸려서 잘 사용하고 있지만 공연을 창작하며 보내는 시간은 1년 중 길어야 3개월이다. 다용도로 활용되는 시간을 제외하고 비어있는 기간도 있어 기왕 있는 공간이 효율적으로 잘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와 더불어 공간의 개념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이 공간이 어떠한 개념으로 잘 활용되면 좋을지, 이것이 요즘 우리의 화두이다.

우리는 시골마을 예술텃밭에서 다섯 번째 ‘텃밭예술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만나고 싶었던 단체들과 교류하고 나누기 위해 축제를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만 즐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젊은 개인 예술가들을 초대하여 숙식을 제공하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터주게 되었다. 지난 3회와 4회에서 그런 취지를 유지해왔고, 해외초청 아티스트, 설치미술가, 무용가, 음악가, 배우들이 한데 모여 공연도 하고 교류도 하는 활발한 축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런 방식으로 축제 운영을 하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는데, 우리 축제에서 알게 된 예술가들이 서로 화천을 벗어나서도 교류를 이어가고 작업을 지속한다는 점이었다. 작년에 만나게 된 태국-한국 독립예술가들이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태국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지원금을 받아 문래예술공장에서 작업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뿌듯했다.

화천이라는 외진 지역을 플랫폼으로 삼고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을 이점으로 살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꾸리다 보니 일종의 예술가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 재충전 프로그램, 플랫폼 등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 이것을 잘 정착시키고 발전시키려고 하고 있다. 

고래

고래

고래 Ⓒ뛰다

<고통에 대한 명상>, 짧고도 긴 여정

Q : 뛰다는 그간 활약을 통해 국제교류에 대한 자생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년간의 경험과 소스를 토대로 <고통에 대한 명상>이 탄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배 : 이 작품은 창작된 계기 자체가 매우 재미있다. 뛰다는 아이러니하게도 화천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국제적 네트워크가 확장되었다. 단일 공연이 아닌, 진정한 국제교류의 의미나 지속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던 참에 화천에 이주,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그러한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되었는데, 공간의 변화가 우리의 생각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큰 것 같다.

이 작품은 뛰다의 해외 네트워크 중 첫 번째 상대국인 인도를 만나면서 여러 단계를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원래부터 이 작품을 기획하고 인도의 파트너를 만난 것이 아니라, 작년에 공연을 위해 인도의 아드샤티라는 극단과 물물교환 워크숍을 진행하던 중에 원(元) 소스를 얻게 된 셈이다. 배우들 간의 워크숍에서 얻어진 것과 워크숍 중 알게 된 ‘꾸띠야땀’이라는 인도 전통 공연예술의 한 장르가 어느 날 공연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극단 내 최연소 2명과 최고령 2명이 두 팀으로 나누어 스토리와 공연을 만들기로 하고, 2㎡의 제한된 공간에서, 꾸띠야땀에 활용되는 음악과 배우가 호흡하는 방법을 차용하여 만들어졌다. 각각 <넉손이>와 <고래>로 명명된 두 작품은 만들어지고 나서 ‘고통’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는 점이 발견되어 하나의 큰 테두리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야기적 공통분모를 제외하면 두 작품의 비슷한 점을 찾기는 힘들다. <넉손이>가 매우 강렬하고 구체적으로 고통에 대한 서사를 풀어내는 작품이라고 한다면, <고래>는 매우 시적인 작품이다. 이야기보다 이미지로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에 시적이고 모호하지만, 관객에게 또 다른 방법으로 고통에 대해 반추하게 한다.

Q : 팸스초이스는 쇼케이스 형식을 취해야 한다. 두 개의 이야기가 병렬되어있는 이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 예정인가.

배 : 연극을 쇼케이스화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이 있고, 몇 장면만을 추렸을 때 연출이 의도한 부분을 놓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네 번째 도전하는 것이지만 앞선 시도가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후회하는 부분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이번 작품 같은 경우는 두 개를 모두 보여주기보다 한 개의 작품에 집중하여 음악, 절제된 형식 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넉손이

넉손이

넉손이 Ⓒ뛰다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을 위한 협업

Q : <바후차라마타> 공연은 4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고 들었다. 국제교류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여간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닌데, 그렇게 만들어진 <고통에 대한 명상>이 올해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었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서울아트마켓이나 팸스초이스에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배 : 사실, 뛰다의 작품이 아주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국내 관객들이 보기에 우리 작품이 사실은 낯선 것인데 그것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반면에 해외에서 공연을 하다 보면 국내보다 교감도 잘 되고 반응도 매우 좋은 편이다. 팸스초이스를 통해 바로 작품이 초청되는 등의 직접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외 진출을 통해 국내에서 충족되지 못한 수요를 충족시키고 작품의 다음 단계에 대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낭천별곡>과 같은 공연을 했던 것은 이러한 면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만든 공연과 관객 사이의 접점이 잘 생기지 않을 때 고민에 빠지는데, 정확히 우리가 고민한 부분에 대해 지지해 주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방향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극단의 전체적인 방향을 돌리는 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과를 낳을 것을 분명히 알기에, <낭천별곡>과 같은 별도의 프로젝트를 통해 관객과 직접적인 소통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고, 우리가 계속하고 싶은 것들을 꾸준히 찾아볼 예정이다.

Q : 뛰다의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되나.

배 : 2009년부터 교류해온 일본의 ‘토리노 게키죠(鳥の劇場)’와 협업을 예정하고 있다. ‘전쟁’을 테마로 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의기투합하고 있다. 협력 상대가 일본이기 때문에 ‘전쟁’을 테마로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우려가 굉장하다. 우선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념이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르지만, 개인적으로 전쟁은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술가들이 만났을 때는 그 이상의 가치를 논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라 어느 정도의 수고와 노력은 감수하고 있다. 리서치 기간을 1년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다시 일본에서 모여 리서치 결과를 놓고 서로의 변화된 모습을 지켜볼 예정이다.

Q : 이번 서울아트마켓은 아세안 국가 중 베트남, 싱가포르, 캄보디아를 포커스 국가로 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의 협업이나 교류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배 : 특별히 국가를 한정해서 교류하고 있다기 보다, 누구라도 우리를 자극하는 점이 있다면 교류해볼 생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당장 협업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나라들은 프랑스나 뉴질랜드이지만, 이번 포커스 국가는 싱가포르를 제외하고 공연예술의 원형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다만,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같은 경우는 무형유산 혹은 무형유산에 가까운 공연예술이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변형이 일어나기 쉬워 이런 점은 주시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과도 협업을 위해 1년여의 리서치 기간을 들이고 있는데,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같은 경우는 미지의 세계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성 발견을 위해서라도, 기금이나 여건이 조성된다면 주변의 여러 나라를 묶어 뛰다 작품의 가능성을 새로운 곳에서 시험해보는 공연 투어를 다녀오고 싶다. 

 

ⒸKAMS


 
2015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고통에 대한 명상>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살갗이 패여 나가는 아픔, 뼈가 으스러지는 괴성,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 등의 고통은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방증한다. 인도의 전통연희 꾸디야땀의 형식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고통에 대한 명상>은 극도로 제한된 원형무대 아래 절제된 말과 극대화된 신체표현으로 고통을 수반하는 생의 이면을 탐구한 연극이다. 자기가 내뱉은 말로 인해 끊임없는 고통의 사슬 속에서 죽어가는 고래이야기와 고통의 소리를 먹으며 자란 이후 인간의 고통, 그 극한의 소리를 찾아 헤매는 넉손이의 이야기를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살아있다는 증거인 고통이 소리가 되고, 이후 말이 되고, 그 말이 다시 고통을 불러오는 순환구조를 풀어냈다.

2015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공연창작집단 뛰다

예술가들의 유기적인 공동체로서 창작, 공연, 교육활동을 통해 이 땅에 예술의 밭을 일구는 문화예술집단이다. ’열린 연극’, ’자연 친화적인 연극’, ’움직이는 연극’의 세 가지 이념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2001년 창단하였다. 그리고 지난 14년간 배우의 몸과 소리에 대한 탐구, 광대 및 오브제 연기에 대한 연구,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연극형식에 대한 실험을 계속해왔다. 2010년에는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하여 그곳을 "시골마을 예술텃밭"이라 이름 짓고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지역의 예술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뛰다는 연극이 소수의 관객을 위한 문화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두를 위한 문화환경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www.tui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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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새로운 로컬 컨템퍼러리를 증거하는 프로듀서]]> 새로운 로컬 컨템퍼러리를 증거하는 프로듀서
[피플] 말레이시아 파이브아트센터 프로듀서 준 탄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접점을 새롭게 설정한 페스티벌 봄의 2014년 미얀마 특집 프로그램에 이어, 2015년에는 말레이시아의 로컬 컨템퍼러리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 발표와 공연이 지난 4월 17일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파이브아트센터(Five Arts Centre)의 프로듀서 준 탄(June Tan)의 협력으로 진행되었다. 파이브아트센터는 30년 동안 말레이시아 독립예술의 주요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는 곳이다.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들이 모여 각자의 기호와 역할을 공유하고, 연극, 무용, 시각예술 등 장르를 넘나드는 대안적이고 실험적인 접근을 실천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서울아트마켓 X 페스티벌 봄 심포지엄에 참가한 준 탄과의 인터뷰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예술 현장과 파이브아트센터에 대해 들어봤다.

파이브아트센터, 말레이시안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Q(류성효) : 파이브아트센터가 30주년을 맞이했다고 들었다. 파이브아트센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부탁한다.  

A(June Tan) : 파이브아트센터가 시작된 것은 1994년이다. 시작된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함께 알 필요가 있어 간략하게 이야기하겠다. 1950년대 말레이시아에는 영국으로부터 다양한 서양문화가 들어왔다. 내가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그 영향 중 하나다. 교육을 비롯해 발레나 시각예술, 셰익스피어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영국의 영향을 받았는데, 1980년대에 들어 말레이시아 각 지역을 중심으로 말레이시안 크리에이티브에 중점을 두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서양문화에 영향을 받은 스타일이 아니라 말레이시아 전통에 중점을 두자는 문화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문화운동의 출발은 글쓰기 분야였다. 이후에 몇몇 파이브아트센터의 멤버가 시각예술, 연극, 댄스, 로컬댄스 등으로 운동을 연계, 확장하는 활동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파이브아트센터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의 말레이시아에는 장르 간 협업(Collaboration)이 매우 인기였다. 시각예술 아티스트가 댄스를 하고 댄서가 뮤지컬을 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르파괴가 일어났다. 

현재도 파이브아트센터의 멤버들은 항상 협업에 열려 있다. 멤버가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에 흥미도 많고 개방적이어서 어떤 사람이든 프로젝트 단위로 결합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다. 

파이브 아트센터30주년 기념 ‘Ten Ten Ten’ 프로젝트 ⓒ fiveartscentre

파이브아트센터 30주년 기념 ‘Ten Ten Ten’ 프로젝트 ⓒ fiveartscentre

Q : 파이브아트센터가 무슨 뜻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A : 연극, 로컬 라이팅(Local Writing), 댄스, 시각예술, 그 외 분야 등을 5개의 단위로 설정하고 접근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개념보다 플랫폼 형태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Q : 운영예산은 어떻게 확보하는지 설명해 줄 수 있나?  

A : 파이브아트센터는 공연예술 활동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부 기금을 받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 아무래도 프로덕션의 이미지나 관객 수 등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최근 2년 동안에는 파이브아트센터의 멤버들이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멘토링을 하는 형태로 기금을 받기도 했다. 기금을 확보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있어서는 정부나 기관 모두 대체로 협력적인 편이다. 

Q : 예산 확보에 있어서 파이브아트센터는 말레이시아의 다른 문화단체나 공간에 비해 특별한 사례로 보인다.  

A : 파이브아트센터는 현재 주요 멤버가 5명이고 그 외에도 더 많은 멤버들이 있다. 적지 않은 멤버가 있기 때문에 몇몇은 작업을 하고 몇몇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형태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양한 인연과 기회로 정부와 기업에서 후원을 받거나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제 42회 세르반티노 축제

ⓒ 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

말레이시아 데이 @페스티벌 봄

다층위의 관객개발을 고민한다.

Q : 파이브아트센터에서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 대학에서의 전공은 생물학이었고 회계분야에서도 일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저녁 시간을 활용해 파이브아트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러던 중 점점 더 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자연스럽게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만드는 데 집중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일의 중심을 파이브아트센터로 옮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스테이지 매니저로 일하다가 프로덕션 일까지 맡게 되었다.

 

Q : 개인적으로 국가 간 경계를 넘어서는 협업에 관심이 많은데, 파이브아트센터는 어떤 형태로 접근하고 있는지 설명을 부탁한다.

A : 두 가지 방법의 협업이 일반적이다. 첫 번째는 아티스트 간 협력이고, 두 번째는 프로듀서 간 협업이다. 최근 사례로는 일본 요코하마와의 협업도 기억나고, 현재 한국 광주와 협업 형태로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다. 외국과 관계를 맺으며 자국의 문화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는 것도 좋고, 차이점과 유사점을 느끼는 모든 상황이 공부가 되는 것 같다.


Q : 많은 한국 사람들이 말레이시아의 문화예술에 대해 모르는 점이 많을 텐데 최근 주요한 흐름이나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 이야기해 줄 수 있나?

A : 공연예술은 말레이시아 사회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최근 여러 투자자가 주거단지, 회사,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소극장이라든지 영화관 등을 만드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고려할 때, 지금이 관객의 성격을 연구하고 관객층을 넓히는 방법을 고민할 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실험적이고 좋은 공연을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관객이 오지 않는다면 그건 실패한 기획일 수 있기 때문이다. 

Q : 말레이시아로 리서치를 갔을 때, 여러 기획자를 통해 관객을 모으기가 매우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A :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공연관계자들이 자신의 관객을 직접 공연장으로 데리고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단지 그들의 역할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다른 기관이나 단체가 함께 홍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언어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다인종 국가의 경우 말레이, 중국, 인도 등 주요 언어별로 소통에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영어를 쓰면 경계를 극복하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되지만, 그래도 중국어 공연에는 중국계 사람들이 많이 갈 것이고 인도어 공연에는 인도계 사람들이 주된 관객층을 형성할 것이다. 말레이 사람들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Q : 다인종 국가의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파이브아트센터는 이 부분과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A : 우리는 말레이시아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말레이시아를 이야기를 하는 것에 중심을 두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고려하고 있다. 상황과 목적에 효율적인 언어를 고려하여 공연을 진행하는 과정이 그러한 노력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이제까지는 기본적으로 아티스트 발굴에 중점을 두어 활동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층위의 관객을 개발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각 문화권의 특징을 인정하고,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한 학교방문 및 학생 픽업 등의 관객 개발 전략을 지속적으로 강화, 발전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류성효x준 탄 (June Tan)

류성효 x 준 탄 (June Tan)




Q :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이 궁금하다.

A : 파이브아트센터의 30주년을 기념해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지는 ‘Ten Ten Ten’ 프로젝트가 있다. 작년에는 규모가 작은 프로젝트를 여러 기관과 연계해 진행했고, 올해에는 좀 더 큰 계획들이 있다. 공연과 관련한 컨퍼런스도 있고 오는 8월에는 관련 도서가 발간될 예정이다. 한국 광주를 방문할 계획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프로듀서 네트워크와도 일하고 있는데 현재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또한, 조지타운페스티벌(George Town Festival)도 준비하고 있고, 인디펜던트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Independent community arts project)도 진행 중이다. 2015년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페스티벌의 해라고 지정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축제가 준비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과도 더 많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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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세르반티노 축제 예술감독_ 마르셀라 디에스 마르티네스


세르반티노 축제(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는 ‘비슷한 형식을 가진 축제 중 중남미 최고’, ‘세계 4대 주요 행사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예술축제다. 세계인들은 1988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한 이 축제를 리우 삼바 카니발(Carnaval do Rio de Janeiro), 뮌헨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부뇰 토마토 축제(La Tomatina), 베네치아 카니발(Carnevale di Venezia) 등과 함께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20세기 중반인 1953년, 과나후아토(Guanajuato) 대학의 엔리케 루엘라스(Enrique Ruelas)는 주민들도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던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막간극을 들고 학생들과 함께 광장으로 나왔다. 이후 거리와 극장에서 세르반테스의 작품을 매년 공연했고 이는 대학도시였던 과나후아토의 전통이 되었다. 그렇게 ‘세르반티노’라 불리게 된 축제는 1972년 정부가 재단을 만들어 주도하면서 본격적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엘 세르반티노(EL Cervantino)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세르반티노 축제는 43회를 맞는 올 10월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후원으로 한국 현대무용특집, ‘Korea Today’를 통해 3개의 무용단을 소개한다. 이에 앞서, 한국 공연예술계와의 향후 폭넓은 교류를 목적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서울아트마켓 X 페스티벌 봄 심포지엄에 참가한  마르셀라 디에스 마르티네스(Marcela Diez Martínez, 60세) 예술감독을 만났다.

제 43회 세르반티노 축제 포스터 ⓒ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

마르셀라 디에스 마르티네스 (Marcela Diez Martínez)

제 43회 세르반티노 축제 포스터
ⓒ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
마르셀라 디에스 마르티네스(Marcela Diez Martínez)
 

작품에서 찾은 것은 뿌리가 낳은 현대였다.

Q : 축제의 방향이 과거에는 전통 혹은 민속을 중요하게 다루었다면 점차 현대예술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 방향을 애써 바꿨다기 보다 자연스럽게 변했다. 우리 축제는 젊은 사람들이 희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현재 멕시코 인구의 50%는 18세 미만이다. 이들은 미래 우리의 관객이기도 하지만 축제를 통해 예술을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지역사회에 미래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에서 전통을 제외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더욱 새롭고 매력적이며 흥미로운 것을 소개하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옛 민요가 바다를 넘어와 멕시코를 노래하는 젊은이들의 록으로 바뀌었다면 이건 현대 멕시칸 록이다. 세상은 점점 국제화되고 있으며, 이렇게 현대적 언어로 소통하고 있다.

Q : 한국 특집을 현대무용으로 특화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나? 

A :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서 실제로 본 작품은 없다. 하지만 많은 동영상 자료를 보며 한국 작품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꼈다. 우선 테크닉이 뛰어나고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내게는 이점이 매우 중요한데, 한국 현대무용은 그 뿌리와 맞닿아 있다. 한국 작품에는 일본과도 다르고 프랑스와도 다르며 멕시코와도 다르게 한국적이라고 느끼게 하는 독특한 색깔이 있다. 올가을에 소개할 최상철 현대무용단(중앙대학교), 브레시트무용단(대표 박순호), 아트 프로젝트 보라(대표 김보라)등 3개 무용단 작품에서 공통으로 찾은 것이 바로 뿌리가 낳은 현대였다.

Q : 세계인들에게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축제를 꼽으라면 세르반티노는 언제나 10개 중 하나에 들어간다. 에든버러 축제와 함께 공연예술축제로는 유일한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 세르반티노 축제는 공식적으로 43년 되었지만 실제로 그보다 더 긴 역사를 이어 온 국제행사다. 또한, 인구가 많지 않은 작은 대학도시 과나후아토가 행사 기간 중에 축제 그 자체로 바뀐다는 것은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축제 기간에 과나후아토는 살아있는 극장, 눈앞에 있는 박물관이 된다. 극장이나 특정 공간을 포함해 시 전체가 축제의 장이 되기 때문에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라도 의지와 상관없이 축제의 일부분이 된다. 이것이 세르반티노 축제를 매우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우리는 매년 10월 3주간 반드시 주말을 포함해서 축제를 진행하는데, 기대 혹은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프로그램으로는 클래식에서 팝, 월드뮤직에 이르는 전 장르의 음악이 50%를 차지한다. 음악은 주로 성당에서 공연하며 연극, 무용, 전시 및 미디어아트, 필름 등 시각예술은 해당 기간 사용할 수 있는 극장, 박물관, 역사적인 건축물, 광장, 공원 등 도시 전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워낙 많은 것들이 동시에 벌어지기 때문에 누구든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또한 마련되는데, 축제 안의 작은 축제라 할 수 있다.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 축제는 가족을 위한 축제다. 이 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들에게도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들은 아름다운 도시에서 예술과 자신의 미래에 관해 토론하고 거의 무료인 공연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돈이 없어도 세계적인 공연을 볼 수 있으며, 축제가 펼쳐지는 현장 구석구석을 있는 그대로 체험하고, 예술가들과도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일 것이다. 에든버러처럼 우리 축제에 프린지는 없지만 프린지를 가진 셈이다.

Q : 축제의 기본적인 운영과 올해 축제를 소개해 달라. 

A : 당신이 소개하는 한국팀을 제외하고 어느 나라 어떤 단체가 오는지는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까지 밝힐 수 없으니 양해해달라. 올해 행사 기간은 10월 7일부터 25일까지 19일간이며 24개국에서 멕시코 아티스트를 포함해 대략 2,500 ~ 3,000명 정도의 예술가가 참가한다.

세르반티노 축제는 공식적인 정부행사로서 멕시코 국립문화예술위원회(CONACULTA)에서 8천 5백 페소(한화 약 60억 원)를 지원하고, 과나후아토 주 정부(Guanajuato State Government), 과나후아토 시 정부(Guanajuato City Government) 그리고 과나후아토 대학(University of Guanajuato)이 호텔, 식비, 운송비 및 대관료를 책임지며 전액 공공기금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예산이라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항상 모자라는 법이라 축제에 참가하는 자국 공연단을 후원하는 각국 기금과 협찬 및 후원까지 합해 행사를 치른다.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50~55명에 이르는 상근직원들은 모두 공무원 신분이며 축제 기간에는 그 수가 100여 명 안팎으로 늘어난다.

Q : 축제의 프로그램만으로도 엄청난 규모인데 젊은이와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지역사회에 미친, 혹은 기여한 경제적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A : 작년에 축제를 찾은 관객은 스쳐 가는 관광객이나 인근에 거주하며 특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시내 호텔에서 적어도 하룻밤 이상 머물며 공연을 본 사람만 약 500,000명 정도다. 

실질적으로 벌어들인 수익보다 중요한 것은 파생적 부가가치인데 이것을 정확히 산출하기는 어렵다. 1년 동안 크리스마스가 5번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가톨릭 국가에서 크리스마스는 매우 중요한 명절이며 엄청난 소비가 이뤄지는 시즌이다. 축제 기간 과나후아토에 유입되는 돈은 5번의 크리스마스를 한꺼번에 모아놓은 것과 맞먹는다. 호텔에는 빈방이 없고 레스토랑도 쉴 틈이 없다. 쇼핑센터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위키피디아 2010년 발표, 축제 기간 약 300억(423,000,000 페소) 유입) 과나후아토는 끊임없이 문화를 생산해내는 대학도시다. 따라서 축제 하나 때문에 얼마를 벌어들인다는 것 보다는 도시 그 자체가 부가가치가 되어 인근 도시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축제는 젊고 새로운 예술을 통해 풍부한 문화자산을 멕시코로 옮기는 역할도 한다.

제 42회 세르반티노 축제

ⓒ 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

제 42회 세르반티노 축제 ⓒ 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

보살핌이 필요해 보이는 예술가를 먹여 살리는 것이 내 일이 되었다

Q : 이제 당신에 관해 듣고 싶다. 예술감독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어떤 미래를 꿈꾸나?

A : 예술가들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고, 때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얘기를 통해 우리가 속해 사는 사회와 사람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예술가에게는 항상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당면과제를 두고도 그들은 창작에 몰두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들을 먹여 살려야 했고, 인간애를 말하는 예술가들을 돕는 것이 바로 내 일이 되었다.

부감독으로 일하다 떠난 지 5년 후 예술감독이 되어 돌아오며 축제와 오랜 시간 함께했고,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과 예술가에게 매혹된 기획자로 살아온 나는 더 크게 욕심낼 것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즐기며 행복하기만 바란다. 그리고 축제 이후에도 분명 공연예술을 위해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찾을 것이다.

세르반티노 축제 예술감독으로서는 한가지 계획이 있다. 매우 훌륭한 작가이며 축제 행정감독이기도 한 호르헤 볼피 (Jorge Volpi)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는 지역사회와 젊은이들의 교육을 항상 고민하는데 이것은 축제의 비전이기도 하다. 난 이를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할 방법을 고민 중이다. 나보다 훨씬 젊은 그의 비전이 축제를 통해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축제가 나아가는 방향은 멕시코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각자 속한 지역사회, 그리고 지금의 세상이 수용하는 모험적 변화를 축제로 가지고 와 나누고자 하는 데 있다. 이것이 그들의 지역사회에 또 다른 제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까지 예술감독으로 일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일을 사랑하며 즐긴다. 그러나 언젠가 호르헤가 나를 이어 예술감독이 되어주기 바란다.

김신아 x 마르셀라 디에스 마르티네스 (Marcela Diez Martínez)

김신아 x 마르셀라 디에스 마르티네스 (Marcela Diez Martínez)

Q : 한국에 와보니 어떤가. 교류를 지속해서 확대할 계획이 있나?

A : 이번에 처음 한국을 방문하여 협력을 확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굳이 주빈국이 아니더라도 예술경영지원센터 등과 함께 더욱 다양한 한국팀들을 소개하며 그 관계를 지속해 나가고 싶다. 교류조건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예산은 아무리 많아도 항상 모자라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올해 처음으로 3개 단체를 특별 프로그램으로 소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한국 해외문화홍보원에 깊이 감사한다. 이번 기회가 앞으로 한국 공연계와의 지속적 교류를 위해 매우 좋은 시작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멕시코 젊은이들은 K-POP을 매우 좋아한다. 올해는 한국 현대무용에 집중하지만, 내년 혹은 언제건 K-POP을 소개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젊은이들은 모든 정보에 열려있으며 인터넷 등을 통해 세상의 모든 정보를 흡수하고 있다. 아마도 유튜브나 그 밖의 채널을 통해 봤던 가수들을 눈앞에서 실제로 본다면 열광할 것이다.



지금까지 세르반티노 축제에는 1991년 김매자의 창무회를 필두로 김복희 탐무용단 (1992, 1999), 김영희 무트댄스(2001), 안애순(2004), 국수호 디딤무용단(2007) 등이 초청받아 공연했고, 전미숙과 LDP무용단 그리고 유카탄 주립무용단의 공동작업을 서울세계무용축제와 함께 ‘축제 간 협력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5년 진행했으며, 2012년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참가한 바 있다. 특집프로그램으로 복수의 한국 단체를 소개하는 것은 2015년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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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일상적인 그러나 특별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연예술문화 愛]]> 일상적인 그러나 특별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연 문화 愛
[피플]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어터콤플렉스 디렉터 알베르토 리갈루피


아르헨티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먼 나라. 한 번도 가 본 적 없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큰 공연장을 책임지고 있는 디렉터 알베르토 리갈루피(Alberto Ligaluppi)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문득 현실과 환상의 경계 따위 우습게 넘나드는 소설과 시들을 쓴 남미 작가들이 떠올랐다. 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파블로 네루다, 보르헤스의 작품들을 좋아하고, 이들 중 몇몇 작품들을 언젠가 무대에 올릴 수 있을 거란 즐거운 공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방대한 상상력과 표현력을 무대 위에 펼칠 자신이 없어 늘 공상으로 그친다. 그래도 그곳에는 그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용감한 예술가들이 있지 않을까, 지금 그들을 계승하는 후예 작가들이 누구인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알베르토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테아트로 산마틴(위), 테아트로 프레시덴테알베알(아래)

테아트로 드라 리베라(위), 테아트로 사르미엔토(아래)

테아트로 산마틴(위), 테아트로 프레시덴테알베알(아래) 테아트로 드라 리베라(위), 테아트로 사르미엔토(아래)

스페인어 문화권 최대의 복합문화예술공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어터콤플렉스

Q(신민경) : 한국 방문은 처음인가?

A(알베르토 리갈루피) : 처음은 아니다. 5년 만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Buenos Aires, 이하 FIBA1)) 디렉터로 일할 때, 2008 서울아트마켓(이하 PAMS)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그전까지 한국 공연예술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덕분에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극단 초인의 <특급호텔>을 보고, 이듬해 축제에 초청했다. 일주일 공연이 전석 매진될 정도로 아르헨티나 연극인과 관객들이 그 작품을 무척 좋아했다. 5년 만의 한국 방문이라 설레기는 하다. 서울에 있는 동안 연극,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생각인데 인터뷰가 끝나면 저녁에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자전거>나 극단 하땅세의 <파우스트>를 보러 갈 예정이다.

Q : 2010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어터콤플렉스(Complejo Teatral de Buenos Aires 이하 CTBA)2)의 디렉터로 부임했다고 들었다. 극장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줄 수 있나?

A : CTBA는 올해 70주년을 맞았다. 실은 지난주에 70주년 기념행사가 있어 부득이하게 PAMS가 끝나는 시기에 도착했다. CTBA는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남미와 유럽을 포함한 스페인어 문화권 전체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다. 지금은 총 8개 공연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영화관,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제작 스튜디오, 아카이브를 겸한 도서관 등도 부속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소속 예술가들을 포함해 약 1,20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데 시 정부로부터 운영 예산을 전액 지원 받고 있는 공공문화기관이다. 공연장에 올라가는 콘텐츠의 방향성은 클래식, 고전보다 동시대적인 재해석, 컨템퍼러리에 초점을 두고 있다.

Q : 상상이 어려울 만큼 규모가 크다. 8개 공연장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기획하나?

A : 6명 또는 7명의 프로듀서들이 공연장에서 기획, 초청, 제작할 작품들을 추천한다. 심사위원(Jury)으로 불리는 3명의 프로그래머들이 프로듀서들이 제안한 작품들을 검토하고, 3명의 재정, 기술, 프로그램 디렉터들(Finance, Technical, Managing Director)에게 프로그램 구성안을 보낸다. 난 총괄 책임자(General Director)로서 최종 기획안을 결정한다. 아르헨티나의 공연예술 성수기는 3월부터 12월인데, 그중에서 6, 7, 8월이 소위, 연극 시즌이죠. 10월은 축제 시즌이다. CTBA처럼 대형 공연 시설을 자체 기획자들의 아이디어만으로 채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우리는 7~8개 내외의 페스티벌들과 지속적으로 연계 기획한다. FIBA 뿐 아니라 영화 관련 축제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극장 로비에서 공연중인 뮤지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극장 로비에서 공연중인 뮤지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


1)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예술축제는 1997년부터 홀수 년 10월 2주간 개최된다. 국내외 공연들을 초청하며, 연극, 무용, 시각예술 및 사운드아트 등 현대예술 전 장르를 대상으로 한다. 현 예술감독은 다리오 로페르피도(DARÍO LOPÉRFIDO)가 역임하고 있다.
2)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어터콤플렉스(CTBA)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에서 운영하는 공연 시설을 단일 운영 체계 안에 두어 극장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2000년에 7개의 공연장들을 통합하면서 CTBA는가 탄생했다. 현재 총 8개의 공연장이 있으며, 가장 오래된 극장은 테아트로 산마틴(Teatro San Martin)으로 1,200석이다. 2014년에 맞은 CTBA 70주년 행사는 이 극장의 역사와 관련한다. 무대 제작, 소품 및 의상 디자인 공방 등 제반 시설도 함께 있으며, 이외에 400명을 수용하는 영화관, 방송 제작 스튜디오, 다양한 음악 콘서트와 실험적 공연을 수용하는 라이브클럽, 소규모 갤러리 등이 있다.

매주 500편!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특별한 연극 사랑

Q :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가? 혹시 좋아하는 장르, 작품들이 있다면, 좀 더 자세히 얘기를 듣고 싶다.

A : 가장 인기가 많은 장르는 연극이다. 그 다음이 음악 또는 발레일 듯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연 문화는 일상에 가깝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도시에서 한 주 동안 올라가는 공연이 몇 편인지 짐작이 가나? 매주 500편에 가까운 연극이 올라간다.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같은 주말에는 공연 시간을 6시, 9시, 자정 12시로 편성하는데, 세 개 공연 시간대에 올라가는 공연이 모두 다르고 대부분 만석이다. 우리 도시에서는 자정에 공연을 보러 가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치 여름의 에든버러아비뇽 축제에서 가능한 일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일상적이다. 런던, 베를린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공연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난 늘 이 점이 자랑스럽다.

Q : 시민들이 그렇게 연극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연령에 관계없이 전 세대가 연극 관람을 좋아하는 편인가?

A : 공연 관람이 시민들에게 일상이 된 것은 ‘더러운 전쟁’3)이 끝난 후에 생긴 새로운 전통이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대표적인 이민자 국가이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는데, 유럽의 극문학과 공연 문화가 함께 아르헨티나로 전파되었다. 연극을 관람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 가족 문화 안으로 스며들어 저녁에 함께 극장에 가는 일이 가족의 전통(family tradition)이 되었다. 젊은 세대 중에는 연극 마니아도 많고, 연극을 하려는 예술가들도 많다. 부에노스아이레스만 해도 창단 2-3년 미만의 젊은 극단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Q :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극작가는 누구인가? 해외 공연도 좋아하는 편인가?

A : 인기 있는 극작가는 단연 셰익스피어이다. 체호프와 몰리에르가 그 다음이다. 미국 작가 유진 오닐과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들도 자주 올라가는 편이다. 아르헨티나 극작가는 로베르토 아를트, 에두아르도 파블로브스키, 알베르토 바카레차의 작품들이 인기가 많다. CTBA에서 일 년동안 올라가는 해외 공연 숫자는 20편에서 25편 내외인데, 그중 10% 내외가 아시아에서 온 작품들이다. 연극은 독일에서 온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제일 인기가 많다. 극단 초인의 <특급호텔>처럼 그 나라만의 현실이나, 독창적인 이야기를 가진 작품들도 초청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이 우선 호감을 갖는 작품은 위에 언급한 세계적인 극작가들의 작품을 독창적인 시선이나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들이다.

셰익스피어 글로브(Shakespeare’s Globe)의 <햄릿>ⓒBronwen Sharp

테아트로 산마틴을 가득 메운 관객들

셰익스피어 글로브(Shakespeare’s Globe)의 <햄릿>
ⓒBronwen Sharp
테아트로 산마틴을 가득 메운 관객들
 

Q : 여느 장르보다 연극에 대한 애정이 깊은 걸 느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이 분야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 난 행정가이기 이전에 연출가였다. 그렇게 재능 있는 편은 아니었다. (웃음) 이전에는 화가였다. 사람들의 생김새를 관찰하고, 사람들을 캔버스에 그리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뉴욕에서 한창 그림을 그릴 때, 한국을 비롯한 동양 예술(oriental art)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예술 속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Orientalism and Occidentalism)에 관심이 생길 때, 그림에서 연극이란 장르로 관심이 옮겨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와 연극 연출을 시작했는데, 예술 행정가(arts manager)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창작자로 남을 것인지, 새로운 일에 도전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기획자의 길을 선택했다.

Q : 다시 그림을 그리거나, 연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 것인가?

A : 창작과 기획을 병행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했다. 20년 전 갈림길에서 선택했고, 현재에 만족한다. 행정가로서 은퇴한다면 소박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Q : 한국의 문화, 공연에 대해 아르헨티나 관객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나? 알베르토 씨는 한국의 공연들이 다른 국가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는가?

A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번째로 큰 이민자 커뮤니티가 바로 한국인들이다. 이민 1세대들은 식당, 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는 상인들이 많다. 최근에는 패션 산업에서 한국계 이민자들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젊은 한국계 아르헨티나인 상당수는 교사를 하고 있다. 사회 전반과 경제에서 한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데 비해 한국의 문화와 공연은 아르헨티나에서 잘 알려진 편이 아니다. 더 노력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 연극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은 부드럽고, 밝은(mild, soft and pleasant) 느낌이다. 일본 연극과 비교한다면 일본은 한국 연극보다 직설적이고, 극적이고, 어둡다(more direct, dramatic and dark). 많은 작품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얘기할 수 없고, 축제에 초청했던 극단 초인의 <특급호텔>이 극 구조 안에 음악과 무용의 요소가 있어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 좀 더 보편적일 수 있었다고는 생각한다. 2014년에 CTBA는 2 편의 한국 무용을 초청했다. 한국 무용은 유럽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무용수들은 탁월한 기량을 갖고 있는데, 한국과 유럽 각각의 전통을 작품 안에 조화롭게 넣은 점이 특징적이다. 앞으로 두 나라 간 더 많은 교류가 무용 장르에서 있을 거라 기대한다. 연극이나 무용에 비해 음악은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인도와 일본 음악들이 알려진 것에 비해서 한국 음악은 남미에서 생소하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싶다.

알베르토 리갈루피

알베르토 리갈루피

알베르토 리갈루피

 

인터뷰를 마치고 일주일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인터뷰 말미에 알베르토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아르헨티나의 젊은 작가들이 누군지 궁금하다는 내 얘기를 잊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무려 18명이나4)) 적어 보낸 것이었다. 보르헤스 후배 작가들의 작품이 한국에 번역, 소개될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10년 후에 알베르토와 주고받을 이메일에는 그 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커뮤니티라는 한국계 아르헨티나 이민자 출신의 작가 이름과 문학작품도 적혀 있기를 기대해본다. 두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접한 디아스포라들이 경계 위에서 다른 스타일의 동시대 문화예술을 창조하고, 그것이 새로운 전통이 되는 일들을 종종 보아왔으므로.

3) 세계적 석유파동으로 국가 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사회 불안이 고조되자, 1976년, 아르헨티나 군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대통령의 군사정권은 반정부적인 발언과 행동에 대해 탄압을 자행하고, 약 30,000명에 가까운 국민들이 고문, 실종, 사형에 처해졌다.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이라 불렸던 군부독재는 총선거가 치러져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1983년까지 계속되었다.
4) 보내준 작가 명단은 다음과 같다. 마리아노 텐코니 블랑코(Mariano Tenconi Blanco), 산티아고 로자(Santiago Losa), 루이스 카노(Luis Cano), 소피아 (Sofia Wihlemi), 넬슨 발렌트(Nelson Valente), 페트리치오 알바디(Patricio Abadi), 카트리나 모라(Caterina Mora), 마리아나 추(Mariana Chau), 로아로 비로(Lautaro Vilo), 셀리나 아르궬로 레나(Celina Arguello Rena), 마티아츠 움피에레(Matiaz Umpierrez), 마리아노 펜소티(Mariano Pensoti), 에바 알락(Eva Halac), 나탈리아 카이젤르(Natalia Casielles), 안드레 갈리나(Andrés Gallina), 세바스찬 키르츠너(Sebastián Kirszner), 아고스티나 로페즈(Agostina López), 솔 로드리게즈 세오아네(Sol Rodríguez Seoane).


 

ⓒCTBA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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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민간 플랫폼을 통한 중국 공연예술 생태계의 변화]]> 민간 플랫폼을 통한 중국 공연예술 생태계의 변화
[피플] 중국국가화극원 운영센터 센터장 푸 웨이보, 베이징청년연극제 연출가 샤오 저후이


최근 몇 년간 중국 공연계는 체제 개혁과 시장 규모의 팽창이라는 달라진 환경 속에서 산업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창작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국공립 공연장과 예술 단체의 법인화, 지방 정부의 대형 공연장 건설 붐, 민간 차원의 공연 창작과 유통 활성화, 역량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출현 및 장르의 다변화 등 그 변화의 흐름은 중국 전역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발표 시점에서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중국 공연계 흐름에 관한 정보들 역시 상당 부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보아도 될 정도이다. 모두가 산업의 현황과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적 수익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창작 분야에서의 지각 변동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 미지(未知)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소극장’, ‘민간’, ‘신진’ 이라는 몇 가지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중국국가화극원(中國國家话剧院, National Theater of China) 산하의 공연장들을 총괄 운영하고 있는 푸 웨이보(周子援, Fu Wei Bo) 극장장은 신분상으로는 국립 공연장에 몸담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소극장 연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베이징인민예술극원(北京人民藝術劇院, Beijing People’s Art Theater, 1952년 설립된 이래 수백 편의 현대 화극(話劇)을 무대에 올려 어찌 보면 국가화극원보다도 역사와 전통에서 중국 현대 연극을 대표하는 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의 배우로 연극 인생을 시작한 그는 90년대 초 일본에서 공간 디자인을 배우고 귀국하여 인민예술극원 내 소극장 개관부터 극장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게 된다. 그 후 사재를 털어 베이징 최초의 민간 소극장인 북병마사(北兵馬司, North Theater) 극장을 인수하고, 대학생 연극제, 베이징청년연극제(北京靑年戱劇節, Beijing Fringe Festival)를 차례로 만들어 당시만 해도 작품을 선보일 무대가 거의 없었던 젊은 연극인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해 왔다. 푸 극장장과 함께 인터뷰에 응한 연출가 샤오 저후이(Shao Ze Hui)는 대학에서 연극과는 다소 동떨어진 분야인 정보관리학을 전공하였는데, 초창기 대학생연극제를 통해서 데뷔하고 청년연극제 무대에서 꾸준히 성장하여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페스티벌에도 진출하는 등 주목받는 차세대 연출가가 되었으며 이제는 청년 연극인들의 모임인 베이징청년희극공작자협회(北京靑年喜劇工作者協會, Beijing Young Dramatists Association, BYDA)의 핵심 인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중국국가화극원 전경

2013 베이징청년연극제 포스터

중국국가화극원 전경 2013 베이징청년연극제 포스터

소극장 연극의 등장과 신진 예술인들의 성장

Q(장혜원): 80년대에 이미 가오싱젠(高行健, Gao Xing Jian)의 <절대신호(绝对信号)>가 중국 최초의 소극장 연극으로 선보인 바 있었지만, 그후로도 여전히 소극장 연극이 과연 무엇인지 개념조차 모호하게 여겨지던 때가 한동안 이어졌다. 운영 측면에서 보았을 때 90년대 유학에도 돌아왔을 당시 상황으로는 인민예술극장의 소극장을 맡은 것이 사실상 모험이었을 것 같은데, 이어서 차례로 북병마사 극장과 국가화극원 산하의 동방선봉 소극장(東方先鋒, East Pioneer Theater)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A(푸 웨이보, 이하 푸) :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우선 당시의 중국 연극은 경극(京劇), 천극(川劇), 월극(越劇) 등의 전통극과 소위 ‘화극’이라고 하는 현대극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후자의 경우 인민예술극원이 선보이는 대단히 양식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중앙희극학원(中央戱劇學院, The Central Academy of Drama) 등 정통 연극 교육기관을 나와서 국가 산하의 예술 단체에 들어가지 않는 한, 민간 차원에서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것을 거의 상상하기 어려웠고,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내용과 형식, 미학을 시도하는 공연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다고 믿었기에 주류가 아닌 신진 예술가들이 발언하고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대극장 무대가 아닌 소극장 공간이 필요했고, 여기서 기초를 다지면 어떠한 양성 순환의 생태계를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옛날이야기지만 예전에는 민간 극단이나 예술가 개인에게 대관 신청 자체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내용에 대한 심의나 작품 질에 대한 평가 이전에 아예 이를 내보일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나는 이러한 환경이 공연예술의 발전에 있어 분명 걸림돌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서지 않고 너무나 막막해서 차라리 극장 내의 도서관으로 발령이나 나서 조용히 책이나 읽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웃음) 1995년 처음 극장 사무실 꾸미는 비용으로 1000위안을 받아서 책상 두 개와 대걸레를 사고 나니 빈손이었다.

Q : 90년대 말 소극장에서부터 시작된 실험극과 상업극의 등장과 공존, 전체 연극계 발전 단계들을 모두 목도한 증인으로서 간단히 지난 흐름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푸 : 1999년 연극 <코뿔소의 사랑(Rhinoceros in Love)>이 대중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이 작품은 연출가 멍징 후이(孟京辉, Meng Jing Hui) 스튜디오의 대표 레퍼토리 세 작품 중 하나로 현재도 계속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의 음악을 맡았던 장광 티엔(張廣天, Zhang Guang Tian)이 쓰고 연출한 <체 게바라>, 리리 유이(Li Liu Yi) 연출의 <비상마작(Fei Chang Ma Jiang)> 등 일련의 소극장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연극계 지형 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멍징 후이는 <코뿔소의 사랑>을 제작하기 위해 집까지 저당 잡혔으나 작품의 성공으로 15만 위안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당시는 극장 밖으로 관객들이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기도 하고, 한 작품에서 얻은 수익으로 다른 작품에 투자할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졌다.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작품들이 실험과 선봉이라는 틀을 넘어서 상업적으로도 ‘시장화’를 이루며 성공과 발전의 큰 동력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 사이 북병마사 극장의 인수와 운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2005년 국가화극원 산하의 동방선봉 소극장이 개관하면서 제 2단계의 실험과 탐색이 시작되었고 젊은 창작자, 기획자, 관객 또한 유입되었다.

중국국가화극원 운영센터 센터장, 푸 웨이보

멍징 후이의 <코뿔소의 사랑> 공연포스터

중국국가화극원 운영센터 센터장, 푸 웨이보 멍징 후이의 <코뿔소의 사랑> 공연포스터

A(샤오 저후이, 이하 샤오) : 그렇다. 나를 비롯해 현재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많은 30-40대 연출가들이 그 시기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방금 언급한 공연장들과 민간 차원의 연극제가 아니었다면 희극학원 학부 출신이 아닌 나나 황잉(Huang Ying), 허판(He Fan) 등 신진 연출가들이 데뷔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린자 오화(林兆华), 리리 유이 그리고 멍징 후이 정도 이후에 차세대 예술가 특히 연출가의 부재라는 화두는 당시 모두가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이전에 공연이라는 것이 전문적인 예술 교육기관 출신의 국가 기관 소속 예술인들의 몫이었다면(배우나 연출가를 국가 1급 배우, 국가 2급 연출가 같은 식으로 등급을 매겨 관리) 전문가의 권위가 옅어지고 누구나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주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올림픽 개최 시기를 기점으로 공연장과 극장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연극계 자체가 확대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상해 엑스포, 베이징 올림픽 때는 물론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 것이긴 하지만 2만 회차를 상회하는 공연이 올려져서 관객을 동원하는 것이 가장 머리 아픈 일이었을 정도였으니까.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기회가 많아진 것은 맞다. 대학생연극제, 청년연극제, 소극장 우수 작품전 등 3단계에 걸친 시스템이 이제야 갖추어진 것이다.

확장된 교류와 협업, 중국 대륙을 넘어 세계로

Q : 두 분 다 각자 명함에 있는 현재의 국가 소속기관(국가화극원, 베이징이공대학 예술교육센터)에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아무래도 그간 작업해 온 소극장이나 젊은 연극인들의 창작 플랫폼과 관련된 주제를 좀 더 물어야 할 것 같다. 지난 해 설립된 베이징소극장연극협회와 2007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베이징청년연극제에 대해 소개해 달라.

푸 : 협회 설립은 2012년부터 준비해오던 일이다. 작년 봄에 베이징의 민간극단, 공연장, 극작가협회 등이 참여하여 정식으로 소극장연극협회를 설립하였고, 그 해 말에 소극장 연극연맹 우수 작품전을 개최하였다. 작품전이 끝나고 바로 박람회를 열었기 때문에 참여 단체들이 짧은 시간에 증가했다. 물론 초기 단계에서는 시 문화국이 교류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역할을 하였으나 협회 자체는 순수하게 민간 연극과 소극장에 종사하는 개인이나 단체만 가입할 수 있어 독립성을 유지하게 하였다. 현재 회원은 개인과 단체를 합쳐 약 60개가 넘는데 이는 정부 산하의 극원 연맹 등이 자랑하는 1만, 2만의 숫자에 비교하면 턱없이 적지만 이들이 창작, 제작한 결과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오히려 참신하고 흥미로운 작업들이 훨씬 많음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성과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각 회원 간의 협업이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어서 앞으로 더욱 업계 내에서의 긍정적 교류를 넓혀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샤오 : 베이징청년연극제는 2008년 처음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 젊은 창작자들이 설 무대는 공식적으로 대학생연극제였는데 이 친구들이 졸업을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첫 해의 영문 명칭은 Youth Theater Festival 이었으나 현재는 Fringe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국제’라는 표현은 정부에서 삭제하도록 하였다. 지금은 민간의 상업 공연들은 심의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아무래도 아직 기금을 받고 있고 이런저런 소소한 제약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지난 7년간 청년연극제에 참가한 작품은 중국과 해외 작품을 포함하여 326편으로, 참여한 아티스트만 해도 벌써 5500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거의 한 달간 페스티벌이 지속될 정도로 작품이 많은 편이다. 청년연극제는 아비뇽 페스티벌과 교류 협약을 맺고 2011년부터 우수작들을 내보내고 있는데 올해까지 중국 작품 15편이 아비뇽 오프에 참가하고, 역시 15편의 프랑스 작품이 중국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가졌다. 또한 현재 호주 애들레이드 페스티벌, 에든버러 페스티벌프린지 등과도 교류의 방식을 논의 중이다. 작품의 다양성 측면에서 본다면 최근 들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인 공연을 비롯해 사운드 시어터, 피지컬 시어터(physical theater), 뮤지컬 등 텍스트 위주의 초기 공연들에 비해 새로운 작업들을 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북경청년연극제 연출가 샤오 저후이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개는 맹수다>

북경청년연극제 연출가 샤오 저후이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개는 맹수다>

Q : 베이징인민예술극원 소극장, 동방선봉 소극장, 청년연극제의 메인 공연장인 펑차오(蜂巢, Feng Chao) 극장과 조양구문화관9개극장(Chaoyang Cultural Center Nine theater) 등 많은 소극장에서 민간 차원의 한중연극교류가 있었고, 적지 않은 수의 한국 작품을 접해보셨을 텐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

푸 : 많은 작품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를 꼽기는 어렵지만, 2002년 베세토연극제(BeSeTo Theatre Festival) 참가작이었던 극단 노뜰의 <동방햄릿>을 아무래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당시 내가 극장장으로 있었던 인민예술극원의 소극장에 막과 댄스 플로어(dance floor)가 모자라 다른 극장에서 빌려서 어렵게 셋업을 마치기도 했고, 관객 반응이 너무나 뜨거워 공연을 미처 보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극장 밖에서 연출과 배우들이 나오기를 줄을 서서 기다렸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후에 동방선봉 소극장의 개관 기념으로 초청했던 극단 죽죽의 <나의 교실>도 당시 중국 청소년들 역시 겪고 있던 입시나 왕따 등 교육 현실의 문제와 맞물려 좋은 반응을 얻었었다. 한국의 공연들이 여러 작품이 왔지만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은 주제와 표현 방식, 연출의 스타일들이 각 작품마다 뚜렷하게 다르고, 연출은 극단적일 정도로 섬세하고, 배우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샤오 : 연출가협회 초청으로 한국 배우들과 브레히트의 <제 3제국의 공포와 참상(Frights and Poverties of the 3rd Empire)>을 연출한 경험이 있고, 난타나 점프와 같은 넌버벌 공연부터 대학로의 연극들까지 꽤 여러 한국 작품을 본 편이다. 푸 선생님의 말씀에 특히 공감하는 부분은 배우들에 관한 얘기인데 중국에서 작업할 때에 비해 한국 배우들은 아주 몰입도도 높고 진지한 태도로 연습에 임해주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청년연극제에서 해외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극단 죽죽의 <맥베드>와 양손프로젝트의 <개는 맹수다> 등은 초청부터 중국에서의 세트 제작까지 직접 관여했는데 두 작품 모두 현재까지도 종종 현지에서 회자되고 있다. 일회성의 공연이 아닌 최소 두 작품 이상의 공연, 그리고 워크숍이나 관객 대화 등을 통해 중국 관객들이 한국 현대극의 한 부분이나마 어떠한 맥락을 가지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베이징이나 상해만 하더라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공연들의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한국 작품들은 항상 다양한 스타일과 배우들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중국 동료들과 관객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연극제에서 프로그래밍을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항상 초청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러한 교류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인터뷰중인 샤오 저후이(좌), 푸 웨이보(우)

인터뷰중인 샤오 저후이(좌), 푸 웨이보(우)

인터뷰중인 샤오 저후이(좌), 푸 웨이보(우)

 

민간 극단들과 젊은 창작자들은 오랜 기간 중국 공연예술계의 변방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국공립 공연예술 단체를 능가하는 창작의 활기와 규모로 점점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당 기간 문화예술이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하면서 관객들도 수동적인 상태를 놓여있었다면, 민간의 공연예술이 발전하면서 관객 역시 그들과 함께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대극장 공연들이 관(官)에서 제작 주도하는 형태이건 아니건 거품이 많이 껴 있고, 베이징인민예술극원과 같이 오랜 레퍼토리와 배우들에 대한 신뢰를 가진 경우를 제외하고, 스타 캐스팅이 아니면 공연이 10여 회를 넘기기 힘든 상황에서 이 거품을 걷어내고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바로 소극장의 민간 연극 세력과 그들이 소통하는 무대인 일련의 연극제들이라 할 수 있다. 여전히 자본과 우수한 작품에 목말라 있고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간 이 공간들과 플랫폼이 가져온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변화는 앞으로도 더욱 확장될 것이며, 중국 공연예술계를 볼 때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중국국가화극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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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예술가를 뒤따르고 관객과 마주하는 우리 시대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뒤따르고 관객과 마주하는 우리 시대의 큐레이터
[피플] 워커아트센터 시니어 큐레이터 필립 바이터


우리에게 미술관으로 잘 알려진 미국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의 워커아트센터)(Walker Art Center, 이하 워커). 그러나 워커는 혁신적인 공연 예술 프로그램으로도 명성을 지닌 컨템퍼러리 예술의 본거지이다. 컨템퍼러리 무용, 실험 연극, 뉴 재즈, 아방가르드 포크, 얼터너티브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넘나드는 워커의 공연예술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시니어 큐레이터 필립 바이터(Philip Bither)를 만났다.



Q(구효진): 워커아트센터가 탄생한 지 30년이 지난 1970년대가 되어서야 독립적인 공연예술 부서가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의 환경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A(필립 바이터):
올해 워커아트센터는 탄생 75년을 맞이한다. 그러니까 이미 75년 전, 단순히 시각예술만이 아닌 콘서트, 교육 등 다양한 영역까지 포괄하는 복합 센터가 되어야 한다고 방향을 설정하였던 셈이다.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서 동시대적 관점을 가진 작품들을 더욱 활발하게 소개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재즈와 시, 무용에 열정을 지닌 교수와 예술인, 기부자 무리가 있었다. 이들의 열정과 애정이 바탕이 되어 공연예술 프로그램을 위한 전문 인력이 채용되었고, 이로써 재원 조성을 확대하는 한편, 라이브 연극과 무용, 음악 장르에서 아방가르드의 선두에 있는 예술가들을 미네소타에 데려오게 되었다. 당시 워커는 컨템퍼러리 시각예술과 오페라를 결합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시각예술과 타 장르를 잇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당시의 흐름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미네소타 오페라는 바로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워커가 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 씨를 뿌리는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워커아트센터 전경

윌리엄 & 나딘 맥과이어 극장

워커아트센터 전경ⓒ워커아트센터 홈페이지 윌리엄 & 나딘 맥과이어 극장ⓒ워커아트센터 홈페이지

1960년대 워커의 또 다른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60년대 중반부터 워커에 와서 명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리 브루어(Lee Breuer),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그랜드 유니온(The Grand Union), 스티브 팩스톤(Steve Paxton),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 같은 예술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워커는 명성 있는 예술가들을 초청할 뿐만 아니라 신진 창작자들에게도 집중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워커에 일종의 충성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미니애폴리스는 미국의 중소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서부 지역의 관객들에게 일종의 의무감을 갖게 되었고, 1970년대부터 컨템퍼러리 무용, 실험 음악, 연극 장르에서 활동하는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그들이 새로운 양식을 실험하고 개발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었다. 당시 해외 예술가 초청이 워커의 주요 사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지역적으로도 예술적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워커가 1970년대에 공식적으로 공연예술 프로그램을 시작한 후, 시각예술, 공연예술, 미디어 아트를 결합한 비슷한 모델을 시도하는 기관들이 미국에 여럿 생겨나게 되었다. 웩스너예술센터(Wexner Center for the Arts), 시카고 컨템퍼러리아트뮤지엄(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보스턴 컨템퍼러리아트 인스티튜트(The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Boston) 등이 그 예이다. 지금은 우리와 같은 기관이 미국 전역에 약 12 곳이 있다. 각 기관의 공연예술파트 큐레이터들은 흥미로운 예술가와 작업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함께 소통하고 있다.

Q : 공연예술 큐레이터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

A :
워커의 공연예술 프로그램이 예술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서 시작되었듯, 나 역시 음악 애호가로 출발하였다. 저널리즘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에는 예술 비평을 쓰며 학내 재즈 페스티벌을 만들었고, 이후 뉴욕 브루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Brooklyn Academy of Music, 이하 BAM)의 넥스트웨이브 페스티벌(Nextwave Festival)에 합류하게 되었다. 넥스트웨이브 페스티벌이 막 첫걸음을 떼던 시기였는데, 조셉 메릴로(Joseph V. Melillo, 現 제작감독)와 함께 우리는 페스티벌의 방향성을 고민하였다. 당시 BAM의 대표는 지원받기 위하여 유럽으로 갈 수밖에 없는 미국의 아방가르드 선구자들, 그리고 나아가 해외의 급진적 예술가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BAM 이후 나는 플린센터(Flynn Center)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는 컨템퍼러리 예술과 표현에 대한 나의 생각이 버몬트(Vermont)라는 소도시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관객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를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워커에서는 1997년부터 일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내가 믿고 존경해 마지않던 프로그램을 유산처럼 물려받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따라서 다양한 장르적 지향점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와 접근법을 자유롭게 결합한 열린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고, 단순한 공연 계약이 아닌 레지던시, 위촉 등의 방식을 통해 예술가에게 투자해오고 있다. 우리는 동반자 관점에서 예술가들의 작품 창작을 지원하고, 작업의 원천이 되는 질문 그 자체와 더불어 작업의 콘텐츠에 있어서도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글로벌한 미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흥미롭게 작업하는 예술가가 누가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머스 커닝햄과 존 케이지 <대화(Dialogues)>공연모습ⓒWalker Art Center Archives

트리샤 브라운의 <워커 건물벽을 걷고 있는 남자>ⓒGene Pittman

머스 커닝햄과 존 케이지 <대화(Dialogues)>공연 모습ⓒWalker Art Center Archives 트리샤 브라운의 <워커 건물벽을 걷고 있는 남자>ⓒGene Pittman

컨템퍼러리 예술은 ‘우리 시대와 연관된 것’, 그러나 동시에 ‘예술 양식과 사회가 포괄적으로 만나는 미래로 향해 있는 것’

Q : 컨템퍼러리 예술을 어떻게 정의 내리는가?

A :
매우 핵심적인 질문이다. 나는 컨템퍼러리 예술을 ‘우리 시대와 연관된 것, 하지만 동시에 예술 양식과 사회가 포괄적으로 만나는 미래로 향해있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다. 즉,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면서도 동시에 현재와 맞닿아있는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워커는 대가급 예술가와 중견 예술가, 신진 예술가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특정 예술가와 계속 함께 작업할지 또는 그만둘지를 결정할 때, 그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모험적인지, 위험을 감수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비록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난다고 할지라도. 머스 커닝햄, 트리샤 브라운 같은 이들은 관습을 해체하고 새로움의 극한으로 나아가는 살아있는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Q : 컨템퍼러리 예술을 어떻게 정의 내리는가에 따라서 당신이 예술가, 관객과 맺는 관계 역시 정의된다고 생각해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A :
시각예술의 세계에서는 ‘컨템퍼러리 예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개념인지 제대로 이해되고 평가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은 대부분 학구적이고 정제된 접근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이 ‘프로그램’화되고, 오직 큐레이터나 학자, 기관을 위해서만 전시가 만들어진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컨템퍼러리 예술이 해독되고, 일반 사람들에게도 영향력을 갖게 되는 순간이 나에겐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에게 문맥을 읽는 수단을 제공하고, 관객이 예술가와 만나는 방식을 개발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워커에서는 작품의 출발점이 무엇이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우리 웹사이트의 ‘워커 채널(Walker Channel)’이 그 예다. 우리는 작품을 위촉할 때마다 예술가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으며 작업을 통해서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든다. 아카이브 목적도 분명 있지만, 관객이 예술가의 목소리를 듣는 문맥적 미디어 수단(tool)이기도 한 셈이다.

워커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플랫폼으로 ‘쉽게 말해요(speak easy)’란 북클럽 형태의 모임이 있다. 우리는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이 둘러앉아 대화할 수 있도록 극장의 바를 개방하곤 한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창작자가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아티스트 토크’에서는 사람들이 부담감을 느끼고 질문을 꺼려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청취한다.

75주년 워커 컬렉션

에리코(Eiko)&코마(Koma) 듀오와 대화하는 필립 바이터ⓒAndy Underwood-Bultmann

75주년 워커 컬렉션ⓒ워커아트센터 홈페이지
 
에리코(Eiko)&코마(Koma) 듀오와 대화하는 필립 바이터ⓒAndy Underwood-Bultmann

큐레이팅은 얼굴 없는 기관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

Q : 워커에서는 큐레이터 회의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다. 큐레이팅 과정을 외부에 공개하는 회의라니, 무척 흥미롭다.

A :
사실 공개회의가 늘 있는 방식은 아니다. 우리는 지역의 풀뿌리 단체와 사람들이 자신의 커뮤니티와 문화,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존중한다. 이러한 존중과 겸손함 없이는 그들의 눈에 우리가 학구적인 엘리트 집단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큐레이터 회의를 공개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었다. 연초마다 일반 대중들에게 그해 시즌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내가 왜 특정 예술가와 작품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일종의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다. 큐레이터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거대한 얼굴 없는 기관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Q : 그렇다면 예술가에게 있어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A :
나는 예술가와의 직접적 교류와 소통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것이 내가 관리자의 역할을 맡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과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여 그들의 작업 형태를 변형시키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하기도 한다. ‘드라마투르그 또는 연출가가 얼마만큼의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가?’는 오늘날 미국에서 논쟁의 주제이다. 컨템퍼러리 퍼포먼스의 세계에서는 예술가가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가장 흥미로운 작업들이 때로는 미심쩍거나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들을 시도하는 예술가들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우리는 길을 앞서 나가는 예술가를 뒤따른다.

Q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A :
워커는 현재 장르별 부서로 나누어져 있지만 복합(multidisciplinary) 센터에서 융합(interdisciplinary) 센터로 점진적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우리는 길을 앞장서는 예술가들을 뒤따른다. 이들은 작업 방식과 장르를 혼합하기 시작하였으며, 더 이상 스스로를 ‘시각예술가’라던가 ‘무용가’라는 식으로 규정짓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큐레이터들 역시 장르별 전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팀제로 일하고, 장르 간 융합을 시도해야 할 때가 왔다고 감지하게 되었다.

나는 예술가와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데에도 관심이 있다. 예술가들은 공간을 재창조하고, 표현 양식을 변혁해나간다. 우리는 크고 멋진 건물과 극장을 가지고 있지만, 예술가들을 이러한 공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축의 개념을 전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이 ‘기관이 더 이상 중요하고 필요한가?’, ‘예술 기관은 과연 예술가를 돕고 있는가, 아니면 방해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터넷 매체를 위해 창작하기도 하고, 매우 작고 친밀한 규모로 작업하기도 한다. 예술가가 기관의 도움 없이도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 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관이 올바른 미션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예술가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관의 우선적인 목표가 ‘기관의 존속’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되며, 자존심과 자만으로 운영되어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예술가 없이는 기관 역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우리 기관이 커다란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그 파워를 공정하고 겸손하게 분배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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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국제무대에 통하는 한국형 컨템포러리]]> 국제무대에 통하는 한국형 컨템퍼러리
[PAMS Choice] 시나브로 가슴에, 안무가 이재영


2013년 창단된 댄스 유니트 ‘시나브로 가슴에’의 리더 이재영은 서울예대와 한성대에서 함양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2010년에 들어 예술성과 대중 흡인력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는 신진 안무가 겸 무용가다. 2009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최우수안무상 수상을 기점으로 2012년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 라이징스타를 거쳐, 올 10월엔 시댄스(SIDance)와 서울아트마켓(PAMS) 초이스에 연거푸 초청되었다.

이재영과 ‘시나브로 가슴에’의 기존작을 살펴보면 “이런 게 국제무대에 통하지 않을까” 라는 상상하고 기대했던 매력 포인트가 여실하다. 그 중 2011년 초연 이래 국내 여러 무용 페스티벌을 휩쓴 <휴식>이 단적이다. 휴식의 간절함과 공허함을 그린 2인무라고 적힌 제작 노트를 읽다가 인체를 농구공으로 치환해 드리블과 피봇, 블로킹과 슈팅을 이어가는 무브먼트를 보고 있자면, <난타>가 넌버벌 퍼포먼스로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 도전해 얻었던 초기 반응들이 오버랩된다. PAMS에서도 이재영은 <휴식>으로 관객과 만난다. 어렵지 않은 현대무용, 대중성과 작품성, 국제 경쟁력을 겸비한 춤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직접 나누고 싶었다.

분절의 움직임, 파트너 따라 차별화

Q(한정호): 단체명 ‘시나브로 가슴에’ 이름이 독특하다.

A(이재영) : 우리말로 서서히 스며든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컴퍼니 ’SIGA’로 부르고 있다. 우스개로 시가(Cigaret)처럼 자연스레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다.

Q : 10월 시댄스와 팸스의 상연작이 다르다.

A : 먼저, 시댄스에 올리는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8일 강동아트센터)은 동명의 영화에서 이름을 따왔다. 개인적으로 수학 이론을 좋아하는데 우연히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을 읽게 됐다. 과학 연구원 친구가 무질서가 최고치가 될 때 균형이 파괴된다는 개념으로 설명해줬다. 여기에 사회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팸스에 올리는 <휴식>(9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15시 30분)은 지금까지 너 댓 명의 파트너를 바꾸면서 그때마다 조금씩 세부를 손질한 작품이다. 파트너들이 가진 소질과 개성이 다르다보니 그들의 캐릭터에 맞춰 디테일을 달리했다. 예를 들어 여성 댄서와 했을 때는 세심하게, 남성 무용수와 함께 할 때는 아크로바틱을 더 넣어 에너지 볼륨을 높이는 식이다.

<이퀄리브리엄>(2014)

<중력>(2012)

<이퀄리브리엄>(2014) <중력>(2012)

Q : 가령 <휴식>에서 파트너의 목을 농구공으로 설정해 이를 바닥에 튀기는 분절의 움직임을 보면 에미오 그레코(Emio Greco)와 유사하다. 극한의 움직임이 주는 유희는 자비에 르 루아(Xavier Le Roy)를 연상시킨다.

A : 개인적으로 관절 하나 하나를 굉장히 많이 분절시켜서 시스템처럼 동작을 이어가는 걸 즐긴다. 아마도 에미오 그레코의 움직임도 그런 체계가 체화된 상태에서 움직임을 확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레코의 경우도 1-2인무 중심이 많은데 나 역시 1-2인무가 많고 그게 편하다. 확장한다면 5인무 정도까지는 춤을 편하게 만들 것 같다. 공연 시간은 신작을 만들면 보통 20분인데 <기타리스트>라는 작품에선 40분 정도까지 확장해봤다.


아크로바틱과 힙합의 협업 범위

Q : 아크로바틱으로 40분을 채우는 건 쉽지 않고 관객 집중을 끌어내기도 만만치 않다.

A : 듀엣을 40분 이상의 긴 호흡으로 만드는 작품을 아직 구상하진 않았다. 2인무의 순도를 가다듬는 게 지금 고민하는 내용과 과정이다. <중력(Gravity)>(2012)을 만들 때 파트너 권혁과 처음 작업을 시작했다. 그와는 힙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해결책을 찾았다.

Q : <휴식>은 해외 관객도 쉽게 이해하고 좋아할 코드가 많은데, 원천은 힙합인가?

A : 춤을 만들면서 대중성을 고려하진 않는 편이고 위트 말고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연배의 많은 안무가들이 힙합으로 춤을 시작했다. 내 경우에는 힙합과 극장 무용의 구분을 따로 하진 않는다. 굳이 몸에 스며들어 있는 힙합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안무를 시작하면서 ‘내 움직임의 정수가 뭘까’ 생각했는데 마임과 로봇춤이 내 전공이더라. 그런 움직임을 <휴식>에서 녹여서 정확하게 보여주고 싶다.

Q : 힙합이 협업 가능한 음악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안무가 호세 몽탈보(José Montalvo)와 무용수 도미니크 에르비유(Dominique Hervieu)는 힙합과 바로크를 융합하기도 한다.

A : 힙합 안에도 많은 장르가 있는데 분명히 클래식과 만나는 지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고려해서 움직임을 만들기 보다는 움직임을 먼저 만들고 음악을 그 위에 덮는 형식으로 작업한다. 어린 시절, 스트리트 잼을 할 때는 재즈와 펑키한 음악을 좋아했다. 판소리부터 재즈까지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듣지만 아직 클래식을 염두에 두진 않고 있다.

<휴식> 공연 모습

<휴식> 공연 모습

현행 제작 체계로는 레퍼토리 구축 어려워

Q : 신작과 기존 레퍼토리를 어떻게 균형을 맞추나?

A : 1-2년에 신작 하나를 만들려고 한다. 작품에 공을 들일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기존 공연물을 재공연하면서 발전시키는 부분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 여건에선 안무가가 커미션을 받고 레퍼토리화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다. 중장기 플랜을 갖고 연작으로 만들기 어렵다. 보통은 페스티벌 측에서 섭외가 오면 그때 신작을 만들거나 재단 심사를 통과하면 작업이 개시된다. 올해의 경우, 기존작을 버전업해서 재공연하고 싶었지만 지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극장에서 장기 계획을 갖고 무용작을 지원하는 구조가 아닌, 1년 단위 페스티벌 심사에 의존한 제작 구조이기 때문에 현대무용의 레퍼토리화는 어렵다고 본다.

Q : 팸스와의 협력은 언제부터였나.

A : 올 여름 콩고와 남아공 워크숍 공연이 있었는데 그것이 종료 될 즈음 <휴식>으로 지원했다. <휴식>은 국내에서 반응이 좋았고, 지난해 싱가포르나 올해 벨기에 등 해외에 나가면 한국적 해학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내 스스로 광대라고 생각하고 연희의 관점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점을 현대적으로 살리고 싶었다.

Q : 힙합을 기본으로 한국적 미덕을 극장 형태로 올리는 게 국내나 해외나 가능할까?

A : <휴식>의 경우, 하나의 움직임을 가지고 끝까지 간다. 움직임으로 시작해서 일상적인 해프닝들이 다른 이미지와 겹치고 음악을 듣게 되면 위트가 생긴다. 힙합의 그루브가 베이직이다보니 분절의 움직임이 많긴 하지만 사람들을 집중 시킬 수 있는 적절한 규모의 극장을 찾는다면 큰 문제가 될 거 같진 않다.


한국적 해학이 묻어나는 힙합

Q : 한국의 해학과 힙합이 통하기 위해 더 보충하고 싶은 장르가 있는가?

A : 마임이다. 연극인들과 작업하면서 일상의 움직임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무용 단체의 공연은 잘 보지 않았다. 무언가를 보면 잔상이 오래 남아 그 영향을 받을까 두려웠다. 발레는 트레이닝을 좋아하지만 국립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 등 국내 발레단이나 해외 발레단의 내한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Q : 다른 공연을 보지 않으면 컨템포러리의 흐름을 놓칠 수도 있다.

A :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게 트렌디화 되는 것이다. 어느 씬 안에 깊숙이 들어가서 허우적대는 것보다 조금 나와서 내 작업을 하는 게 좋다. 대학시절엔 사람들이 안 좋다고 하는 작품만 골라서 본적도 있다. 숨은 보석 찾기 같은 느낌이었다. 대신 영화와 전시를 즐겨본다. 장르가 다르지만 동시대의 담론이라는 맥락은 유사하다. 예를 들어 세월호와 관련해서도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있지만 그것을 이슈로 작품을 만들고 싶진 않다. 무용은 시대적 발언을 직접하기에 조심스런 장르다.

컴퍼니 시가 로고

안무가 이재영

컴퍼니 시가 로고 안무가 이재영

 

Ⓒ컴퍼니 시가(Company SIGA)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휴식>

<휴식>은 끊임없이 운동하는 공의 이미지와 지속적인 운동으로 인한 에너지 소진과 피로를 통해 휴식의 절실함과 그 후에 따르는 공허함을 표현하고 있다. 탄력적이고 유기적인 공의 움직임을 소재로 신체 에너지 사용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2011년 초연 이후 싱가포르 너스아트축제(NUS Arts Festival(2013), 벨기에 무용 비엔날레 <춤의 나라들>(2014), 콩고 뤼당스콩고(Rue Dance Congo)(2014) 등에 초청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극단 놀땅

안무가 이재영은 서울예술대학교와 한성대학교에서 무용학을 공부했고 2004년 전국대학무용콩쿠르 금상, 2005년 한국현대무용협회 콩쿠르 은상, 2009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울댄스컬렉션에서 최우수 안무상, 같은 해 한국현대무용협회 신인안무상을 수상했다. 또한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안무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2012년 한팩 라이징스타에 선정되었다. 탁월한 테크닉과 표현력으로 무용수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재영은 이후 안무작업에서 몸의 독특한 질감을 강조한 신체 표현과, 연극과 마임으로부터 발전시킨 개성 강한 움직임으로 무용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안무 외에도 작곡 작업에도 참여하여 다양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안무가는 연극,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을 시도하며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안무 작업을 즐기고 있다. “시나브로 가슴에”는 조금씩 천천히, 창작하는 이와 감상하는 이 모두의, 가슴으로 만들고 가슴으로 깊숙이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하겠다는 뜻으로 지난 2013년 창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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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과거와 현재가 공유한 인간의 가치]]> 과거와 현재가 공유한 인간의 가치
[PAMS Choice] 한승석 & 정재일


판소리와 굿, 타악을 섭렵하며 전통의 덕목을 체득한 소리꾼 ‘한승석’, 음악으로 가능한 모든 예술을 실천하는 전방위 천재 뮤지션 ‘정재일’. 그들이 <바리설화>가 지닌 보편적인 메시지에 주목했다. 자신을 버린 부모의 생명을 구원한 바리데기에서 용서의 의미를 발견했고, 국경을 넘는 인류애를 깨달았다. “먼지 자욱한 뜬 세상, 허물없는 목숨이 어디 있으랴(곡<빨래Ⅲ> 중에서)”만, 그렇게 한 장의 앨범 《바리abandoned」(2014)》에 담긴 11개 노래는 세상의 먼지를 조금씩 털어내길 기원한다. 이것이 현재, 우리 이야기임은 국악과 서양음악의 물리적 결합을 넘은 ‘새로운 품격’이자, 이 시대에서도 소통 가능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기 때문이다.

과거 유산과 현대적 어법이 만났을 때 탄생한 음악

Q(민정홍) : 팸스초이스 선정을 축하하며, 인터뷰를 시작해보겠다. 먼저 두 사람의 만남에 관해서다. 여러분의 처음이 기억나는가?

정(정재일 이하 정) : 생생하다. 형은 당시 국립창극단 단원이었다. 뿔테 안경에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고, 법조인이 입을 법한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 기획사 대표님이구나 생각했다(웃음).

한(한승석 이하 한) : 그때가 원일, 김웅식과 그룹 ‘푸리’를 하던 시점이었다. 2001년 말이었나. 정재일이라는 대단한 친구가 있는데 같이 활동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막상 천재라고 하기엔 외모나 말투에 카리스마가 없더라. 그래서 속으로 의심을 했지.  처음 비나리를 작업하며 내 노래에 베이스와 구음을 넣는 걸 보고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Q : 그렇게 푸리로부터 13 년간 따로 또 같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2014년 이 시점에서 국악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지속적인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가.

정 : 전통음악은 정말 강력하다. 피를 토하듯 예술가의 모든 걸 뿜어내는 에너지가 있다. 특히 성악과 한국 무속음악에 빠져있는데, 세계 전통음악을 많이 들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이런 예술이 없다.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아름다움. 나는 서양 대중음악가로 시작했으니 그걸 갖고 싶은 거다. 그래서 계속 음악적인 실험을 하는 것이고.

Q : 그 실험의 결과물이 《바리(abandoned)》에 담겨 있다. 앨범에서 주목할 부분 중 하나는 이것이 국악의 ‘재현’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크로스오버나 콜라보레이션으로 지칭하기엔 설명되지 않는 지점들이 있다.

한 : 국악의 퓨전이나 세계화, 대중화를 고민하진 않았다. 그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 만들어보자”였다. 다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길 바라긴 했다. 판소리 완창을 하면서 강력한 힘을 느끼는데, 언제까지 마니아들만이 정확한 뜻도 모르는 곡을 즐기고 끝낼 것인가, 가장 한국적인 판소리에는 세계적인 보편성은 없는 것인가는 늘 고민이었으니까. 그래서 재일 씨의 악기들이 사람들과 친근하게 만났으면 했다. 그 가능성은 예전에 <적벽가>의 한 대목인 <자룡 활 쏘다>라는 곡을 작업하며 확인했다. 서로가 가진 어법들을 수용하고 다시 재창조하면서 거창할 것까진 아니더라도 ‘새로운 품격’이 만들어지더라.

정 : 전통을 언어로 했을 때 작곡가가 나대면 안 된다는 걸 푸리를 하면서 깨달았기에 성악가들의 판을 짜고 이들의 음악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길을 닦는 것이 중요했다. 이때 판소리 원형도 좋지만, 시김새(전통음악에서 음의 앞이나 뒤에서 꾸며주는 장식음 또는 잔가락)와 기(氣)가 잘 드러나려면 화성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학교 종이 땡땡땡을 부르더라도 화음이 어떻게 붙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곡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고수(鼓手)의 역할을 하면서 필요할 땐 다이내믹을 줄 수 있고, 고유의 소리를 지키면서도 화성을 넣을 수 있는 악기인 피아노를 중심으로 작업했다.

한승석&정재일 <바리abandoned> 공연

한승석&정재일 <바리abandoned> 공연

버림, 버려짐, 용서, 별리(別離), 생멸(生滅), 희망, 구원의 노래

Q : 무엇보다 내용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설화의 에피소드를 재구성하되 그것을 인간의 희로애락을 빗대기도 하고(곡 <빨래>), 생명수를 찾는 과정을 아프리카의 어린 난민에 투영시켜 인간애를 환기한다(곡 <건너가는 아이들>). 현대적으로 탈바꿈된 텍스트 또한 흥미롭다.

정 : 아름다운 노랫말을 써준 배삼식 작가님께 공을 돌린다.

한 : 맞다. 셋이 모여서 토론을 했다. 그렇게 앨범 소주제와 레이아웃이 완성됐다. 바리는 어쩌면 뻔한 대상일 수도 있었다. 예부터 용서의 아이콘이자 구원과 희망을 말해왔으니까. 하지만 이 어지러운 세상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컸다. 전통음악의 이름으로 무거운 주제나 사회적인 문제를 풀어냈다는 주변의 칭찬이 들려 좋다. 사실 개인적인 강박도 좀 있다. 음악 형식만으로 듣는 이들이 신명나거나 한스러운 건 원하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가 설명돼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시대와 닿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리설화>는 옛이야기지만 분명 현재와 공유할 수 있는 인간적 가치를 지닌다.

Q : <바리설화> 외에도 가치를 품은 과거 이야기들은 많지 않은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바리설화>를 택한 이유와 여기에 동시대성이 부여된 까닭을 설명할 수 있을까?

정 : 엄밀히 말하자면 <바리설화>와 우리 앨범은 거리가 있다. 모든 내러티브를 뚜렷하게 살린 것도 아니어서 더욱 <바리설화>의 ‘정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불법체류자로 일하다 과로로 사망한 네팔인 마덥 쿠워를 기억하는 곡 <아마, 아마, 메로 아마>처럼 나올 수도 있고, 미움도 원망도 그리움도 <없는 노래>처럼 나올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작업하면서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바리가 부모로부터 버려진 사실을 버렸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구원을 받았고, 망자의 혼을 인도하는 신으로 다른 영혼을 구원하게 된 거다.

한 : 곡 <바리(abandoned)>의 ‘바리어져 가리니’라는 가사를 예를 들 수 있다. 원래 ‘바리어져 가나니 / 가난 이’였지만 후반부에 일부러 의지형으로 바꿔 불렀다. 아픔에서 허덕이는 상태가 아니라 버림을 버려야 앞으로 갈 힘이 생기겠더라. 그런데 요즘 혼돈이 온다. 시대 상황을 보면 용서의 결과가 선하게 나타날 수 있을까 판단이 서지 않는다. 확신에 가깝게 노래하려는데 이게 과연 옳은 것인가…… 몇 천 년에 축적된 결론으론 인간의 선함을 믿고 사는 게 맞는데, 아직 성찰이 부족하고 내 삶의 결과로 얻지 못해서인지 마음이 좀 그렇다.

<바리abandoned> 공연포스터

<바리abandoned> 공연 모습

<바리abandoned> 공연포스터 <바리abandoned> 공연 모습

Q : 충분히 공감하는 말이다. 그래서 더욱 이 작품이 우리나라를 넘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정 : 판소리, 한국 성악의 위력은 국경을 넘어선 것이다. 그 강력함에 대한 믿음이 있다.

한 : 나는 반반이다. 전통 판소리는 워낙 퍼포먼스도 유니크하고 파워가 있는데 반해 서양악기가 곁들여진 우리 형식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받아들일지는 고민이다. 서정적인 곡에 잔잔히 숨어 있는 메시지나 음악적 아름다움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Q : 한글 가사지만 나도 처음부터 100%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럼에도 <바리>가 주는 감동은 직관적으로 마음에 와 닿더라. 분명 그들에게도 전달될 것이다. 여러분의 성공을 바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겠다.

한 : 자료를 하나 둘씩 모으고 있는데 이번처럼 한국 소재 말고 세계 고전들을 어떻게 품을지 이야기 중이다. 또 하나는 살아가는 이야기, 특히 정(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우정이 되었든 사랑이 되었든 하나의 궤로 꿰어지는 음악들을 생각하고 있다.

정 : 최근 영화 <해무> 음악작업,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연극 <그을린 사랑>, 장민승 작가와의 설치작업인 <더 모먼트(the moments>에서 대중음악 그리고 다큐멘터리까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분야는 그간 다 해 왔다. 그 중 한승석과 함께 하는 작업은 내가 그 안에서 무엇을 하던지 아티스트 정재일의 작업이라고 확실히 이야기 할 수 있다. 특히 진짜 협업이 어떤 건지, 그게 어떤 에너지를 낼 수 있는지 조금 더 배운 것이 이번 작품이다. 앞으로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작업은 앨범 형식이 될 수 있고, 아니면 판소리 한바탕이나 오페라, 혹은 진혼곡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언어로 할 수 있는 건 끊임없이 해보려고 한다.

한 : 이번 앨범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에 뭔가 한 것 같은 기분이라오”라고 썼다. 비로소 나다운, 내 역할을 조금이나마 다한 것 같다. 앞으로도 전통은 전통대로 지켜나가면서, 전통 안에서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이다.

정재일

한승석

정재일 한승석

 

Ⓒ블루보이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바리abandoned>

한국의 대표적 여성신화인 ‘바리공주 이야기’를 현대적 텍스트로 재구성한 월드뮤직 프로젝트 <바리abandoned>는 한승석의 소리, 정재일의 연주, 그리고 극작가 배삼식의 노랫말로 탄생한 앨범이다. 가장 한국적인 음악인 판소리와 가장 세계적인 악기인 피아노가 만나 버림, 버려짐, 용서와 사랑 그리고 뜨거운 인간애를 담고 있다. 바리신화에 당대의 삶을 투영하고 판소리와 피아노를 씨줄과 날줄 삼아 교직한 이들의 음악은 갈등과 분열, 소외와 상처로 얼룩진 동시대인에게 삶의 위안을 주는 구원의 메시지를 노래한다. 또한 음악적으로 판소리와 피아노 외에 기타, 베이스, 오케스트레이션, 컴퓨터 프로그래밍, 장고, 꽹과리, 징, 피리, 태평소 등 현대와 전통 악기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동서양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냈다. <바리abandoned>의 무대미술은 현재 공연계 최고의 무대미술감독으로 손꼽히는 여신동이 참여하여 공연의 완성도를 더하고 있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블루보이

2012년 4월 설립한 기획사 ‘블루보이’는 음악기획/홍보/유통 및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와 공연기획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현재 언니네 이발관, 재주소년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으며, 바우터 하멜(Wouter Hamel), 가을방학, 언니네 이발관, 재주소년, 줄리아하트 등 약 30여 개의 타이틀을 카탈로그로 보유하고 있다. 또한 제프버넷의 첫 내한공연과 소속 아티스트들의 단독공연 등 다수의 대중음악 콘서트를 주최/주관하였다.
- 한승석
판소리와 굿음악, 타악까지 두루 섭렵하고, 이를 바탕 삼아 이 시대의 판소리가 담지해야 할 인간적 가치와 음악적 양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소리꾼. 위엄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애절함과 강렬한 카리스마를 동시에 갖춘 매력적 음색의 소유자로 현재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정재일
천재소년에서 아티스트로 성장한 슈퍼멀티플레이어. 10대에 ‘긱스’의 멤버로 활동했으며, 최정상 아티스트의 음반을 프로듀싱하고, 영화나 공연을 위한 음악, 전시 및 설치, 퍼포먼스와 융합된 음악 표현 등 전방위로 그의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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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본다. 낯설게 본다. 세밀히 본다.]]> 본다. 낯설게 본다. 세밀히 본다.
[PAMS Choice] 극단 놀땅 연출가 최진아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어,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해’라고 어린왕자는 말했다. 저 말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보이는 것도 제대로 못 보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걸 보란 말인가. 무슨 수로. 무조건 심안만 강조하는 건 참 무책임한 처사다. 보이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만큼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연극 <본.다>는 제목 그대로 보는 행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다. <본.다>는 기승전결로 된 기존의 극적구조를 답습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시각적 활동을 진지하게 탐구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 언제나 참신한 소재를 새로운 서사방식으로 풀어내는 극단 놀땅의 최진아다.

여성주의도 인간주의도 아닌

Q(김일송): “깐깐하기로 대학로에서 악명 높은 극작가 겸 연출가”라고 공연포털 사이트에 소개되어 있던데, 이런 소개에 동의하나?

A(최진아) : <금녀와 정희> 공연 때, 팸플릿에 사용할 용도로 기획자가 나와 상의 없이 만든 문구인데, 아마도 “악명 높은”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Q : 단체명은 ‘악명’과는 거리가 먼, ‘놀자’는 뜻의 ‘놀땅’인데.

A : 그러게, 최근 들어온 신입단원도 “단체명은 놀땅인데 왜 이리 쉬지 않고 연습하냐”고 하더라.

Q : 놀땅의 대표 연출가다. 그런데 연출가가 되고 싶어 연극에 발을 들인 게 아니었다고.

A : 그렇다. 배우들에게도 “캐스팅 안 시켜줘서 연출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연우무대에 입단할 때, 지원란에 배우와 연출 2가지를 적었는데, 막상 무대에 설 일이 없었다. 요즘과 다르게 당시에는 선생님들이 연출을 하셨고 작품이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캐스팅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정말 하고 싶던 역이 있었는데 캐스팅이 되지 않다. 그래도 연극은 계속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해 연출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 <연애 얘기 아님>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으로 많은 기회가 열렸다.

Q : 다음 작품인 <사랑, 지고지순하다>도 호평을 받았다. 한국연극에서 선정한 베스트 7에 꼽힐 만큼.

A : 운이 좋았다.

Q : 두 작품에 대해 김소연 평론가는 “최진아는 단순한 재현을 뛰어넘는 드라마의 공간을 통해 여리지만 당돌하고, 피 뚝뚝 흘릴 만큼 아파하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그녀들의 자리를 넉넉하게 마련한다”고 했고, 김명화 평론가는 “최진아는 출발부터 흔들림이나 과도한 자의식 없이 담담하고 일관성 있게 여성주의 계열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평했다.

A : 두 작품 다 여성주의 시각을 목적으로 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을 쓰다 보니 주인공이 여자였을 뿐이다. 어쩌다 보니, 다음 이야기도 <그녀를 축복하다>라는 로맨스였고, 2009년에는 공연했던 <금녀와 정희>도 엄마와 딸 이야기가 되었다.

<금녀와 정희>(2009) 공연포스터

<1동 28번지 차숙이네>(2010)

<금녀와 정희>(2009) 공연포스터 <1동 28번지 차숙이네>(2010)

Q : 2010년에 들어서야 전작과 결이 다른 작품을 발표했다.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은 “<1동 28번지 차숙이네>가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작가가 그동안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극작과 관심의 지평을 인간주의 쪽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주의로 지평을 넓히고자 애쓴 것도 아니었나?

A : 애당초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여성주의가 아닌 다른 주의의 작품을 쓰려는 마음도 없었다. 인간주의로 주제를 바꾸자는 생각은 없었다. 난 무슨 주의의 희곡을 쓰지는 않는다.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집 짓는 현장을 보고 구상한 작품일 뿐이다.

Q :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공연 중 무대 위에 집을 짓는 형식이 특이했다.

A : 그동안 연극을 보면서 인터미션에 무대전환 하는 걸 보고 무대전환이 본 공연의 드라마보다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보통은 블랙아웃 된 상태에서 더듬더듬 무대를 전환하는데, 저 재밌는 것을 공연 중에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시켜 보여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형식으로 연출했다.

Q : <1동 28번지 차숙이네>도 성과가 좋아, 2011년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었다.

A : 팸스초이스에 선정돼서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TPAM–Performing Arts Meeting in Yokohama)에 초청되었고, 2012년에 터키공연도 갖게 되었다.

소설이 아닌 논문 같은 연극

Q :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눠보자. 지금부터 던지는 질문은 2010년 최진아 연출가 본인이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 생각이 바뀌었을지, 혹은 공고화되었을지 기대가 된다. 당시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배우들 눈치를 보게 되는 것도 있어요. 연출이 더 이상 안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연습 기간이 다 끝나고 무대에 올라갔으니, 이제는 배우의 몫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우리 연극 풍토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량이 있는 연출가라는 생각도 있는 것 같고요.” 이제 아량 넓은 연출가가 되었나?

A : 참 예민한 부분이다. 어제도 끝나고 배우와 노트 중에 ‘내가 배우에게 도움이 되고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연출가가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여전히 고민 중이다. 연출가와 배우는 기본적으로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공유하지만, 그렇다고 늘 조화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서로 다른 요구가 있는데 그것을 조율하면서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숙제다. 한편으로 매일 공연을 보고 노트를 하는 게 꺼려할 일은 아니지만, 배우로부터 “제발 떠나 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는 자리를 비워주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배우들은 관객 반응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몸을 통해 텍스트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존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에서 관념이나 추상을 이야기할 때 배우가 몸이라는 구체성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있다면, 연출가가 방향을 잘 잡아줘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Q : 당시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다. “이 시대에 인간을 깊게 바라보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관객이 지금 흥미 있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어떤 연극을 할까, 점점 어렵고 깊은 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방금 전 질문의 대답으로 관념과 추상을 거론했는데, 관념과 추상을 어떻게 구상화하느냐에 따라 연극이 쉬워질 수도 어려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A : 구체적인 몸으로 연극이라는 관념과 추상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배우의 숙제라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관념과 추상을 결합하는 것은 연출가의 숙제다. 나는 관념과 추상이 문장이 아닌, 말줄임표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말줄임표를 무대화하는 게 흥미로운 작업이다. 그래서 사실적인 공연에 사실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실적인 무대에 비사실적 것들이 혼재되는 걸 즐기는 편이다. 대화 도중,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생각이 독백으로 들릴 수도 있고, 대화에서 파생된 상상을 무대로 보여줄 수도 있다. 대화 중에 등장 인물이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거나 심지어 하늘을 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말줄임표 속에 들어가 있는 실제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진짜 생각과 삶이고, 그 말줄임표를 무대에서 보여주는 게 연출가로서의 내가 할 일이다.

<본.다>(2014) 공연 모습

<본.다>(2014) 공연 모습

Q : 그 대답을 <본.다>에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표현방법을 놓고 끝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다른 형식으로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 좋은 소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 소재를 어떤 방법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게 늘 고민이에요.”라 했는데, <본.다>를 만들면서 표현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A : <본.다>를 구상할 즈음, 드라마로 감정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연극 외에 다른 연극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또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의 희로애락을 굳이 극장에서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때 국립극장에서 연출 제의를 받고, 당시 내가 관심을 가졌던 ‘본다’는 행위를 무대에 옮겨보고자 했다. 무엇인가를 보는 인간의 행위 자체를 주제로 연극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찰나의 쾌감을 연극으로 확대해 그 쾌감이 관객에게 전달되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그것이 나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형식적인 특징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항상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형식을 찾으려 한다. 드라마가 어울리면 드라마로 드라마가 아닌 다른 방법이 나으면 다른 형식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동 28번지 차숙이네>의 경우 집 짓는 과정에서 느낀 감동을 무대로 옮기면서 다큐 성격의 연극이 나왔다. 그러나 내가 다큐 형식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정서적인 감동이나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이외의 연극이다. <본.다>를 만들면서 소설을 읽을 때가 아니라 논문을 읽을 때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면서 느끼는 감동 같은 것을 연극으로 표현해 보고 싶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정서적인 순간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더 객관적이고 인식적인 작업을 하려고 하였다.

보이는 것부터 제대로 보자

Q : 순간적인 행위, 순간적인 인식을 연극적 시간 속에 확장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 텐데.

A : 본다는 건 1초 안에 이루어지는 행위인데 그걸 확장하려니 처음엔 난감했다. 물론 무엇인가를 1시간 이상 보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러면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가져가는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본다’는 행위와 연관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 2012년에 초연을 가졌는데 2014년 재공연할 때는 인식의 변화가 생기더라. 그전까지는 본다는 행위로 대상을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나 지금은 무엇을 보고 인식할 때 순간적 행위가 아닌 과거에 학습된 경로가 작용하여 인식하게 된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2012년까지는 보는 행위가 과거의 인지를 뛰어넘는 순수한 행위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과거의 경험과 무관하게는 대상을 볼 수 없단 걸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커다란 인식의 변화였다. 아마도 2년 후에 다시 <본.다>를 하게 된다면 또 다른 작품이 나올 것이다. 그동안은 정서적 감동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했는데 이제는 보는 것을 통해서 감동적인 찰나를 만들 수도 있다 생각한다. <본.다> 3탄이 나온다면 그런 달라진 인식을 관객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Q : 2012년 <본.다>와 2014년 <본.다> 사이에 실질적인 연출의 차이가 있었나?

A : 2장에 의학적인 설명이 나오는 부분에 2-3문장을 바꾸었는데 관객들은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더라. 단순히 몇 문장이 아니라 장면으로 만들어내면 좋았을 걸.

<본.다>(2014) 공연포스터

<본.다> 공연 모습

<본.다>(2014) 공연포스터 <본.다> 공연모습

Q : <본.다>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A : 어떤 대상을 제대로 보려면 대상에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의 자리에 ‘세상’을 놓으면 의미가 더 확대될 수 있다.

Q : 제대로 본다는 건 대상에 숨겨진 이면을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면의 다양한 결을 읽어내는 과정일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빨노파’ 밖에 모르는 사람은 무지개를 3가지 색으로 인식하겠지만 더 많은 색을 아는 사람에게는 7가지 이상의 색으로 보이는 것처럼. 작품을 보는 관객의 해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A : 인디언 이야기 중에 10km 밖의 독수리를 보는 인디언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인디언과 독수리의 교감이 있어 가능한 게 아닐까. 무언가를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한다면 물리적 한계를 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을 연출하는 입장에서 관객이 7가지 이상의 색을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관객이 가진 스펙트럼이 3가지라면 자극을 통해 스펙트럼을 하나 둘 넓히고 싶은 거지. 내 연극이 관객의 시각을 다양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교과서를 통해 주입된 관점이 아닌 학습되지 않은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그동안 감지하지 못한 것들을 포착하며 살아야하고 그것들을 연극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연극이다. 내 작품을 통해 그동안 살면서 놓친 시각이나 지점들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Q : <1동 28번지 차숙이네>로 2012년 터키에 다녀왔는데 운이 좋다면 이번에 <본.다>로 또 한 번 다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길 것 같다.

A : 그동안 일반적인 담론에서는 ‘마음의 눈으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본.다>는 ‘몸의 눈으로 봐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봐야한다’는 말이다. 프랑스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어떤 분은 <본.다>에 동서양의 철학이 결합되어 있다고 하시더라. 서양철학의 끝에 동양철학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본.다>가 그 지점을 보여준다면서. 그래서 해외에서 더 극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Q : 맞다, 국내 관객들은 낯설어 당황스러울 수 있다.

A : 좀 낯설거나 당황스러운 게 재밌는 거 아닌가. 낯설거나 당황스러운데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면 재밌는 연극이 된다고 생각한다.

Q : 반대로 해외 관객들은 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을 듯싶다.

A : 난 낯설어야 신선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연극이 심심하고 단조롭다고 여겨진다면 그게 실패한 거라고 생각한다.

Q : 마지막으로 남기고픈 말씀이 있으면, 전해 달라.

A : 재미와 깊이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깊이를 택하고 싶다. 그런데 재미를 먼저 느껴야 깊이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깊이를 느끼게 만들고 싶다면 어떤 식으로든 연극을 잘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것이 없는 세상에서 무엇이든 낯설고 신선할 수 있다면 그것이 재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출가 최진아

연출가 최진아

 

Ⓒ극단 놀땅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본.다>

<본.다>는 ‘“본다”는 것만으로 연극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본다는 것은 다른 지각들에 비해 더 직접적이고 강렬한 쾌감인데, 무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사물이나 사람, 대상이 갖는 본질과 통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연극은 15개의 개별적인 에피소드로 시·지각에 대한 토론과 탐색, 개인 기억의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하여 시감각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을 만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극단 놀땅

극단 놀땅은 일상에 대한 관심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 현재에 대한 관찰을 감성적이고 신선한 무대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관계, 사물, 세계에 대한 감각적인 접근으로 독특한 주제의식과 연극 놀이의 사유적 접근을 꾀하는 무대 표현들로, 사실과 비사실이 혼재된 재밌는 연극이란 평을 얻고 있는 극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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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모험과 실험으로 전통을 계승하는 소리꾼 이희문]]> 모험과 실험으로 전통을 계승하는 소리꾼 이희문
[PAMS Choice] 이희문컴퍼니, 소리꾼 이희문


한국 전통음악의 성악에는 민요, 잡가, 가곡, 가사, 시조, 판소리, 단가, 창극, 가야금병창 등 다양한 갈래가 있다. 이중 잡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경기민요의 전수자들이 겸하고 있기에 잡가는 민요의 하나로 취급된다. 하지만 민중의 노래였던 민요와 달리 잡가는 전문 소리꾼의 장르였고 지역적 특성에 따라 경기·서도·남도잡가로 나눠져 전승되고 있다.

현재 경기민요와 경기잡가를 중심으로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Order-made Repertory)’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 소리꾼 이희문은 경기민요 이수자다. 그가 작년 12월에 첫 선을 보인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은 12곡의 잡가, 즉 12잡가를 다양한 예술가들과 ‘맞춤 제작’한 작품이다. 작곡가 장영규와 이태원은 본래 장구만을 반주 악기로 대동했던 잡가의 반주부를 편곡하여 가야금, 해금, 대금, 피리 등의 악기를 합류시켰고,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연출은 자리에 앉아 부르는 노래(坐唱, 좌창)에 춤과 퍼포먼스의 동선을 새겨 넣었다. 또한 이들은 분절 형식의 12곡을 가사 내용에 따라 새롭게 엮어 이야기를 품은 잡가로 새롭게 태어나게 했다. 새로운 잡가의 탄생에 앞서 주목할 것은 잡가를 새로운 방법으로 들려주는 소리꾼 이희문의 노력이다. 이어질 이희문과 나눈 인터뷰는 2014 서울아트마켓의 쇼케이스 팸스초이스에서 선보일 ‘雜[잡]’의 감상 설명서가 되기를 바란다.

雜[잡] , 다양한 예술 장르의 융복합

Q(송현민) :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은 12잡가를 바탕으로 했다. 음악의 성격이 강한데 팸스초이스의 다원/기타 분야로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A(이희문) : 음악이 주를 이루지만 퍼포먼스적인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녹아 있다. 총연출은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맡았고, 잡가 12곡은 비빙의 음악감독 장영규와 음악동인 고물의 음악감독 이태원이 각각 6곡씩 편곡했다. 두 작곡가는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영화, 연극, 무용 등을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작곡가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참여가 ‘잡’을 자연스럽게 융·복합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노래 외에도 춤과 퍼포먼스를 함께 선보인다. 전통음악이 중심이지만 외형적으로 다원예술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Q : ‘雜[잡]’은 ‘잡가(雜歌)’에서 따온 명칭이다. 잡가가 무엇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할 거 같다.

A : ‘잡(雜)’은 ‘섞이다’ ‘뒤섞이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잡스럽다’ ‘잡년’ ‘잡놈’ 등의 표현처럼 나쁘게 인식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3~4시간에 이르는 판소리 완창처럼 12잡가도 12곡 완창을 해야 하는 완결구조의 노래이고, 민중이 부른 민요와 달리 전문교육을 받아야만 부를 수 있는 노래다.

Q : 우문이지만 글자만 봐서는 ‘잡’과 ‘다원’이 통한다는 느낌도 얼핏 든다.

A : 나는 잡가를 오늘날의 대중가요와 비교하고 싶다. 노래 한 곡에 발라드, 록, 힙합의 요소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잡가에도 여러 음악어법이 뒤섞여 있다. 그런 면에서 정말 ‘잡스럽다’는 말이 와 닿는다. 가요나 잡가 모두 가수에게 전문적인 기교를 필요로 하는 것도 닮아 있다. 사실 잡가는 조선 시대의 전통 사회에서 대중가요 대접을 받은 노래다. 1896년에 미국에 유학중이던 이희철에게 미국인이 조선의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니 12잡가 중 하나인 <제비가>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잡가를 부르던 민요 소리꾼들은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가수나 개그맨 등이 출연하는 대중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었다. 그만큼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노래였다.

음악동인 고물과 함께 한 장면

남녀소리꾼들과 <선유가>를 선보이는 이희문

음악동인 고물과 함께 한 장면 남녀소리꾼들과 <선유가>를 선보이는 이희문

서울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잡가는 도시 상공인 같은 신흥 계급인 평민들이 그들의 감성에 맞게 가사를 개조하여 조선 후기에 즐겨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판소리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조선 말기에 잡가 소리꾼들은 장안에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35년 동안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통문화의 붕괴와 함께 위축되었고, 1975년에 12잡가를 포함한 민요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후 여성 소리꾼에 의해 그 소리가 전승되고 있다. 12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선유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달거리>, <십장가>, <출인가>, <방물가>를 일컫는다.



성(性)을 넘나드는 소리꾼

Q : 약 80분 정도로 이뤄지는 ‘雜[잡]’을 팸스초이스에서는 40분으로 줄여서 선보인다. 원래는 어떤 모습인가?

A : 1부와 2부, 각각 6곡으로 구성되었다. 이태원이 편곡한 1부는 음악에, 장영규가 편곡한 2부는 퍼포먼스에 집중했다. 전반적으로 음악적인 것 못지않게 시각적인 측면을 강하게 가져간다.

Q : 1부와 2부가 어떻게 다른가?

A : 1부에서 주인공은 춘향이다. 춘향이는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애정 서사물의 여주인공이다. 그 서사를 살리기 위해 <소춘향가>, <출인가>, <방물가>, <형장가>, <집장가>, <십장가> 순으로 재구성했다.

Q : 음악적으로는 무엇이 다른가?

A : 서양음악에 ‘조(key)’의 역할을 하는 게 한국 전통음악의 ‘청(淸)’이다. 1부는 6곡의 청을 동일하게 조율해 하나의 청을 타고 노래가 유려하게 흐르는 느낌을 준다. 2부의 6곡은 각 곡마다 청이 틀리다. 그래서 분위기가 굉장히 다채롭다.

Q : 팸스초이스를 찾는 해외 마케터들에게 40분으로 압축된 ‘雜[잡]’의 특징을 설명해준다면?

A : 12잡가를 이런 형식으로 감상할 수 있는 무대는 전무후무하다고 자부한다. 조선 시대에 잡가는 판소리의 영향을 받았다. 판소리 레퍼토리 중 인기가 많은 건 아마도 춘향가 속의 춘향이일 거다. 춘향이는 12잡가의 주인공 아닌 주인공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춘향가>처럼. 그 외에 <선유가>, <적벽가>, <유산가>에는 한량 등 남성이 등장하기에 남성의 소리와 여성의 소리를 오고가야 한다. 총연출을 맡은 안은미도 이 점에 주목했다.

Q : 한국의 전통예술 중에는 유니섹스한 면이 좀 있지 않은가?

A : 추측하건데 ‘雜[잡]’ 심사에 참여한 해외자문단이 이런 점에 끌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중에 물어봐야 알겠지만. 전통예술에서 ‘박수(博數)’라 일컬어지는 남자무당은 남성의 몸이지만 접신했을 때 여신과 남신이 들락날락해야 하기에 성적 정체성이 하나면 버틸 수가 없다. 내가 춘향이가 되어 노래할 때, 남성 소리꾼이라는 사실을 넘어 중성적인 느낌을 최고조로 발휘시켜야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마돈나를 좋아했던 이런 시절의 감수성도 노래할 때 도움이 되는 거 같다. 그녀는 어떤 성도 다 받아들이는, 성소수자들의 엄마와 같은 존재이지 않은가?(웃음) 나의 스승인 이춘희 명창(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보유자)이 ‘雜[잡]’을 보고 “영화 <패왕별희>의 장국영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고 농담을 하셨다. <패왕별희> 속 경극 연행자들이 갖는 성적 정체성을 생각해도 좋을 거 같다.

<소춘향가>를 부르는 이희문

<선유가>를 부르는 이희문

<소춘향가>를 부르는 이희문 <선유가>를 부르는 이희문

Q : 잡가의 역사를 보면 조선 시대에는 박춘재(1881~1948) 같은 남성 소리꾼에 의해 전승되다가 지금은 대부분 여성 소리꾼에 의해 전승된다.

A : 그에 관해서 밝히기 힘든 역사가 있다. 잡가가 오늘날 사라진 이유는 소리꾼들의 생활고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있다. 노래가 불리지 않으면 노래와 창자 모두 죽는다. 상대적으로 생계에 대한 압박이 덜한 여성들을 중심으로 명맥이 유지되었다.

Q : 그럼 남성 소리꾼이어서 좋은 점이 있는가?

A : 현재 잡가 연행자 중에 남성이 거의 없어, 때로는 나를 신비롭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민요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그 역사에는 여성 소리꾼의 온갖 아픔이 서려 있다. 일제 강점기에 천시 받았던 기생이었던 그들에게 민요와 잡가는 예술 이전에 생계수단이었다. 그래서 남성 시각으로 억압받아온 여성의 역사를 바라보게 되었다. 앞으로 노래에 스며있는 아픈 구석을 바라보는 작업을 많이 할 예정이다. 남성 소리꾼이 사라진 배경 또한 내가 노래로서 풀어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Q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로 명명하는 작품을 두 개 이상 더 만들어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그들과 작업할 때면 내게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바로바로 보여서 기쁘다. 팸스초이스가 끝난 10월 말에는 내가 출연한 ‘KBS파노라마-풍류를 찾아서가 방영될 예정이다. 조선 풍속화 속 풍류를 즐기는 장면들을 재연한 내용이다. 12월에는 장영규와 함께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시리즈 중 하나인 ‘쾌(快)’를 선보인다.

소리꾼 이희문

소리꾼 이희문

한국 전통음악계에서 이희문은 좀 독특한 존재다. 일본 동방방송전문학교에서 영상을 공부하고 뮤직비디오 조감독 생활 이후에 민요를 접한 늦깎이 소리꾼인 그는 전수와 계승의 후예임과 동시에 모험과 실험을 의무 삼은 전위의 척탄병이기도 하다. 여기에 여성 소리꾼 중심의 계보에 남성 소리꾼의 잊혀진 자리를 되찾아 가는데 노력하고 있으며, 남성 소리꾼과 여성 소리꾼의 경계를 묘하게 오고간다. 그런 이희문이 팸스초이스에서 선보일 ‘雜[잡]’이 국내외에서 모인 이들에게 어떤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져줄지 한껏 기대해보자.


 

Ⓒ이희문컴퍼니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

’잡雜’. 섞였다는 말. 그래서 순수하지 않다는 것. 그런 잡스러움이 노래를 만드는 하나의 기술이라는 것. 소리꾼 이희문은 여기에 주목해 안무가 안은미와 음악가 장영규와 이태원에게 옛 노래 잡가를 자신에 어울리는 맞춤복으로 만들어달라 주문한다.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은 그들의 손끝에서 완성된 옷을 잘 차려입은 이희문이 그의 소리 친구들과 벌이는 쇼다. 화려한 무대 위를 유랑하며 목청과 몸짓으로 그려내는 잡가의 풍경.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전통을 둘러싼 권위와 오해에 던지는 통렬한 조롱이다. 2013년 12월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초연됐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이희문컴퍼니

이희문컴퍼니는 소리꾼 이희문을 주축으로 장르의 최전선에 있는 예술가들이 모인 집단이다. 이희문은 변방에 놓인 시조, 가곡, 가사, 잡가, 경서도 민요 등 전통 성악을 공연의 중심으로 끌어와 성질이 다른 장르들과 접합한다. 그렇게 구축한 자기만의 짓으로 관객에게 옛 노래를 듣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해오고 있다. 2008년부터 경기소리프로젝트 <황제, 희문을 듣다>를 시작으로 <거침없이 얼씨구>,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 <제비, 여름, 민요> 등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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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판소리로 세계와 소통하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판소리로 세계와 소통하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PAMS Choice] 국악 뮤지컬 집단, 타루


타루(TAROO)의 작품들은 젊고 생기발랄하다. 전통음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선입견을 벗어던지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던 타루가 셰익스피어에 도전했다. 타루의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는 4인의 햄릿이 등장해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수다 떨듯 들려준다. 서로 다른 성격의 햄릿이 만담을 하듯 들려주는 햄릿 이야기는 원작의 무거움을 훌훌 털어 버린다. 타루의 작업과 그들이 만든 독특한 햄릿 이야기를 정종임 대표와 박선희 연출에게 들어보았다.

타루의 작업은 진행 중

Q(박병성) : 국악 뮤지컬 집단 타루는 2001년 만들어졌다. 어떤 계기로 결성된 것인가?

정종임(이하 정) : 처음에는 젊은 판소리 소리꾼, 국악기 연주자, 전통공연 기획자들이 모여서 동호회 개념으로 만들었다. 젊은 친구들은 판소리가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굉장히 즐거워한다. 선입견을 버리고 만나면 즐길 수 있는 음악이다. 판소리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동창작 방식으로 공연을 만들다가 2006년부터 전문 공연단체로 발전하면서 <판소리 애플그린을 먹다>를 3주 동안 공연했다. 지금은 판소리 뮤지컬에 국한하지 않고 교육 프로그램, 콘서트, 어린이 판소리 뮤지컬 등 판소리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Q : 타루의 작품들을 보면 전통음악으로 젊은 층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타루만의 작품 색깔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 : 그동안 현대적 소재를 판소리로 표현하는데 주력해왔다. 제주도 신화를 소재로 만들기도 하고, 조선 최초 여류 명창 진채선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는 셰익스피어를 다룬다. 타루가 추구하는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면 판소리를 소재로 한다는 것이다. 판소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연구하고 그에 어울리는 반주 형태를 개발했다. 북 반주 하나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악기와 서양 악기의 접목도 시도했다. 판소리로 다양한 시도를 해왔는데, 아직 타루만의 색깔을 명확히 규정하긴 힘들고 지금은 찾아가는 단계인 것 같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공연포스터

국악뮤지컬집단, 타루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공연포스터 국악뮤지컬집단, 타루


Q : ‘국악 뮤지컬 집단’이란 캐츠프레이즈를 달고 있다. 타루가 만드는 뮤지컬은 무엇이 다른가?

정 : 우리 뮤지컬은 판소리 전공자들이 노래를 하고, 소리꾼이 직접 작창을 해서 부른다. 소리꾼이 직접 작창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소리꾼마다 발성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소리를 찾아낸다. 배우가 남의 작창을 한 것을 사사하듯이 배워서 부르는 것과, 자신이 왜 부르고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고 부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박선희(이하 박) : 타루의 가장 큰 특징은 공동창작이라고 생각한다. 단원들이 소리꾼이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 소리 길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Q : 타루만의 공동창작 특징이라면?

정 : 대본이 나오고 소리가 들어갈 부분에 어떤 소리를 넣을지 공동작업을 하게 되는데 판소리를 공동창작하면 시너지가 생긴다. 소리꾼들은 각자 소리 내는 방식이 있기 때문에 공동창작이 어렵지만 타루는 많은 경험을 통해 공동창작 하는 과정을 익혀왔다.


타루가 만든 햄릿

Q : 판소리로 <햄릿>을 풀어냈다. 타루의 <햄릿>은 어떤 매력이 있는가?

박 : <햄릿> 이야기를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보았다. 복수를 하지 않으면 적당히 살 수 있지만, 복수를 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햄릿>은 복수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타루의 배우들은 씻김굿이나 상여소리에서 죽음에 대한 감성을 배워왔고,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슬픔의 소리를 낼 줄 안다. 이런 이야기에 거리낌이 없다.

Q : 4명의 여자 소리꾼이 등장해 모두 햄릿을 연기한다. 이런 독특한 구성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박 : 전체 컨셉은 햄릿이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구성이다. 이게 판소리 구조랑 같다. 혼자서 1인칭을 했다가, 2인칭을 했다가, 3인칭을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서양극에는 없는 구조다. 1인극으로도 풀어갈 수도 있는데 그럼 한 사람의 고뇌를 보기 힘들다. 햄릿의 고뇌는 자아분열의 결과이고 그것을 네 명의 캐릭터로 수다를 떨면서 보여주었더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졌다. 다른 캐릭터가 필요하지 않았다. 판소리에서는 소리꾼이 아니리로 설명을 하다가도 극 중 다양한 캐릭터로 분한다. 관객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잘 이해해주더라.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공연모습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공연모습


Q : 타루가 소리꾼이 중심이 된 집단이라고 했지만,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를 보면 음악성보다는 극성이 강하게 다가온다.

박 : 단원들은 자신들의 소리를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가볍고 즐겁게 연기하려고 하는 것 같다. 과도기라고 본다.

정 : 소리꾼들은 소리꾼이 좋아하는 소리와 관객이 좋아하는 소리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는 소리꾼이 잘 전달하면 소리꾼이 좋아하는 소리를 관객들도 좋아해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을 바꿔가는 중이다.

Q : 햄릿이 오필리어를 밀어내는 장면은 그 나이 또래에 맞는 감성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박 : 타루의 장점이 잘 나타난 장면이다. 언어가 옛날 말인 거 같기도 하고, 막말 같기도 하다. 창작 과정에서 대사를 주면 배우들이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작창을 하는데, 멜로디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창에 필요한 언어도 가져온다. 본인들도 모르게 창작이 이루어진다. 타루에서 연출의 역할은 소리꾼들이 잘 놀게 해주는 것이다. 이 장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죽는 마지막 장면을 14 분에 걸쳐 정통 판소리 장면으로 만들었는데, 그 역시 소리꾼들이 작창과 언어(가사)를 만들어왔다.

Q : 마지막에 햄릿이 복수를 감행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소리로만 풀었는데, 여느 <햄릿>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타루의 작업 스타일을 예견하는 장면이라고 봐도 될까?

정 : 앞으로는 음악성을 앞세운 작품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판소리와 다른 음악 장르이 적극적으로 만나는 실험을 해보려 한다. 재즈나 플라멩코, 파두와 판소리 보컬이 어우러져 극을 펼쳐내는 양식이다. 이전에도 전통음악과 판소리가 만나는 작업이 있었지만 음악으로만 그쳤다. 타루의 작업은 판소리와 다양한 음악 장르간의 결합이 극을 통해 펼쳐진다.

타루의 정종임 대표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의 박선희 연출가

타루의 정종임 대표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의 박선희 연출가 Ⓒ김종범

 

Ⓒ타루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는 햄릿의 자아를 4명으로 설정해 햄릿의 고민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고자 하는 한 젊은이의 고뇌와 극복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는데 햄릿이 직접 만들어가는 진짜 햄릿 이야기이다. 햄릿의 긴 독백은 햄릿들의 대화로, 오필리어 대사는 노래로,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햄릿과 레어티즈의 칼싸움은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는 판소리 장면으로 구성하였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햄릿의 고민과 무게감은 살리고, 고전의 무거움은 덜어내어 햄릿이 결코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타루(TAROO)

2001년 창단된 타루는 판소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와 만나 국악뮤지컬을 창작하는 공연예술단체이다. 젊은 감각, 시대감수성, 유쾌한 재치로 무장한 타루는 전통 판소리의 맥을 잇되, 동시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과감하고 기발한 작품들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왔다. 한국 전통음악인 국악을 오늘날의 감각에 맞게 재창조하여, 타루만의 독특한 색깔을 지닌 공연으로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공연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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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애매모호한 무용단, 그러나 확고한 춤 세계의 두 남자]]> 애매모호한 무용단, 그러나 확고한 춤 세계의 두 남자
[PAMS Choice]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악동같은 이미지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Ambiguous Dance Company)는 방송 댄서로 활동하다가 현대무용계에 뛰어들자마자 개성있는 춤스타일과 독특한 안무로 신선한 자극을 주며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최근 다양한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해외 무대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이들의 춤 이야기, 그리고 세계무대를 향한 각오를 들어보았다.

>> *본 인터뷰는 <인간의 리듬> 안무가 김보람과 무용수 장경민의 공동 인터뷰로 진행되었다. 현재 두 사람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Q(김서령) : 최근에 굉장히 바쁘게 지내는 것 같다. 근황 소개부터 부탁한다.

김보람(안무가, 이하 김) : 7월 28일 ~ 8월 11일까지는 멤버인 장경민과 함께 예효승 안무작의 무용수로 프랑스 파리여름축제(Paris quartier d’été)에 참여했다. 총 4회 공연을 했는데 매진이었고 현지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지난 주말까지 국립현대무용단 기획공연 <전통의 재발명전>에서 공동대표로 활동 중인 가다 프로젝트 작품으로 이은경 씨와 공동안무작 <어긋난 숭배>를 초연했고, 8월 19일에는 대전 코미디아츠페스티벌에서, 그리고 8월 27일에는 문화역서울 284 시즌프로그램인 《아트플랫폼3-세계를 사로잡다》에서 장경민 대표와 함께 듀엣작품 <공존>을 공연했다.

Q : 김보람 안무가는 최근 한 달 동안 안무가로 무용수로 또 공동안무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경민 대표도 안무가들이 탐내는 무용수로 최근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김보람 안무가와 장경민 대표가 현대무용을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 : 국내에서 백업 댄서들의 활동이 직업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좀 더 안정적으로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 미국에 가겠다고 결심했는데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했다. 무용이 재밌긴 했지만 나는 방송춤을 추는 게 더 좋았고 졸업하자마자 다시 방송춤을 추러 갔다. 그런데 김설진 선배도 그렇고 현대무용이 더 재밌어서 그런지 졸업 후엔 다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가더라. 현대무용을 학교에서 배우긴 했지만 여러모로 어려웠다. 안무가가 원하는 바를 알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은사이신 김기인 교수님께서 불러 나에게 안무 할 기회를 주셨다. 그때 ‘현대무용이 왜 재미없었나?’에 대해 다시 고민하다가 심각하고 진지한 작품이 아닌 나도, 관객도 재미있는 춤을 만들어보고 싶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때 발표한 작품 <에브리데이 시즌 3(Everybody Season 3>로 CJ영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갑자기 현대무용 안무가가 되었다. 그러면서 김설진 선배의 소개로 안성수 픽업그룹에 입단하게 되었다. 안성수 선생님 작업은 그간의 무용작업들과 달랐다. 안무가로, 무용수로 주는 뭔가 확실한 느낌이 있었고 나도 이해가 잘 갔다. 무용을 하며 못 느꼈던 것을 느꼈고 선생님과 연이 길어지면서 작업을 오래 하게 되었다.

장경민(무용수, 이하 장) : 나 역시 방송 댄서로 시작해서 비슷한 계기로 현대무용을 시작했다. 서울예대에서 김보람 안무가와 동기로 현대무용을 접하게 되었고 2008년 첫 작품부터 함께 하면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창단 멤버로 모든 작품에 출연하였다. 안성수 픽업그룹에서는 2010년부터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공존> 장경민(좌) 김보람(우)

<공존> 장경민(좌) 김보람(우)

쉴 새 없이 달려 온 앰비규어스, 그들의 숨 고르기

Q :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는 어떻게 탄생되었는가? 최근 단체에 큰 변화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설명해 달라.

김 : CJ 영페스티벌에서 소개했던 작품을 만들면서 단체 이름이 필요했다. 그때의 멤버들과 함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를 만들었다. 현대무용도 방송댄스도 아닌 우리 춤, 그리고 우리들의 정체가 애매모호했다. 아마 그 당시 현대무용계에서는 우리 무용단 자체를 애매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무용단 이름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을 계속 쓰고 있다. 장경민과 같은 멤버들은 길게는 6-7년 동안 함께 작업하고 있다. 하지만 연고없이 무용계에 들어오다 보니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운 좋게도 CJ 영페스티벌 이후 자연스럽게 무용계에서 안무가로 인정받게 되어 여기저기서 찾아준 덕에 처음 3년은 요청이 들어오는 대로 마구 신작을 만들었지만 그렇게 활동하다 잠시 멈춰보니 내게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해외 무대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공모 신청도 직접 해보기 시작했는데 기획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다보니 체력적으로도 지치고 국내 활동보다 더 어려웠다. 그동안 해외 공연은 대부분 자비를 들여 투어를 했는데 금전적으로도 힘들고 창작 의지도 좀 꺾이는 시기가 있었다. 계속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고 지난해에는 활동을 그만 둘 생각으로 다큐멘터리 제작까지 했었다.

장 : 그러던 차에 문래아트페스티벌 ‘독창 포럼’에서 <공존>을 공연하면서 기획자 강은영 씨를 만났다. 그때는 단순히 팬의 입장이었는데 이후 독일 유학 중이던 강은영 씨와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닿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지금은 강은영 씨가 경영대표를 맡고 있다.

Q : 왜 그때 무용을 그만 둘 생각을 했었나? 외부에서 바라볼 때 앰비규어스가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김 : 2년의 공백을 제외하고 4-5년 동안 17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작품을 더 다듬고 완성시킬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다. 여러 상황들이 나를 지치게 해서 무용을 그만 둘 생각까지 했었는데 그때 경영대표를 만났다. 아직은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라 정신이 없고 이런 상황이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다른 신작들을 더 만드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놓은 작품들을 다시 꺼내고 다듬는 과정을 가질 것이다.


지독한 연습 벌레들, 어디서든 춘다.

Q : 전반적인 작품의 경향이 보편적인 주제와 가볍고 일상적인 표현으로 관객을 유쾌하게 만들지만 보고나면 뭔가 마음을 울리는 짠한 것이 있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나?

김 :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반영하게 된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그렇지만 슬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것이 소통이 될 때 신나거나 슬플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감정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단어를 풀듯이 작업을 한다. 언어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한다.

Q : 음악에 대한 해석이 남다르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안무를 어떤 식으로 진행을 하는가.

김 : 안무할 때 음악을 먼저 생각한다. 외람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음악이 춤보다 더 발달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언어를 만들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음악 안의 소리를 중요시한다. 소리들이 연결되어 음악이 되는 것처럼 소리를 표현하려는 움직임이 춤처럼 보이는 것이다.

장 : 김보람 씨는 음악에 집중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음악 안에 있는 소리에 맞춰 움직이다보니 움직임이 소리화 된다고 해야 하나? 그것에 대한 집중적인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김 : 처음에는 들리는 대로 표현을 했다. 음악 하나를 다 분석해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다시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무용수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론을 만들고 소리와 가장 비슷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한 몸의 퀼리티를 만들어나가려고 했다. 음악도 춤도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연결되는 사이에 무음이라는 시간이 있고 그것을 트레이닝하기 위해 10초짜리 동작을 하루 종일 연습하기도 한다.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마음가짐이 장르처럼 생기게 된다. 사람들이 자기 삶이 맞다고 생각하듯이 우리도 춤을 추면서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틀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매 순간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된다. 안다고 생각하고 쉽게 표현하면 틀리는 것이다. 나는 몸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는 모든 것을 중요시한다.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한다기보다는 소통 부분, 시•공간적인 부분을 많이 신경 쓴다고 말할 수 있겠다. 김보람의 작품이 ‘음악적인 작업’이라고 쉽게 이야기되는 부분은 조금 불만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음악이 아니라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틀에 갇히지 않은 작업이 되고 싶다. 안무를 시작하면서 그림도 함께 그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나에 집중해서) 빈 페이지 전체를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다 채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서 그림으로 다 채워서 그렸는데 이것이 안무에 도움이 되었다. 그림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인간의 리듬>공연 포스터

안무가 김보람의 창작노트

<인간의 리듬> 공연포스터 안무가 김보람의 창작노트


Q : 보통 안무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되나?

김 : 보통은 무용수들과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면 6-7개월 동안 연습을 한다. 원래 연습하는 걸 좋아하는데 신작 요청에 잘 응하다보니까 작품에 따라 일주일에서 6개월까지 작품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제작 시간이 다르게 소요되기도 했다. 신작을 만들어도 공연은 작품 당 1-2회 정도밖에 못하는데도 일 년 내내 연습만 했던 것 같다.

Q : 예전에는 연습실이 없어서 예술의전당 앞 공터나 한강 공원 등 야외에서 연습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김 : 집에서 연습하기도 했는데, 방이 너무 좁아서 무용수별로 나눠서 솔로나 2인무 위주로 연습했다. 예술의전당 뒤, 지금의 국립단체 연습실이 공사 중일 때 그곳에서 연습을 많이 했다. 내가 낯가림이 있어서 길거리에서는 못하고 그 안 공사장에서 연습했었는데 안성수 선생님이 출퇴근하면서 보셨다고 한다. 공원에서도 하고 공간이 생기면 어디서든 연습을 했다. 작년에서야 홍은예술창작센터 상주단체로 선정되어 맘껏 연습실을 쓸 수 있었지만 외부 활동들도 있고 온전히 상주단체 활동에만 집중할 수 없어서 지금은 나온 상태이다. 최근엔 연습실을 대관해서 쓰고 있다.


더 넓은 무대를, 세상을 꿈꾼다.

Q : 팸스 초이스 선정작 <인간의 리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김 : 2013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무용수들이 모두 남자들이다보니 이것이 남자의 리듬이 된 것 같다. 다음엔 기회가 된다면 여자무용수들만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우리의 삶 자체가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반복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시/공간적으로 변화가 생기면 리듬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어떤 춤을 추면서 사나. 우리가 자유롭든 그렇지 않든 그 안의 리듬은 생기고 그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리듬을 자유자재로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해석하기에는 남자들이 알몸으로 태어나서 자유로운 리듬으로 살다가 점점 교육을 받으면서 모든 것이 체계화 된다. 어느 순간엔 직장에 다니고 경쟁을 하고 결국엔 정형화된 삶을 사는 것도 스스로가 인지한다면 몹시 리드미컬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 삶은 어떠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Q : 앰비규어스가 팸스 초이스를 거쳐 본격적인 해외 활동을 시작하게 될 텐데 해외무대에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가 어필할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 : 우리 작품이 예술보다는 소통에 가까운 작업이라 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움직임과 소리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관객들이 그런 에너지에 많이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머리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보면 바로 느껴지는 작업,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전달되지 못하더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작품의 성향이 해외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앰비규어스에는 <공존>, <인간의 리듬>, <실수 Mistake> 3가지 레퍼토리가 준비되어 있다.

<인간의 리듬> 공연모습

<인간의 리듬> 공연모습


Q :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장 : 일단 공연 일정으로는 <인간의 리듬>이 2014년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태국인터내셔널댄스페스티벌(International Dance Festival Thailand)에 참가하여 방콕과 치앙마이에서 2회 공연과 1회 워크숍을 진행한다. <실수 Mistake>는 2015년 9월 21일-27일 부다페스트 댄스페스티벌(Budapest Dance Festival) 참가가 확정되었고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등 공연을 연계하기 위해 협의 중에 있다. 개별적으로 김보람 안무가는 9월 13일 가다프로젝트 <어긋난 숭배>로 북촌뮤직페스티벌 공연을, 나는 9월 17일-20일 국립무용단 객원으로 <토너먼트> 공연에 참여한다.

김 : 10월 9일에는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인간의 리듬> 쇼케이스 공연을 준비 중이다. 당분간은 그동안 만들었던 작업들을 다듬어 레퍼토리화 하고 지속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더불어 오랫동안 계획 중인 작업으로 시각예술, 무용 작가 5-6인과 2-3개월 동안 자연 속에서 함께 하며 창작 작업을 할 예정이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인간의 리듬(Rhythm of Human)>

- 안무 : 김보람
- 출연 : 장경민, 남현우, 박시한, 구교우, 김보람

몸과 춤의 관계 속에는 특정한 리듬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도 개인만의 리듬이 있다. 다만 느끼지 못할 뿐이다. 작품은 ‘인간의 삶’이 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 자신의 리듬을 잃은 체, 이미 세상이 정해놓은 리듬밖에 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비애를 표현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 속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는 인간의 모습! 각자가 가진 개인의 리듬보다는 이미 시스템화된 리듬을 쫒아야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지만, 자신의 리듬을 추구하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고뇌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의 삶의 흐름을 ‘리듬화’하여 춤의 순간들로 삶의 순간순간의 우여곡절을 이야기 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추는 춤은, 단순한 춤이 아닌 인생의 리듬이 되어간다. 춤추는 자만이 춤을 추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는 춤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Ambiguous Dance Company)

안무가 김보람과 대표 장경민이 주축이 되어 2008년 결성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Ambiguous Dance Company)’는 ’규정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춤을 춘다’는 의미로 춤의 장르나 개념에서 벗어나 가슴 속에 있는 ‘그 무엇’을 몸과 음악으로 풀어낸 단체이다. 어떠한 예술적 메시지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몸’을 통한 음악과 춤의 표현이 가장 정확하고 진실된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본질과 순수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 홈페이지 : http://ambiguousdance.net
▸ 이메일 : ambiguousdance2014@gmail.com
▸ 페이스북 : www.facebook.com/amdaco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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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단정하게 마주 선 모던함을 공유하다]]> 단정하게 마주 선 모던함을 공유하다
[PAMS Choice]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 안무가 전혁진 


모던함이 클래식의 대척점에 서있다고 오독하지 않는 젊은 안무가와의 대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보기보다 더 단단해서 유쾌했다. 고전적 스타일이 더 넓고 깊어질수록 모던함도 더 자유롭게 빛나는 법이다. 안무가 전혁진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Q(최재훈) : 2014 팸스초이스 선정작 <아가페(Agape)> 이야기부터 해보자. 팸스초이스는 국내 관객이 아니라 마켓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다.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인가?

A(전혁진) : <아가페>는 성서에 나온 7대 죄악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이 저지르는 죄악 속에서 본질적인 사랑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최후의 순간에 떠오르는 감정은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 전반부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잊고 사는 형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에는 절대적인 사랑을 그렸다.

Q : 무대장치가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 속 상징들이 다양한 의미를 가져 ‘쇼케이스’로 줄여내기 힘들었을 것 같다.

A : 회화적인 요소, 음악 그리고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서 고전적이지만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로 풀어보고 싶었다. 현대무용을 널리 알리겠다거나 대중화시켜야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고 싶었다. 어느 하나라도 빠져선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작품 속 상징과 무대장치들은 거의 다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완전체가 아니면 보여주지 않는 편이 낫다.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Q :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 “닻(dot)” 선정작인 <신세계>에 이어, <아가페>는 종교적 느낌이 있다. 작품 세계가 변하고 있는 건가?

A :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그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과 종교의 구원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비판적인 요소, 종교적인 요소를 굳이 넣었다기보다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 외롭고 힘든 상황 속, 그 혼돈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있을 것이다.

<아가페>

<아가페> 공연모습

Q : 팸스초이스를 통해 해외 공연의 기회가 생길 것 같다. 그간의 해외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A : 한선천과 함께 한 <동행>이라는 작품으로 작년 소피아댄스위크(SOFIA DANCE WEEK)에 다녀왔다. 앞으로는 일본, 프랑스쪽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2010년 요코하마댄스컬렉션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12년 스페인 마스탄자컨템포러리 댄스페스티벌(The International Contemporary Dance Festival)에서 베스트안무가상을 수상했다. 핀란드 포리댄스컴퍼니(PDC, Pori Dance Company)를 위해 <비너스 블라인드 앵글(Venus: A Blind Angle)>이라는 작품을 안무했다. 2014년 하반기에는 팸스링크(PAMS Link)를 통해 협력하게 된 핀란드 수잔나 컴퍼니(Susanna Leinonen Company)와 서강대 메리홀에서 콜라보 공연도 계획되어 있다.

Q : 신작과 함께 기존 작품을 레퍼토리 공연으로 재창작하는 것에도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아가페>의 재공연을 기대해 봐도 좋을까?

A : 스스로에게 가장 진실했던 순간이었다는 점에서 <아가페>는 처녀작 같은 느낌이 있다. 시간을 두고 꼭 재공연을 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무용이 구심점인 예술가, 전혁진

Q : 고등학교 시절 육상선수였고, 모델 활동, 뮤지컬 배우는 물론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영화 공부도 했다. 솔직히 늘 궁금했다. 이것은 무용에서 달아나기 위한 것인가, 무용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인가?

A : 그 모든 것이 무용을 하기 위한 도전이다. 다른 작업을 하면서 맺었던 인연이 무용공연의 협력자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 영화 공부 역시 꼭 해보고 싶은 댄스 필름을 만들기 위한 밑그림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다양한 분야를 알고 있을 때 무용에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되돌아보면 모든 경험이 무용으로 돌아오기 위한 작업들이었던 것 같다.

Q : 다양한 기획공연에 초청받고, 기업후원(jti 코리아)은 물론 유망예술가 선정, 평론가상 수상 등 전문가들에게 안무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대중적인 인기까지 더 해진다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대중과의 만남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A : 무용의 대중화, 순수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어렵지만 중요한 질문이다. 안무가 류장현과 요코하마에서 밤새 순수예술을 대중화시킬 것인가, 대중을 순수예술로 데려올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지금은 중간 접점에서 만난 것 같다.

서울문화재단 “닻dot” 선정작 <신세계> 공연

서울문화재단 “닻dot” 선정작 <신세계> 공연

Q : 댄싱9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매체를 통한 대중의 관심, 안무가에게 득인가? 독인가?

A : 무용에 대한 대중과의 거리를 좁혀준 것은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현대무용을 오해하게 될까 조금은 걱정이다. 윌리엄 포사이스(William Forsythe)의 공연을 보기 위해 파리오페라 하우스에 간 적이 있다. 3층 사이드 객석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무대를 보고 있었는데, VIP 자리에 있던 관객이 욕을 하면서 나가더라. 윌리엄 포사이스 공연을 10년이나 지켜본 오랜 팬이었는데, 처음으로 그의 작품에 실망했다는 표현을 과하게 한 것이다. 그런 팬이 있다는 것이 멋지지 않은가? 그렇게 시간을 길게 두고 관객들에게 무용의 매력을 알게 해주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변질되지 않고, 소수의 관객들을 조금씩 늘여나가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중과의 만남이다. 틀린 방향은 없다. 각자의 갈 길, 지향점이 다른 것 뿐이다.

Q : 장르 융합적인 작품들을 보여주지만, 안무 스타일이나 극의 기승전결은 굉장히 단정하고 클래식한 느낌이다. 전혁진 안무가에게 현대무용이라는 건 무엇인가?

A : 현대무용을 하는 안무가라면 모두 고민할 것이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을 파괴, 탈피하는 작업을 통해 현대적인 느낌과 실험을 하는 안무가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억지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모든 것들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디지털 탈을 쓴 아날로그인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성격, 안무 방식들이 고전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오래된 것들, 옛 것들에 대한 갈망이 늘 내 안에 있다.

Q : 또 궁금한 건, 왜 시작하게 되었냐는 것이다. 무용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A : 아주 어렸을 때 꿈은 바둑기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운동을 하다가 육상선수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였다. 새벽 운동을 하다가 내가 왜 뛰고 있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여자 친구를 무용학원에 데려다주는데 무용학원 원장님이 나의 신체조건을 보고 무용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육상으로 대학 진학이 결정되어 있었는데도, 호기심이 생겼다. 발레를 시작해 보니 육상과 비슷했다. 높이 뛰고, 많이 돌고,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었다. 당시 왜 무용에는 올림픽이 없냐는 질문을 할 만큼 무용에 대해 몰랐지만, 결국 현대무용의 기묘함에 이끌려서 현대무용을 하게 되었다.

Q : 안무가로서의 첫 작품은?

A : 대학에서는 빨리 욕심내서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첫 안무작은 2008년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에 나간 작품이다. 이때는 뭐든지 다 해보고 싶던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욕심 또한 너무 과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색깔 찾기의 과정이었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내 작품을 선보일 무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Q :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를 만들게 된 계기는?

A :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타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각자 자기 역할과 자기 예술만 얘기하고 막상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더라. 처음부터 작품을 같이 만들어나가고 그 과정이 모여 작품이 탄탄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Q :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은 현재진행형의 안무가라고 생각한다. 2014년 하반기 작품계획은?

A : 사실 2014년 상반기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다. 비판도 많이 들었고, 그것이 고스란히 다시 고민으로 남았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여전히 안무다>를 통해 개념적인 리서치 작업을 했다. 이제는 여유를 두고 2-3년 전부터 생각해 온 작업을 오랜 시간 숙성시킬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까지 작품 구상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싶다.

<아가페>이미지컷

<아가페>이미지컷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아가페>

인간을 향한 신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사랑인 <아가페>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다양한 오브제들과 무대미술로 구현된 미장센, 몸의 기호학적인 상징성을 통해 인간의 죄악된 본성과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갈망을 퍼포먼스의 언어로 사유해 나가고 있다. 중세 회화에서 발견되는 아이콘, 상징체계, 신체와 이미지의 배치 방식 등을 차용하면서 회화의 평면 구도를 극장이라는 입체적인 공간으로 가져와 고정된 평면 프레임에 존재하던 회화적 이미지를 현장성과 수행성이 담긴 시간 예술로 치환해 새로운 미학을 도출해낸다. 중세 회화 그 이면에 담긴 인류의 욕망과 타락, 구원 등의 묵직한 이슈들을 한 개인의 담담한 성찰을 통해 추적함으로써 현 시대의 갈구하는 바를 대변해낸다. 다소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의식에서 출발한 작업은 어떠한 방식으로 현시적이고 세속적인 삶과의 연계성을 찾고 동시대적인 사유를 도출하며 재해석될지 기대하게 만든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GROUND ZERO Project)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는​ 안무가 전혁진을 주축으로 한 복합 예술그룹이다. 컨템포러리 댄스를 중심으로 인터랙티브 아트, 현악 5중주, 설치미술, 필름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한국, 일본, 유럽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만들어 왔다. 현대무용, 인터랙티브 아트, 설치미술, 필름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공동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시대를 반영하는 소재를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여 독창적이고 위트 있는 드라마 그리고 다이내믹한 테크닉으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작은 <비너스 : 블라인드 앵글(VENUS : a Blind Angle)>, <신세계>,  <불협화음>, <동행>, <우리는 다르게 진화했다> 외 다수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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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연극, 그리고 이 시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연극, 그리고 이 시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PAMS Choice] 드림플레이 테제 21 연출가 김재엽


지난 해 한국 연극계의 거의 모든 시상식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린 작품이 있었으니, 관객과 평단, 언론 모두가 이토록 한 마음이 되어 환호를 보낸 연극을 만난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것은 대중의 기호를 읽어내면서도 동시대 한국 연극의 좌표와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알리바이 연대기>로 2014 팸스초이스 연극 부문에 선정된 드림플레이 테제 21의 김재엽 연출을 만났다. 인터뷰 내내 이야기는 지난 작품들과 현재의 작업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종횡무진 넘나 들었지만, 그는 어떠한 질문에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분명한 자신만의 연극관을 보여주었다. 바로 거기에 이 화제의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의 숨은 비밀이 있었다.

이야기가 형식을 만들기까지

Q(김슬기) : <알리바이 연대기>는 개인과 사회가 만나는 방식을 말 그대로 연대기적으로 구성한다. 형식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노골적인 목소리를 배제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작품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 궁금하다.

A(김재엽) : 2012년 대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대통령이라는 큰 존재와 나라는 개인이 만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당시에 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는 앞으로 살면서 어떤 대통령을 만나게 될까,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어떤 대통령들을 만났을까, 하는 것들에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치더라. 처음에는 에피소드 식으로 이야기를 나열해 보았는데, 작품을 수정하면서 뭔가 전체 이야기를 관통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때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가’ 라는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결국 권력과 개인,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가 감당해야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게 됐고, 역사의 증인으로서 아버지를 불러낼 수 있었다.

2014 Poster of the Nova drama/New Drama Festival

The Nova drama/New Drama Festival is held in Bratislava

<알리바이 연대기> 공연포스터 김재엽 작·연출의 <알리바이 연대기>


Q : 처음에 쓴 글은 대본이 아닌 에세이 형태였다고 들었다. 100페이지가 넘는 글을 대본으로 고쳐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해서 무대화해 본 경험이 있지 않나.

A : 이전에 했던 <장석조네 사람들> 같은 경우 김소진 작가는 대화를 아주 잘 쓰는 작가에 속했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서사적인 것과 드라마적인 것이 같이 흘러간다. 드라마적인 것이 전면에 드러나면 자꾸 그것을 중단시키고 싶은 욕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화의 즐거움에 빠지면 허구적인 것을 따라가게 되고 결국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많은 이들이 서사자의 역할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흔히 우리는 서사자가 재미있는 드라마를 중단시키고 지루한 말을 늘어놓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정말 듣고 싶은 말을 한다면, 서사자의 말걸기가 훨씬 흥미로울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드라마를 구성하기 위해 2~3 페이지에 걸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3줄 짜리 작가의 말로 선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도 하다.
 
Q :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내용과 글쓰기 과정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결국 ‘나’라는 서사자가 등장하는 연극이 나온 것 같다. ‘자기 이야기하기’라는 동시대 연극 풍경을 의식하고 있나.

A : 사실 ‘드라마’라는 것도 하나의 형식일 뿐인데, 그걸 쓰다 보면 내가 이걸 왜 쓰기 시작했는지를 잊고 이 드라마가 얼마나 잘 구성이 되었는지, 그런 것들을 고민하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미학적 완성도도 중요하겠지만, 그게 나한테 잘 안 맞는다고 해야 하나. 나는 연극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다른 작품의 조연출조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해야 미학적인 걸 성취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기존의 형식들이나 이런 것에 크게 저항의식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거라고 할까.

현실을 인식하고 표현한다는 것

Q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학적 완성도 얘기를 해보자면, <알리바이 연대기>가 펼쳐놓는 무대는 기존의 드림플레이 작품들에서 보였던 날것의 성근 세계와 분명 결이 다르다.

A : 솔직히 작품이 완성도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보수적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뭔지 한눈에 들어온다는 건 기존의 관념 안에 포함된 것이라는 얘기니까. 그보다 최근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관객들을 대상화시키지 않고, 내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이미 그 이야기를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주체가 되어 볼 기회를 갖지 못한다. 많은 것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완전히 타자화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나. 그러니 함부로 계몽하려 한다거나 가르치려 들면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관객들은 진정성에 대한 자기만의 척도가 만족되면 언제든지 마음을 연다. <알리바이 연대기> 역시, 공연을 본 관객들이 자기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거나, 그 당시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 본다는 점에서 반향이 있었던 것 같다.

Q : 어떻게 보면 김재엽 연출은 동시대 현실로부터 얻는 것들이 많다. 아니 그보다는 현실을 잘 읽어내고 활용한다고 할까. 이야기의 소재부터 이야기하는 방식까지.

: 맞다. 사실 연극을 시작하고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회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때 작품들은 어떤 판타지나 부조리, 우화 같은 걸 만들어 내려는 시도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좀 더 보편적인 화두를 찾고 싶다. 단순히 현실에 대한 비판을 해봤자 이 문제는 끝도 없이 반복된다는 생각이다. 때문에 조금 더 넓은 견지에서 경제와 역사 같은 것들을 보려는 건데, 이걸 드라마로 만들어서 화석화하는 게 아니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시선이나 방법들을 고민 중이다. 지금은 김수영 시인에 대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극작을 하면서도 가장 나를 괴롭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그 시대 작가의 이야기를 현재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다. 당연하게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많은 취재를 해야만 했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데서 연극하는 즐거움을 얻는다. 내가 알아내고 추적한 것을 관객들한테 들려주는 것, 그런데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구조에 그걸 맞추다 보면 상상력이 갇히고 만다.

알리바이연대기 공연모습

<알리바이 연대기> 공연모습

글쓰기와 연출하기에 대한 단상

Q : 과정이 즐거우면서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방법을 선택한 것 같다. 스스로에게는 분명히 의미가 있겠지만 같이 작업하는 배우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A : 극작과 연출을 같이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연출가로서보다는 작가로서 배우들을 만난다. 말하자면 배우들은 최초의 관객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배우들이 잘 읽어내지 못하면 그건 내가 분명 잘못 쓴 거다. 관객들한테 공연 잘못 보셨어요, 할 수 없듯이 배우들한테도 그걸 왜 모르냐고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어차피 내가 쓰고 연출하는 거라 작가로서의 나와 연출가로서의 내가 분리될 수는 없겠지만 연출가 역시 마스터로서의 자격을 가진 자가 아니라 하나의 관객으로서 피드백을 할 뿐이다.

Q : 다른 작가의 작품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극작과 연출을 같이 해왔다. 언젠가 연출보다 글쓰기가 더 즐겁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어떤 맥락인가?

A : 이를테면 다른 작가의 작품을 연출할 때, 미처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가 작가의 마음을 먼저 읽으려고 하더라. 이건 이래서 중요한 대사고, 저건 저래서 살려야 하고. 이게 과연 좋은 연출인가 싶었다. 언젠가 동료 연출가들하고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연출만 하는 연출가는 정말 연출을 잘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극작과 연출을 같이 하는 사람은 왜 이 연극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연출도 제대로 못하는데 그것마저 안 보이면 이 연극을 봐야 할 이유가 없는 거니까.

동시대 연극(아닌 연극)의 가능성

Q : 드림플레이 테제 21이란 이름을 걸기 시작했는데?

A :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을 생각한다. 극단 개념으로 오래도록 작업했는데 이런저런 한계가 오더라. 실제로 나를 포함해 단원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활동 반경이 넓어져 이제는 함께 모여 작업하는 것이 어려워지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드라마를 벗어난 다른 작업 형태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떤 테마를 가지고 테제를 찾아나가는 것, 그건 꼭 ‘연극’일 필요는 없지 않나. 저널을 발행할 수도 있는 거고, 얼마든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 아닌 다른 연출가들이 드라마 중심의 연극을 공연하면서 극단 드림플레이로 활동한다. 드림플레이 이름으로 모여서 각자 하고 싶은 것을,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거다.

Q : 2014 팸스초이스에 <알리바이 연대기>가 선정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A : 작년 국립극단에서 초연한 이후 올해 재공연을 하고 대학로에서부터 시작해 계속 지방 공연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국공립에서 주도하는 기회를 얻어 보려고 했다. 이 작품이 과연 얼마나 수용될 수 있는지, 그냥 대학로의 민간 극장이 아니라 관에서 주도하는 행사에서 이 작품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런 긴장 관계를 만들어 보는 게 지금의 내 역할인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이 작품이 해외에 나가게 된다면, 나로서는 굉장히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하지만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려주고 싶기도 하고, 그간 한국의 공연들이 해외에 많이 나갔지만, 동시대 창작극으로 해외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뭔가 새로운 긴장과 동력을 가져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극작가,연출가 김재엽

극작가, 연출가 김재엽

 

Ⓒ드림플레이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알리바이 연대기>

2013년에 초연된 <알리바이 연대기>는 작가 자신의 기억 속 어떤 한 순간의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평범한 한 개인의 인생 여정에서 나타나는 한국 현대사의 알리바이 연대기를 추적한 작품이다. 개인사와 현대사의 중요 장면이 겹쳐지는 서사의 완결성은 역사에 대한 관점과 자기 응시적 시선이 조화를 이루며 기존 창작극의 여백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촘촘하고 세세하게 삶에 천착함으로써 개인과 역사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을 극복하고 있는 <알리바이 연대기>의 성취는 한국 연극에서 정치극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드림플레이 테제 21

드림플레이 테제21은 극단 드림플레이의 프로젝트로 드라마형식을 극복하여 동시대 문제를 폭넓게 다루는 새로운 연극을 지향한다. 주요작품 <알리바이 연대기>, <여기, 사람이 있다>, <장석조네 사람들>,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꿈의 연극>, <유령을 기다리며> 등이 있다.
※ 드림플레이 홈페이지 : http://www.dreampl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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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사람이 먼저라는 휴머니스트들의 진한 울림]]> 사람이 먼저라는 휴머니스트들의 진한 울림
[PAMS Choice] 블랙스트링


블랙스트링(Black String)은 즉흥 음악을 바탕으로 재즈를 차용하면서 국악을 기본으로 거문고를 연주하는 허윤정, 대금과 소금의 이아람, 그리고 재즈 기타리스트 오정수로 이루어진 밴드이다. 컨셉에 따라 타악주자 강민수와 재즈 드러머 신동진이 더해지면서 음악적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한국 음악의 깊은 울림을 세계에 알리는 블랙스트링 멤버 3명을 만나 우리 음악이 지나왔고 가야할 길에 대해 얘기 나누었다.

‘현금’(玄琴)은 우주의 소리

Q(김광현) : 블랙스트링(Black String)이란 팀명의 의미를 먼저 묻고 싶다.

허윤정(거문고 연주자, 이하 허) : 거문고를 ‘검을 현(玄)’에 ‘거문고(현악기) 금(琴)’을 써서 ‘현금’이라고도 하는데 그걸 우리말로 푼 게 거문고다. 그렇다보니 블랙스트링은 자연스럽게 거문고를 뜻하지만 사실 ‘블랙(Black)’은 동양에서 끝이 없는 우주를 상징하는 신비한 단어이기도 하다. ‘스트링(String)’은 현악기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한국 음악이 지닌 선(율)적인 면을 상징하고 있다. 끊어지는 직선이 아니라 율동감이 있는 곡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소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아람(대금 연주자, 이하 이) : 거문고나 기타와 달리 대금은 현악기가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대금 소리를 들으며 양(陽)적인 소리보다 음(陰)적인 소리를 느낀다. 블랙이라는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Q : 두 사람의 국악 연주자와 한 사람의 재즈 연주자가 팀을 이루고 있다. 팀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블랙스트링 (이하 블랙): 2011년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하 센터)의 한-영 문화 교육 프로그램인 ‘UK 커넥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먼저 영국 내에서 프로모터와 뮤지션을 만나고 한국에서 협연할 수 있는 뮤지션을 찾았다. 허윤정 선생과는 토리 앙상블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사운드에 대한 얘기를 그때부터 많이 나누었다. 영국에 가기 전만 해도 블랙스트링이 계속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뮤지션과 ‘통’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블랙스트링의 확대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순회 프로그램 공연팀 모자이크코리아(MosaiKOREA)까지 선보이게 됐다.

Q : 해외 공연도 성공적이었다고 들었다.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해 달라.

허: UK 커넥션 사업으로 한국 뮤지션 3명과 영국 뮤지션 4명이 런던재즈페스티벌에서 협연을 했고 폴란드에서도 공연을 했다. 2013년에는 센터 전통예술 해외아트마켓 및 페스티벌 진출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오슬로월드뮤직페스티벌과 말레이시아 페낭아일랜드재즈페스티벌(Penang Island Jazz Festival)에서 초청을 받았다. 주로 해외 페스티벌 프로모터들이 한국에 왔을 때 우리 팀의 쇼케이스를 보고 초청을 해온다.

블랙스트링

블랙스트링

Q : 블랙스트링의 음악은 국악과 재즈가 더해져 크로스오버나 월드뮤직으로 분류될 것 같다. 이에 대해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정수(기타 연주자, 이하 오) : 컨템포러리 국악이나 컨템포러리 코리안 트래디셔널 뮤직 등 복합적인 장르 명칭이 있겠지만 실제로는 장르 구분이 명확하지 않도록 자세를 취한다.

: 우리를 초청하는 페스티벌이 월드뮤직 내지 재즈인 것을 보면 이미 블랙스트링이 장르에 유연한 팀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장르 구분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음악으로 일치를 이루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겉으로 보여지 듯 재즈와 국악이 만나고 국악기와 양악기가 만나는 피상적인 관계가 아닌 연주자 자체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음악이 융합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음악과 다른 사람의 음악이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음악이 다르게 나온다. 가령, 정수 씨가 재즈를 하고 있어서 같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오정수라는 연주자가 가진 음악성, 음악적 경험들, 여러 필링(Feeling) 중에서 우리가 필요하고 만날 수 있는 걸 그 순간에 꺼내는 거다.

해답을 찾다보면 결국 사람을 만나게 된다

Q : 국악과 재즈의 만남에 여러 시도들이 있었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다.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나?

: 내 생각엔 대화인 것 같다. 서로 배울 것과 배려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밸런스를 맞추는 게 가장 어려운데, 음악과 음악이 만나는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 아닌가. 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면 좋은 결과물을 내기 힘들다. 블랙스트링의 경우 인간적인 친밀도가 음악을 서로 함께 하고 대화하는데 있어서 잘 섞이고 밸런스를 맞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내 경우엔 이 팀이 국악에 좀 더 베이스를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공부해서 배워나갈 게 많다고 생각한다.

: 그동안 두 장르는 수많은 콜라보레이션과 퓨전이 있었다. 그런데 왜 좋은 음악이 안 나올까? 간혹 나오긴 했지만 ‘이거다’ 하는 게 없을 땐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일 텐데 난 뮤지션에게 해답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사람에게 집중했다. 만약 어떤 뮤지션이 30년 동안 음악을 해 왔다면 그가 배워온(가능성까지) 모든 것들의 총체적 집합이 바로 그 뮤지션, 자신이다. 그동안 나는 동아시아 민속 악기와 협연도 해 봤고 서양 악기와 국악기가 함께 하는 앙상블도 해 봤다. 그런데 악기가 달라지고 팀이 달라졌을지라도 그 안에서 추구한 건 같다. 뮤지션 그 자체에 답이 있고 그걸 끄집어내 보자는 것이다. 그건 내 취향일 수도 있고 이 작업들이 어떻게 평가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블랙스트링 안에서는 이렇게 음악을 하려 했다.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답이 좀 나오지 않을까 싶다.

Q : 2014 팸스초이스(PAMS Choice)에 선정되었다. 이제 활발한 활동만 남았는데 해외 활동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지 않나. 2012년 선정된 잠비나이 같은 경우는 지금도 매우 활발하다.

: 잠비나이 활동을 잘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과 우리의 역할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잠비나이는 아직 젊고, 그들을 주목하는 시장이 있고, 그들도 해외를 목표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경우는 팸스초이스 선정이 20년 동안 음악을 해 온 연장선상에서 조금 더 좋은 환경과 조금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공연보다는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중요한 공연을 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는 것이다. 좋은 공연을 하는 것, 좋은 뮤지션과 콜라보레이션 하는 것, 좋은 극장에서 무대를 펼쳐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 등이 그러하다.

블랙스트링

2013 페낭아일랜드재즈페스티벌 공연모습

선입견을 버리고 직관에 의지하면 어떨까

Q : 해외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궁금하다. 특히 거문고는 낯선 악기이지 않나.

: 해금이나 대금, 가야금 같은 전통 악기들은 그 나라마다 비슷한 류의 악기 군들이 있다. 거문고는 경험하지 못한 소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거문고를 보고 역사가 있는 전통 음악일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가지고 아방가르드하고 모던한 음악을 할 때 오는 반전을 많이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 대금은 비슷한 악기군이 있지만 그래도 청이라는 갈대를 붙여서 내는 독특한 소리 구조가 있어서 무척 신기하게 여긴다. 그런데 결국 사람들은 새로운 소리를 신기하게 여기다가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악기 소리와 닮았나를 찾는다. 또한 음악의 본질로 들어가서 저 사람이 어떤 문화를 갖고 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 한다는 느낌도 받는다.

Q : 프리, 아방가르드는 지속적인 접근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자국의 반응이나 지원 없이는 해외 활동이 쉽지 않을 듯한데.

:오래 전부터 논의되고 있지만 국악을 가지고 국내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비단 국악뿐 아니라 다른 마니아적인 장르가 다 그렇다. 우리는 관객지향적인 음악이 아니다. 관객을 기대하며 음악을 만드는 순간 그 음악이 어떻게 변할지는 뻔하지 않나. 한국 관객들은 국악에 대해 직관은 닫아버리고 선입견으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역사의 질곡과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음악이라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음악마저 추상적이 되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있다. 한국의 교육이나 문화적 환경에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면이 억압되어 있지만 그런 걸 끄집어내는 게 블랙스트링의 역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운영하는 극장(북촌창우극장)에서 국악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잼(Jam)을 상시적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국악 내에서도 그런 관심과 수요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Q : 작업에 항상 엔지니어 곽동엽 실장이 함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거문고 사운드를 잡을 수 있는 건 엔지니어와의 꾸준한 커뮤니케이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악기 안에서도 거문고와 장구 사운드만 해결되면 다 된다는 얘기가 있다. 국악 음향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도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블랙 : 공연에는 연주자와 기획자 그리고 테크니션이 같이 있어야 한다. 국내 팀들이 해외에 나가는 경우 라이더 준비도 미비하고 커뮤니케이션도 힘든 경우가 많다. 곽동엽 실장은 모든 공연에 참여해 보다 좋은 사운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데, 이는 뮤지션 모두 공감하고 필요로 한다.

Q : 앞으로 계획을 말해 달라.

오는 10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에서 오블리크(Oblique)라는 미디어 창작집단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있다. 우리만 하는 건 아니지만 의미 있는 공연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12월에 초연곡으로 이루어진 국내 독주회를 제대로 진행할 예정이고, 내년에는 독일을 비롯해 해외에서 몇 차례 공연이 있을 듯하다.

?필립 피키에(Philippe Picquier)사에서 출판된 황석영의 『바리데기』

▲ 2007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밀양>

▲ 한국의 삼지애니메이션스튜디오와 프랑스의 티몽 애니메이션 사이버 그룹 스튜디오(Timoon Animation, Cyber Group Studio)의 한-불 합작 프로젝트, 영화 〈피쉬와 칩스〉

대금 이아람 거문고 허윤정 기타 오정수

 

Ⓒ블랙스트링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블랙스트링 - 세계를 향한 21세기 한국 음악의 깊은 울림

블랙스트링은 한국 전통 음악에 단단한 뿌리를 두고 ‘즉흥성’이라는 유사한 특징을 가진 ‘재즈’와 조화를 이루면서 현대적이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는 음악그룹이다. 각 연주자의 뛰어난 기량에 새로운 사운드를 탐구하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더해져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블랙스트링만의 음악을 통해 전통 음악의 특별함과 예술적 우수성을 알리는 동시에 월드뮤직으로서의 한국 전통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블랙스트링은 지난 해 노르웨이 오슬로월드뮤직페스티벌과 말레이시아 페낭아일랜드재즈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 공연을 펼친 바 있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블랙스트링

블랙스트링은 BBC 찰리 길렛의 월드뮤직(BBC Charlie Gilett’s World of Music)에서 한국의 전통 현악기 거문고 명인인 고(故) 찰리 길렛이 마지막으로 소개한 한국 음반의 주인공인 허윤정을 중심으로,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연주와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오정수와 대금 연주자 이아람이 모여 결성한 팀이다. 트리오를 중심으로 타악 파트에 젊은 국악인 강민수와 재즈 드러머 신동진을 영입하여 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음악적 지평을 넓혀 왔으며, 앞으로도 전통음악을 활용한 새로운 현대음악으로서의 블랙스트링만의 음악을 통해 한국 전통 음악의 특별함과 예술적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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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PAMS Choice] 박우재의 거문고에 무엇인가를 더한다]]> 박우재의 거문고에 무엇인가를 더한다
[PAMS Choice]  비온뒤 -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의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는 인터뷰어인 본인과는 한국음악앙상블 ‘바람곶’에서 함께 활동했던 음악 동인이었다. ‘바람곶’이 활동을 중지하고 멤버들이 각자 활동을 하고 나서도 틈틈이 함께 작업을 해 온 박우재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서 그의 새로운 프로젝트와 이전에 듣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들에 대해 들어 보았다.

바람곶 활동과 무용 음악작업

Q(박재록) : ‘거문고 더하기’ 이전의 박우재씨 활동, 바람곶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한다.

A(박우재) : 내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을 당시에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었던 원일 감독님과는 스승과 제자 관계로 처음 만났었다. 원일 감독님은 관현악 수업의 지휘자였고 나는 많은 거문고 학생 중 한명이었다.  LG아트센터가 막 오픈했었던 그때에도 나는 무용에 관심이 많아서 자주 공연을 보러 갔고 그곳에서 우연치 않게 여러 번 감독님을 마주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원일 감독님이 새로운 한국음악 앙상블을 조직하려고 사전 작업을 하면서 거문고 연주자로 나를 픽업하셨다. 이 새로운 앙상블은 한국의 전통적인 음악 어법을 기반으로 시나위를 재창조하려고 했었고, 나도 전통을 넘어선 새로운 시도를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구하는 바가 맞아 떨어져서 함께 팀을 하게 되었다. 이 팀이 나중에 바람곶이 되었다.

Q : 바람곶 활동을 하면서 현대무용 작가들과 다양한 공동작업을 하지 않았나?

A :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활동하던 현대무용가 김남진과 함께 작업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 후부터 그의 작품에 음악감독을 맡게 되었다. 한국-벨기에 수교 행사 중 하나로 벨기에 안무가들과 국제 교류 작업이 있었는데 그때 김남진이 한국을 방문했던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Sidi Larbi Cherkaoui)에게 나를 소개했고, 그 이후로 셰르카위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 왔다. 스케줄 문제로 몇 번의 기회를 지나치고 나서 셰르카위의 회사인 이스트만(EastMan)과 일본의 분카무라(Bunkamura) 극장, 영국의 새들러스 웰스(Sadler’s Wells) 극장이 공동 투자한 〈테즈카(Tezuka)〉라는 작품에 뮤지션으로 참가해서 함께 세계 투어를 돌았다. 최근에는 그의 신작인 〈프랙터스(FRACTUS)〉에 참여하고 있다. 이 작품은 현재 사전작업이 진행 중이고 내년에 벨기에를 시작으로 월드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무용가 김남진과 함께 작업한 댄스씨어터 창의 〈미친 백조의 호수〉

박우재가 음악작업한 〈테즈카(Tezuka)〉 Ⓒ이스트만(EastMan)

무용가 김남진과 공동작업한

댄스시어터 창의 〈미친 백조의 호수〉

박우재가 뮤지션으로 참여한〈테즈카(Tezuka)〉 Ⓒ이스트만(EastMan)


Q : 무용가과의 작업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인가?

A : 함께 하는 무용가들에 따라서 작업 방식이 다르다. 셰르카위와의 작업에서는 여러 뮤지션과 함께 작업해 왔다. 다국적의 여러 뮤지션들이 장면에 따라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형태인데, 참여한 뮤지션들이 모두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면서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한국에서 김남진과 했던 작업에서는 보다 능동적이고 연출적인 부분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음악감독의 역할이었다. 프로덕션의 초기부터 연출과 음악을 함께 고민하면서 공연을 만들어 나갔다. 작업 방식은 다르더라도 내가 음악으로 의도했던 이미지가 무대에서 관객에게 보여 지는 그 순간이 무용 작업의 매력 같다. 

박우재의 거문고에 무엇인가를 더한다

Q : 그럼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에 서울아트마켓(PAMS)에서 공연할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A :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박우재의 거문고에 무엇인가를 더한다.’라는 의미이다. 그 ‘무엇’은 거문고에서 발견한 새로운 주법이나 음색, 혹은 딜레이, 루핑(looping), 오버더빙과 같은 전자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루핑, 오버더빙 기법을 사용하면 실제로는 한 명의 박우재가 연주를 하지만 음향적으로는 4명의 박우재 혹은 100명의 박우재가 동시에 연주를 하게 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올 초에 했던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 : 이상변이〉 공연 중에서 〈수동〉, 〈흥청〉, 〈표류〉, 〈이상변이(Morphosis)〉, 〈카레스(Caress)〉 작품을 골라서 연주한다.

Q : 박우재씨 음악은 고전적인 음악, 전문 작곡가의 음악과는 다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어떤 식으로 음악을 만들어나가는가?

A : 음악을 만들 때 단초가 되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이미지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있고, 새로운 음향이나 새로운 주법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곡을 완성해 나갈 때도 청자로 하여금 큰 이미지를 그리거나 이야기가 느껴지도록 완급조절을 하면서 음악을 만들고 있다. 전통적인 작곡 방식과는 방향성이 좀 다른데 이것이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생각한다. 공연으로서는 한 명의 솔로 연주자의 연주력을 보고 듣는 연주회보다는 다양한 색채와 부피감 있는, 그러면서도 이미지와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는 음악회이길 바란다. 작곡과 연주로 관객의 자유로운 상상의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 이상변이〉공연 포스터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 공연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 이상변이〉

 공연 포스터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 공연


Q : 박우재씨는 전통적인 연주법을 벗어나 활을 사용한다던지 스트로크(stroke)1)주법으로 거문고를 타고, 전자음향과 함께 연주하는 등 항상 새롭고 독특한 방식으로 거문고를 연주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연주법을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A : 색다른 시도를 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꼈다. 시작은 장난스럽고 우연에 의한 것들이 많았다. 놀이처럼 하던 것들에서 나온 것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현재의 주법들로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다. 이번에 연주하는 〈이상변이〉라는 곡은 바람곶 시절에 박재록씨와 함께 작업하면서 전자음향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이펙터(effector)2) 나 음색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만들게 된 곡이다.


1) 기타 주법에서 여러 줄을 내려치거나 올려치는 주법.
2) 전기 신호화한 음을 가공하여 원음과는 다른 음으로 변화시키는 일반적인 기기


Q : 거문고를 오래 연주하면서 악기에 대한 한계를 느낀 것인가?

A : 그런 것은 아니다. 거문고의 정체성을 확장시킨다거나 거문고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의도보다는 개인적인 흥미에서 시작했던 것이었다. 여러 가지 시도 중에서 재미있었던 작은 아이디어를 지나치지 않고 계속 바라보고 그것을 계속 발전시킨 것이다.

Q :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또 다른 한계를 느끼진 않았는지?

A : 새로운 주법을 발전시켜 나갈 때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오랫동안 한국적인 음악과 전통적인 주법을 교육받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할 때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이 주법들을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키려면 앞으로도 더 많이 노력해야할 것 같다.


거문고로 음악하는 음악인 박우재

Q : 지금까지도 많은 일을 해왔지만 새로운 작업에 대한 열망도 많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A : 〈거문고 더하기〉 컨셉의 공연들을 몇 차례 더 만들어 보고 싶다. 음향 엔지니어와 더 적극적으로 협업하여 현대적이면서 거문고가 더욱 확장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한편으로는 거문고 전통음악을 재해석하는 음악을 진행하고 있다. 멈춰진 산조의 발전을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시도해서 거문고 전통의 시김새3)를 확장하는 등 서양 음악 기법이 아닌 거문고만의 전통 주법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산조를 만들고 싶다. 또한 무용가를 비롯한 다른 장르 작가들과의 작업을 통해서 뮤지션 박우재라는 또 하나의 정체성을 갖추길 기대한다. 단지 ‘거문고 연주자’가 아닌 ‘거문고로 음악 하는’, 음악인 박우재로 만들어 가고 싶다.


3) 전통음악에서 선율을 이루는 골격음의 앞이나 뒤에서 그 음을 꾸며주는 장식음이나 음길이가 짧은 잔가락, 올라가는 음, 내려가는 음, 꺾어지는 음을 일컫는 용어


Q : 이런 계획들이 다 진행되고 있는가?

A : 하고 싶은 것들은 다 진행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Q : 그렇다면 더 먼 미래에는 어떤 음악가가 되어있길 바라는가?

A : 현재 국악계는 전통을 지켜나가는 경향과 함께 새로운 변이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내가 하는 것도 이러한 변이의 하나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온전히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우리 국악계에도 그런 사람 하나는 필요하지 않을까?!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

 

Ⓒ 비온뒤


2014 팸스초이스 선정 작품 :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는 거문고 연주법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와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아티스트 박우재의 ’수동’, ’표류’, ’이상변이’, ’카레스’ 4곡으로 구성된 무대로, 독자적인 스트로크 주법과 적극적인 활연주를 이용한 타현(打絃)에서 찰현(擦絃)으로의 연주 전환이 이색적인 작품이다. 박우재의 거문고 연주와 음향감독 김병극의 사운드디자인이 결합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거문고 음색과 자유로운 박우재 스타일의 연주로 채워지는 이 작품은, 무대 위 한 대의 거문고로 연주되는 음악이 사운드디자인을 통해 사전에 녹음해 둔 거문고 연주와 합쳐져 입체적 사운드로 객석에 전달되는 것이 특징이며, 이는 기존의 MR에 맞추어 연주하는 방식과는‘다른 차원의 연주’이다. 거문고의 음악적 확장을 다양한 연주법과 음색에 대한 실험으로 풀어온 박우재의 음악 세계를 접할 수 있는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는 2014년 2월 초연되어 많은 관계자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2014 팸스초이스 선정단체 : 공연예술컨설팅그룹 ‘비온뒤’

공연예술컨설팅그룹 ‘비온뒤’ : 전통음악에 바탕을 둔 음악 전문 에이전시로 전통음악, 월드뮤직, 음악극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음반을 기획・제작한다.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 외 바람곶, 박순아, 김효영, 정민아 등 실력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하여 세계무대에 소개한다.
※ 비온뒤 홈페이지 : http://beond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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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인도네시아의 열정적인 문화예술 기획자]]> 인도네시아의 열정적인 문화예술 기획자
[피플]  살리하라 문화재단 큐레이터 디안 이나 마헨드라


디안 이나 마헨드라(Dian Ina Mahendra)는 인도네시아의 살리하라 문화재단(Komunitas Salihara)의 큐레이터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2014 한국-인도네시아 국제교류 매칭 : 글로벌 기획인력 육성 지원 사업’에 참가하여 한국을 방문했다. 5명의 인도네시아 선발자 중 유일한 큐레이터로 한국의 문화예술 활동을 조사하고 협력 파트너를 발굴하고자 방한했다. ’2014 한국-인도네시아 국제교류 매칭 : 글로벌 기획인력 육성 지원 사업’은 인도네시아 문화예술 기획자를 선발하여 한국 리서치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재외 한국문화원에 문화예술 기획인력을 파견하여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권역별 국제문화교류 전문가 파견 사업(Project NEXT : Next Expert Training)1)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디안 이나 마헨드라는 한국의 영희 만큼 잘 알려진 이름이 디안이기 때문에 “이나”로 불러 달라는 밝고 유쾌한 젊은 여성이었다. 필자가 이나를 만난 것은 5월 16일로 한국의 떠나기 전날이었음에도 여전히 생기 넘치는 인터뷰이어서 필자 또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나가 일하고 있는 살리하라 문화재단(Komunitas Salihara)은 코뮤니타스(Komunitas)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 예술인, 언론인 등이 축으로 만들어진 민간 사설 문화재단이다. 복합적인 현대 예술을 소개하는 코뮤니타스 살리하라는 살리하라 씨어터(Salihara Theater), 살리하라 갤러리(Salihara Gallary), 살리하라 라운지(Salihara Lounge) 로 구성되어있다. 이나는 살리하라 갤러리에서 시각 예술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1) ’권역별 국제문화교류 전문가 파견 사업(Project NEXT; Next Expert Training)’은 2013~2014년 총 10개국 한국문화원(멕시코,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집트,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그리고 나이지리아)에 한국의 국제문화교류 전문가를 파견하였다. ’2014 한국-인도네시아 국제교류 매칭 : 글로벌 기획인력 육성 지원 사업’는 본 사업에 참여 중인 주 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의 김소진 파견자가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추진한 프로젝트이다.

프로젝트 NEXT를 통한 헤이리 방문 리서치

Q(이혜리) : 프로젝트 NEXT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A(디안 이나 마헨드라) : 국제교류에 관심이 많다. 아시아 문화위원회(ACC:Asian Cultural Council)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고 있으며 뉴욕의 프로그램도 참가했었다. 특히 아시아 문화 교류에 관심이 많으며 프로젝트 NEXT의 정보는 한국문화원을 통해 지원하게 되었다. 특히 네덜란드에 연수를 갔을 때 한국 친구를 만나 한국에 관심이 많다.

Q : 프로젝트 NEXT를 통해 한국에서 어떤 활동을 하였는가?

A : 파주 헤이리를 방문하여 기관, 지역사회, 작가 등이 만들어 가는 예술 공동체 문화를 연구하였다. 헤이리는 민간 작가 주도로 만들어진 매우 흥미로운 예술 공동체이다.

Q : 한국에서 헤이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프로젝트를 지원할 때 헤이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는가?

A : 헤이리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 NEXT를 지원할 때 부산, 파주, 인천 등 파견지가 정해져 있었고, 그 중에서 헤이리를 선택하여 리서치 계획을 작성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선발되었다.

Q : 리서치 계획을 읽어 보았다. 헤이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보였다. 헤이리가 인도네시아에도 잘 알려진 한국의 예술 공동체 인가?

A : 이번 조사를 위해 알게 되었다. 사실 자료를 조사 과정에서도 영어 자료가 부족하여 리서치가 힘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한국 친구에게 부탁하여 한국 친구가 한국말 자료를 찾아 영어로 번역하여 보내주었다.

살리하라 갤러리 큐레이터, 디안 이나 마헨드라

살리하라 갤러리 큐레이터, 디안 이나 마헨드라

살리하라 갤러리 큐레이터, 디안 이나 마헨드라

Q : 헤이리에서의 연구가 오늘로 끝이 났다. 결론은?

A : 작가와 기획자들이 마을을 구성하고 서로 회의를 통해 마을을 운영하는 것이 흥미롭다. 마을의 운영 방식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 질 수 없겠지만, 처음에 마을 구성원이 될 때 구성원들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구성원이 되면 서로의 공익을 보장하며 시각 및 공연 예술의 경계를 넘는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생산해낸다. 많은 기획자와 작가들을 만났고 앞으로 교류도 시도할 예정이다.

Q : 인도네시아에도 헤이리와 유사한 공동체가 있는가?

A : 헤이리와 같이 기관, 지역사회, 그곳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살고 있는 작가들이 모여 있는 곳은 드물다.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특정 그룹(기업 혹은 재단)에 의해 서로 운영되는 예술 단체는 많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 활동이 지원되지 못한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놀란 점은 한국은 국가 혹은 지역사회 단체에서 문화 활동에 예산을 투자한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는 문화 활동이 민단 자본으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문화 예술 활동에 대한 격차가 있다. 모든 지역의 주민들이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을 경험하지 못한다.

복합문화공간 코뮤니타스 살리하라

Q : 살리하라 문화재단은 일 년에 100개 이상의 공연, 전시, 워크숍을 진행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형태로 운영되는가?

A : 살리하라 문화재단처럼 많은 활동을 하는 재단은 자카르타에서도 유일하다. 모든 행사는 민간 후원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뿐, 국가나 지역사회 같은 후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인도네시아는 국가나 지역사회의 후원(재정 혹은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 등과 같은 모든 형태의 후원)에 의한 사회문화 조성이 드물다. 문화기획자로 이번 한국 방문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예술 행정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코뮤니타스 살리하라 전경

Q : 당신이 몸담고 있는 살리하라 문화재단은 어떠한 곳인가? 자세히 소개해 달라.

A : 살리하라 문화재단은 살리하라 씨어터, 살리하라 갤러리, 살리하라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다. 연중 많은 공연과 워크샵이 진행되고, 페스티벌 살리하라와 비엔날레도 개최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예술가들을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명실상부 자카르타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 기획하는 재단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나는 살리하라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데, 프랑스 작가 사진전 준비는 물론 한국문화원을 통해 한국 작가 전시도 계획 중에 있다.

살리하라 씨어터

살리하라 갤러리

살리하라 라운지

살리하라 씨어터 살리하라 갤러리 살리하라 라운지

Q : 한국 작가들도 살리하라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A : 살리하라 문화재단 특히 갤러리의 큐레이터들은 항상 작업가능한 모든 것들을 찾아다닌다. 언급했듯이 문화원을 통해 작가들을 소개받을 수도 있고, 작가가 직접 포토폴리오를 큐레이터들에게 보낼 수도 있다. 매체에 대한 제한이 없기에 어떤 작업이라도 환영한다. 하지만 2015년까지 전시 계획이 꽉 차여 있는 관계로 작업은 2016년이나 준비가 가능할 것 같다.

Q : 큐레이터의 일 이외에도 살리하라 갤러리에서 아트 상품을 개발, 판매한다는 당신의 이력이 매우 흥미롭다.

A : 인도네시아 지역 작가들과 협력하여 아트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고 있다. 이들 상품들은 살리하라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살 수 있다. 아트 상품 개발, 판매는 전시 기획은 물론 큐레이터로서 내가 주력하고 있는 부분 하나이다. 대개는 지역 작가들이 생산을 담당하고 살리하라 갤러리는 기획과 유통을 한다. 소비자를 늘 생각한다는 점에서 난 까다로운 기획자인 셈이다.

Q : 문화예술 공동체에서 문화예술 상품 제작에 이르는 당신의 관심 범위가 넓고도 이채롭다. 문화예술기획을 시작한 그 계기가 있었는가?

A : 대학에서는 국제관계론(international relations)을 전공했지만 문화 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라디오 DJ까지 했었다. 처음 시작이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관심 분야가 광범위한 면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활동을 지향하는 복합문화공간 코뮤니타스 살리하라에서의 일이 마냥 즐겁다.

1시간이 넘는 인터뷰가 아쉬웠는지 궁금한 내용은 이메일로 주고받자는 말로 인터뷰가 마무리 되었다. 그녀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한국 친구와 명동에서 보내기로 했다며 길을 나섰다. 디안 이나 마헨드라와의 인터뷰만으로는 인도네시아 문화예술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없었지만, 꿈틀거리는 그 열정만은 확인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번 인터뷰는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도네시아에 대해 알고자 기획되었다. 살리하라 문화재단의 디안 이나 마헨드라와의 만남은 인도네시아로 통하는 다리 중, 가장 흥미로운 다리가 될 것이다. 그녀라는 다리가 펼쳐 보일 다양한 문화교류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 사진촬영_박창현(Chad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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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숫자에 감춰진 리얼리티 – 리미니 프로토콜의 <100% 광주>]]>

숫자에 감춰진 리얼리티- 리미니 프로토콜의〈100% 광주〉
[피플] 연출가 슈테판 카에기,  헬가르트 하우크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의 〈100% 광주〉가 2015년 개관을 앞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의 제작으로 지난 5월 광주와 서울에서 초연되었다.〈100% 광주〉는 다큐멘터리 연극의 선두 주자인 독일 리미니 프로토콜 극단의〈100% 도시〉연작 프로젝트로, 광주는 15 번째 도시이다. 슈테판 카에기(Stefan Kaegi)와 헬가르트 하우크(Helgard Haug)의 공동 연출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각 도시 구성원들의 통계학적 비율을 바탕으로 선별된 100명의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대규모 사회 참여극이다.〈100% 광주〉역시 연령대와 성비, 출신 지역 등에 따라 100명의 광주 시민들을 선발하여 광주란 도시를 구현한다. 이 연작 프로젝트는 2008년 베를린 헤벨극장(HAU1, Hebbel am Ufer Berlin)에서 초연된 후 런던, 파리, 브뤼셀, 멜버른, 도쿄, 밴쿠버 등 세계 주요 도시를 거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한국 공연은 <콜 커타(Call Cutta), 세미-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Karl Marx: Das Kapital, Erster Band)〉에 이어 세 번째인데, 주로 개인의 일상을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드라마투르기와 결합하여 연극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성찰해 왔다. 〈100% 광주〉는 제목에서부터 통계의 상징인 숫자와 한국 현대사의 상징인 광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과거가 아닌 현재를, 숫자가 아닌 삶을, 익명이 아닌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공연의 공동연출가인 슈테판 카에기와 헬가르트 하우크를 만나 여전히 뜨거운 반응으로 세계 도시를 돌며 진화하고 있는〈100% 도시〉의 힘과〈100% 광주〉만이 지닌 매력에 대해 들어보았다.

일상의 전문가들과 연극을 다시 정의한다

Q(남지수) : 한국 연극 팬들에게 리미니 프로토콜은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프로토콜이라는 말을 통해 다큐멘터리 연극에 대한 의지를 선언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재미난 이름인 ‘리미니 프로토콜’의 의미가 궁금하다.

A(슈테판 카에기, 헬가르트 하우크) : 리미니 프로토콜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 명의 아티스트들(Helgard Haug, Stefan Kaegi, Daniel Wetzel)로 구성된 극단이다. 경우에 따라 혼자 혹은 둘 셋이서 창작을 한다. 세 사람이 하는 어떤 작업이든, 모든 공연에 리미니 프로토콜이라는 이름이 사용된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연극에 대한 한계를 넘어서고, 연극을 다시 정의하는 데 있다. 작업 방식에 있어서는 모든 형식이 가능하다. 주로 어떤 토픽을 조사하는 저널리스트처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인물들을 찾아 대화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일상의 평범한 인물들을 연극으로 불러오는데, 바로 이 일련의 과정이 ‘다큐멘터리 연극’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라 해도 공연은 늘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다. ‘리미니(Rimini)’는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인데, ‘리미니’라는 발음이 주는 느낌이 프로토콜이라는 말과 조합될 때 아주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프로토콜(Protokoll)’은 우리가 쓰고, 연구하고, 관심을 갖는 모든 것이다.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이란 이름은 그렇게 태어났다.

(왼쪽) 독일 기센대학 응용연극학과 출신 다니엘 베첼, 헬가르트 하우크, 슈테판 카에기가 모인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

(왼쪽) 독일 기센대학 응용연극학과 출신 다니엘 베첼, 헬가르트 하우크, 슈테판 카에기가 모인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

(왼쪽) 독일 기센대학 응용연극학과 출신 다니엘 베첼, 헬가르트 하우크, 슈테판 카에기가 모인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

Q : 일상의 인물들을 이들은 ‘일상의 전문가(experts in daily life)’라 부르는데 캐스팅하고 버바텀(verbatim)1) 양식을 활용해 그들의 말을 무대서 발화하는 것이 리미니 프로토콜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계층이나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캐스팅하는 것이 인상적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A : 캐스팅은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학창시절 연극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당시 유럽의 관습적인 무대에서 이루어진 연극들에 상당한 지루함을 느꼈다. 내용보다 테크닉에 집중하는 것이 인위적으로 보였고, 무대 또한 현실과 관객들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과 우리의 삶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현실 속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 연극이라 여겼다. 일상생활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사람들, 현실에서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극에 반영하고 싶었다. 정치인, 경찰, 간호사, 삶을 회고하는 노인, 『자본론』에 영향을 받은 지성인들 등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연극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성찰(reflection)의 한 방법이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연극을 좋아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1) 버바텀(verbatim)은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를’ 뜻하는 단어로, 관계자 인터뷰나 각종 기록물을 통해 리서치한 내용을 사실에 가깝게 재현하는 양식이다.

릴레이 캐스팅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말한다

Q : 〈100% 광주〉 공연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자. 〈100% 도시〉는 각 도시의 특수성을 고려해 맞춤옷을 입혀 주는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각 도시들을 이어 주는 고리 또한 못지않게 중요해 보이는데, 일련의 연작을 관통하는 원칙이 있는가.

A : 우리는 100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할 그 지역에다 ‘팀’을 꾸린다. 해당 도시의 사람들, 그들의 생각과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 그간의 준비 과정을 담은 기록들을 읽는다. 이를 바탕으로 스크립트 초안이 구성된다. 초안은 기본적인 서술과 질문으로만 구성된 형태다. 우리가 각 도시를 다니면서 했던 공통 질문에 해당 ‘도시/국가’의 현재적 상황이 반영된 특별한 질문들이 더해지고, 나머지는 구성원 개인에 대한 질문들로 구성된다.

〈100% 광주〉 연습 과정

〈100% 광주〉 연습 과정

〈100% 광주〉 연습 과정

Q : 〈100% 광주〉는 다섯 가지 표본(나이, 지역, 성별, 기혼 여부, 인종)으로 나누어 통계를 분석하고, 이에 맞는 100명을 캐스팅함으로써 도시 축소판을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이것이 무작위 추출이 아니라 릴레이 캐스팅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또는 연관될 가능성이 있는 집단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캐스팅이 진행될수록 표본에 맞는 사람을 캐스팅하기는 점점 어려울 것 같지만 방식이 독특하다.

A : 〈100% 도시〉의 캐스팅 방식은 독특하다. 우리는 단 1% 인물만 선택할 뿐이다. 먼저 통계청 근무자를 선택한다. 이 사람이 그 다음 사람을 캐스팅한다. 전체 참가자 중 적어도 2명을 알고 있다면 굉장한 일이다.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이, 새의 눈으로 100명을 캐스팅하는 것과 비교해 독특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물론 캐스팅 과정이 어느 정도 프레임화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다섯 개 표본을 바탕에 두면서도, 별도로 우리가 꼭 무대 위에 세우고 싶은 사람들의 리스트도 구성한다. 리스트 구성은 팀과 상의해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다 보면 모든 사회적 경제적 계층이 재현될 수 있고, 특별한 직종의 종사자, 특별한 견해를 지닌 인물들,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도 포함되게 된다.

Q : 이러한 통계를 통한 연쇄반응 캐스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A : 캐스팅은 사람들이 속해 있거나 배제되는 사회적 네트워크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다. 사회적 네트워킹이 두터운 사람들은 그 다음 사람을 캐스팅하는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다른 연령대나 심지어 다른 인종을 캐스팅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주로 또래 집단에서 선택을 한다.

Q : 엄격한 표본추출 방식에 기대고 있지만, 사실 질문엔 이런 구조가 드러나지 않는다. 공적이기보다는 사적이고, 보편적이기보다는 개인적 질문들이 많다. 구체적인 형식을 내세웠지만 내부로부터 굉장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통계 이면에 숨어있는 리얼리티가 눈에 띄었다.

A : 숫자 이면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 모두에겐 개인 나름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관객은 특정한 시민 한 명을 쫓아가며 그의 답변에 주목함으로써, 그 인물의 자서전을 구성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공연의 마지막에는 “예스”라는 대답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듯 모여서는 장면이 연출된다. 여기서 “나는 엄마 없이 자랐다.”, “나는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다”, “내겐 알츠하이머를 겪고 있는 가족이 있다” 등의 질문들이 던져진다. 이러한 질문에 공개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사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들 옆에 선 사람이 아주 다른 라이프 스타일과 견해를 가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함께 서게 되는 그 순간, 감동이 발생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 장면은 일종의 스냅샷처럼 각인된다. 우리는 도시의 다양한 층위들, 잠재성, 인물들의 갈등과 놓쳐버린 기회들을 바라보는 데서 이 공연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도시에 대한 매우 정직하고도, 때로는 매우 잔혹한 성찰이다.

〈100% 광주〉, 숨기지 말고 발언하라!

2014년 5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100% 광주〉

2014년 5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100% 광주〉

2014년 5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100% 광주〉

2014년 5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100% 광주〉

Q : 한국인에게 광주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에서 보았다시피) 많은 관객들은 이 공연이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자연스레 연결될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공연에서 정치사회적 맥락은 그리 많이 부각되진 않았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방식이 언제나 큰 그림이나 시스템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작은 이야기들에 주목해서 인가?

A : 〈100% 광주〉는 정치적이다. 사실 (수도 서울이 아닌) 광주에서 〈100% 도시〉 공연을 하게 된 것이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5.18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광주를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공연 중에는 ‘학살’에 관한 두 질문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5.18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보여주고 싶었다. 놀라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잊고 살아가고 싶다고 투표를 한 것이다. 이것은 단지 망각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데 있어 두려워하지 않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발전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100% 광주〉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숨기지 말고 발언하라!(Speak up-do not hide!)”

Q : 광주를 둘러싼 역사적 굴레나 편견보다는 오늘날 우리의 광주, 그 온전한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광주는 우리에게도 특별하지만, 리미니 프로토콜에게도 특별할 것 같다.〈100% 도시〉가 수도(capital)가 아닌 도시에 주목한 첫 번째 사례이지 않나?

A : 그렇다, ‘도시(city)’에서〈100% 도시〉는 처음이었다. 늘 수도에서만 공연을 했었으니까. 우리에게도 이 공연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사실 우리는 수도에 사는 서울 관객들에게 좀 더 도발적일 수 있었다. 예컨대 광주 시민들에게 던진 질문을 똑같이 서울 관객들에게 던지는 장면이 있다. 같은 질문에 대해 도시와 수도의 반응을 비교할 수 있게 말이다. 어쨌든 관객들은 다양한 답변들이 만들어내는 상투성을(Cliche) 넘어선 공연적 측면에 즐거워하는 듯 보였다.

Q: 한 달이 넘는 리허설 기간 동안 광주에서 체류한 것으로 안다. 당신이 바라보는 광주, 그 인상을 듣고 싶다. 광주시민들과의 작업을 통해 당신이 얻게 된 바 또는 영향을 받은 것이 무엇인가?

A : 우리는 광주시민의 유머를 사랑한다. 물론 처음엔 언어적 문제와 문화적인 차이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지만 광주시민들이 우리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실험을 만들고 싶다는 열의를 불러일으켰다.

Q : 마지막 질문이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연극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는 가치는 무엇인가? 어떤 연극을 만들고 싶은가?

A :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다. 서프라이징한 연극(surprising theatre)을 만들고 싶다!



◎ 아시아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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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pro <![CDATA[눈에 띄게 멋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뉴욕의 선물]]> 눈에 띄게 멋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뉴욕의 선물
[피플] 퍼포마 예술감독 로즈리 골드버그


’눈에 띄게 예쁘고, 우아하며, 멋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것이 내가 30여년 전 뉴욕의 키친(Kitchen)에서 공연 큐레이터로 일할 때 처음 봤던 로즈리 골드버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골드버그는 공연예술의 개척자이자, 모험가이며, 열정에 넘쳐 지칠 줄 모르는 챔피언이었다. 1970년대 초반 이후 그녀는 공연예술 관련 리서치와 글쓰기, 발언들을 했을 뿐 아니라 공연예술가들의 작업을 큐레이팅하고, 소개, 제작 그리고 위촉하기도 했다. 골드버그는 1979년 처음 출간돼 현재 세 번째 개정판이 나온 그녀의 독창적인 저서 『공연예술-미래파부터 현재까지』로 세계 이목을 공연예술로 집중시켰다. 이 책은 현재 세계 곳곳의 대학에서 공연예술 교육의 주요저서로 활용되고 있고, 중국어, 크로아티아어, 불어, 일본어, 한국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8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972년 그녀가 로열아트칼리지갤러리(Royal Art College Gallery)의 디렉터가 되었을 때, 골드버그는 다층위적이고, 분야 통합적인 새 큐레이터적 작업으로 선례를 남겼다. 그녀는 몇 년 뒤 키친에서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필립 글래스(Phillip Glass), 피터 고든(Peter Gordon), 메레디스 몽크(Meredith Monk) 그리고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과 같은 획기적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기 위해 퍼포먼스 공간과 시각예술 갤러리, 비디오룸을 만들었고, 그들의 작업을 큐레이팅을 했다. 특히 잭 골드스타인(Jack Goldstein), 셰리 리바인(Sherri Levine),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데이비드 살르(David Salle) 그리고 신디 셔먼(Cindy Sherman)과 같은 아티스트들의 첫 단독 전시를 기획했다. 그녀의 이 획기적인 기획들은 키친(Kitchen)을 세계적 멀티미디어 기관 중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신디 셔먼과 로즈리 골드버그

골드버그는 2004년 미국에서 처음 설립된 시각예술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 비엔날레 퍼포마(PERFORMA)의 수장이다. 퍼포마는 2년마다 11월에 개최 돼 뉴욕 시 60여 개 이상의 공간에서 미국과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보여주는 100여 개의 라이브 퍼포먼스와 영상 상영, 전시, 강연, 심포지엄이 진행된다. 20세기 예술의 역사에서 라이브 퍼포먼스 역할의 중요성을 탐구하고, 21세기 전반의 공연예술의 새로운 방향 제시에 특화된 퍼포마는 세계의 미술관과 전시기획에 새로운 트렌드를 일으키는 시발점이 되었다. 지난 몇 년간의 퍼포마의 노력에 대한 화답으로 뉴욕의 모마(MoMA, Museum of Modern Art), 구겐하임(Guggenheim), 휘트니(Whitney), 파리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그리고 모스크바의 현대미술창고센터(Garage Center for Contemporary Art)와 같은 주요 미술관에서 새로운 형식의 퍼포먼스 전시들과 프레젠테이션들이 늘어났다. 뉴욕 매거진의 제리 살츠(Jerry Saltz)는 퍼포마를 일컬어 "뉴욕에 주어진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한계 없는 실험을 위한 플랫폼

Q : 당신의 모든 삶은 공연예술과 관련돼 있다. 공연에 대해서 가르치고, 강연도 했으며 『공연예술-미래파부터 현재까지』도 썼고, 2004년에는 퍼포마를 시작했다. 어떻게 공연예술에 대한 이런 열정들이 나오나?

A : 나는 어린 나이에 무용수로 시작했지만 시각예술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대학 때 순수예술을 전공했고, 런던 코톨드 인스티튜트(Courtauld Institute)에서 예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내게 시각예술과 무용은 둘 다 중요하고, 이는 건축이나 영화, 음악, 사진에 대한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내가 졸업논문 주제로 바우하우스의 화가이자 무용수인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를 선택했던 시절보다 학생들이 학문의 일부분으로 몇몇의 분야에 들어오고 나갈 수 있을 만큼 분야 간의 연계가 좀 더 많아졌다. 1972년에 졸업하고 나서, 율리오 파올리니(Giulio Paolini), 더키퍼키즈(the Kipper Kids), 브라이언 에노(Brian Eno),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크리스찬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앤서니 맥콜(Anthony McCall)의 전시와 가에타노 페체(Gaetano Pesce)와 같은 시각예술 아티스트와 음악가들 그리고 건축 디자이너들과 함께 이벤트를 기획했던 런던의 로열칼리지아트갤러리(Royal College of Art Gallery)의 대표로 임명되었다. 1972년에 뉴욕에 처음 왔고, 그 이후 몇 년간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 루신다 차일즈((Lucinda Childs), 줄리아 헤이워드(Julia Heyward), 신디 셔먼(Cindy Sherman), 로버트 롱고(Robert Longo)와 같은 많은 예술인들과 친구가 되었다. 1975년에 뉴욕에 정착했고, 이후 1979년에 쓴 『공연예술-미래파부터 현재까지』는 35년이 지난 지금도 판매가 되고 있고,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Q : 역사적으로 20세기 공연예술의 역할은 코드화된 예술과 기관 그리고 예술시장 정책에서 탈피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좀 더 예술을 사회적, 정치적인 영역에서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많은 예술가들이 내용보다 더 많은 성공을 이루고, 이름을 남기고, 선정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연예술이 어떻게 변화를 겪었는지? 오늘날 공연예술의 메시지는?

A : 당신이 언급한 60, 70년대는 예술계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정치적 이슈가 되었다. 그때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시기였고, 시민권 운동과 페미니즘 관련 이슈들의 격변기였다. 예술가들은 시대에 답했고, 분명히 시대를 표현했다. 공연예술계에서는 저드슨 교회(Judson Church)에서의 이본느 라이너(Yvonne Rainer)와 스티브 팩스톤(Steve Paxton)과 같은 안무가들의 작업이나 이탈리아 아르떼 포베라(Arte Povera, 1960년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운동) 예술가들의 작업, 수퍼스튜디오(Super Studio, 이탈리아의 현대 건축가 그룹) 건축가들의 작업 모두 정치적으로 첨예했고, 예술의 상업화에 맞서 공격적으로 민주화 작업들을 했다. 우리 시대는 완전히 달랐고, 다른 관심사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연은 여전히 길들이기 어렵다. 그것은 여전히 놀랍고, 도발적이다. 그것은 여전히 예술시장 외부에 존재하고, 예술가들은 전과 같이 사고의 복잡한 지층을 표현하기 위해 공연예술 형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퍼포마13 기간 동안 우리가 소개했던 대중목욕탕에서의 퍼포먼스 <독일인(Dutchman)>(라쉬드 존슨 Rashid Johnson)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질문들을 던졌지만 60년대에 일어났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미학을 보여주었다. 공연예술은 언제나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계 없는 실험을 위한 플랫폼으로 남아 있다.

<부활 (Reanimation)>, 조안 조나스&제이슨 모란(Joan Jonas&Jason Moran) , ©PERFORMA13
<야영지(Bivouac)>, 필립 켄(Philippe Quesne) ©PERFORMA13.

Q : 공연을 모아놓는 개념은 ’행위의 순간’과 ’직접성’을 속성으로 가지는 공연예술의 본질과 모순되는 것 같다.

A : 그것은 모순이다. 하지만 지금의 공연예술에 주어진 관심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다. 미술관들은 몇 년간 다른 이름하에 ’공연예술 컬렉션’을 했다. 이브 클라인(Yves Klein)의 작업들은 퍼포먼스 동안 만들어진 페인팅들과 필름들이다. 그리고 매튜 바니(Matthew Barney)의 물건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사진들이 그렇다. 내게 콜렉터들에 대한 더 큰 흥미로운 가능성이란 그들에게 새 퍼포먼스를 제안하면서 우리와 그리고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 또한 작업 자체를 만드는 과정에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작품의 생산이 끝나도록 기다리는 것보다 더 흥미롭고 풍부한 접근이다.

퍼포마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믿는다

Q : 당신은 퍼포마를 통해 정치적 분쟁으로 황폐화된 나라들에서 일하고 있는 대다수의 예술가들에게 작업을 의뢰하고 소개했다. 그들의 작업이 서양 작가들의 작품과는 어떻게 다른가?

A : 마켓과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서양’ 밖에서 만들어진 퍼포먼스는 인간, 시민권, 의례, 사회, 지역, 관습과 정치에 대해 더 많이 말하는 반면, 예술계 내(서양)에서는 예술계에 대한 제도비판, 관계미학 예술에 대해 얘기한다. 남아프리카, 인도, 혹은 중국의 작품들은 이 나라들의 삶과 현실에 관한 것이다. 서양에 살지 않는 예술가들에게 퍼포먼스는 페인팅이나 조각이라기보다는 서양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패스포트가 되곤 한다. 쿠바의 예술가인 타니아 브루구에라(Tania Bruguera) 혹은 중국의 장 후안(Zhang Huan)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알려졌고, 예술은 그들의 행위를 기록했다.

Q : 이전에 한 번도 퍼포먼스를 해보지 않은 시각 예술가들에게 퍼포먼스를 의뢰하는 이유가 서양아트마켓 패스포트를 주기 위함인가?

A : 아니다. 퍼포먼스에 시각예술 아티스트를 초대하는 이유는 퍼포먼스의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함이었다. 모든 것은 2001년에 쉬린 네샤트(Shirin Neshat)에게 의뢰했던 <새들의 논리(Logic of the Birds)>로부터 시작됐다. 90년대 후반에 나는 흥미로운 퍼포먼스 설치들과 영상들을 봤고, 그때는 뉴욕에서 공연됐던 모놀로그 퍼포먼스의 반복에 지쳤을 시기였다. 나는 스스로 "만약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한 매체에서 다른 매체를 가지고 퍼포먼스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쉬린의 작품은 영상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로 옮길 수 있을 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작품은 연극적이고, 감정적이며, 우아하고, 환기시키는 힘이 있었다. 즉, 아름다움과 의미를 둘 다 내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전을 했고 완전히 놀라운 퍼포먼스로 <새들의 논리>가 만들어졌다. 이후에 이삭 줄리언(Isaac Julien), 그리고 제스퍼 저스트(Jesper Just), 캔디스 브라이츠(Candice Breitz), 오마르 패스트(Omar Fast), 나탈리 져버그(Nathalie Djurberg), 정연두(Yeondoo Jung)그리고 많은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작업 의뢰를 했다. 이들은 시각적 유혹을 관객들의 가슴에 가닿게 하는 사람들이었고, 퍼포마의 의뢰로 새로운 퍼포먼스적 방향을 갖게 된 아티스트들이다. 이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하지만 퍼포마는 위험을 감수하고, 아티스트의 상상력을 믿는다.

Q : 작품을 의뢰할 때 창작과정에 개입을 하는지 아니면 손을 놓는가?

A : 우리는 매 순간 아티스트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는 작업 초기부터 예술가들의 아이디어와 진행 과정에 대해 논의하고, 작업이 조금씩 진전될 수 있도록 한다. 예산을 만들고, 리허설 내에 시간을 맞추고, 레지던시와 조명이나 음향 디자인 그리고 전반에 걸쳐 그들을 돕는다. "내가 공간을 걸어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래?" 혹은 "마지막에 내가 무엇을 느끼길 바래?"와 같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아티스트들의 작품 구조화를 돕는다.

<엄마 여왕(Queen Mother)> 파웰 알타머(Pawel Althamer) ©PERFORMA13.

Q : 전세계적 시각을 보여주는 당신의 관심사는 퍼포마13에서 파트너 국가들과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닌 지속적 예술교류를 위해 시작한 <벽이 없는 파빌리온(Pavilions Without Walls)>으로 새로운 전환을 맞이했다. 이 작업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A : 《벽이 없는 파빌리온(Pavilions Without Walls)》의 제작 의도는 다른 나라들과 좀 더 깊이 있는 리서치를 통해 협력하기 위함이자 문화와 큐레이터적 비전에 대한 생각들을 더 확장하고, 교환하기 위한 것이지 예를 들어 베니스비엔날레 파빌리언에서 국제적 아티스트들의 일회성 프로젝트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소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퍼포마의 큐레이터와 프로듀서들은 폴란드, 노르웨이에서 각각 다른 방문을 했다. 우리는 각 국의 아티스트, 큐레이터, 미술관 감독 그리고 문화기관들을 이끄는 정부기관들을 만났고, 그 나라들의 현대예술가와 문화에 대한 간략한 이해, 역사와 정치에 대한 의미 있는 접근을 했다. 이 여행들의 결과로 뉴욕에서 비엔날레 개최까지 6개월 동안 일할 큐레이터들을 위해 매우 흥미로운 교류의 장이 된 퍼포마에 각 방문 나라들의 큐레이터들을 초대했다. 첫 번째 《벽이 없는 파빌리온(Pavilions Without Walls)》 은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깊이 있게 조명됐고, 모든 관계자들에게도 아주 성공적인 프로그램이었다.

Q : 마지막으로 향후 10년의 시각예술 퍼포먼스 방향에 대한 생각을 들려 달라.

A : 퍼포먼스는 21세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예술가들에게 오늘날 우리 주변의 아주 많고 다양한 매체들을 사용하게 하고, 세계의 복합적인 연관성을 예술에 반영하게 하여 예술계의 확장과 일련의 복합적 사고 층위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라이브’성은 매체와 인터넷으로 둘러쌓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해독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와 미래에 대한 질문을 흡수하기 위한 에너지관이 될 것이다. 퍼포먼스는 접근가능하지만 복잡하고 관람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동시대 문화에 맞서기 위한 가장 흥미로운 방법이다.



RoseLee Goldberg, Founding Director and Curator, Performa.
Photo Patrick McMullan_La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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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박재천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래머


‘프로그래머 박재천’보다는 ‘뮤지션 박재천’이 더 익숙했다. 박재천을 처음 무대에서 봤던 때는 2012년 ‘여우락페스티벌’의 개막공연이었다. 평소 흥 깔아주는 안숙선의 소리와 이광수의 상쇠, 김청만의 북이 그가 깔아준 리듬의 흥을 타고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뒤, 나는 글 잘 쓰고, 음악에 대한 눈목 좋은 남무성의 ‘Jazz it up!’을 보던 중 박재천·미연과 다시 한 번 마주쳤다. 세계 재즈사를 다룬 그 책에 박재천의 프리재즈는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뒤에도 2013년 ‘시나위프로젝트’ 등 전통음악이 새로운 옷을 입을 때면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보였다.
뮤지션 박재천은 넘나듦에 익숙하고 그 과정에서의 느낌을 ‘실용화’하여 다음의 음악을 일구는데 적극적이고 치밀하다. 드럼에서 연주하는 그만의 한국장단법인 ‘코리안 그립’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 주법은 그가 재즈와 전통음악, 월드뮤직을 넘나들 때 중요한 가교역할을 한다